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9

[Critique] 두기봉에 대한 노트


수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영화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VOD로만 서비스되는 영화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두기봉의 영화들도 IPTV와 인터넷 다운로드 사이트에서만 떠도는 '디지털 유령영화'의 범주에 속한다. 2014년 한 해 동안 심의를 통과, VOD 서비스되기 시작한 두기봉 영화는 총 4편이다. (2013년에는 두기봉의 1993년 영화 <동방삼협 The Heroin Trio>이 재수입, 재개봉되어 66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의 정보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다. (제작연도가 아닌 개봉일 순으로 정리했다.)

<블라인드 디텍티브 Blind Detective>(2013) 심의일자: 2013.12.3 개봉일자: 2014.1.23 누적관객수: 1,510명
<마약전쟁 Drug War>(2013) 심의일자: 2013.11.26 개봉일자: 2014.2.13 누적관객수: 363명
<피의 복수 Vengeance>(2009) 심의일자: 2014.3.8 개봉일자: 2014.4.24 누적관객수: 37명
<스패로우 The Sparrow>(2008) 심의일자: 2014.8.12 개봉일자: 2014.9.25 누적관객수: 10명

아래 글은 이전에 사용하던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두었던 것으로, 2008년 8월 3일 필름포럼에서 마련한 강연 "두기봉의 작품 세계"를 위해 준비했던 원고 일부를 수정해 옮긴 것이다. (강연에 뒤이어 <흑사회> 연작 상영이 있었다.) 일부 문단은 생략했고 문단의 순서 또한 강연 당시와는 다르다. 



두기봉에 대한 노트


두기봉이라는 '작가'
  
두기봉(杜琪峰 : 1955~ )의 작품세계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여기서는 물론 홍콩영화라는 시스템) 내의 예술가라고 하는 고전적 작가주의의 명제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두기봉에 관해 말한다는 건, 동시대의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는 여타 아시아 감독들, 예컨대 왕가위, 허우 샤오시엔, 지아 장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라브 디아즈, 구로사와 기요시, 홍상수 등에 대해 말할 때와는 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 감독들의 영화가 얼마나 풍부한 의미를 지니는가를 '밝혀내는' 비평적 혜안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일차적으로 우리는 이런 감독들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그들의 작품을 '판별'해내야 한다는 문제 따위로 곤혹스러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순하게는 크레딧(혹은 포스터)에 적혀 있는 감독의 이름만을 간단히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단 비평적 논의로 들어가고자 하면 꼭 쉬운 일만은 아니겠지만.)

그런데 두기봉의 경우엔 사정이 좀 다르다. 물론 이번 두기봉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은 확실히 '공인된' 두기봉 영화들이고 이 영화들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두기봉의 작품세계에 대해 말하기가 보다 용이할 지도 모른다. 본 강의를 준비하기에 앞서 본 특별전에 맞춰 국내 영화지에 실린 기사들을 잠깐 훑어보았는데, 대체로 이처럼 공인된 두기봉 영화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정수문과 유덕화 콤비가 주연을 맡은 일종의 3부작이라 할 만한 <니딩 유 孤男寡女(고남과녀)>(2000), <러브 온 다이어트 瘦身男女(수신남녀)>(2001), <용봉투>(2004) 같은 영화들은 아예 논의거리로도 간주되지 않는 것이다. 이 가운데 <니딩 유>와 <러브 온 다이어트>는 위가휘와의 '공동연출'이라고 크레딧에 올라 있고, <용봉투>는 두기봉의 '단독연출'작이다. 좀 더 이야기를 진행하기에 앞서 미리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러브 온 다이어트>는 두기봉 사단 로맨틱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만, 몇몇 인터뷰를 보면 두기봉 자신은 아마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두기봉 자신의 분류를 따르자면 이런 영화들은 ‘퍼스널 무비 personal movie’가 아닌 제작사 밀키웨이 이미지의 수입을 위한 ‘상업영화 commercial movie’인 셈이기 때문이다. ('퍼스널'한 것이 곧 '작가적'인 것이라는 그 오도된 신화에 두기봉 자신이 물들어 있는 것이다! 내가 두기봉의 열렬한 팬이기는 하지만 두기봉 자신의 이런 분류는 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다.) 즉, 작업을 즐기기는 했지만 두기봉 자신이 필모그래피 내에 넣기는 주저하는 영화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러브 온 다이어트>(2001)

