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0

[Review] 샹탈 아커만의 <노 홈 무비 No Home Movie>(2015)


※ 아래 올리는 두 편의 글 가운데 첫 번째 글([1])은 계간 『문학과 사회』 2015년 겨울호(2015년 11월 27일 발행)에 기고한 「밀수꾼의 노래 ― 「영화 비평의 '장소'에 관하여」 이후, 다시 움직이는 비평을 위한 몽타주」 중에서 <노 홈 무비>에 관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고, 두 번째 글([2])은 「2016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카탈로그용으로 쓴 것이다. 



집이 없는 영화
No Home Movie

[1]

[...] 지난 10월 5일, 벨기에 출신의 영화감독 샹탈 아커만이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은 같은 달 1일부터 10일까지 열린 부산영화제 기간에 전해졌지만, 올해 부산의 숱한 상영작 가운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집이 없는 영화 No Home Movie>(물론 ‘홈 무비 아님’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라는 이 작품은 그녀가 죽기 두 달 전, 홍상수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황금표범상을 받은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되었다. 부산에서 돌아온 바로 그날 밤, 나는 이 영화를 페스티벌스코프(www.festivalscope.com) 사이트를 통해 보았다. 이것은 전 세계 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들의 배급사나 제작사와 정식 계약을 맺은 후 연간 가입비를 받고 영화전문가들에게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다. 영화수입업자들이나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국내 관객들에게 보여주기를 거부하거나, 무시했거나, 간과한 영화들을 아쉬운 대로나마 그때그때 가정용 HD 모니터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사이트 덕택이다. 편리하긴 하지만 되감기가 불가능하고 딱 한 번 밖에 볼 수 없어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영화를 봐야 하는데, 이 때문에 페스티벌스코프를 통해 영화를 보다 보면 자신은 종종 긴장을 못 이기고 졸게 된다고 내게 토로한 크리스 후지와라의 말에 공감한 적도 있다. 




<집이 없는 영화>는 아커만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인 그녀의 어머니(2014년에 세상을 떠났다)와 스카이프(Skype)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벨기에의 집에서 두 모녀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 혹은 그들이 말없이 쉬거나 집안을 거니는 광경 등을 DV 카메라로 기록한 영상들의 모음집이다. 이런 영상들과 일견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사막의 풍경들이 난데없이 끼어들기도 하는데, 이는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아커만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은 것으로, 전적으로 실내에서만 머무는 이 영화가 야외로 향하는 것은 이처럼 사막을 보여줄 때나 탁한 물 위에 비친 아커만 자신의 그림자를 보여줄 때 정도다. 그 가운데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영화의 첫 번째 숏이다. 한 사막을 배경으로 화면 왼편에 자리한 나무 하나가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모습이 꽤 오래 지속된다. 이 숏은 거의 끝나지 않을 듯 지속되는 것이어서 바람에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나무마저도 풍화되어 이내 모두가 사막의 한 부분으로 화해 버릴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불길함은 이 영화를 보기 한 달 전에 발표한 어느 글에서 “현대영화의 작가들이 사막의 형상으로 화면이 뒤덮인 작품을 꺼림칙한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은 그들의 미학적 모험이 정점에 달하거나 그 반대로 위기에 처한 순간인 경우가 적지 않아서,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이후 행보를 기대와 불안감이 섞인 마음으로 지켜보게 만든다.”라고 쓰면서 느낀 바로 그 불길함, 그리고 얼마 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안토니우 레이스의 유작 <사막의 장미 Rosa de Areia>(1989)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소름끼치게 느꼈던 그 불길함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아커만이 <집이 없는 영화>에 사막의 풍경을 왜 집어넣었는지 이유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영화를 통해서는 직접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 사막에서 촬영된 것이라는 사실을 들먹이면서 그녀의 유태계 정체성을 끌어들이려 하는 시도는 더더욱 부질없는 짓이다. 그보다는, 그녀에게 어머니‒집이 있었던 것처럼 한때 영화에겐 자신의 집이 있었고, 영화는 집을 찍거나(<잔느 딜망, 코메르스가 23번지, 1080 브뤼셀>(1975)) 그곳으로부터 온 소식을 듣거나(<집에서 온 소식>(1977)) 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녀의 어머니도, 영화의 집도, 그녀 자신도 더 이상 여기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자. 아커만이 스카이프 화면에 떠오른 어머니의 얼굴을 DV 카메라로 포착해 보여줄 때, 그것은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잔다르크의 수난>(1928)의 팔코네티의 얼굴에 비해 덜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스크린을 응시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라고들 하는 영화적 경험과 디스플레이 화면을 흘깃거리는 경험은 진정 이질적이어서 서로 교통할 수 없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아커만의 영화는, 일견 소품의 ‘일기 영화’(diary film)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영화라고 불러 왔던 집의 벽이 온통 다공성(多孔性)의 재질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은가, 혹은 벽이라 알고 있던 것이 실은 문이며 영화는 벽이라고는 없이 온통 문들로만 가득한 것은 아닌가라는 중요한 비평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 한 편의 영화에 대해 다소 길게 적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관객들로 하여금 아커만의 영화 없이 그녀의 부고만을 듣게 만들었던 부산영화제에 대한 항의의 뜻도 있다. 이것은 글쓰기에 작은 밀수를 기입하는 제스처라고 해 두자.) 이런 비평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비단 아커만의 영화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오늘날 디지털 이미지 생산의 기제들을 총동원해 그것들을 충돌시키고 각각의 차이와 부조화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온갖 문이 한꺼번에 열릴 때의 소음을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묻는 장-뤽 고다르의 3D ‘홈 무비’ <언어와의 작별>(2014)도 여기 불러올 수 있었을 것이다. [...]


