2017-10-08

[Causerie] <정도 正道>가 <변증법은 벽돌을 부술 수 있는가? La dialectique peut-elle casser des briques?>가 된 사연




최근 한 지인의 부탁으로 르네 비네의 <변증법은 벽돌을 부술 수 있는가? La dialectique peut-elle casser des briques?>(위 사진)의 판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상황주의 영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르네 비네가 다른 장편영화 한 편을 통째로 가져와 '전용'(detournement)한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인데 영문이나 프랑스어로 된 정보들을 봐도 대부분 잘못되어 있다. 1970년대에 제작된 한국영화 <정도 正道>가 어떻게 프랑스로 건너가 <변증법은 벽돌을 부술 수 있는가?>가 되었는지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아래 정리해 보았다.

(1) 원본영화 A (중국어버전)
: 영어제목으로는 "The Crash"라고 알려져 있지만, 중국어 제목은 <당수태권도 唐手跆拳道>이고 1972년 6월 20일 홍콩에서 개봉되었다. 감독은 두광치(屠光启)라고 되어 있다. 아래 홍콩판 포스터를 보면 포스터(중앙 약간 우측)에 "도연(감독) 두광치"라고 적혀 있다. (중국어로 된 영화정보는  http://bit.ly/2weIGA1 중국어로 된 감독 정보는  http://bit.ly/2x8z1au 를 참고.)



영문위키피디아 등에는 제작사가 Yangtzu Productions라고 되어 있는데 위의 (중국어로 된) 영화정보 링크를 보면 "장강영화(홍콩)유한공사"(长江电影(香港)有限公司)이다. (장강이 곧 양쯔강이니 영문회사명을 저렇게 한 모양이다.) 

(2) 원본영화 B (한국어 버전)
: <당수태권도>는 1970년대에 횡행했던 이른바 한홍합작 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촬영도 한국에서 이루어졌고 한국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이 작품의 한국어 제목은 <정도 正道>이고 1973년 5월 12일 스카라극장에서 개봉되었다. 그런데 한국어 광고를 보면 감독이 강유신이라는 이로 되어 있다. 아래는 당시 신문에 실렸던 영화광고다.




위 광고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1973년 5월 12일자 일간지들을 검색한 다음에(키워드 검색으로는 잡히지 않는다) 광고란을 보면 이 영화 광고들이 실려 있다. 위의 포스터 가운데 왼쪽 포스터 상단을 보면 " 프랑스 파리에서 상영된 화제의 영화!"라는 문구가 보인다. ​아래는 한국어판 <정도>의 포스터. 상단에 감독 이름이 분명히 보인다.



이 영화의 제작사는  한진흥업이다. 한진흥업은 <변증법은 벽돌을 부술 수 있는가?> 제작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중앙일보』 1973년 4월 5일자 기사를 보면, 

제작사「한진흥업」을 고발

문공부는 우리나라를 무대로 우리나라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당수태권도』라는 영화가 최근 「프랑스」「파리」에서 용공 단체의 선전영화로 둔갑, 상영되고 있다는 보도 (3월31일 자 본지 4면게재· 중앙일보 「파리」주재 주섭일특파원보도)에 대해 진상조사에 나서 이 영화가 합작영화가 아닌 순수한 우리 나라 영화 (제목은 『정도』 ) 임을 밝혀내고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이 영화를 작년 말 「홍콩」 장강전영공사에 수출한 제작사 한진흥업(대표 한갑진)을 검찰에 고발했다. 「한진」은 제작에 앞서 「장강」과 7천「달러」에 수출하기로 계약, 동남아지역상영권만 양도하기로 했는데 수출신고절차를 밟기 전에 「한진」이 「장강」에 「필름」을 반출, 「장강」 은 다시 「토키」를 중국어로 바꿔 임의로 「프랑스」 좌파 단체인 「계급투쟁 촉진회」에 이중 수출 했다는 것이다. (기사 링크:   http://news.joins.com/article/1344888)

