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5

[Critique]<영화의 역사(들)>과 고다르의 서재



 2015년 3월부터 약 1년 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에 "<영화의 역사(들)>과 고다르의 서재"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했다. <영화의 역사(들)>에 다양한 방식으로 인용된 텍스트들을 단서로 그의 서재를 상상해 보며 이러한 텍스트들이 고다르의 작업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풀어보려 했다. 연재 회수가 제한적인 점을 고려하여, 몽상이나 환상에 빠져드는 수인(囚人)의 모티브가 두드러진 세 편의 소설과 영화 및 예술의 역사에 접근하는 고다르의 태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두 편의 에세이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재는 마무리되었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영화의 역사(들)>에 직접 인용되고 있거나 그와 관련된 다른 텍스트들에 대해서도 써 보고 싶다.  


차례


1.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 (제245호, 2015.3.24)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코울리지의 꽃」 (제247호, 2015.4.20)
3.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제249호)
4. 홀리스 프램튼의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 (제255호, 2015.10.26)
5. [최종회] 잭 런던의 『별 방랑자』와 샤를 보들레르의 「여행」 (제258호, 2015.12.6)



1.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 
(2015.3.24 /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45호) * PDF로 보기




고다르가 자신의 책꽂이에서 꺼내든 한 권의 책이 내 시선을 끈다. 그는 꺼내든 책을 살며시 잡고, 나직한 목소리로 그 제목을 읽고, 다시 원래의 자리에 꽂는다. 영과 무한(Le zero et l'infini). 이것은 헝가리 태생의 작가 아서 쾨슬러의 대표작 『한낮의 어둠』(1940)의 프랑스어판 제목이다. 20세기라는 영화의 시대를 영화 그 자체를 통해 반추하고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 <영화의 역사(들)>(1988~1998)에서 고다르가 읽거나 인용하거나 언급하는 많은 책들 가운데 유독 쾨슬러의 이 소설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왜인가? 실은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이다. 고다르가 일부러 그런 것인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이 책을 집어 들어 읽은 후 책꽂이에 완전히 밀어 넣지 않고 책등이 어중간하게 삐져나온 상태로 다시 꽂아두는 바람에, 그가 자신의 책꽂이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자꾸만 그 삐져나온 책에 신경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의 작가가, 과학도였던 학부시절 선배의 소개로 읽게 된 기이한 과학서 『야누스: 혁명적 홀론이론』(1978)의 작가라는 점도 한몫했으리라. 

<영화의 역사(들)>의 맥락에서, 『한낮의 어둠』이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고다르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비에트 영화의 영광과 힘의 증거로서 일련의 (소비에트 감독들의 영화에서 발췌한) 영상들을 보여주고 난 다음이다. 레닌의 죽음, 그리고 스탈린의 집권과 더불어 도래한 전체주의적 체제의 어둠에 대한 고발로서, 쾨슬러의 소설은 그에 뒤이어 고다르가 언급하는 또 다른 소설인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1973)와 나란히 같은 자리에 놓이는 것이다. 『한낮의 어둠』의 주인공인 루바쇼프는 한때 당의 유력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으나 당의 ‘넘버 원’에 의해 숙청당하게 되는 인물로, 실제로 스탈린에 의해 숙청된 니콜라이 부하린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낮의 어둠』과 <영화의 역사(들)>의 관계는 이처럼 명시적으로 정치적인 수준에만 머물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쾨슬러의 이 소설은 <영화의 역사(들)> 전체의 주제는 물론이고 이 작품에서 고다르가 스스로를 한 명의 ‘소설적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이르기까지 보다 심원한 암시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한낮의 어둠』의 상당 부분이 감옥에 갇힌 루바쇼프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반추하면서 왜 옳은 동기가 파국적 결과를 낳았는지, 자신 또한 그러한 파국에 책임이 있는 것인지를 치열하게 따져 묻는 사색적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취조의 과정을 묘사한 부분들조차도 루바쇼프가 자기 안의 다른 자기와 펼치는 내적 대화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그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역사가 내게 대출해 준 신용을 모두 탕진해 버렸다. 내가 옳았다면 후회할 것이 없고, 틀렸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는 어떤 역사인가? 역사의 판단은 언제 도래하는가? 그것은 언제나 늦게, 그것도 가장 늦게 도래하는 것이다. “역사는 하소연하는 이들의 턱뼈가 먼지가 될 즈음에야 판결을 내렸다.” 루바쇼프와 고다르는 자신들이 역사에 전적으로 새로운 국면(공산주의의 실현, 영화의 누벨바그)이 도래하게끔 했다고 믿었지만 실은 역사에 도래했던 마지막 국면 - 더 이상 그 이후의 국면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앞선 것들의 쇠락만을 지켜보게 만드는 저주받은 유토피아 - 의 조종(弔鐘)을 울리기 위해 호출된 자들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세대에 속한다. 그들의 뒤를 잇는 세대에 대한 (고다르도 동의할 법한) 쾨슬러의 묘사는 서늘하면서도 냉철하다. “그들은 어떤 과거도 안 가졌기 때문에 과거를 부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탯줄도 없이, 경쾌함도 없이, 우울도 없이 태어났다.”

