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5

[Critique]<영화의 역사(들)>과 고다르의 서재



 2015년 3월부터 약 1년 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에 "<영화의 역사(들)>과 고다르의 서재"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했다. <영화의 역사(들)>에 다양한 방식으로 인용된 텍스트들을 단서로 그의 서재를 상상해 보며 이러한 텍스트들이 고다르의 작업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풀어보려 했다. 연재 회수가 제한적인 점을 고려하여, 몽상이나 환상에 빠져드는 수인(囚人)의 모티브가 두드러진 세 편의 소설과 영화 및 예술의 역사에 접근하는 고다르의 태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두 편의 에세이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재는 마무리되었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영화의 역사(들)>에 직접 인용되고 있거나 그와 관련된 다른 텍스트들에 대해서도 써 보고 싶다.  


차례


1.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 (제245호, 2015.3.24)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코울리지의 꽃」 (제247호, 2015.4.20)
3.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제249호)
4. 홀리스 프램튼의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 (제255호, 2015.10.26)
5. [최종회] 잭 런던의 『별 방랑자』와 샤를 보들레르의 「여행」 (제258호, 2015.12.6)



1.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 
(2015.3.24 /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45호) * PDF로 보기




고다르가 자신의 책꽂이에서 꺼내든 한 권의 책이 내 시선을 끈다. 그는 꺼내든 책을 살며시 잡고, 나직한 목소리로 그 제목을 읽고, 다시 원래의 자리에 꽂는다. 영과 무한(Le zero et l'infini). 이것은 헝가리 태생의 작가 아서 쾨슬러의 대표작 『한낮의 어둠』(1940)의 프랑스어판 제목이다. 20세기라는 영화의 시대를 영화 그 자체를 통해 반추하고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 <영화의 역사(들)>(1988~1998)에서 고다르가 읽거나 인용하거나 언급하는 많은 책들 가운데 유독 쾨슬러의 이 소설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왜인가? 실은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이다. 고다르가 일부러 그런 것인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이 책을 집어 들어 읽은 후 책꽂이에 완전히 밀어 넣지 않고 책등이 어중간하게 삐져나온 상태로 다시 꽂아두는 바람에, 그가 자신의 책꽂이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자꾸만 그 삐져나온 책에 신경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의 작가가, 과학도였던 학부시절 선배의 소개로 읽게 된 기이한 과학서 『야누스: 혁명적 홀론이론』(1978)의 작가라는 점도 한몫했으리라. 

<영화의 역사(들)>의 맥락에서, 『한낮의 어둠』이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고다르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비에트 영화의 영광과 힘의 증거로서 일련의 (소비에트 감독들의 영화에서 발췌한) 영상들을 보여주고 난 다음이다. 레닌의 죽음, 그리고 스탈린의 집권과 더불어 도래한 전체주의적 체제의 어둠에 대한 고발로서, 쾨슬러의 소설은 그에 뒤이어 고다르가 언급하는 또 다른 소설인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1973)와 나란히 같은 자리에 놓이는 것이다. 『한낮의 어둠』의 주인공인 루바쇼프는 한때 당의 유력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으나 당의 ‘넘버 원’에 의해 숙청당하게 되는 인물로, 실제로 스탈린에 의해 숙청된 니콜라이 부하린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낮의 어둠』과 <영화의 역사(들)>의 관계는 이처럼 명시적으로 정치적인 수준에만 머물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쾨슬러의 이 소설은 <영화의 역사(들)> 전체의 주제는 물론이고 이 작품에서 고다르가 스스로를 한 명의 ‘소설적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이르기까지 보다 심원한 암시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한낮의 어둠』의 상당 부분이 감옥에 갇힌 루바쇼프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반추하면서 왜 옳은 동기가 파국적 결과를 낳았는지, 자신 또한 그러한 파국에 책임이 있는 것인지를 치열하게 따져 묻는 사색적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취조의 과정을 묘사한 부분들조차도 루바쇼프가 자기 안의 다른 자기와 펼치는 내적 대화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그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역사가 내게 대출해 준 신용을 모두 탕진해 버렸다. 내가 옳았다면 후회할 것이 없고, 틀렸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는 어떤 역사인가? 역사의 판단은 언제 도래하는가? 그것은 언제나 늦게, 그것도 가장 늦게 도래하는 것이다. “역사는 하소연하는 이들의 턱뼈가 먼지가 될 즈음에야 판결을 내렸다.” 루바쇼프와 고다르는 자신들이 역사에 전적으로 새로운 국면(공산주의의 실현, 영화의 누벨바그)이 도래하게끔 했다고 믿었지만 실은 역사에 도래했던 마지막 국면 - 더 이상 그 이후의 국면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앞선 것들의 쇠락만을 지켜보게 만드는 저주받은 유토피아 - 의 조종(弔鐘)을 울리기 위해 호출된 자들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세대에 속한다. 그들의 뒤를 잇는 세대에 대한 (고다르도 동의할 법한) 쾨슬러의 묘사는 서늘하면서도 냉철하다. “그들은 어떤 과거도 안 가졌기 때문에 과거를 부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탯줄도 없이, 경쾌함도 없이, 우울도 없이 태어났다.”

<영화의 역사(들)>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주요한 서사적 모티브가 있다면, 하나는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단테의 시와 오르페우스 신화 및 보들레르의 「여행」과 「여행으로의 초대」 등을 넘나드는 여행의 모티브이고, 다른 하나는 포로시절 사영기하학의 원리를 고안한 장-빅토르 퐁슬레, 생애 말년 호텔 방에 처박힌 채 자신이 제작한 영화들만을 거듭 보았다는 하워드 휴즈, 수감생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상의 여행에 빠져드는 잭 런던의 『별 방랑자』(1915)의 주인공 대럴 스탠딩 등으로 예시되는 몽상, 환상, 사색에 빠져드는 수인(囚人)의 모티브이다. 다만 (감옥이나 호텔이 아닌)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힌 고다르가 수행하는 정신적 여행은 퐁슬레적인 순수 지식에 대한 탐구, 휴즈적인 자폐적 침잠, 별 방랑자의 환상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이러한 수인들 가운데 특별히 루바쇼프라는 인물이 <영화의 역사(들)>의 고다르라는 ‘주인공-인물’의 숨은 모델이 되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갇힌 공간에서 그가 수행하는 정신적 여행의 역사적 성격, 그리고 집요한 내성적(內省的) 성격 때문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꿈꾸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그 꿈이 어떻게 역사적 사유와 맞닿을 수 있는가? <영화의 역사(들)>은 보르헤스가 「코울리지의 꽃」(1952)에서 인용한 새뮤얼 테일러 코울리지의 텍스트를 재인용하는 고다르의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꿈속에서 낙원을 여행한 한 남자가 그곳에 왔었다는 증거로 한 송이의 꽃을 받았다면, 그런데 깨어 보니 손에 그 꽃이 들려 있었다면, 어찌 된 것이겠는가? 내가 바로 그 남자였다.” 보르헤스가 코울리지의 꽃으로 상징화하고 있는 예술적 보편사(史)의 정신(Espíritu)을 건네받은 이는 끊임없이 꿈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각성 상태에서 꾸는 꿈이다.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은 악몽으로 화한 정치적 유토피아의 꿈에 대한 역사적 비판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치열하게 내성적인 백일몽을 통해 역사적 비판에 임하는 수인의 형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역사(들)>을 위한 서재의 특권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한낮의 어둠』 한국어판은 최승자 시인의 번역으로 1981년 한길사에서 출간되었고, 문광훈 교수의 새로운 번역으로 2010년 후마니타스에서 출간되었다.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코울리지의 꽃」
(2015.4.20 /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47호)




[사진 1]