이 기사를 보면 <정도> 혹은 <당수태권도>는 홍콩에서 두광치가 만든 작품이 아니라 한국에서 제작해 홍콩에 (합작형식으로 계약해) 수출한 한국영화인 셈이다. (홍콩에서는 중국어로 더빙해 개봉하고 이를 프랑스까지 수출한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정도>의 35mm 프린트는 보유하고 있지 않고 비디오 자료도 없다. 시나리오(오리지널 및 심의대본)만 소장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영상자료원 KMDB <정도> 정보 참조:  http://bit.ly/2v5QAXb) 그런데 2012년 12월 7일자 『동대신문』을 보면, 한진흥업 한갑진 회장이 소장하고 있던 한국영화 필름 127편 및 해당 작품들의 지적 재산권, 대본, 스틸사진, 영화기자재, 비디오테이프, 영화서적 등 관련 저작물 일체를 동국대학교에 기증했다는 기사가 있다.

한갑진 한진흥업 회장, 한국영화필름 127편 기증후학들의 연구를 위해 다수의 연구 가치 큰 자료 기부

원로 영화인 한진흥업 한갑진 회장이 지난 5일 우리대학에 소장하고 있던 한국영화 필름 127편 및 해당 작품들의 지적 재산권, 대본, 스틸사진, 영화기자재, 비디오테이프, 영화서적 등 관련 저작물 일체를 기증했다. 한 회장은 “영화예술 분야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동국대학교가 이 자료들을 잘 보관하고 활용했으면 좋겠다”며 “학생들이 한국영화사를 공부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희옥 총장은 “70년대 영화산업을 이끄셨던 한회장님께서 기증해주신 중요한 영화 사료를 후학들의 연구에 귀중하게 활용하겠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번 기증된 영화자료 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은마는 오지 않는다 △호국 팔만대장경 등으로 보존 가치가 큰 것으로 판단된다. 한갑진 회장은 1966년부터 영화 제작 및 보급을 시작해온 한국 현대영화사의 산증인이다. (기사 링크:  www.dg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93)

(3) 르네 비네의 <변증법은 벽돌을 부술 수 있는가?>
: <정도> 혹은 <당수태권도>는 원래 컬러영화다. 르네 비네가 1973년에 공개한 <변증법은 벽돌을 부술 수 있는가?>는 <당수태권도>의 중국어버전 프린트를 활용해, (a) 중국어 사운드트랙은 그대로 둔 채 (b) (원래 영화와 무관한) 프랑스어 자막을 입힌 것이다. 이것이 최초 버전인데 이 프린트는 현존하지 않는다. 이 버전 다음에 나온 것이 프랑스어로 더빙한 버전이고 요즘 보여지는 것도 이 버전이다. 요즘에는 주로 영문자막이 처리된 프랑스어 더빙버전으로 보여지고 있는데, 유튜브( www.youtube.com/watch?v=mjUNY0433Do)나 우부웹( www.ubu.com/film/vienet_dialectics.html)에서 제공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영문자막 처리된 프랑스어 더빙 버전이다. 그런데 이 버전을 보면 흑백으로 되어 있다. 이유인즉, 이 프랑스어 더빙/영어자막/흑백화면 버전은 르네 비네가 <당수태권도>를 '전용'한 것을 다시 '전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버전은 1990년대에 비디오아티스트이자 영화작가인 키스 샌본(Keith Sanborn)이 만든 것이다. 영문자막, 흑백, 그리고 레터박스 처리된 비디오로 제작한 것이고 1990년대에 미국 이곳저곳에서 <변증법은 벽돌을 부술 수 있는가?>가 상영될 때는 주로 비디오로 상영되었다. 

2017-09-26

[Causerie] 로버트 크레이머의 <미 1번 국도> @ DMZ국제다큐영화제




올해 DMZ국제다큐영화제가 마련한 특별기획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다큐멘터리와 미장센" 부문에서 상영되는 로버트 크레이머의 <미 1번 국도 Route One/USA>(1989)를 보았다. 상영시간이 4시간 15분에 달하는 영화인데 월요일 오전 10시 반에 상영이 잡혀 있어 관객은 거의 없었다. (나를 포함해 총 여덟 명의 관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려행>으로 DMZ국제다큐영화제를 찾았고 부산영화제에서 프리미어될 신작 <환생> 마무리작업 중인 임흥순 감독이 와 있었다. <미 1번 국도>를 보고 난 탓인지, 문득 임흥순 감독의 장편데뷔작 <비념>이 떠오르기도 했다.) 