<영화의 역사(들)>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주요한 서사적 모티브가 있다면, 하나는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단테의 시와 오르페우스 신화 및 보들레르의 「여행」과 「여행으로의 초대」 등을 넘나드는 여행의 모티브이고, 다른 하나는 포로시절 사영기하학의 원리를 고안한 장-빅토르 퐁슬레, 생애 말년 호텔 방에 처박힌 채 자신이 제작한 영화들만을 거듭 보았다는 하워드 휴즈, 수감생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상의 여행에 빠져드는 잭 런던의 『별 방랑자』(1915)의 주인공 대럴 스탠딩 등으로 예시되는 몽상, 환상, 사색에 빠져드는 수인(囚人)의 모티브이다. 다만 (감옥이나 호텔이 아닌)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힌 고다르가 수행하는 정신적 여행은 퐁슬레적인 순수 지식에 대한 탐구, 휴즈적인 자폐적 침잠, 별 방랑자의 환상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이러한 수인들 가운데 특별히 루바쇼프라는 인물이 <영화의 역사(들)>의 고다르라는 ‘주인공-인물’의 숨은 모델이 되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갇힌 공간에서 그가 수행하는 정신적 여행의 역사적 성격, 그리고 집요한 내성적(內省的) 성격 때문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꿈꾸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그 꿈이 어떻게 역사적 사유와 맞닿을 수 있는가? <영화의 역사(들)>은 보르헤스가 「코울리지의 꽃」(1952)에서 인용한 새뮤얼 테일러 코울리지의 텍스트를 재인용하는 고다르의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꿈속에서 낙원을 여행한 한 남자가 그곳에 왔었다는 증거로 한 송이의 꽃을 받았다면, 그런데 깨어 보니 손에 그 꽃이 들려 있었다면, 어찌 된 것이겠는가? 내가 바로 그 남자였다.” 보르헤스가 코울리지의 꽃으로 상징화하고 있는 예술적 보편사(史)의 정신(Espíritu)을 건네받은 이는 끊임없이 꿈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각성 상태에서 꾸는 꿈이다.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은 악몽으로 화한 정치적 유토피아의 꿈에 대한 역사적 비판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치열하게 내성적인 백일몽을 통해 역사적 비판에 임하는 수인의 형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역사(들)>을 위한 서재의 특권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한낮의 어둠』 한국어판은 최승자 시인의 번역으로 1981년 한길사에서 출간되었고, 문광훈 교수의 새로운 번역으로 2010년 후마니타스에서 출간되었다.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코울리지의 꽃」
(2015.4.20 /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47호)




[사진 1]