1953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35편의 짧은 에세이들을 모은 『다른 심문들』(Otras Inquisiciones)이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발표한다. 이 산문집에 실린 글 가운데 「코울리지의 꽃」은 1952년에 쓰여진 것으로 여기서 보르헤스는 일종의 문학적 범신론, 세상의 모든 텍스트는 단 하나의 비인칭적 저자에게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 즉 ‘무한한 문학’(infinite literature)의 보편성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보르헤스는 폴 발레리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문학의 역사는 작가들의 역사도, 작가들의 생애나 작품의 전개 과정 속에서 발생한 사건들의 역사도 아니며, 문학의 생산자 혹은 소비자로서의 정신(Espíritu)의 역사이다. [정신이라고 하는] 유일무이한 그 단 하나의 작가를 논하지 않고는 문학의 역사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후 그는 상이한 실재들(꿈과 현실, 현재와 미래, 과거와 현재 등) 간의 교통이라고 하는 모티프를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세 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차례로 소개하는데, 이 가운데 새뮤얼 테일러 코울리지의 (생전에 미발표된) 유명한 텍스트야말로 보르헤스의 이 에세이에 가장 커다란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 “꿈속에서 낙원을 여행한 한 남자가 그곳에 왔었다는 증거로 한 송이의 꽃을 받았다면, 그런데 깨어 보니 손에 그 꽃이 들려 있었다면, 어찌 된 것이겠는가?”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을 마무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코울리지의 이 텍스트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다르 자신이 이 텍스트를 읊조리는 동안 (정작 보르헤스가 ‘직접’ 쓴 텍스트에서 인용하고 있는 구절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굳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라는 이름을 검은 바탕에 흰 글자로 새겨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코울리지를 보르헤스를 통해 ‘재인용’하고 있음을 명시하기 위해서일까? 그보다는 내레이션과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그 둘 모두를 이중적으로 가리키려 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무엇보다 그 꽃은 전수되는 꽃, 넘겨받고 넘겨주는 꽃이다. 그런 점에서 유일무이한 꽃이며 무한한 이름들을 품고 있는 꽃이다. 이와 같은 ‘모든 이름들’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비인칭적] 작가’의 행위로 ‘정신의 역사’를 사고하고자 하는 발레리의 기획, 나아가 이를 확장한 보르헤스적 상호텍스트성의 기획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영화의 역사(들)>이 영화사의 걸작들, 주요 감독들, 작품과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편년사적 기술이 아니라, 에우리디케를 (되)찾는 오르페우스의 여정이라는 신화적 모티브를 바탕에 두고 상호텍스트적 인용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직조하는 ‘영화적 정신’의 작업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라. <영화의 역사(들)>이 예술적 보편사의 기획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이 작업의 총론에 해당하는 1A파트의 부제가 “모든 역사들”(toute les histoires)이라는 데서도 감지된다. 그런가 하면 인용의 콜라주로 19세기를 재구성하고자 했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발터 벤야민이나 숱한 도상(그림, 사진 등)들의 배치 속에서 고대로부터 유럽 문명을 가로지른 ‘순수비이성’의 존재를 감지하고자 했던 <므네모시네>의 아비 바르부르크 등도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영화의 역사(들)>에서 이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혹은 그 기획의 유사성으로 인해 무분별하게 비교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꽃은 고다르라는 한 인물에게 건네진 꽃, 하지만 누구에게 (다시) 건네주어야 할 지 몰라 거듭해서 그걸 건네받은 꿈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고독한(seul) 인물의 꽃이다. 그런 점에서 유일무이한(seul) 꽃이며 단 하나의 이름을 품고 있는 꽃이기도 하다. 이는 1A파트에 이어지는 1B파트의 부제를 “고독한/유일무이한 역사”(une histoire seule)로 삼고 불현듯 스스로를 역사의 특이점에 자리한 존재로서 호명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의 역사(들)>은 고다르의 자화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 작품의 종결부에서 코울리지의 텍스트가 낭독되는 동안 화면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꿈의 공장’(usine de rêve)이라는 글자와 더불어 나타나는 노란 꽃(다시 강조하건대 이 꽃은 그가 거듭해서 꿈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저 사진으로만 접했던 고흐의 자화상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유일무이한 고독의 낙원을 거니는 얼굴 없는 예술가의 모습을 담은 <반 고흐의 초상을 위한 습작>(1957) 그리고 고다르 자신의 초상사진이다. (이상 사진 1 참조) 코울리지의 텍스트를 모두 읊조리고 난 고다르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베이컨의 그림과 자신의 초상사진을 겹쳐놓은 후, 예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내가 바로 그 남자였다.” 이 순간, 발레리(와 보르헤스)가 떠올렸던 ‘정신의 역사’의 작가는 고다르에 의해 비인칭적(impersonal)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personal) 존재라는 이중의 의미를 띄게 된다.




[사진 2]


[사진 3]


<영화의 역사(들)>을 두 번째 보던 때부터, 처음 보았을 때는 지나쳤던 도입부의 한 짧은 영상이 문득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영상은 이 작품의 결말부 코울리지의 텍스트 및 노란 꽃의 이미지와 수미상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1A파트의 도입부에 삽입된, 피아노 위에 한 송이 꽃을 올려둔 뒤 열심히 건반을 두드리는 채플린의 모습이 담긴 영상(사진 2)으로, 이것이 케빈 브라운로우와 데이빗 길의 다큐멘터리 <미지의 채플린>(1983)에서 발췌한 것임을 알게 된 건 꽤 나중의 일이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채플린의 모습은 서재에 앉아 전동타자기를 두드리는 고다르의 모습과 병치된다. 할리우드라는 ‘꿈의 공장’에서 활동하며 꽃을 건네받았던(사진 3의 <시티 라이트>) 이와, 건네받은 꽃을 어디 전해야 할 지 모르는 데다 꽃 자체를 ‘꿈의 공장’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이의 대조. (이 순간 고다르가 내뱉는 말은 “게임의 규칙”이다.) 어쩌면 문제는 다른 데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꿈속에서 거닐었던 곳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라 저승이며 거기서 건네받은 꽃을 시들지 않은 채로 이곳에서 간직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힘들거나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일까? 고다르가 저승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향한 엄준한 경고의 말 ― “hoc opus hic labor est.”(이것이 문제고 이것이 힘든 일이라오.) ― 을 작품의 맨 첫머리에 두고 있는 것은? (라틴어로 쓰여진 이 말은 한국에서 <영화의 역사(들)>이 상영될 때마다 번역되지 않은 채로 남겨졌다. 사진 4 참조.) 이 인용구의 출처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제6권으로, 그 앞에 놓인 말들과 함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옥의 문은 밤낮으로 열려 있으니 내려가는 일은 쉽다오. 하지만 발걸음을 돌려 위쪽 세상의 대기로 돌아오는 일, 이것이 문제고 이것이 힘든 일이라오.”  



 [사진 4]


※ 『다른 심문들』의 한국어판은 정경원 교수의 번역으로 2008년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만리장성과 책들』이다.  





3.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49호)



[사진 1]


<영화의 역사(들)>은 20세기의 예술로 일컬어지는 영화의 자취를 더듬으면서 그 영광을 노래하기보다는 오욕, 타락 그리고 실패의 역사를 말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정작 예술이 되는 데 실패했다. “치명적인 아름다움(fatale beauté)”이라는 부제가 붙은, <영화의 역사(들)>의 2B파트에서 고다르는 노골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는 상품이 되었으니 우린 그걸 태워버려야 한다고, 나는 앙리 랑글루아에게 말했었다.” 물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바로 뒤이어 고다르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의하라. 내면의 불(le feu intérieur)을 통해 [태워야 한다]. 예술이란 불과 같아서 그것이 태워버린 것으로부터 탄생한다.” 그가 이렇게 읊조리는 동안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자신의 서재에서 이런저런 책을 꺼내 보는 고다르의 모습, <주말>(1967)의 불타는 자동차들, 그리고 화면 위에 떠오르는 “막이 오르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꿈을 버린다.”라는 텍스트이다. (사진 1 참조) (불)가능한 희망을 위해 모든 것을 부정하기, 탄생을 위한 적멸(寂滅), 역설적이기 짝이 없는 (반)행위를 문명이 부과한 의무를 철저히 수행하지 못한 예술에 허락된 유일한 몸짓으로 취하는 것, 시대착오적으로까지 여겨지는 이러한 예술적 영웅주의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헤르만 브로흐, 토마스 만, 로베르트 무질 등의 독일어권 작가들 - 모두 <영화의 역사(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 내지는 인용되고 있는 작가들이다. - 이 고다르와 그의 작품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읽도록 권유한 이는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이 가운데 오스트리아 작가 헤르만 브로흐의 모더니즘 소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고다르가 안느-마리 미에빌과 함께 만든 50분 분량의 비디오 에세이 <소프트 앤 하드(Soft and Hard)>(1985)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이후 <영화의 역사(들)>에 이르러서는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모티브 대부분을 제공하는 핵심적인 텍스트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트로이 전쟁 이후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이네아스가 (로마인들이 로마의 전신이라고 간주했던 도시인) 라비니움을 세우기까지의 모험을 기술한 미완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저자 베르길리우스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브로흐가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베르길리우스 생애의 마지막 이틀이다. 그리스로부터의 오랜 배 여행 끝에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브룬디시움에 도착한 그는, 미완의 『아이네이스』가 진정한 인식에 닿지 못한 채 아름다움이라는 가상의 주위만을 겉돌았을 뿐이라는 판단 아래, 자신이 죽기 전 모든 원고를 태워버리고자 한다. 이때 열병의 환각에 사로잡힌 그가 침상에 누운 채 펼치는 치열하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한 내성(內省)의 과정 -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본지 제245호에 실린 연재글 참조)의 주인공 루바쇼프의 그것을 능가하는 - 을 거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적 만연체로 서술한 2부는 이 소설의 백미다. ‘물-도착’, ‘불-하강’, ‘흙-기대’, ‘공기-귀향’의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 소설에서, <소프트 앤 하드>와 <영화의 역사(들)>의 고다르가 거듭 인용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2부에서 발췌한 텍스트들이다.