로버트 크레이머에 대해 호기심을 품게 된 것은, 십수 년 전 <H 스토리 H Story>(2001)의 제작과 관련한 스와 노부히로의 인터뷰를 읽으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와는 크레이머와 공동으로 히로시마에 관한 영화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1999년 11월 10일 크레이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만다. 스와는 <H 스토리> 작업을 계속한 것은 크레이머를 위해서이기도 했다고 술회한다. 당시 나는 <듀오 2/Duo>(1997)와 <마/더 M/Other>(1999) 등의 작품을 통해 스와에게 깊이 관심을 갖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그와 공동으로 히로시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던 로버트 크레이머의 작업에도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그에 대한 몇몇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당시로선 그의 영화를 직접 볼 방법이 없었다.

크레이머의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된 건 프랑스에서 출시된 DVD를 통해서였다. 2006년에는 <미 1번 국도>가, 2010년에는 <아이스 Ice>(1970), <마일스톤즈 Milestones>(1975), <닥의 왕국 Doc's Kingdom>(1988)과 <워크 더 워크 Walk the Walk>(1996)가 프랑스에서 차례로 출시되었다. 비로소 크레이머의 영화를 스크린에서 보게 된 건 2014년에 이르러서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마일스톤즈>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던 것이다. 1960년대 급진주의의 이상이 이후 어떻게 (긍정적으로건 부정적으로건) 분산되었는지를 숱한 인물들의 일상의 궤적을 좇아가며 파고든 이 작품은 그해 영화관에서 본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한 편이었다. 

<미 1번 국도>는 망명객으로 유럽을 떠돌던 크레이머가 미국에 돌아와 찍은 첫 영화로, <마일스톤즈>의 후속작이라 생각해도 좋지만 그 구성이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여기서 크레이머는 그의 전작 <닥의 왕국>의 주연을 맡았던 폴 맥아이작(Paul McIssac)과 함께 미 1번 국도를 따라 여행하며 당대 미국 사회의 (보수적이건 진보적이건) 여러 인물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세르주 다네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이라는 장소를 "검진"한다. 

"[폴 맥아이작이 연기하고 있는] 의사를 왜 [<미 1번 국도>의 여행의 동반자로] 선택했는가? 로버트 크레이머의 아버지가 의사이기 때문에? (<마일스톤즈>에도 검진 장면이 있다.) 존 포드 영화에는 의사라는 주제가 있기 때문에? (포드는 크레이머가 존경해 마지 않는 인물이고, 내가 항상 생각해 온 바로는, 크레이머야말로 포드의 드문 후계자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혹은 우리가 "진정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물론,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크레이머의 예술 - 그는 예술가, 그것도 위대한 예술가이므로 - 이 근본적으로 의사의 기술, 개업 의사의 기술과 같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추상적으로만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환자를 골라받을 형편이 될 수 없다." - 세르주 다네, 세계의 웅성거림 La rumeur du monde (1989)

크레이머는 지나치게 일찍 세상을 떴다. 하지만 올해 초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회고전이 마련되었던 존 지안비토(John Gianvito)의 영화에서, 혹은 미셸 클레이피(Michel Khleifi)와 에얄 시반(Eyal Sivan)의 <루트 181 Route 181: Fragments of a Journey in Palestine-Israel>(2004) 같은 영화에서 크레이머의 '여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고보니 프랑스에서 DVD로 출시된 피터 왓킨스의 <여행 Resan>(1987)을 구입해 두곤 보는 일을 미뤄두고 있었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14시간 33분에 달한다.) 돌연 이 영화가 떠오른 것은 순전히 그 제목 때문일 것이다. 마침 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2017-06-29

[Critique] 가난한 세대의 놀이: 박병래의 영상작업에 대한 노트

※ 아래 글은 2017년 4월 27일부터 6월 18일까지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비디오 포트레이트」(Video Portrait)에 맞춰 발간된 도록에 실린 것이다. 박병래 작가에 대해서는 작가 홈페이지(www.byounglae.com)를 참조. 이 글에서 다룬 영상작업 이외에도 드로잉 및 퍼포먼스 작업 등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가난한 세대의 놀이
: 박병래의 영상작업에 대한 노트