1980년대에 데뷔한 이후, 두기봉은 홍콩영화라는 시스템 안에서 제작되고 있던 거의 모든 장르의 영화를 연출해 왔다. 형사영화, 카지노 무비, 갱스터 영화, 로맨틱 코미디, 호러영화, 멜로드라마, 무협영화에 심지어 <화급>(1997) 같은 소방수들의 세계를 다룬 영화도 있다. 이 다음부터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이기도 한 위가휘와 1996년에 밀키웨이 이미지(은하영상유한공사 : 銀河映像有限公司)라는 영화사를 세운 뒤 만들어진 영화들이 이어진다. (두기봉 자신의 말을 따르자면) 밀키웨이 이미지는 당대 홍콩영화의 주요흐름과는 다른 창조적 작업을 시도하고자 설립된 것이었지만 초기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다소 방향을 선회, 확실히 상업적으로 기획된 작품들과 보다 크리에이티브한 작업들을 교차해가는 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초기엔 두기봉이 직접 연출하기보다는 제작을 주로 맡았다. 앞서 언급한 <화급>(원제는 "십만화급 十萬火急")이 밀키웨이 이전에 만든 두기봉의 마지막 영화라면 밀키웨이에서 연출한 두기봉의 첫 영화는 <더 히어로>(1998, 원제는 "진심영웅 眞心英雄")이다. 거의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같은 오우삼식 홍콩 갱스터를 극단적으로 과도하게 밀고 나가 뒤틀어버린 포스트 홍콩 갱스터 영화 혹은 포스트 오우삼 영화의 첫 번째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재견아랑>(1999), <암전>(1999) 같은 영화를 내놓은 후에 두기봉의 이름을 널리 알린 ‘퍼스널 무비’ <미션>(1999)을 발표한다. 자,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밀키웨이 이미지의 영화들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2000년에 상업영화로 기획한 <니딩 유>를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는데, 이 영화는 위가휘와 공동연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시작으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약 4년 동안 11편의 공동연출작을 발표한다. 한 편을 제외하곤 거의 전부가 위가휘와의 공동연출이다. 그리고 <1:99 전영행동>(2003)이라는 옴니버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기간에 두기봉의 ‘단독연출’ 작품은 <PTU>(2003) 한 편 뿐이다. <PTU>는 <미션>과 같은 ‘퍼스널 무비’계열에 속하는 영화로, 공동연출작들을 무더기로 내놓는 가운데 2년 여에 걸쳐 쉬엄쉬엄 연출한 작품이지만 현재까지 만들어진 두기봉 최고의 작품군에 속할 만하다. 또한 밀키웨이 이미지 소속의 젊은 감독들이 연출한 영화 가운데 두기봉의 이름이 크레딧에 올라 있진 않지만 (진실이 어떠하건) 그가 연출했다고 밝힌 영화들도 있다. 유달지 감독의 <암화>나 <비상돌연>이 대표적이다. 이쯤에서 밀키웨이 이미지 이전으로 돌아가 보면, <천장지구>(원제는 "천약유정 天若有情") 시리즈의 3편을 1996년에 두기봉 감독이 만들었는데, 시리즈의 1편도 그가 연출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가 하면 1988년 작으로 서극이 제작을 맡은 <대행동>(원제는 "성시특경" 城市特警")은 두기봉 이전에 금양화라는 감독이 연출하다 두기봉이 넘겨받고 정소동도 일부 참여하고 결국은 서극이 마무리지은 작품이라고 (그래서 자신은 이 영화를 본인의 영화로 여기지 않는다고) 두기봉 감독 자신이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두기봉(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할리우드 고전기 감독 가운데 한 명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제작자이자 감독이었고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으며 (멜로드라마를 제외한)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고, 무엇보다 크레딧에 올라 있진 않지만 다른 이들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던 감독, 바로 하워드 혹스다. 두 감독 모두가 주로 남성적 액션영화와 로맨틱 코미디를 넘나들며 작업했다는 점도 주목해볼 만하다. 두기봉의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 그를 세르지오 레오네, 샘 페킨파, 구로사와 아키라, 오우삼 등과 관련지어 이야기해 보는 것도 무망한 일은 아니겠지만, 여기에 하워드 혹스라는 이름을 추가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한 인터뷰에서 두기봉은 자신과 오우삼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우삼의 영화는 남자들 사이의 의리에 관한 것이다. 반면, 사람들 사이의 예측불가능한 관계와 운명을 다룰 때 나의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에 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기타노 다케시 역시 야쿠자 영화와 미치광이 같은 코미디를 왕복하는 감독이다.