<영화의 역사(들)> 2B파트의 중반부에서, 고다르는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에서 발췌한 장문의 텍스트를 여배우 사빈느 아제마가 흡사 화면 밖의 누군가를 향해 발화하듯 담담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낭독하는 모습을 거의 6분 가까이 보여준다. (사진 2 참조) 발췌한 텍스트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데, 브로흐의 원작 이곳저곳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원래의 순서와 달리 배열, 혹은 몽타주함으로써 슬며시 의미를 굴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참조) 재구성된 브로흐의 텍스트는 20세기의 영화가 엄연한 죽음의 현실을 외면하면서 - 영화란 기원이 되는 대상을 상징적으로 ‘죽이고’ 대체하는 사진적 이미지에 기초해 탄생했으며, 또한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에 적시에 응답하지 못했기에 이후의 영화는 ‘뒤늦음’(belatedness)의 감각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는 고다르적 서사 - 아름다움을 추구함으로써 빚어진 이미지의 타락,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라는 2B파트의 주제를, 대단히 농밀한 시적 언어를 통해 함축적으로 제시해 준다. “가까이에 숨은 아득함, 먼 곳을 넘는 아득함, 양자의 바깥과 안의 한계에 가로놓인 경계, 양자의 현실 속에 있는 비현실, 양자 속에 환기된 유혹 - 그것은 아름다움이었다. […] 아름다움은 마령(魔靈) 같은 힘으로 모든 것을 수렴한다. […] 아름다움이란 바로 유희 그 자체 […] 아름다움에의 도피, 도피의 유희.”



[사진 2]


고다르의 작업과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사이의 공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의 역사(들)> 전편을 가로지르는 몽상, 환상, 사색에 빠져드는 수인(囚人)의 모티브는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며 병상에 누워 있는 그는 로마의 영광을 위해 『아이네이스』의 완성을 탐하는 아우구스투스황제에 의해 상징적으로 속박된 존재이다)는 물론이고 브로흐 자신(이 소설의 일부는 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체포되어 수감되어 있는 동안 집필되었다)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한 강대한 문명(로마제국)이 탄생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정작 문명의 한계와 종언에의 예감을 펼쳐낸 이 소설이, 의미심장하게도 2차 대전이 끝나는 1945년에 간행되었다는 점도 고다르는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에우리디케를 되찾으려 저승으로 ‘하강’한 오르페우스의 여정을 나락에 떨어진 예술의 구원의 우화로 다시 취하는 <영화의 역사(들)>의 서사적 흐름은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에서 거의 직접적으로 차용한 것이라 보아도 좋을 정도다. (“에우리디케를 찾아서 저승으로 내려가려 했을 때 오르페우스가 구하고 있던 것이 다름 아닌 이 [아름다운 언어의 싸늘한 표층 밑에 있는] 언어가 아니었던가?”) 『아이네이스』제6권에 등장하는 경고의 말(“지옥의 문은 밤낮으로 열려 있으니 내려가는 일은 쉽다오. 하지만 발걸음을 돌려 위쪽 세상의 대기로 돌아오는 일, 이것이 문제고 이것이 힘든 일이라오.”)에 예술의 구원과 결부된 의미를 더한 것은 바로 브로흐이며, 고다르가 “이것이 문제고 이것이 힘든 일이라오.(hoc opus hic labor est)”라는 인용구를 <영화의 역사(들)>의 첫머리에 두기로 결정했을 때, 그 또한 분명 ‘오푸스(opus)’라는 라틴어가 ‘과업’ 그리고 ‘예술’이라는 이중의 뜻으로 읽힐 수 있음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고다르가 직접 인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미지에 대한 브로흐-베르길리우스의 다음과 같은 판단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큰 지침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활이란 이미지의 축복과 이미지의 저주 아래 영위되는 것이다. 다만 이미지에 의해서만, 인생은 스스로를 파악할 수가 있다. 이미지를 추방할 수는 없다. 그것은 집단생활이 시작된 이후 인간 속에 숨어들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사유에 선행하며 그보다 강력하다. 그것은 무시간적이며 과거와 미래를 모두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이중의 꿈-기억이며 우리 자신보다도 강대하다.” 


※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의 한국어판은 김주연, 신혜양 교수의 번역으로 2012년 시공사에서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영화의 역사(들)> 2B파트에서 사빈느 아제마가 낭독하는 부분을 아래 정리해 보았다. 그녀가 낭독하는 순서대로 정리했으며 숫자는 한국어판 1권의 쪽수와 행을 뜻한다. (발췌는 모두 1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2권에서는 발췌된 부분이 없다.) 295:18~296:2 / 167:8~167:24 / 168:22~169:4 / 298:17~299:5 / 173:17~173:22 / 174:4~174:9 / 91:7~91:12 총 일곱 군데에서 발췌되었으며 마지막 부분만이 1부에서 발췌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2부에서 발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문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인용할 때는 가급적 한국어판 번역을 따랐으나 일부 수정하거나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기도 했다.     





4. 홀리스 프램튼의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
(2015.10.26 /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55호)



[사진 1] 홀리스 프램튼의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가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번역, 게재된 『트라픽』 제21호(1997년 봄호) 표지. 


<영화의 역사(들)> 프로젝트의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고다르는 영화잡지 『트라픽 Trafic』 제21호(1997년 봄호. 사진 1)에 실린 한 편의 에세이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것은 미국의 아방가르드 영화작가 홀리스 프램튼이 1971년 9월에 『아트포럼 Artforum』 지에 발표한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글로,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소개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다르는 프램튼의 영화작업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심지어 그가 1984년에 이미 세상을 떴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고다르는 무엇보다 그 에세이 자체의 웅변적인 힘에 끌렸던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인데, 영화사적 사실의 연대기적 나열이 아닌 영화의 가능성의 조건 자체를 묻는 ‘메타역사’(metahistory)의 방법론에 대한 프램튼의 생각은 <영화의 역사(들)>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 고다르의 동기와 강렬하게 공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의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거의 그대로 고다르가 썼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1830년대에 게오르크 뷔히너는 <보이체크>를 썼다. 정치적 살인의 희생자가 된 에바리스트 갈루아는 죽기 전 한 친구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겼는데 여기에는 군론(group theory) 혹은 수학의 메타역사의 기초가 담겨 있었다. 탈봇과 니엡스는 사진을 발명했다. 벨기에의 물리학자 플라토는 최초의 진정한 영화라 할 페타키스토스코프를 발명했다. 영화사에서 이러한 네 가지 사실들은 아마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이다. 영화의 메타역사에서 이러한 네 가지 사건들은 결정적으로 관련될 수 있다.”


1997년 5월,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는 <영화의 역사(들)>의 3A 및 4A파트가 최종본에 가까운 형태로 상영되었는데, 이때 고다르는 『트라픽』 21호에 게재되었던 두 편의 글(홀리스 프램튼과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의 에세이)만을 따로 묶어 특별판을 제작해 줄 것을 잡지사 측에 요청했다. 프램튼과 로젠봄의 글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함께 수록된 “<영화의 역사(들)>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46페이지짜리 『트라픽』 특별판(사진 2)은 당시 칸영화제에 참석한 취재진들에게 배포되었다. 이로써 고다르는 프램튼의 에세이가 <영화의 역사(들)> 프로젝트와 공명하는 특권적 텍스트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사진 2] 고다르의 요청에 따라 제작되어 1997년 칸영화제에서 배포된 『트라픽』 특별판 표지.