“떳떳한 놀이란 얼마나 드문 것인가!”(Il y a si peu d’amusements qui ne soient pas coupables!)
‒ 보들레르, 「가난한 사람의 장난감」(Le Joujou du Pauvre)


<화포異景>(2014, 47분)


2011년에 미디어아트 채널 『앨리스온』을 통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병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 지역이나 역사라는 키워드 외에도 […] 우리 세대의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7~80년대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의 세대. 물질적으로는 여유로움이 있었지만 전 세대와는 다르게 정신적인 상상력이랄까 이상이랄지 이러한 정신적 측면은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세대… 뭔가 일어났는데 다른 것을 통해 그걸 보았던 그러한 세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뭔가 일어났는데 다른 것을 통해 그걸 보았던 그러한 세대”라는 표현이다. 박병래 작가(1974년 여수 출생)와 같은 또래이며 전라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나는 이러한 표현에 담긴 희미한 열망과 아쉬움을 흡사 내 것인 양 쉬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와 나의 세대에게 있어 역사란 어떻게 감지되는 것이었는지, 이전 세대에 비하면 너무 늦게 도착했고 이후 세대에 비하면 너무 급히 떠밀리듯 도착했다는 감각은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되었는지를 여기서 따져보고 싶지는 않다. 이 지면에 어울리는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개인적 토로를 일반화하는 경우 자칫 주제넘은 일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듯싶다. 박병래의 영상작업은 유년기를 역사적으로 맥락화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 할 사적 추억의 저장고를 지니지 못한 세대가 유년의 사막에 흩어진 파편들을 모아 비인칭적 기억으로 (탈)구축하는 일에 가깝다고 말이다. 

박병래의 영상작품은 때로 몇몇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지만 주로 전시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이고, 오늘날의 미술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것의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의미나 의의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리뷰되곤 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을 가로지르는 가장 두드러진 주제적 강박이라 할 ‘놀이’(game/play)마저도 곧바로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동기와 연계되어 이야기되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동기와의 연계가 거의 없어 보이는 놀이의 작업인 <화포異景>(2014)이, 이때까지의 박병래의 작업을 포괄하는 중요한 작품임에도 (영화계는 말할 것도 없고 미술계에서조차) 거의 무시되다시피 했던 것은 대단히 징후적이다. 우리는 저 추억 없는 세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박병래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의 영상작품에 놀이는 있어도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이야기란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혹은 그에게 있어 놀이는 곧 이야기이다. 그가 인터뷰에서 ‘이야기’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일종의 관습적 화법에 따른 것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말을 “놀이를 하고 싶었다”로 바꿔 읽어야 한다. 기억을 (탈)구축하는 넝마주의의 놀이, <반달게임>(2007)에서 최근의 <유틀란디아>(2015)에 이르는 박병래의 영상작품들은 바로 이러한 놀이의 조건을 가늠해보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목표도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반달게임>(2007, 8분 38초) [☞ 작품보기] 