굳이 두기봉의 필모그래피를 크게 두 범주로 나눠 보자면 로맨스 계열과 액션 장르 계열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에서 흥미로운 해는 1988년이다. 이 해에 두기봉은 <팔성보희>와 <대행동>을 발표했다. 이 영화들 이후의 두기봉의 행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공동연출작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2000년부터 2003년 사이의 기간 이후, 3년 동안은 '단독연출' 시기가 이어진다. <용봉투>, <유도용호방>(2004), <대사건>(2004), <흑사회>(2005), <흑사회 2>(2006), <익사일>(2006)이 이때 나온 영화들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서극, 임영동과의 공동연출작인 <철삼각 鐵三角>(2007), 오랜만에 위가휘와 공동연출한 <매드 디텍티브>(2007)를 발표하고, 로맨스 <호접비 蝴蝶飛>와 ‘소매치기 액션’ <스패로우 文雀(문작)>를 단독연출로 올해(2008년) 발표했다.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정도의 행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느낌이야말로 두기봉의 영화세계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처럼 시스템 내의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만끽하며 폭넓은 영역에서 작업하는 이를, 특정 장르 그것도 단독연출한 몇몇 작품들에만 집중해 바라보는 것은 분석의 편의성을 제공할지는 몰라도 올바른 일은 아니란 생각이다. 우리는 <매드 디텍티브>의 형사처럼, 두기봉이라는 한 작가에게서 다양한 ‘두기봉들’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가 <미션>이나 <흑사회> 연작들을 통해 두기봉을 새롭게 '발견'했다면 이제는 그 발견의 시선을 보다 넓혀야 할 때가 아닐까?

영화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하워드 혹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하워드 혹스의 코미디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를 이해한 것이라 볼 수 없다"라고. 이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두기봉의 코미디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두기봉을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라고. 물론 심지어 두기봉 자신이 이러한 주장에 반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훌륭한 감독들은 때로 그 스스로는 훌륭한 작품을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퍼스널 무비'라고 말하는 <풀 타임 킬러>보다는 '상업영화'로 치부한 <팔성보희>, <니딩 유>나 <러브 온 다이어트>가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의 코미디들은 <러브 온 다이어트>나 <헬프>가 입증하듯, 보다 진지한 액션장르들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두기봉적 요소들의 흥미진진한 과잉으로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해는 좀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스타일이 매우 가시적으로 두드러지는 그의 액션장르들에 비해 그의 코미디들은 일견 매우 '투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혹스에 대한 하스미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코미디들은 "그것의 구조와 기능이 분석될 수 없는 손", 즉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거기엔 무시 못할 (파동론적인 의미에서의) '간섭'이 존재하기도 한다. 확실히 두기봉은 우리 시대의 작가이지만, 작가주의 개념에 한계를 제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는 걸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경합의 대상과 주권의 문제 :  <흑사회> 연작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워드 혹스보다 두기봉 영화에 있어서 '간섭'의 측면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간섭이라고 말한 것은 누군가가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이를테면 두기봉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교차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확실히 이 둘을 판별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물론 두기봉 '단독연출'의 영화들만을 놓고 보면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앞서 언급한 위가휘와의 공동연출작이나 밀키웨이 젊은 감독들의 영화 등을 제외해야 할 터인데, 혹스의 경우와는 달리 두기봉에 있어서 그런 작품들을 간단히 무시해버리기엔 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사실 두기봉의 영화세계를 폭넓게 조망하는 작업은 복잡한 시그널을 보다 단순한 몇 개의 시그널들의 조합으로 나타내는 작업, 수학에서 푸리에 해석이라 부르는 작업에 비견할 만한 작업을 수반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복잡한 시그널의 요소가 되는 시그널, 즉 두기봉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이런 작업을 상세하게 밀고 나간다는 것은 좀 무리이겠기에 몇 가지 스케치만을 시도해 볼까 한다.