이듬해인 1998년, <영화의 역사(들)>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4B파트를 마무리하면서 고다르는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에서 발췌해 다소 수정, 변형한 문장들을 낭독하는 내레이션을 작품 후반부에 삽입한다. 루이 푀이야드의 <방데미에르>(1918), 니콜라스 레이의 <에버글레이즈에 부는 바람>(1958) 그리고 존 카사베테스의 <얼굴들>(1968)에서 발췌한 영상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다르는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사진 3) “하나의 세기가 서서히 다음 세기로 녹아들어갈 때, 어떤 이들은 기존의 생존 수단을 [흡수해] 새로운 생존 수단으로 변형시킨다. 후자의 것[그러한 변형을 통해 얻어진 새로운 생존 수단]을 우리는 예술이라 부른다. 어떤 시대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것, 그것은 그 시대가 창조해 낸 예술형식이다. 어떤 활동이 예술이 되는 것은 그것에 부합하는 시대가 끝난 다음이다. 그 후에, 이 예술은 사라지리라.” 




[사진 3] <영화의 역사(들)>에서 프램튼의 에세이가 인용되고 있는 부분에 등장하는 영상들.   


사실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는 프램튼의 생애 후반기를 사로잡은 <마젤란> 연작 프로젝트를 위한 개념적 초안 내지는 선언문으로 간주되곤 하는 텍스트다. 프램튼은 이 에세이를 발표하고 나서 이듬해(1972년)부터 <마젤란> 연작의 제작에 착수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48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프램튼에 따르면 영화란 기계의 시대(Age of Machine)에 태어나 그 시대가 저문 이후에도 살아남은 대표적인 형식 혹은 ‘최후의 기계’로서, 여기서 기계란 그것이 작동하는 물리적 원리가 직관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영화를 낳은 기계의 시대는 레이더처럼 그 물리적 작동원리가 직관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매체가 등장함에 따라 막을 내리는데, 바로 이 쇠퇴의 시점부터 영화는 비로소 자신의 가능성의 조건을 묻는 메타역사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때 운동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시네마’라는 용어는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영화라는 기계의 특권적 요소라 할 수 있는 필름의 ‘구조적 원리’ 안에는 그러한 운동의 가정을 정당화하는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세상의 모든 필름, 모든 영사기, 모든 카메라의 총합으로 이루어져 매 순간 끊임없이 팽창하는 잠재적이고 메타적인 장치로서의 ‘무한영화’(infinite film)를 상정한 뒤, 그러한 무한영화와 구조적으로 상응하는 한 편의 영화, 즉 “기계적인 명연주자라 할 영사기”를 위한 ‘악보’로서의 ‘필름’을 실제로 구성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숙고해 본다. 


고다르가 프램튼의 에세이를 수용하는 것은 <영화의 역사(들)>에 직접 인용된 “어떤 활동이 예술이 되는 것은 그것에 부합하는 시대가 끝난 다음”이라고 하는 통찰에만 국한된 것이라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무한영화’의 개념이나 이의 실행과 관련된 생각은 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경험으로서의 영화사」라는 글에서 크리스타 블륌링거가 지적한 대로, 필름을 통해 필름의 메타역사를 구성한다고 하는 프램튼의 기획은 (그가 사망한 해에 발표된) 모건 피셔의 <스탠더드 게이지>(1984) 같은 작품에서 보다 뚜렷이 형상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인디아>(1959)를 보고 나서 이 영화가 “리만과 플랑크의 이론이 고전적 기하학과 물리학을 포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영화를 포괄하고 있다”고 쓰기도 했던 청년 비평가 시절의 고다르를 떠올린다면, 메타역사적 사유를 위한 도구로서의 무한영화라는 개념이 전적으로 그와 무관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추정도 충분히 가능하다.  


필름의 메타역사가로서 스스로를 규정한 프램튼이 <마젤란> 연작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고다르는 영화를 낳은 기계의 시대에 종언을 고한 매체라고 흔히 언급되는 비디오(와 텔레비전)의 영화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앞선 시대에 종언을 고한 매체를 통해 그 시대가 낳은 최후의 산물을 고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잔혹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뉴미디어의 기수가 되는 일 따위는 고다르의 안중에 없었겠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과거의 영화에 머무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야흐로 예술이 되어가고 있는 영화를 위해 프램튼 식의 미학적 모험을 감수한다고 하는 것도 석연치 않은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프램튼의 텍스트를 읊조리던 고다르가 원문에는 없는 “그 후에, 이 예술은 사라지리라”라는 말을 굳이 덧붙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세르주 다네는 이를 ‘고다르의 패러독스’라 불렀는데, 그에 따르면 고다르는 “얼마 전의 과거와 가까운 미래 사이에 붙들려” 있고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과 아직 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고통 받고” 있는 자, “현재에 있도록 저주받은 자”이다. 시네마라고도 비디오라고도 할 수 없는 <영화의 역사(들)>의 독특한 위치, 거기 감돌고 있는 신중한 미학적 보수주의, 20세기의 역사(특히 2차 대전과 아우슈비츠)와 영화의 길항관계에 대한 예민한 윤리적 감각, 이로 인해 고다르는 프램튼의 급진적 아방가디즘의 문턱에서 돌아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필름의 메타역사를 위하여」는 홀리스 프램튼의 글 모음집인 『On the Camera Arts and Consecutive Matters: The Writings of Hollis Frampton』(edited by Bruce Jenkins)에 수록되어 있다. 프램튼의 주요 영화작업은 2012년 크라이테리온에서 출시한 블루레이 <A Hollis Frampton Odyssey>를 통해 볼 수 있다.





5. 잭 런던의 『별 방랑자』와 샤를 보들레르의 「여행」
(2015.12.6 /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58호)



2014년에 발표된 고다르의 3D 장편영화 <언어와의 작별>의 결말부, 우리는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록시라는 이름의 개가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고다르 자신과 그의 동반자 안느-마리 미에빌로 추정되는) 두 남녀의 대화가 보이스오버로 들려온다. “그녀는 마르키즈 제도에 대한 꿈을 꾸고 있어.”라는 여자의 말에 뒤이어 남자는 “잭 런던의 소설에서처럼 말이지.”라고 덧붙인다. 우리는 <영화의 역사(들)> 전편을 가로지르던 상상적 여행이라는 모티브가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들의 대화는 20세기 초 자신의 범선을 타고 마르키즈 제도를 비롯한 남태평양 일대를 여행한 후 이에 대한 여행기를 남기기도 했던 작가에 대한 언급이면서, 구속복을 입은 채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이 온전히 정신의 힘으로 인류 역사를 가로지르며 각종 모험을 겪는 과정을 그린 소설 『별 방랑자』에 대한 언급이기도 할 것이다. 


잭 런던이 『별 방랑자』를 발표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백 년 전인 1915년이다. (그는 이 소설이 출간된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소설의 주인공은 전직 대학교수였으나 살인죄로 복역 중인 대럴 스탠딩이라는 인물로, 그는 교도소장이 가하는 모진 구속복 고문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던 중 전생(前生)의 여러 시대를 넘나드는 정신적 여행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 연재글을 계속해서 읽어온 이들이라면 이 인물이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의 루바쇼프(본지 제245호), 그리고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의 베르길리우스(본지 제249호)처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육신이 갇힌 공간(감옥이나 침상)에서 치열하고도 집요하게 과거의 이미지를 불러내는 ‘영화적 정신’의 형상임을 쉽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형상이 자신의 스위스 자택 작업실에서 이런저런 영화들을 불러내며 20세기라는 영화의 시대를 반추하는 고다르의 자화상과 고스란히 겹치고 있음도 알 것이다. 심지어 고다르는 <영화의 역사(들)> 1B파트에서 니콜라스 레이의 <자니 기타>(1954)와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를 겹쳐 놓은 ‒ 여행하는 자와 이미지를 불러내는 자의 중첩 ‒ 화면 위로 나직하게 “별 방랑자”(le vagabond des étoiles)라 중얼거리며 직접적으로 잭 런던의 주인공을 호명하고 있기까지 하다. (사진 1)




[사진 1] <영화의 역사(들)> 1B파트에서 잭 런던의 소설 제목이 언급되고 있는 부분.


그런데 임박한 죽음을 감지한 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정신의 모험이란 바로 그 죽음을 향해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내던지는’(投) 작업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러한 ‘내던짐’은 1970년대 이후 고다르 스스로가 감행한 작업, 영화의 임박한 죽음에 맞서 오히려 그러한 죽음을 초래한 뉴미디어(텔레비전과 디지털)로 대담하게 투신(하여 저항)하는 작업과도 관련될 수 있겠지만, <영화의 역사(들)>에서 ‘내던짐’은 무엇보다 투사(投射)/영사(projection)라고 하는 영화장치의 오래된 기제의 역량과 관련되어 있다. 고다르는 우리를 향해 빛을 발하는 텔레비전은 보는 이를 밀쳐내지만 우리 등 뒤에서 투사/영사되는 빛을 통해 성립되는 영화는 보는 이를 끌어당긴다고 말한다. “오직 영화만이”(seul le cinéma)라는 부제가 붙은 2A파트에서, 고다르는 투사/영사란 죽음을 향해 투신을 감행하는 오르페우스적 여정을 촉발하는 기제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영화는 [오직 영화만이!]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돌아보아도 죽지 않게끔 해 준다.”(사진 2)는 그 유명한 구원의 약속과 더불어 말이다. 나는 <영화의 역사(들)> 시리즈 전편에 걸쳐 가장 감동적이라 할 ‒ 또한 ‘고다르적 (억지) 논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으로 본 연재를 마무리하고 싶다.