1953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35편의 짧은 에세이들을 모은 『다른 심문들』(Otras Inquisiciones)이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발표한다. 이 산문집에 실린 글 가운데 「코울리지의 꽃」은 1952년에 쓰여진 것으로 여기서 보르헤스는 일종의 문학적 범신론, 세상의 모든 텍스트는 단 하나의 비인칭적 저자에게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 즉 ‘무한한 문학’(infinite literature)의 보편성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보르헤스는 폴 발레리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문학의 역사는 작가들의 역사도, 작가들의 생애나 작품의 전개 과정 속에서 발생한 사건들의 역사도 아니며, 문학의 생산자 혹은 소비자로서의 정신(Espíritu)의 역사이다. [정신이라고 하는] 유일무이한 그 단 하나의 작가를 논하지 않고는 문학의 역사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후 그는 상이한 실재들(꿈과 현실, 현재와 미래, 과거와 현재 등) 간의 교통이라고 하는 모티프를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세 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차례로 소개하는데, 이 가운데 새뮤얼 테일러 코울리지의 (생전에 미발표된) 유명한 텍스트야말로 보르헤스의 이 에세이에 가장 커다란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 “꿈속에서 낙원을 여행한 한 남자가 그곳에 왔었다는 증거로 한 송이의 꽃을 받았다면, 그런데 깨어 보니 손에 그 꽃이 들려 있었다면, 어찌 된 것이겠는가?”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을 마무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코울리지의 이 텍스트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다르 자신이 이 텍스트를 읊조리는 동안 (정작 보르헤스가 ‘직접’ 쓴 텍스트에서 인용하고 있는 구절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굳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라는 이름을 검은 바탕에 흰 글자로 새겨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코울리지를 보르헤스를 통해 ‘재인용’하고 있음을 명시하기 위해서일까? 그보다는 내레이션과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그 둘 모두를 이중적으로 가리키려 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무엇보다 그 꽃은 전수되는 꽃, 넘겨받고 넘겨주는 꽃이다. 그런 점에서 유일무이한 꽃이며 무한한 이름들을 품고 있는 꽃이다. 이와 같은 ‘모든 이름들’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비인칭적] 작가’의 행위로 ‘정신의 역사’를 사고하고자 하는 발레리의 기획, 나아가 이를 확장한 보르헤스적 상호텍스트성의 기획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영화의 역사(들)>이 영화사의 걸작들, 주요 감독들, 작품과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편년사적 기술이 아니라, 에우리디케를 (되)찾는 오르페우스의 여정이라는 신화적 모티브를 바탕에 두고 상호텍스트적 인용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직조하는 ‘영화적 정신’의 작업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라. <영화의 역사(들)>이 예술적 보편사의 기획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이 작업의 총론에 해당하는 1A파트의 부제가 “모든 역사들”(toute les histoires)이라는 데서도 감지된다. 그런가 하면 인용의 콜라주로 19세기를 재구성하고자 했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발터 벤야민이나 숱한 도상(그림, 사진 등)들의 배치 속에서 고대로부터 유럽 문명을 가로지른 ‘순수비이성’의 존재를 감지하고자 했던 <므네모시네>의 아비 바르부르크 등도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영화의 역사(들)>에서 이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혹은 그 기획의 유사성으로 인해 무분별하게 비교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꽃은 고다르라는 한 인물에게 건네진 꽃, 하지만 누구에게 (다시) 건네주어야 할 지 몰라 거듭해서 그걸 건네받은 꿈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고독한(seul) 인물의 꽃이다. 그런 점에서 유일무이한(seul) 꽃이며 단 하나의 이름을 품고 있는 꽃이기도 하다. 이는 1A파트에 이어지는 1B파트의 부제를 “고독한/유일무이한 역사”(une histoire seule)로 삼고 불현듯 스스로를 역사의 특이점에 자리한 존재로서 호명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의 역사(들)>은 고다르의 자화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 작품의 종결부에서 코울리지의 텍스트가 낭독되는 동안 화면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꿈의 공장’(usine de rêve)이라는 글자와 더불어 나타나는 노란 꽃(다시 강조하건대 이 꽃은 그가 거듭해서 꿈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저 사진으로만 접했던 고흐의 자화상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유일무이한 고독의 낙원을 거니는 얼굴 없는 예술가의 모습을 담은 <반 고흐의 초상을 위한 습작>(1957) 그리고 고다르 자신의 초상사진이다. (이상 사진 1 참조) 코울리지의 텍스트를 모두 읊조리고 난 고다르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베이컨의 그림과 자신의 초상사진을 겹쳐놓은 후, 예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내가 바로 그 남자였다.” 이 순간, 발레리(와 보르헤스)가 떠올렸던 ‘정신의 역사’의 작가는 고다르에 의해 비인칭적(impersonal)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personal) 존재라는 이중의 의미를 띄게 된다.




[사진 2]


[사진 3]


<영화의 역사(들)>을 두 번째 보던 때부터, 처음 보았을 때는 지나쳤던 도입부의 한 짧은 영상이 문득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영상은 이 작품의 결말부 코울리지의 텍스트 및 노란 꽃의 이미지와 수미상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1A파트의 도입부에 삽입된, 피아노 위에 한 송이 꽃을 올려둔 뒤 열심히 건반을 두드리는 채플린의 모습이 담긴 영상(사진 2)으로, 이것이 케빈 브라운로우와 데이빗 길의 다큐멘터리 <미지의 채플린>(1983)에서 발췌한 것임을 알게 된 건 꽤 나중의 일이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채플린의 모습은 서재에 앉아 전동타자기를 두드리는 고다르의 모습과 병치된다. 할리우드라는 ‘꿈의 공장’에서 활동하며 꽃을 건네받았던(사진 3의 <시티 라이트>) 이와, 건네받은 꽃을 어디 전해야 할 지 모르는 데다 꽃 자체를 ‘꿈의 공장’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이의 대조. (이 순간 고다르가 내뱉는 말은 “게임의 규칙”이다.) 어쩌면 문제는 다른 데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꿈속에서 거닐었던 곳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 저승이며 거기서 건네받은 꽃을 시들지 않은 채로 이곳에서 간직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힘들거나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일까? 고다르가 저승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향한 엄준한 경고의 말 ― “hoc opus hic labor est.”(이것이 문제고 이것이 힘든 일이라오.) ― 을 작품의 맨 첫머리에 두고 있는 것은? (라틴어로 쓰여진 이 말은 한국에서 <영화의 역사(들)>이 상영될 때마다 번역되지 않은 채로 남겨졌다. 사진 4 참조.) 이 인용구의 출처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제6권으로, 그 앞에 놓인 말들과 함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옥의 문은 밤낮으로 열려 있으니 내려가는 일은 쉽다오. 하지만 발걸음을 돌려 위쪽 세상의 대기로 돌아오는 일, 이것이 문제고 이것이 힘든 일이라오.”  



 [사진 4]


※ 『다른 심문들』의 한국어판은 정경원 교수의 번역으로 2008년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만리장성과 책들』이다.  