혹스와 유사하게 두기봉 역시 특정한 개인보다는 그룹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그의 장기는 한 그룹의 내적 관계와 더불어 그룹 대 그룹의 관계를 동시에 다루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확장되면 2개의 그룹이 아니라 3개, 4개의 그룹이 동시에 얽혀드는 복잡한 상황도 생겨나는데, 이걸 혼란스럽지 않고 맵시 있게 연출해내는 솜씨가 정말 탁월하다. 경찰 대 4명의 범죄자의 대립으로 진행되는가 싶던 <대사건>(2004)이 어느 순간 아파트의 한 가족과 또 다른 2명의 범죄자 그룹이 섞여들면서 확장되는 것처럼. <매드 디텍티브>(2007)의 경우엔 주인공 형사가 인물의 감춰진 퍼스낼리티를 눈으로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자연스레 그룹 대 그룹의 상황이 연출된다. 흥미로운 건 이것이 그의 초기영화, 특히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인데, 예컨대 주윤발 주연의 <팔성보희>(1988)가 좋은 예다. 보통 한 쌍의 남녀를 중심으로 펼쳐지게 마련인 이 장르가 삼형제와 그들 각각의 연인과 (그리고 또 다른 여자들)의 관계로 펼쳐지는 것이다. 두기봉 자신은 이와 같은 그룹에 대한 선호가 <화급>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러한 선호는 훨씬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개인 대 개인보다는 그룹 대 그룹의 관계가 두기봉이 선호하는 것이라 할 때 - 물론 <풀 타임 킬러>(2001)처럼 킬러 대 킬러의 관계로 진행되는 영화도 있기는 하다 - 그룹들 간의 마주침이 액션으로 향하게 만드는 촉매 또한 존재한다. 그걸 '경합의 대상' 혹은 '그룹들 사이를 오가는 대상' 정도로 부르면 될 것 같은데, <PTU>(2003)에서 한 경찰관이 잃어버린 총(그는 갱들이 이 총을 훔쳐갔다고 생각한다), <흑사회>(2005)의 용두곤, <익사일>(2006)의 보스를 배신한 친구 같은 대상들을 떠올려 보면 된다. 초기 영화들로 눈을 돌려보면 <대행동>에서 병원의 환자, (특히 서구에서 각광받은) 두기봉의 컬트영화인 <동방삼협>에서의 매염방, 장만옥, 양자경 세 여협의 경합의 대상이 되는 아기 같은 대상들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유덕화 주연의 <지존무상 2>(1991)에 등장하는 도신의 옥패 역시 마찬가지다. 


<동방삼협 東方三俠 The Heroic Trio>(1992)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경합의 대상이 인간이 될 때 그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익사일>과 <대행동>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동방삼협>의 아기의 경우에 이르기까지도 마찬가지다. 문득 여기에 두기봉의 비정함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애써 구출된 아기들은 반드시 죽고야 만다는. (<화급>을 떠올려 보라.) 오우삼의 <첩혈속집>(1991) 후반의 병원 액션 시퀀스에서라면 주윤발이 기어이 아기를 구해내지만, 두기봉의 영화에서였더라면 이 아기는 구출된 후에 병원에 가서 결국 죽었을 거라는 불길한 생각. (특히 병원은 두기봉의 영화에서 매우 불길한 장소이다. 이곳은 생명을 구하는 장소라기보다는 죽음을 맞으러 가는 곳이다. 좀 우스꽝스러운 예로, <PTU>에서 등에 칼침을 맞은 사내는 '병원'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죽어버린다.)  예외라면 <미션>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여기서 보스의 아내와 통정한 죄로 경합의 대상이 된 인물은 가까스로 죽음은 모면하지만 그 대가로 사실상 그는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려야 한다. (그런데 만약 <익사일>을 <미션>의 속편으로 간주하면 <미션>의 그 인물은 결국 마카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한편 경합의 대상이 사물일 때, 이 사물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라는데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사용가치가 없는 대상이거나, 진짜와 뒤바뀐 가짜다. <지존무상 2>의 도신의 옥패가 정말 그걸 소유한 자에게 신기를 부여하는 것인지 우리는 끝까지 알 수 없다. 원래 그걸 소유했던 유덕화의 사부는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영화 마지막에 유덕화가 도박대회에서 승리하는 것 역시 이 옥패와 아무런 관련도 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PTU>의 경우, 사라진 총이라는 대상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는 영화를 직접 본 사람이라면 쉽게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존무상 2>에는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유덕화가 옥패를 발견하는 장면인데, 그것이 감춰져 있던 장소는 바로 납골당의 함 속이다. 그런데 <흑사회 2>에서 삼합회 회장 임달화가 감춰졌던 용두곤을 다시 꺼내는 장소 역시 납골당이다. 사실 <지존무상 2>의 옥패와 <흑사회>의 용두곤은 특정 집단에서 최고위의 승인의 징표라는 점에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승인이라는 것도 매우 허구적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두고 집단들이 경합을 벌이는 것이다. 적어도 서사적으로만 놓고 보자면 <흑사회>와 가장 가까운 두기봉의 초기작은 <지존무상 2>이다.