[사진 2] “영화는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돌아보아도 죽지 않게끔 해 준다.”


2A파트에는 고다르가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와 나눈 대담을 기록한 비디오 영상클립이 꽤 길게 삽입되어 있다. 어느 순간 고다르는 “내게 있어 거대한 역사란 바로 영화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보다 큰 역사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투사/영사된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과 더불어 투신(投身)의 모티브와 연관된 일련의 이미지들이 차례로 제시되더니 마지막 이미지 위에 “오직 영화만이”라는 텍스트가 떠오른다. (사진 3) 잠시 후 고다르는 우리에게 나폴레옹 군대에서 싸우다 포로로 잡힌 뒤 모스크바의 감옥에서 사영기하학(projective geometry)의 원리를 고안한 장-빅토르 퐁슬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로써 수인의 정신적 여행으로서의 영화를 위한 개념적 원리가 제시된다. 이윽고 영사기(projector)가 돌아가고 여행이 시작된다. (사진 4) 그리고 우리는 여배우 줄리 델피의 얼굴 위로 터너의 회화 <평온: 바다에서의 매장>(1842)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되는데(사진 5), 잠시 후 그녀는 보들레르의 시 「여행」을 천천히 낭독하기 시작한다. 여러 이미지와 사운드가 떠오르는 가운데 그녀의 낭독은 시 전문을 거의 다 읽을 때까지 13분 가까이 이어진다. “지도와 판화를 사랑하는 아이에겐 / 우주가 그의 엄청난 식욕과 같은 것 / 아! 등불 아래 비치는 세계는 얼마나 큰가! / 추억의 눈으로 본 세계는 그토록 작은데!” 그녀의 낭독과 더불어, 살인자를 피해 보트를 타고 달아나는 두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냥꾼의 밤>(1955) 발췌영상이 길게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여기서 고다르는 자신의 방식대로 보들레르를 거슬러 읽으면서(혹은 오독하면서), “추억의 눈으로” (이미 경험한) 세계를 (돌이켜) 보는 이들이 아니라, 등불의 힘을 빌려 스스로를 미지의 세계에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추억 없는 이들, 즉 아이들을 ‘영화적 정신’의 형상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영화의 역사(들)>에는 영화사(史)의 온갖 이미지들이 인용되고 있지만 종종 이것들은 원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단순한 시각적 정보(달리는 남자, 춤추는 커플 등)만을 지닌 이미지로 환원되어 다른 이미지들과 결합되곤 한다. 이것들은 말 그대로 죽음으로 투신한 뒤에 부활한 이미지들, 뒤돌아본 오르페우스가 되찾은 에우리디케의 조각들이다. 고다르의 과격함은 세계의 이미지들을 추억 없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영화적 정신’의 형상을 급기야 <언어와의 작별>에 등장하는 록시라는 이름의 개로까지 밀고 나가기에 이른다. 그러고 보니 잭 런던은 『별 방랑자』에서 다음과 같이 쓰기도 했다. “기억이란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여기는 아이들의 그릇된 정의 속에는 단순한 진실 이상의 것이 들어 있다.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은 제정신을 뜻한다.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은 집착이자 정신이상이다.” 물론 이 망각의 작업은 “우리가 어린 시절 지니고 있던 [이 세계에서 경험한 적이 없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 시인 워즈워스가 “영광의 나부끼는 구름”이라 표현한 그러한 기억, 고다르 식으로 말하자면 비인칭적인 “거대한 역사”에 해당할 법한 그러한 기억을 위한 미지로의 투신에 다름 아닐 것이다. 보들레르의 「여행」은 다음과 같은 (줄리 델피의 낭독에서는 빠져 있는) 문장들로 끝난다. “지옥이건 천국이건 아무려면 어떠랴? 심연 깊숙이 / 미지의 바닥에 잠기리라,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사진 3] <영화의 역사(들)> 2A파트에 등장하는 투신(投身)의 이미지들.



[사진 4] 투사/영사, 그리고 여행의 시작.



[사진 5] 보들레르의 「여행」을 낭독하는 줄리 델피
   

※ 잭 런던의 『별 방랑자』 한국어판은 이성은의 번역으로 2010년 궁리출판에서 출간되었다. 보들레르의 「여행」이 수록된 『악의 꽃』 한국어판은 윤영애의 번역으로 200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본문의 인용은 한국어판을 따랐다.

  

2015-09-01

[Martian Chronicles] 2015년 9월 첫째 주


앤서니 맥콜의 지속시간에 대한 노트 Notes in Duration」(1975)


※ 올해 서울국제실험영화제(EXiS, 2015.8.20~8.27)는 영화제 기간 동안 「카운터-프로덕션 Counter-Production」이란 주제 하에 시청각갤러리에서 전시, 강연, 퍼포먼스 등을 진행했다. (전시 팸플릿은 이곳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전시 작품 가운데는 앤서니 맥콜(Anthony McCall)의 1975년 설치작품 <앰비언트 라이트를 위한 영화 Long Film for Ambient Light>(1975)가 포함되어 있었다. 


앤서니 맥콜이 촬영한 전시장 사진
(1975년 6월 19일 오전 3시. 뉴욕의 Idea Warehouse)


맥콜이 직접 작성한 작품 설명을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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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도 영사기도 사용하지 않는 작품. 세 가지 요소가 모여 이 '영화'를 구성하는데 이 요소들 가운데 어떤 것도 다른 것에 선행하지 않는다. 

(1) 벽에 붙은 시간표. 총 50일 치. 실제로 전시가 이루어지는 기간은 시간표 한가운데 표시되어 있다. [ 원래 이 작품은 1975년 6월 18일 정오부터 다음 날 정오까지 24시간 동안 전시되었다.]
(2) 변형된 공간.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전구 하나가 눈높이에 매달려 있다. 창문들은 모두 하얀 종이로 덮여 있는데 이로써 주간에는 광원 역할을 하고 야간에는 반사면(즉, 스크린) 역할을 하게 된다.
(3) 벽에 붙은  「지속시간에 대한 노트」라는 제목의 2페이지짜리 스테이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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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각갤러리 전시를 위해 「지속시간에 대한 노트」 전문을 번역하게 되었는데 이를 아래 옮겨 둔다. 



지속시간에 대한 노트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이 영화는 동적인 작품처럼 여겨지는 것과 정적인 환경처럼 여겨지는 것 사이의 문턱에 조심스레 자리하고 있다. 형식주의적 예술 비평은 단호하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 이 두 가지 상태를 구분하려 해 왔는데, 이러한 분리는 내겐 부조리하게 여겨진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생각이라고 하는 (전기화학적) 과정 또한 물론이거니와,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지성이 연속적 시간에 대한 지각을 굳이 ‘순간들’로 분리해 분석하게끔 된 것은 문화적[으로 얻어진] 습성이다. 연속적이고, 중층적이며, 다중적인 지속보다는 정적이고, 절대적인 경험의 덩어리들을 고수하려 드는 것은 편리할지는 모르나 분명 왜곡된 인식의 태도다.  

우리는 그것을 감상하는 시간 동안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 예술을 ‘대상’이라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감상하는 시간 동안 변화를 보여주는 예술을 ‘사건’이라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는 예술을 ‘영원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사실은, 본질적으로 연속적인 시간에 기반을 둔 것들이 절단되고 구분되는 것은 바로 우리를 통해서라는 점이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벽에 붙은 한 장의 종이는 영화 상영과 마찬가지로 지속[되는 것]이다. 유일한 차이는 그것이 우리의 지각들과 맺는 즉각적인 관계에 있다. 