3.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49호)



[사진 1]


<영화의 역사(들)>은 20세기의 예술로 일컬어지는 영화의 자취를 더듬으면서 그 영광을 노래하기보다는 오욕, 타락 그리고 실패의 역사를 말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정작 예술이 되는 데 실패했다. “치명적인 아름다움(fatale beauté)”이라는 부제가 붙은, <영화의 역사(들)>의 2B파트에서 고다르는 노골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는 상품이 되었으니 우린 그걸 태워버려야 한다고, 나는 앙리 랑글루아에게 말했었다.” 물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바로 뒤이어 고다르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의하라. 내면의 불(le feu intérieur)을 통해 [태워야 한다]. 예술이란 불과 같아서 그것이 태워버린 것으로부터 탄생한다.” 그가 이렇게 읊조리는 동안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자신의 서재에서 이런저런 책을 꺼내 보는 고다르의 모습, <주말>(1967)의 불타는 자동차들, 그리고 화면 위에 떠오르는 “막이 오르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꿈을 버린다.”라는 텍스트이다. (사진 1 참조) (불)가능한 희망을 위해 모든 것을 부정하기, 탄생을 위한 적멸(寂滅), 역설적이기 짝이 없는 (반)행위를 문명이 부과한 의무를 철저히 수행하지 못한 예술에 허락된 유일한 몸짓으로 취하는 것, 시대착오적으로까지 여겨지는 이러한 예술적 영웅주의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헤르만 브로흐, 토마스 만, 로베르트 무질 등의 독일어권 작가들 - 모두 <영화의 역사(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 내지는 인용되고 있는 작가들이다. - 이 고다르와 그의 작품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읽도록 권유한 이는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이 가운데 오스트리아 작가 헤르만 브로흐의 모더니즘 소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고다르가 안느-마리 미에빌과 함께 만든 50분 분량의 비디오 에세이 <소프트 앤 하드(Soft and Hard)>(1985)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이후 <영화의 역사(들)>에 이르러서는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모티브 대부분을 제공하는 핵심적인 텍스트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트로이 전쟁 이후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이네아스가 (로마인들이 로마의 전신이라고 간주했던 도시인) 라비니움을 세우기까지의 모험을 기술한 미완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저자 베르길리우스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브로흐가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베르길리우스 생애의 마지막 이틀이다. 그리스로부터의 오랜 배 여행 끝에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브룬디시움에 도착한 그는, 미완의 『아이네이스』가 진정한 인식에 닿지 못한 채 아름다움이라는 가상의 주위만을 겉돌았을 뿐이라는 판단 아래, 자신이 죽기 전 모든 원고를 태워버리고자 한다. 이때 열병의 환각에 사로잡힌 그가 침상에 누운 채 펼치는 치열하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한 내성(內省)의 과정 -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본지 제245호에 실린 연재글 참조)의 주인공 루바쇼프의 그것을 능가하는 - 을 거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적 만연체로 서술한 2부는 이 소설의 백미다. ‘물-도착’, ‘불-하강’, ‘흙-기대’, ‘공기-귀향’의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 소설에서, <소프트 앤 하드>와 <영화의 역사(들)>의 고다르가 거듭 인용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2부에서 발췌한 텍스트들이다.


<영화의 역사(들)> 2B파트의 중반부에서, 고다르는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에서 발췌한 장문의 텍스트를 여배우 사빈느 아제마가 흡사 화면 밖의 누군가를 향해 발화하듯 담담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낭독하는 모습을 거의 6분 가까이 보여준다. (사진 2 참조) 발췌한 텍스트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데, 브로흐의 원작 이곳저곳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원래의 순서와 달리 배열, 혹은 몽타주함으로써 슬며시 의미를 굴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참조) 재구성된 브로흐의 텍스트는 20세기의 영화가 엄연한 죽음의 현실을 외면하면서 - 영화란 기원이 되는 대상을 상징적으로 ‘죽이고’ 대체하는 사진적 이미지에 기초해 탄생했으며, 또한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에 적시에 응답하지 못했기에 이후의 영화는 ‘뒤늦음’(belatedness)의 감각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는 고다르적 서사 - 아름다움을 추구함으로써 빚어진 이미지의 타락,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라는 2B파트의 주제를, 대단히 농밀한 시적 언어를 통해 함축적으로 제시해 준다. “가까이에 숨은 아득함, 먼 곳을 넘는 아득함, 양자의 바깥과 안의 한계에 가로놓인 경계, 양자의 현실 속에 있는 비현실, 양자 속에 환기된 유혹 - 그것은 아름다움이었다. […] 아름다움은 마령(魔靈) 같은 힘으로 모든 것을 수렴한다. […] 아름다움이란 바로 유희 그 자체 […] 아름다움에의 도피, 도피의 유희.”