<반달게임>은 1980년대 초반 한국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놀이에 대한 안내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반달’이라고 언급되고 있는 놀이는 ‘이랑타기’ 혹은 ‘삼팔선놀이’라고 알려져 있던 놀이가 약간 변형된 것이다.) 그리고 북한군을 늑대와 여우로, 김일성을 돼지로 묘사한 반공 애니메이션 <똘이장군: 제3땅굴편>(1978)에서 발췌한 영상클립이 이어진다. 이것이 남북의 대치라는 정치적 상황에 대한 감각을 여러 간접적 매개를 통해 흡수했던 세대의 유년의 사막에 흩어진 파편들 가운데 일부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반달게임>은 이 파편들로부터 출발해 자기 세대의 무의식을 답사하거나(비판적 회고), 그것들을 어루만지며 거짓 추억의 대상으로 삼거나(멜랑콜리), 그것들로부터 현재에 대한 성찰을 끌어내는(알레고리) 등의 쉬이 짐작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한 움직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잡는 것이다. 작가 자신이 연기한 한 인물은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나무 모양의 백색 구조물들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 세트를 배회한다. 이 추억 없는 텅 빈 유년의 공간에서, 그는 구조물 가운데 난 구멍을 발견하곤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나무에 난 구멍이 다른 세계와 통한다고 여기는 익숙한 유년의 상상.) 그러자 우주공간처럼 보이는 또 다른 텅 빈 공간 속에 놓인 백색 입방체 틀 속에서 조타륜을 다루던 인물이 균형을 잃고 격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조타륜으로 하늘을 나는 배나 우주선의 키를 조종한다는 상상 또한 7~8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던 이들이 간혹 접하던 만화나 동화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일 터이다.) 하나의 공간과 다른 공간을 연결하는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 그리고 이러한 건드림을 통해 유발된 흔들림으로부터 균형을 회복하려 드는 것, 이는 <반달게임>과 <고무줄놀이>(2008)에서 놀이의 리듬이 전개되는 데 있어 동일한 구조적 원리가 되고 있다. <고무줄놀이>의 경우, 역시 텅 빈 검은 공간을 배회하던 인물이 거울에 붙은 고무줄을 발로 건드리면서 일련의 반복적인 고무줄놀이가 촉발된다. 그의 거울상이 그와 무관하게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놀이를 통해 두 공간을 잇는 선(고무줄)을 다시 조율하려는 그의 반복적 행위는 거듭해서 변주되는 리프(riff)에 가까운 것이 된다. 반면, 일렬로 쌓인 형형색색의 장난감 블록들이 거듭 화면에 등장하지만 그 무엇에도 건드려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는 <유틀란디아>에서 끝내 놀이는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사람 없이 오가는 스키 리프트, 텅 빈 테니스 코트, 바다와 사막과 초원의 풍경을 보게 될 뿐이다.     


<고무줄놀이>(2008, 7분 45초) [☞ 작품보기] 


건드림이 불현듯 유년의 사막에 흩어진 파편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파편들은 더 이상 그 무엇의 환유도 아니다. ‘빨갱이 돼지’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은 더 이상 7~80년대 반공교육의 우스꽝스러움을 환기시키는 장치가 아니다. 그 가면은 그 무엇도 아닌 그저 가면으로 박병래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조타륜, 거울, 반달 및 고무줄놀이 역시 마찬가지다. 남은 것은 이 파편들로 여전히 놀이가 가능한지를 시험해보는 것이다. 다만 이들 가운데 가면이 모종의 특권적인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것이 <째보리스키 포인트>(2011)의 주인공 (박병래 자신이 연기한) 째보의 헬멧과 마찬가지로, 얼굴(face)마저도 하나의 초-얼굴(sur-face)로, 아무 것도 환기시키지 않는 표면으로 바꿔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달게임>과 <고무줄놀이>는 놀이의 도구, 놀이의 공간 그리고 놀이의 주체 모두를 환유가 작동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환원시킨 다음에 놀이의 리듬 자체를 감지하려는 시도다. 이처럼 놀이의 영도를 가늠해보는 것이야말로, 추억 없는 세대가 어떤 아쉬움이나 열망도 없이, 자신의 유년이란 정말이지 투명하게 가난한 것이었음을 마음으로 오롯이 긍정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점에서 박병래의 정치학은 그의 작품 속에 담긴 함의나 상징이 아니라 그가 작품을 통해 거듭 수행하는 벌거벗은 놀이의 명랑한 긍정 자체에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박병래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보는 우리 또한 조급하게 놀이로부터 역사로 비약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의 작업에서 실제의 풍경이 텅 빈 검은 공간을 대체하는 것은 <째보리스키 포인트>에 이르러서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군산 지역의 장소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전시 공간이라는 환경 속에서 이 작품을 역사적으로 맥락화하기엔 유용하겠지만, 정작 <째보리스키 포인트>가 놀이와 역사 사이에서 유지하고 있는 팽팽한 긴장을 감지하는 데는 자칫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에는 황무지, 버려진 건물, 째보가 보거나 만지거나 그러모으는 사물들이 등장하지만, 우리는 어떤 정보도 없이 그저 그것들을 바라볼 뿐이다. 째보는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무기나 장비랍시고 몸에 걸치고 (어쩌면 역사적인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을지도 모를) 황폐한 장소들을 배회하며 ‘비밀기지’ 따위를 만들며 놀곤 했던 한때의 아이들을 닮았다. 째보의 행위는 순천만 화포갯벌을 배회하며 이런저런 소리(소음)를 만들어낼 사물들을 주워 한 곳에 모으는 <화포異景>의 즉흥음악가 최준용의 퍼포먼스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사물들을 환유로부터 해방시키면서 그것들이 내는 ‘가난한 소리’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최준용과 유사한 작업을, 째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행하는 중이다. 째보가 등에 메고 있는 장비에는 탐침기 같기도 하고 분무기 같기도 한 튜브가 연결되어 있는데, 이로써 그의 행위는 ‘조사’만이 아니라 ‘소독’으로도 읽힐 수 있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째보의 새로운 여행 또한 그의 ‘베이스캠프’(원형으로 배열된 나무말뚝들)를 튜브에서 분사된 액체로 꼼꼼히 소독한 이후에라야 시작되는 것이다. 