두뇌에 가해지는 자극의 측면에서 보면, 정적인 것이란 [동일하게 여겨지는 것이] 반복되는 사건이다. 숙고가 행해지는 장소가 ‘정적’이건 ‘동적’이건 간에, 우리는 예술 행위라는 맥락 속에서 주의집중의 시간을, 인지와 기억의 과업을 처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대상이나 사건에 [직접] 다가갈 수 없다. 그것들은 좀처럼 ‘과시’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의도된, 의미를 품은 기호이기 때문에 이[처럼 ‘과시’되지 않는다는] 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일단 하나의 관념이 ‘마음에’ 자리를 잡고 나면, 그것은 (예술적) 관념들의 회로에 들어가 그 회로 내에서 톺아볼 수 있게 될 뿐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는다. 정적이건 동적이건 어떤 예술작품의 파악은 다른 모든 경험들과 마찬가지로 잠깐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경험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남은 것이다. 영화 상영과 관련된 규준들 가운데 하나는 ‘제한적으로, 무리지어 보게’ 하는 것이었다. 어떤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특정한 시간에 모이는 것이, 그럼으로써 ‘관객’이라 불리는 사회적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 집단에는 특수한 행동 특성이 있다.   
  
<화재 주기 Fire Cycle>(1974)와 <네 대의 영사기를 위한 긴 영화 Long Film for Four Projectors>(1974)를 통해, 나는 작품의 지속시간을 늘리는 것이 관객에게 가능한 집중의 성격을 의미심장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만족했다. [통상적인 영화와는 달리 작품을 보기 위해] 주의집중을 해야 하는 시간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작품의 감상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될 지는 그저 [관람객 각자에게] ‘열려’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에 따라 오고 갔다. 계속해서 바뀌기는 했어도 작품 각각의 구조에는 체계적인 균등성이 있었다. 특정한 위치에서 감상해야 한다는 지시도 없었고, 두 작품 모두 특별히 주의집중의 축이 생기지 않게끔 전체 [전시]공간을 활용했다. (이 점에 있어서 이 두 편의 작품은 <원뿔을 그리는 선 Line Describing a Cone>(1973) 같은 나의 전작들과 다르다. <원뿔을 그리는 선>의 경우에도 관람을 위한 위치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거기에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한 방향의 축이 있었다. [관람객들의] 눈의 방향은 결국 언제나 한 곳으로, 즉 영사기의 렌즈로 향했던 것이다.) 어떤 순간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에도 [전시공간의] 규모는 그들을 공간적으로 분리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형식적 특성으로 인해 관람객과 작품 간에 일대일의 관계 성립이 가능해졌다.

이제 나는 다른 기본적인 것들, 즉 시간성과 빛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작품에서] ‘공연적’ 측면을 줄여나가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나는 [영화에서] 관습적으로 쓰이는 (비싸고 느리다는 점에서 불리한) 사진화학적, 전기역학적 과정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러한 탐구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나는 청개구리 같은 짓거리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으며, 모든 ‘제1원리’ 뒤에는 다른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고, 내가 [통상적인 방식으로] ‘영화들’을 만드는 일을 계속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동안 나는 [영화]제작의 물리적 과정보다는 예술적 행위로서의 영화 뒤에 숨은 가정들에 천착하려 한다. 

앤서니 맥콜
1975년 뉴욕에서

(번역 유운성)



로무알트 카마카의 <히믈러 프로젝트 Das Himmler Projekt>(2000)


※ 2015년 9월 17일부터 24일까지 열릴 DMZ국제다큐영화제에 독일감독 로무알트 카마카(Romuald Karmakar)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할 예정이라 한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었을 때 특별전을 마련해 초청한 바 있는 감독이다. 그는 21세기 독일영화계에서 크리스티안 펫촐트(Christian Petzold)와 더불어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카마카의 경우 알렉산더 클루게의, 펫촐트의 경우 하룬 파로키의 영화적 동지이자 제자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된 펫촐트의 <피닉스 Pheonix>(2014)는 유대인수용소의 생존자 문제를 다룬 수작으로, 놀랄만큼 과대평가된 '예술연습' 영화 파벨 파블리코프스키의 <이다 Ida>(2013) 같은 작품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영화사(史)와 인간의 역사에 접근하는 윤리적 태도도 인상적이지만 느리게 타올라 기어이 관람자를 뒤흔들어 놓고야 마는 감정적 조율이 압도적이다.) 이번 방문기간 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마카 작품 가운데 한 편인 <히믈러 프로젝트>가 상영된다.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의뢰를 받아 메인카탈로그에 수록될 짧은 리뷰를 하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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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믈러 프로젝트 The Himmler Project / Das Himmler Projekt
감독: 로무알트 카마카 Romuald Karmakar (2000, 182분)

동시대 독일영화감독들 가운데 가장 비타협적인 인물이라 할 로무알트 카마카는 쉬이 범주화되기 힘든 독특한 작업들로 예민한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편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함부르크 강연>(2006)과 더불어 그의 가장 대담무쌍한 작품으로 꼽히는 극단적인 ‘낭독의 영화’ <히믈러 프로젝트>(2000)만큼이나 철저하게 카마카다운 영화도 없을 것이다. 카마카는 나치 독일의 2인자였던 하인리히 히믈러가 1943년 10월 4일 폴란드의 포즈난(독일어 명칭은 포젠)에서 92명의 나치 친위대(SS) 장교들에게 행한 연설, 무엇보다 유대인절멸계획에 대한 언급으로 악명 높은 그 연설을 영화의 소재로 취했다. (이 연설은 비밀리에 행해진 것이었지만 전체가 녹음 및 보존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영화의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단색의 배경막 앞에 강연대만이 덩그마니 놓인 세트에서 한 명의 배우(만프레드 자파트카)가 히믈러의 연설 녹음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하는 것이다. (3시간에 달하는 영화의 상영시간은 히믈러가 실제로 연설했던 시간과 거의 같다.) 사실 자파트카는 텍스트를 ‘낭독’(reading)한다기보다는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기는 해도) 분명 그것을 ‘연행’(performing)하는 배우로서 - 하지만 히믈러라는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카메라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간헐적으로 쇼트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카메라는 낭독 중인 자파트카의 얼굴을 그의 눈높이에서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그런데 히믈러의 연설 도중 청중이 보인 반응(가령 웃음소리)이 자막으로 제시되는가 하면, 연설 도중 말의 중단이나 실수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나고, 행사장의 보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안 히믈러가 잠시 연설을 중단하고 부하들에게 내리는 지시 또한 고스란히 낭독되는 등, 연설 자체를 재연하려 하기보다는 연설 녹음자료의 시청각적 분석을 통해 연설의 정황을 읽어 내고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쇼트의 변화는 연설의 토픽이 미묘하게 전환되는 경우나 히믈러가 청중 가운데 누군가를 바라보며 지목하는 경우 - 이때 카메라는 그 청중의 시점에서 앙각으로 히믈러를 올려다본다. - 에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에 대한 기대 및 예측과 결부된 서스펜스는 대단히 강렬해지며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관객은 그 의미와 이유를 숙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영화를 보는 이라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볼 법도 하다. 이것을 제1차 포젠 연설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 미니멀리즘적 픽션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연설 녹취록의 낭독이라고 하는 사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간주해야 하는가? 이 물음을 픽션과 다큐멘터리 간 경계의 모호함이라고 하는 (이제는 벌써 진부하게 느껴지는) 오늘날 널리 퍼진 담론의 맥락에서 파악하려 드는 건 쓸모없는 일이다. <히믈러 프로젝트>는 하나의 거대한 픽션을 해부하기 위해 마련된 시청각적 실험실이다. 여기서 거대한 픽션이란 히믈러가 연설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바, 나치 친위대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가운데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의 틀을 완전히 다시 짜는 것이다. 통상 히믈러의 연설은 3시간에 달하는 전체 가운데 유대인절멸에 관한 5분 남짓한 부분만이 강조되고 거듭 인용되어 왔는데, 카마카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제3제국의 거대한 픽션이라는 맥락 속에서 다시 살펴보게끔 한다. 카마카의 집요한 시청각적 분석을 따라 히믈러의 연설을 주의 깊게 살피다 보면, ‘히믈러 프로젝트’가 비단 나치즘 시기에 국한된 과대망상증적 픽션이라기보다는 오늘날까지도 독일을 사로잡고 있는 픽션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2000년에 <히믈러 프로젝트>가 첫 공개되었을 때 이 영화는 사뭇 예언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히믈러의 발언은 독일 주도 하의 유럽연합 체제를 좌지우지하는 ‘메르키아벨리즘’(울리히 벡)과 소름끼치게 공명하는 것으로 비친다. 즉, 카마카는 이미 화석화되고 진부한 방식으로만 언급되는 역사적 도큐먼트를 온전히 치밀하게 다시 ‘읽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동시대의 이슈에 개입할 수 있는지를 놀랄 만큼 단순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픽션이나 다큐멘터리, 혹은 에세이 영화 같은 용어들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를 시청각적 문헌학(audio-visual philology)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카마카는 9.11 테러범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교 지도자 모하메드 파자지의 2개의 강연 녹음자료를 토대로 한 <함부르크 강연>에서 (다시 한 번 배우 만프레드 자파트카와 함께) <히믈러 프로젝트>에서 실험한 방법론을 더 밀고 나가게 된다. 이들 작업은 ‘낭독’이라는 행위가 전면화된 정치적 미학을 실험했다는 점에서 이따금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 혹은 카마카의 영화적 스승인 알렉산더 클루게의 몇몇 작업들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의 텍스트에서 잠재적 의미를 끌어내거나 다른 텍스트와의 병치를 통해 새롭게 가능한 의미를 더하는 그들의 작업과 카마카의 작업을 나란히 놓는 것은 적절치 않다. 히믈러의 연설이나 파자지의 강연 같은 오명의 텍스트에 이끌리는 카마카는 무엇보다 그러한 텍스트들을 내파시키는 데서 자신의 정치성을 발견한다. 