[사진 2]


고다르의 작업과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사이의 공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의 역사(들)> 전편을 가로지르는 몽상, 환상, 사색에 빠져드는 수인(囚人)의 모티브는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며 병상에 누워 있는 그는 로마의 영광을 위해 『아이네이스』의 완성을 탐하는 아우구스투스황제에 의해 상징적으로 속박된 존재이다)는 물론이고 브로흐 자신(이 소설의 일부는 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체포되어 수감되어 있는 동안 집필되었다)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한 강대한 문명(로마제국)이 탄생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정작 문명의 한계와 종언에의 예감을 펼쳐낸 이 소설이, 의미심장하게도 2차 대전이 끝나는 1945년에 간행되었다는 점도 고다르는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에우리디케를 되찾으려 저승으로 ‘하강’한 오르페우스의 여정을 나락에 떨어진 예술의 구원의 우화로 다시 취하는 <영화의 역사(들)>의 서사적 흐름은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에서 거의 직접적으로 차용한 것이라 보아도 좋을 정도다. (“에우리디케를 찾아서 저승으로 내려가려 했을 때 오르페우스가 구하고 있던 것이 다름 아닌 이 [아름다운 언어의 싸늘한 표층 밑에 있는] 언어가 아니었던가?”) 『아이네이스』제6권에 등장하는 경고의 말(“지옥의 문은 밤낮으로 열려 있으니 내려가는 일은 쉽다오. 하지만 발걸음을 돌려 위쪽 세상의 대기로 돌아오는 일, 이것이 문제고 이것이 힘든 일이라오.”)에 예술의 구원과 결부된 의미를 더한 것은 바로 브로흐이며, 고다르가 “이것이 문제고 이것이 힘든 일이라오.(hoc opus hic labor est)”라는 인용구를 <영화의 역사(들)>의 첫머리에 두기로 결정했을 때, 그 또한 분명 ‘오푸스(opus)’라는 라틴어가 ‘과업’ 그리고 ‘예술’이라는 이중의 뜻으로 읽힐 수 있음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고다르가 직접 인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미지에 대한 브로흐-베르길리우스의 다음과 같은 판단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큰 지침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활이란 이미지의 축복과 이미지의 저주 아래 영위되는 것이다. 다만 이미지에 의해서만, 인생은 스스로를 파악할 수가 있다. 이미지를 추방할 수는 없다. 그것은 집단생활이 시작된 이후 인간 속에 숨어들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사유에 선행하며 그보다 강력하다. 그것은 무시간적이며 과거와 미래를 모두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이중의 꿈-기억이며 우리 자신보다도 강대하다.” 


※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의 한국어판은 김주연, 신혜양 교수의 번역으로 2012년 시공사에서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영화의 역사(들)> 2B파트에서 사빈느 아제마가 낭독하는 부분을 아래 정리해 보았다. 그녀가 낭독하는 순서대로 정리했으며 숫자는 한국어판 1권의 쪽수와 행을 뜻한다. (발췌는 모두 1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2권에서는 발췌된 부분이 없다.) 295:18~296:2 / 167:8~167:24 / 168:22~169:4 / 298:17~299:5 / 173:17~173:22 / 174:4~174:9 / 91:7~91:12 총 일곱 군데에서 발췌되었으며 마지막 부분만이 1부에서 발췌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2부에서 발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문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인용할 때는 가급적 한국어판 번역을 따랐으나 일부 수정하거나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기도 했다.     





4. 홀리스 프램튼의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
(2015.10.26 /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55호)



[사진 1] 홀리스 프램튼의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가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번역, 게재된 『트라픽』 제21호(1997년 봄호) 표지. 


<영화의 역사(들)> 프로젝트의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고다르는 영화잡지 『트라픽 Trafic』 제21호(1997년 봄호. 사진 1)에 실린 한 편의 에세이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것은 미국의 아방가르드 영화작가 홀리스 프램튼이 1971년 9월에 『아트포럼 Artforum』 지에 발표한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글로,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소개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다르는 프램튼의 영화작업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심지어 그가 1984년에 이미 세상을 떴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고다르는 무엇보다 그 에세이 자체의 웅변적인 힘에 끌렸던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인데, 영화사적 사실의 연대기적 나열이 아닌 영화의 가능성의 조건 자체를 묻는 ‘메타역사’(metahistory)의 방법론에 대한 프램튼의 생각은 <영화의 역사(들)>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 고다르의 동기와 강렬하게 공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의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거의 그대로 고다르가 썼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1830년대에 게오르크 뷔히너는 <보이체크>를 썼다. 정치적 살인의 희생자가 된 에바리스트 갈루아는 죽기 전 한 친구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겼는데 여기에는 군론(group theory) 혹은 수학의 메타역사의 기초가 담겨 있었다. 탈봇과 니엡스는 사진을 발명했다. 벨기에의 물리학자 플라토는 최초의 진정한 영화라 할 페타키스토스코프를 발명했다. 영화사에서 이러한 네 가지 사실들은 아마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이다. 영화의 메타역사에서 이러한 네 가지 사건들은 결정적으로 관련될 수 있다.”