[2]

스물다섯의 나이에 만든 걸작 <잔느 딜망>(1975)으로 삽시간에 당대를 대표하는 감독의 자리에 오른 샹탈 아커만은 그에 뒤이어 <집에서 온 소식>(1977)이라는 제목의, 당대 미국 구조영화의 영향이 짙게 드러나는 실험적인 에세이영화를 내놓았다. 촬영감독 바베트 망골트와 함께 16mm 카메라를 들고 뉴욕 맨해튼 이곳저곳을 누비며 촬영한 롱테이크 영상 위로, 벨기에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를 낭독하는 아커만 자신의 목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오는 작품이다. 편지와 영화는 그것을 쓰는/만드는 자와 읽는/보는 자 사이에 시차(時差), 즉 시간적인 거리가 존재할 때만 정당화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있다. 편지와 영화는 미래에 말을 걸고 과거를 불러오는 현재형의 에크리튀르이다. 따라서 편지와 영화라는 사이―존재는 그러한 시차가 만들어내는 간극 이외에는 머물 곳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편지와 영화의 가능성의 조건이 되는 시차가 점점 소멸되어 가는 시대 ― 텔레커뮤니케이션의 시대, 뷰파인더와 모니터와 스크린이 한 몸으로 결합되는 시대 ― 에 편지와 영화는 어떻게 (여전히) 가능한가? 작년에 돌연 세상을 떠난 아커만의 유작으로 <집에서 온 소식>의 속편이라고 해도 좋을 <노 홈 무비>를 은밀히 감싸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물음이다. 여기서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스카이프 프로그램을 통해 실시간 화상대화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온 아커만이 어머니와 주방에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눌 때, 이들의 모습을 무심히 응시하는 DV 카메라는 의미심장하게도 삼각대가 아닌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일견 단순한 ‘홈 무비’ 기록물처럼 보이는 영상들 사이로 아커만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블랙베리 휴대폰 내장 카메라로 찍은 사막의 풍경이 이따금씩 삽입되곤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인 아커만의 어머니는 이 영화가 완성되기 전인 2014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아커만은 어머니야말로 자신의 “모든 작품의 중심”이라 할 만큼 중요한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은 상투적인 헌사가 아니라 그녀에게 있어서 어머니―집은 영화를 가능케 하는 시차의 조건이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영화는 자신의 집을 잃었다(‘no home’). 그렇다면 이제 시차의 새로운 조건은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을 남기고 아커만 또한 우리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