2015-08-29

[Critique] 소마이 신지: 저항의 미메시스 + <소마이의 유령>



※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련한 「2015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2015.7.28~8.30)를 통해 영화관에서 꼭 보고 싶었던 두 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앨버트 르윈의 <판도라 Pandora and the Flying Dutchman>(1951)로 이 테크니컬러 걸작은 할리우드 영화가 결정적인 변화의 국면을 맞고 있던 - 냉전기의 정치사회적인 분위기와 텔레비전의 부상 등 - 1950년대라고 하는 특정한 시기에만 (마지막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놀랍도록 시대착오적인 동화들 가운데 하나다. 이번에 상영된 것은 2009년에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George Eastman House)가 디지털 복원한 판본으로 2010년에 KINO LORBER에서 DVD 및 블루레이로 출시한 바 있다. 


<Pandora and the Flying Dutchman>(Albert Lewin, 1951)


다른 하나는 소마이 신지의 <숀벤 라이더 P.P. Rider>(1983)로, 이 작품은 <러브 호텔 Love Hotel>(1985) 그리고 <이사 Moving>(1993)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마이 영화다. (<러브 호텔>은 최근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되어 네이버 등에서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 중이다.) 6년 전(2009년 9월 2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소마이의 <태풍클럽 Typhoon Club>(1985) 상영 후 "소마이 신지의 영화세계"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뒤 강연록의 일부를 (지금은 운영을 중단한)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그것을 아래 옮겨 보았다. 소마이의 이력이나 그에 대한 비평적 평가에 대해 언급한 강연 앞부분의 내용은 생략하고 후반부의 내용만을 당시의 강연원고를 토대로 정리했다. 올해 초 미디액트에서 안건형 감독과 함께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강좌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소마이의 유령 Running to Stand Still: Somai Ghost>이라는 제목으로 소마이 신지에 대한 10분 분량의 에세이 영상을 제작한 바 있다. (이 강좌에서 수강생들이 제작한 영상물들은 인디다큐페스티발 '올해의 초점'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이 영상도 아래 링크해 두었다. 바라건대 조만간 서울에서 소마이의 전작(13편)을 볼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1. <소마이의 유령 Running to Stand Still: Somai Ghost>
(제작: 미디액트 / 촬영, 텍스트, 편집: 유운성 / 2015년 / 10분)






2. 소마이 신지: 저항의 미메시스
(2009년 9월 27일 서울아트시네마 강연원고를 부분적으로 정리한 것임)


소마이 신지(相米慎二, 1948~2001)에게 있어서 순간이 미학화되는 일은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 소마이의 영화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프레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요.

어떤 면에서 소마이는 그 이전까지 주로 일본 바깥의 평자들에 의해 '일본적'이라 이해되었던 것들을 폐기하는 작업에서 출발한 감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오즈와 미조구치를 떠올려 보죠. 사실 오즈와 미조구치가 '일본적'이라 받아들여진 것도 그들 스스로가 어떤 엑조틱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를 갖고 작업에 힘했기에 그리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화가 폭넓게 받아들여지면서 그들의 특정한 미학이 '일본적'인 것으로 사후에 재정의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일본의 많은 감독들이 알게 모르게 이들의 전통 하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세월이 지나면서 '일본영화'라고 하는 어떤 '종'이 성립된 것이죠. 적어도 1950년대 이전까지는 일본영화가 그 바깥의 이들에게 '종적'인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리 만무합니다. 아, 이것은 일본영화적인 것이다, 라는 어떤 느낌을 가능케 하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은 방금 보신 <태풍클럽>(1985)에서 미카미라는 소년이 "개체가 종을 초월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두고 고민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저는 소마이야말로 한 일본감독이라는 개인이 일본영화라는 종을 초월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던 영화작가라 봅니다. 사실 이건 모든 나라의 감독들에게 자연스레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저는 한국영화라는 종이 기존에 존재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껏해야 지금 이곳에서 생성중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건 감독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불행한 일이기도 하죠. 근 15여년 동안 신상옥, 유현목, 김기영, 이만희 등등을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행해졌지만 그건 말하자면 그러한 감독들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영화라는 종을 기어이 사후적으로 만들어내려는 노력에 해당하는 것이거든요. 앞서 언급한 감독들은 한국영화라는 종을 구성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사실 미처 종으로 확립되지 못한 일군의 허약한 개체들의 무리 사이에서 나타난 매우 예외적이고 탁월한 - 항상 성공적이진 않았을지라도 - 돌연변이들이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태풍클럽 Typhoon Club>(1985)


여하간 다시 소마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는 일본영화의 특정한 양식이 '일본적'인 것으로 인지되고 마침내 엑조틱한 대상이 되었을 때, '일본적'인 것으로 즉각 인지되지 않는 일본영화를 재발명해내는 문제를 고민했던 감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 예컨대 매우 일본적인 장르 가운데 하나인 야쿠자 장르에 접근하는 데 있어 소마이가 기타노 다케시와 얼마나 달랐던가를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기타노는 야쿠자 장르의 쇄신이라는 과제를 숏 자체, 프레임 자체, 편집의 리듬 자체를 미학화하는 수준에서 수행했습니다. 이런 식의 형식적 지향과 자결이라고 하는 일본적 매너가 결합된 그의 야쿠자 장르들은 당연히 1990년대를 거치며 서구평자들의 주목을 끌었지요. 여하간 기타노는 좀 미시적 수준에서 엑조틱한 '일본성'을 야쿠자 장르에 재도입한 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돌스>나 <자토이치>에 이르면 아예 눈에 띄게 엑조틱한 요소들를 내세우는 바람에 거의 참고 볼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즉 기타노가 야쿠자 장르의 비장미를 형식적으로 정련한 현대감독이라면, 소마이는 야쿠자 장르의 세계 자체가 허구적인 연행(performance)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폭로하면서 해방의 쾌감을 만끽하는 쪽이죠. 그런데 그의 영화엔 어떤 식으로건 눈에 띄게 유미적인 요소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장르의 해체라고 해도 예컨대 스즈키 세이준의 그것과는 매우 달라 보입니다. '일본적'이라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미적 요소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 그것이야말로 소마이가 서구로부터 쉬이 인지되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 해요. 덧붙여 하스미 시게히코가 지적하듯 소마이가 <세라복과 기관총>(1981) 같은 하이틴 변종영화로 일본 내에서 기록적인 흥행을 거둔 흥행작가라는 인식도 (부정적으로) 한 몫 했을지 모릅니다.