1997년 5월,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는 <영화의 역사(들)>의 3A 및 4A파트가 최종본에 가까운 형태로 상영되었는데, 이때 고다르는 『트라픽』 21호에 게재되었던 두 편의 글(홀리스 프램튼과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의 에세이)만을 따로 묶어 특별판을 제작해 줄 것을 잡지사 측에 요청했다. 프램튼과 로젠봄의 글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함께 수록된 “<영화의 역사(들)>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46페이지짜리 『트라픽』 특별판(사진 2)은 당시 칸영화제에 참석한 취재진들에게 배포되었다. 이로써 고다르는 프램튼의 에세이가 <영화의 역사(들)> 프로젝트와 공명하는 특권적 텍스트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사진 2] 고다르의 요청에 따라 제작되어 1997년 칸영화제에서 배포된 『트라픽』 특별판 표지.


이듬해인 1998년, <영화의 역사(들)>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4B파트를 마무리하면서 고다르는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에서 발췌해 다소 수정, 변형한 문장들을 낭독하는 내레이션을 작품 후반부에 삽입한다. 루이 푀이야드의 <방데미에르>(1918), 니콜라스 레이의 <에버글레이즈에 부는 바람>(1958) 그리고 존 카사베테스의 <얼굴들>(1968)에서 발췌한 영상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다르는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사진 3) “하나의 세기가 서서히 다음 세기로 녹아들어갈 때, 어떤 이들은 기존의 생존 수단을 [흡수해] 새로운 생존 수단으로 변형시킨다. 후자의 것[그러한 변형을 통해 얻어진 새로운 생존 수단]을 우리는 예술이라 부른다. 어떤 시대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것, 그것은 그 시대가 창조해 낸 예술형식이다. 어떤 활동이 예술이 되는 것은 그것에 부합하는 시대가 끝난 다음이다. 그 후에, 이 예술은 사라지리라.” 




[사진 3] <영화의 역사(들)>에서 프램튼의 에세이가 인용되고 있는 부분에 등장하는 영상들.   


사실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는 프램튼의 생애 후반기를 사로잡은 <마젤란> 연작 프로젝트를 위한 개념적 초안 내지는 선언문으로 간주되곤 하는 텍스트다. 프램튼은 이 에세이를 발표하고 나서 이듬해(1972년)부터 <마젤란> 연작의 제작에 착수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48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프램튼에 따르면 영화란 기계의 시대(Age of Machine)에 태어나 그 시대가 저문 이후에도 살아남은 대표적인 형식 혹은 ‘최후의 기계’로서, 여기서 기계란 그것이 작동하는 물리적 원리가 직관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영화를 낳은 기계의 시대는 레이더처럼 그 물리적 작동원리가 직관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매체가 등장함에 따라 막을 내리는데, 바로 이 쇠퇴의 시점부터 영화는 비로소 자신의 가능성의 조건을 묻는 메타역사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때 운동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시네마’라는 용어는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영화라는 기계의 특권적 요소라 할 수 있는 필름의 ‘구조적 원리’ 안에는 그러한 운동의 가정을 정당화하는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세상의 모든 필름, 모든 영사기, 모든 카메라의 총합으로 이루어져 매 순간 끊임없이 팽창하는 잠재적이고 메타적인 장치로서의 ‘무한영화’(infinite film)를 상정한 뒤, 그러한 무한영화와 구조적으로 상응하는 한 편의 영화, 즉 “기계적인 명연주자라 할 영사기”를 위한 ‘악보’로서의 ‘필름’을 실제로 구성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숙고해 본다. 


고다르가 프램튼의 에세이를 수용하는 것은 <영화의 역사(들)>에 직접 인용된 “어떤 활동이 예술이 되는 것은 그것에 부합하는 시대가 끝난 다음”이라고 하는 통찰에만 국한된 것이라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무한영화’의 개념이나 이의 실행과 관련된 생각은 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경험으로서의 영화사」라는 글에서 크리스타 블륌링거가 지적한 대로, 필름을 통해 필름의 메타역사를 구성한다고 하는 프램튼의 기획은 (그가 사망한 해에 발표된) 모건 피셔의 <스탠더드 게이지>(1984) 같은 작품에서 보다 뚜렷이 형상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인디아>(1959)를 보고 나서 이 영화가 “리만과 플랑크의 이론이 고전적 기하학과 물리학을 포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영화를 포괄하고 있다”고 쓰기도 했던 청년 비평가 시절의 고다르를 떠올린다면, 메타역사적 사유를 위한 도구로서의 무한영화라는 개념이 전적으로 그와 무관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추정도 충분히 가능하다.  