<째보리스키 포인트>(2011, 9분 53초) [☞ 작품보기] 


과거가 폐허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그것의 존재와 가치를 인지하게 된 이들이 쉽사리 빠져드는 정념은 멜랑콜리다. 때로 그러한 정념은 곧바로 역사의식과 등치되기도 한다. 수집가적인 열정이 거기 뒤따를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박병래가 말한 저 가난한 세대에겐 추억의 저장고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어둡고 텅 빈 임시 스튜디오, 사막과 황무지, 그리고 바다처럼 정주가 불가능한 곳이야말로 그들의 공간이다.) 째보는 아무 것도 수집하지 않는다. 그는 건드리고, 확인하고, 소독하고, 떠나는 자이다. <화포異景>의 최준용 또한 아무 것도 수집하지 않는다. 그가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그러모으기는 하지만, 갯벌 한복판에 있는 그것들은 밀물이 오면 쓸려나가고 말 것이다. 그는 사물들의 소리를 듣고 떠나는 자이다. 아무데도 아닌 곳(nowhere)에서 절대적으로 지금/여기(now/here)에 속하는 움직임을 수행하고 떠나는 최준용의 모습에는 박병래의 영상작업에서 변주되었던 유형의 인물들이 고스란히 겹쳐진다. (최준용이 ‘작곡’하고 실행한 실험적 즉흥음악 공연 가운데 수백 개의 탁구공을 정해진 주기에 따라 떨어뜨리는 <튀어오르다. 떨어지다>(2011)를 박병래의 영상작업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영상작업의 역설은 이처럼 한시적인 퍼포먼스를 무한히 반복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추억 없는 세대의 기억을 (탈)구축하는 현행(現行)적인 놀이를 아카이빙한다는 것, 박병래의 영상작품들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긴장이다. 새로운 여행을 떠날 채비를 마친 째보가 베이스캠프 한가운데서 돌연 자치기 놀이를 할 때, 긴장으로 한껏 팽팽해져 있던 <째보리스키 포인트>는 우리에게 일종의 청량감을 선사하면서 (베이스캠프가 형상화하고 있는) 반복의 원환을 무효화하는 열림으로 향하는 것이다. 

놀이와 역사적 감각이 만날 수 있을까? 순진하게 놀이를 행하던 과거를 돌이켜보고, 그때의 놀이를 둘러싼 배경들을 회고적으로 돌아보는 방식이 아니라, 놀이를 전적으로 놀이로 수행함으로써 말이다. <유틀란디아>에서 박병래는 이례적으로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언급한다. (덴마크 뮤지션 킴 라르센의 노래 가사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파견되었던 덴마크 국적의 병원선 유틀란디아호에 대해 알려준다.) 박병래가 틈틈이 기록해 온 풍경들이 <유틀란디아> 곳곳에 배치되어 있지만 이 파편들로부터 촉발되는 놀이는 없다. 그저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일렬로 쌓인 회전하는 블록들을 통해, 놀이의 순간이 도래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놀이를 수행할 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어쩌면 조만간 우리는 가면도 헬멧도 없는 째보, 저 가난한 세대의 방랑자가 놀이를 전적으로 놀이답게 수행하면서 마침내 맨얼굴로 역사와 대면하는 진기한 광경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