이처럼 무가치한 대상의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철삼각>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 <철삼각>이라는 영화는 구조가 좀 특이한데, 서극, 임영동, 두기봉 세 감독이 연출에 참여했지만, 옴니버스가 아닌 한 편의 영화다. 의도적으로 '간섭'의 상황을 만들어놓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서극의 연출이다, 여기는 두기봉의 것이다라는 표식이 적어도 영화에 명시적으로 표기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 어디가 두기봉의 연출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시각적 스타일은 차치하고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들만을 놓고 생각해 보면, 일단 (개인도 최소단위의 그룹으로 간주하자면) 다섯 그룹(3, 2, 1, 1, 1)이 하나의 대상, 금장복을 두고 얽히게 되고, 게다가 이 대상조차 가짜대상으로 증식되어 4개로 불어나는 것이다. 한편 이 금장식이 달린 옷이란 게 영화 안에선 문화재급에 속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국가의 것으로 정의되는 문화재란 엄밀히 말해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대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대상은 영화 속 인물 가운데 그 누구도 소유하지 못하게 된다. (정확히는 '국가의 대리인'인 경찰이 최종적으로 입수한다.)


<흑사회>(2005)

이제 이런 기술적인 이야기에서 좀 더 나아가 이처럼 소유되지 못하는 대상이 함의하는 바에 대해 생각을 좀 더 밀고 나가보고 싶다. 이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영화는 역시 <흑사회> 연작이다. 이 연작은 자본주의적 이윤동기가 홍콩이라는 체제(넓게는 아시아라는 유교적 체제) 내에서 어떤 식으로 승인되는가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1편에서는 노골적인 이윤동기의 추구(양가휘)는 전통과의 위장된 타협(임달화)에 패배한다. 2편에서는 마침내 자본주의적 이윤동기(고천락)가 전통과의 절연을 수행하고(용두곤은 관 속으로 들어간다) 국가(중국)와 결탁한다. 그런데 어쨌거나 이 과정에서 인물들은 기이할이만치 용두곤에 매달린다. 얼핏 용두곤이 승인의 징표인 듯 하지만, 사실 승인은 삼합회 원로들의 회합이건 중국정부에 의해서건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용두곤은 사실 불필요한, 없어도 무방한 대상이다. 그것의 소유가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무용)한데도 소유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대상, 이러한 대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권이다. 여기선 물론 홍콩이라는 (국가가 아닌) 장소의 주권이라고 해야 하겠다. 주권이란 승인되는 것이지 소유되는 것이 아니다. 한 국가의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국가들에 의해(사실상), 그리고 그 내부의 국민들에 의해(명목상) 승인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언제나 주권은 소유될 수 있는 것이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한때 촛불집회에서 자주 나온 구호를 빌려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전자가 소유의 개념에 기대고 있는 것이라면 후자는 승인의 개념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흑사회>에서 용두곤의 존재가 꼭 그렇다. 흑사회의 회장은 원로들(과 조직원들)에 의해 '승인'되는 것인데도 용두곤으로 인해 뭔가 '소유'될 수 있는 대상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무의미한 대상인 용두곤을 '소유'하기 위해 벌이는 무자비한 싸움이 벌어진다. 사실 이 싸움은 <풀 타임 킬러>에서처럼 최고 킬러라는 명목상의 '타이틀'을 놓고 벌이는 결투와 다를 바 없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흑사회> 연작은 홍콩이라는 장소의 주권권력의 획득불가능성에 관한 우화다. 특히 <흑사회 2>는 외부적 승인을 망각한 채 내부자들끼리 벌이는 허망한 전쟁이라는 점에서 훨씬 더 음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보다 폭넓게 세계자본주의 체제 속에서의 주권의 본질과 그 계보학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두기봉 감독의 가장 최근작인 <스패로우>(2008) 역시 그룹과 소유불가능한 대상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경합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한 여자다. 짐작할 수 있듯, 결국 그녀는 그 누구의 소유도 되지 못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4명의 소매치기에게나, 삼합회 보스에게나 마찬가지다. 왜? 이 여자는 중국에서 온 여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그 대상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홍콩이라는 도시를 즐기고 향유할 수 있다. 어떻게? 자본의 시스템 바깥에 있는 한에서, 즉 소매치기인 한에서 말이다. 이게 이 영화에서 두기봉이 말하고 있는 바인데, 이런 점에서 역시 <스패로우>는 <미션>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불가능한 두기봉의 동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