필름의 메타역사가로서 스스로를 규정한 프램튼이 <마젤란> 연작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고다르는 영화를 낳은 기계의 시대에 종언을 고한 매체라고 흔히 언급되는 비디오(와 텔레비전)의 영화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앞선 시대에 종언을 고한 매체를 통해 그 시대가 낳은 최후의 산물을 고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잔혹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뉴미디어의 기수가 되는 일 따위는 고다르의 안중에 없었겠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과거의 영화에 머무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야흐로 예술이 되어가고 있는 영화를 위해 프램튼 식의 미학적 모험을 감수한다고 하는 것도 석연치 않은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프램튼의 텍스트를 읊조리던 고다르가 원문에는 없는 “그 후에, 이 예술은 사라지리라”라는 말을 굳이 덧붙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세르주 다네는 이를 ‘고다르의 패러독스’라 불렀는데, 그에 따르면 고다르는 “얼마 전의 과거와 가까운 미래 사이에 붙들려” 있고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과 아직 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고통 받고” 있는 자, “현재에 있도록 저주받은 자”이다. 시네마라고도 비디오라고도 할 수 없는 <영화의 역사(들)>의 독특한 위치, 거기 감돌고 있는 신중한 미학적 보수주의, 20세기의 역사(특히 2차 대전과 아우슈비츠)와 영화의 길항관계에 대한 예민한 윤리적 감각, 이로 인해 고다르는 프램튼의 급진적 아방가디즘의 문턱에서 돌아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는 홀리스 프램튼의 글 모음집인 『On the Camera Arts and Consecutive Matters: The Writings of Hollis Frampton』(edited by Bruce Jenkins)에 수록되어 있다. 프램튼의 주요 영화작업은 2012년 크라이테리온에서 출시한 블루레이 <A Hollis Frampton Odyssey>를 통해 볼 수 있다.





5. 잭 런던의 『별 방랑자』와 샤를 보들레르의 「여행」
(2015.12.6 /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58호)



2014년에 발표된 고다르의 3D 장편영화 <언어와의 작별>의 결말부, 우리는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록시라는 이름의 개가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고다르 자신과 그의 동반자 안느-마리 미에빌로 추정되는) 두 남녀의 대화가 보이스오버로 들려온다. “그녀는 마르키즈 제도에 대한 꿈을 꾸고 있어.”라는 여자의 말에 뒤이어 남자는 “잭 런던의 소설에서처럼 말이지.”라고 덧붙인다. 우리는 <영화의 역사(들)> 전편을 가로지르던 상상적 여행이라는 모티브가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들의 대화는 20세기 초 자신의 범선을 타고 마르키즈 제도를 비롯한 남태평양 일대를 여행한 후 이에 대한 여행기를 남기기도 했던 작가에 대한 언급이면서, 구속복을 입은 채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이 온전히 정신의 힘으로 인류 역사를 가로지르며 각종 모험을 겪는 과정을 그린 소설 『별 방랑자』에 대한 언급이기도 할 것이다. 


잭 런던이 『별 방랑자』를 발표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백 년 전인 1915년이다. (그는 이 소설이 출간된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소설의 주인공은 전직 대학교수였으나 살인죄로 복역 중인 대럴 스탠딩이라는 인물로, 그는 교도소장이 가하는 모진 구속복 고문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던 중 전생(前生)의 여러 시대를 넘나드는 정신적 여행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 연재글을 계속해서 읽어온 이들이라면 이 인물이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의 루바쇼프(본지 제245호), 그리고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의 베르길리우스(본지 제249호)처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육신이 갇힌 공간(감옥이나 침상)에서 치열하고도 집요하게 과거의 이미지를 불러내는 ‘영화적 정신’의 형상임을 쉽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형상이 자신의 스위스 자택 작업실에서 이런저런 영화들을 불러내며 20세기라는 영화의 시대를 반추하는 고다르의 자화상과 고스란히 겹치고 있음도 알 것이다. 심지어 고다르는 <영화의 역사(들)> 1B파트에서 니콜라스 레이의 <자니 기타>(1954)와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를 겹쳐 놓은 ‒ 여행하는 자와 이미지를 불러내는 자의 중첩 ‒ 화면 위로 나직하게 “별 방랑자”(le vagabond des étoiles)라 중얼거리며 직접적으로 잭 런던의 주인공을 호명하고 있기까지 하다. (사진 1)




[사진 1] <영화의 역사(들)> 1B파트에서 잭 런던의 소설 제목이 언급되고 있는 부분.


그런데 임박한 죽음을 감지한 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정신의 모험이란 바로 그 죽음을 향해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내던지는’(投) 작업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러한 ‘내던짐’은 1970년대 이후 고다르 스스로가 감행한 작업, 영화의 임박한 죽음에 맞서 오히려 그러한 죽음을 초래한 뉴미디어(텔레비전과 디지털)로 대담하게 투신(하여 저항)하는 작업과도 관련될 수 있겠지만, <영화의 역사(들)>에서 ‘내던짐’은 무엇보다 투사(投射)/영사(projection)라고 하는 영화장치의 오래된 기제의 역량과 관련되어 있다. 고다르는 우리를 향해 빛을 발하는 텔레비전은 보는 이를 밀쳐내지만 우리 등 뒤에서 투사/영사되는 빛을 통해 성립되는 영화는 보는 이를 끌어당긴다고 말한다. “오직 영화만이”(seul le cinéma)라는 부제가 붙은 2A파트에서, 고다르는 투사/영사란 죽음을 향해 투신을 감행하는 오르페우스적 여정을 촉발하는 기제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영화는 [오직 영화만이!]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돌아보아도 죽지 않게끔 해 준다.”(사진 2)는 그 유명한 구원의 약속과 더불어 말이다. 나는 <영화의 역사(들)> 시리즈 전편에 걸쳐 가장 감동적이라 할 ‒ 또한 ‘고다르적 (억지) 논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으로 본 연재를 마무리하고 싶다.




[사진 2] “영화는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돌아보아도 죽지 않게끔 해 준다.”


2A파트에는 고다르가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와 나눈 대담을 기록한 비디오 영상클립이 꽤 길게 삽입되어 있다. 어느 순간 고다르는 “내게 있어 거대한 역사란 바로 영화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보다 큰 역사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투사/영사된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과 더불어 투신(投身)의 모티브와 연관된 일련의 이미지들이 차례로 제시되더니 마지막 이미지 위에 “오직 영화만이”라는 텍스트가 떠오른다. (사진 3) 잠시 후 고다르는 우리에게 나폴레옹 군대에서 싸우다 포로로 잡힌 뒤 모스크바의 감옥에서 사영기하학(projective geometry)의 원리를 고안한 장-빅토르 퐁슬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로써 수인의 정신적 여행으로서의 영화를 위한 개념적 원리가 제시된다. 이윽고 영사기(projector)가 돌아가고 여행이 시작된다. (사진 4) 그리고 우리는 여배우 줄리 델피의 얼굴 위로 터너의 회화 <평온: 바다에서의 매장>(1842)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되는데(사진 5), 잠시 후 그녀는 보들레르의 시 「여행」을 천천히 낭독하기 시작한다. 여러 이미지와 사운드가 떠오르는 가운데 그녀의 낭독은 시 전문을 거의 다 읽을 때까지 13분 가까이 이어진다. “지도와 판화를 사랑하는 아이에겐 / 우주가 그의 엄청난 식욕과 같은 것 / 아! 등불 아래 비치는 세계는 얼마나 큰가! / 추억의 눈으로 본 세계는 그토록 작은데!” 그녀의 낭독과 더불어, 살인자를 피해 보트를 타고 달아나는 두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냥꾼의 밤>(1955) 발췌영상이 길게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여기서 고다르는 자신의 방식대로 보들레르를 거슬러 읽으면서(혹은 오독하면서), “추억의 눈으로” (이미 경험한) 세계를 (돌이켜) 보는 이들이 아니라, 등불의 힘을 빌려 스스로를 미지의 세계에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추억 없는 이들, 즉 아이들을 ‘영화적 정신’의 형상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영화의 역사(들)>에는 영화사(史)의 온갖 이미지들이 인용되고 있지만 종종 이것들은 원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단순한 시각적 정보(달리는 남자, 춤추는 커플 등)만을 지닌 이미지로 환원되어 다른 이미지들과 결합되곤 한다. 이것들은 말 그대로 죽음으로 투신한 뒤에 부활한 이미지들, 뒤돌아본 오르페우스가 되찾은 에우리디케의 조각들이다. 고다르의 과격함은 세계의 이미지들을 추억 없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영화적 정신’의 형상을 급기야 <언어와의 작별>에 등장하는 록시라는 이름의 개로까지 밀고 나가기에 이른다. 그러고 보니 잭 런던은 『별 방랑자』에서 다음과 같이 쓰기도 했다. “기억이란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여기는 아이들의 그릇된 정의 속에는 단순한 진실 이상의 것이 들어 있다.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은 제정신을 뜻한다.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은 집착이자 정신이상이다.” 물론 이 망각의 작업은 “우리가 어린 시절 지니고 있던 [이 세계에서 경험한 적이 없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 시인 워즈워스가 “영광의 나부끼는 구름”이라 표현한 그러한 기억, 고다르 식으로 말하자면 비인칭적인 “거대한 역사”에 해당할 법한 그러한 기억을 위한 미지로의 투신에 다름 아닐 것이다. 보들레르의 「여행」은 다음과 같은 (줄리 델피의 낭독에서는 빠져 있는) 문장들로 끝난다. “지옥이건 천국이건 아무려면 어떠랴? 심연 깊숙이 / 미지의 바닥에 잠기리라,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사진 3] <영화의 역사(들)> 2A파트에 등장하는 투신(投身)의 이미지들.



[사진 4] 투사/영사, 그리고 여행의 시작.



[사진 5] 보들레르의 「여행」을 낭독하는 줄리 델피
   

※ 잭 런던의 『별 방랑자』 한국어판은 이성은의 번역으로 2010년 궁리출판에서 출간되었다. 보들레르의 「여행」이 수록된 『악의 꽃』 한국어판은 윤영애의 번역으로 200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본문의 인용은 한국어판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