<세라복과 기관총 Sailor Suit and Machine Gun>(1981)


미조구치적 롱테이크와는 사뭇 다른 방식의, 구체적인 시선의 롱테이크를 시도한 소마이가 특정장르 안에서 그 장르의 주요부분을 이루는 특정 집단의 인공성을 드러내는 방식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오즈적 가족, 이른바 일본적 전통가정이란 소마이의 세계에선 매우 낯선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가족적 삶을 이끄는 어른들이 일단 등장하지 않습니다. 혹은 등장한다 해도 아이들보다 미숙하거나 철없는 존재들일 뿐이죠. <세라복과 기관총>이나 <숀벤 라이더>(1983)에서 보듯, 야쿠자 장르의 야쿠자들 또한 소마이의 세계로 들어오면 의리와 규율이라는 허울뿐인 외양 밑에 감춰둔 서툴고 유아적인 정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야 맙니다. 그야말로 애만도 못한 어른들이 되어 버리는 거죠. 흥미로운 것은 소마이가 이것을 스즈키 세이준처럼 장르적 유희나 그 해체를 위한 냉소적인 과장으로서 그리 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당대 일본사회의 리얼함이라고 공언하는 듯한 태도에 있습니다. 그처럼 경직된 것들을 조롱하는 소마이의 방식은 바로 아이들이란 존재를 내세워 (아도르노의 표현을 맘대로 빌려 쓰자면) 그 경직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미메시스를, 모방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에게서 미메시스란 연기 혹은 연행과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마이는 개인적으로 무대극이나 오페라에 굉장히 애착이 많은 감독이기도 했고 직접 연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숀벤 라이더 P.P. Rider>(1983)


소마이의 데뷔작 <돈다 커플>(1980)의 주인공 소년과 소녀는 어른들이 없는 집에서 부부처럼 삽니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짐짓 부부관계를 연기하고 있는 중이며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거꾸로 부부관계란 것이 얼마나 철없는 질투와 이기심으로 지탱되는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건 소마이의 원숙한 걸작 <이사>(1993)에서 실제 어른들의 부부관계를 통해 반복되는 바로 그것입니다. <세라복과 기관총>의 주인공 소녀는 사실 아쿠자 보스를 '연기'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연기'는 실제 아쿠자들의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고 급기야 그걸 괴멸시켜 버리죠. 그걸 보며 소녀는 '쾌감'이라고 중얼거립니다. <빛나는 여자>(1987) 같은 영화는 영화 전체가 아예 펠리니적 세팅의 파이트 클럽이라고 하는 무대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태풍클럽>에서 한 소년은 혼자서 자기 집 문을 들락날락하며 "다녀왔습니다" "그래 다녀왔니"라고 말하며 자식/부모의 역할놀이 혹은 연기를 수행합니다. 소마이의 영화에서 진정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경직되고 소외된 것, 가족제도나 야쿠자 사회 뿐 아니라 통상 그러한 것들에 대한 저항이라고 여겨지는 혁명적 태도까지도 미메시스적 차원에서 묘사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통상 <숀벤 라이더>나 <태풍클럽>은 어른들이 방기한 세계에서 터져나오는 청춘들의 반항적 에너지를 묘사한 영화라는 식으로 이야기되곤 하지만, 그리고 그런 언급이 꽤 타당한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러한 반항이나 저항 자체가 아니라 저항의 미메시스를 묘사한 영화라는 점도 동시에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숀벤 라이더>의 클라이맥스에서 아이들은 돌연 집의 내외부를 돌며 모종의 공연 비슷한 행위에 몰두하고 <태풍클럽>에서 고교생들의 해방적인 광란의 춤이 시작되는 것은 말 그대로 무대 위에서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공연이자 연기, 퍼포먼스로서 우리 앞에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풍클럽>에서 퍼포먼스의 관객은 단 한 명, 미카미라는 소년입니다. 그는 이미 선생에게서 '15년 뒤면 너도 나처럼 될 거야'라는 말을 듣고는 우울해 있는 상태죠. 그가 퍼포먼스에 동참하는 것은 순수하게 에너지를 발산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약간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에서입니다. 저항도 미메시스적 퍼포먼스 앞에선 무너져내릴 뿐인 허약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급기야 그는 종이 개체에게 행사하는 승리의 징표인 죽음이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가를 직접 증명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심지어 그의 죽음조차도 일종의 퍼포먼스로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태풍클럽>은 소마이적 주제를 가장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영화라 할 수 있겠지요.



소마이 신지, <이사 Moving>(1993)


다시 한 번 "15년 뒤엔 너도 나처럼 될 거야"라는 <태풍클럽>에서의 선생의 대사를 떠올려 봅시다. 미카미라는 소년은 선생의 말과 같이 되지 않을 것임을 그 자신의 즉각적인 죽음을 통해 보여주었지만, 소마이는 15년 후에 그의 유작이 된 <바람꽃>(2000)을 발표했습니다. 이 영화엔 모종의 피로감이 덮여 있습니다. 소마이의 영화에서 경직된 사회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인물들의 영원한 도피처처럼 종종 묘사되어 왔던, 그리고 소마이가 유년을 보냈던 홋카이도가 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했던 대사, "홋카이도는 죽기에 좋은 곳이다"라는 대사도 그가 죽은 지금에 와선 예사롭지 않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소마이가 거부하고자 했던 일본영화라는 종의 어떤 흔적도 느껴집니다. 당시 소마이는 이 영화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고, 1년 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게 마치 자살처럼 느껴집니다. □

※ 주

[1] 2001년 9월 9일 소마이가 53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던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미국영화잡지 <필름 코멘트 Film Comment>에 "잃어버린 연결고리 Missing Link"라는 제목의 소마이 소개글을 발표한다. 하스미는 소마이의 부고를 듣고 루비치의 죽음을 떠올렸다는 말로 글을 시작하고 있는데, 루비치도 소마이와 비슷하게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지만 할리우드 시절에만도 30편이 넘는 뛰어난 영화들을 남긴 루비치의 죽음에 과연 당대의 사람들이 너무 이른 죽음이라고 생각했을지 의문을 표하며, 20년 경력에 고작 13편의 영화만을, 그것도 여러모로 봐도 최고의 영화라고는 말할 수 없는 <바람꽃>을 유작으로 남기고 죽은 소마이의 죽음을 애석해한다. 그리고 소마이의 비극을 1980년대라고 하는 일본영화계의 좋지 않은 상황, 말하자면 과도기였다고 할 수 있는 시기에 연출을 시작한 것과 관련지어 생각해보고 있다. 1980년대는 일본영화계를 70여 년 간 지탱해 온 스튜디오시스템이 붕괴된 이후인 동시에 독립적 영화작가들을 지원할 새로운 세대의 젊은 프로듀서들이 등장하기 전이었던, 어쩌면 감독들에게는 꽤나 불행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마이는 그 시기를 버텨내면서 그리고 일본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지탱하고 작가영화의 가능성 또한 모색하면서 이후 세대의 감독들이 등장할 수 있게 하는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소마이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황혼에 도제시스템을 경험하며 출발한 마지막 세대였고 – 그는 로망포르노에 뛰어든 닛카츠 연출부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23편의 로망포르노 영화에서 조감독 일을 수행했으며 거기서 만난 이전 세대의 조명기사인 쿠마가이 히데오와 그의 거의 모든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다 - 1980년대 이후의 새로운 일본영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 감독인 하세가와 가즈히코(소마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을 영화작가)의 <태양을 훔친 사나이>(1979)에서 조감독을 거쳤다. 그리고 구로사와 기요시는 하세가와 가즈히코와 소마이 신지의 조감독을 거쳤다.

확실히 소마이의 때이른 죽음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일본영화계 내에 어떤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모양인지 최근 일본영화들을 보다 보면 문득 그의 그림자나 그에 대한 추억이나 존경의 표지를 접하게 되는 일이 가끔 있다. 예컨대 야나기마치 미츠오의 <카뮈 따윈 몰라>의 오프닝 시퀀스는 6분 31초 동안 이어지는데, 거기서 한 영화과 학생이 오슨 웰스의 <악의 손길>이나 로버트 알트만의 <플레이어>의 오프닝에 구사된 롱테이크의 길이를 언급하며 친구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그가 언급하는 작품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마이의 세 번째 장편이자 최고걸작 가운데 하나인 <숀벤 라이더>다. 대학 캠퍼스 내 청춘의 에너지를 바지런히 포착하려 시도하는 이 시퀀스 자체가 소마이의 <숀벤 라이더>를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시퀀스의 지속시간 역시 <숀벤 라이더>의 오프닝 롱테이크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을 떠올려 보라. 이건 1945년 생으로 소마이와 동세대의 작가라 할 야나기마치의 추억이다. 동시대 일본감독들 가운데 가장 소마이적인 작가라 할 구로사와 기요시의 경우는 야나기마치보다 은밀하지만 보다 존경이 담긴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보도를 걷는 일군의 청소년들의 보조에 맞춰 카메라가 비스듬히 후진트래킹하는 가운데 "밝은 미래"라는 제목이 떠오르고, 이어서 카메라가 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 왼쪽으로 옮겨가 후진트래킹을 계속하다 마침내 이 청소년들의 모습이 작은 화면으로 감싸이고 나면 크레딧이 올라가는 <밝은 미래>(2002)의 엔딩은 명백히 소마이의 걸작 <이사>의 엔딩을 강력히 환기시키고 있다. 카메라의 움직임 뿐 아니라 "어디로 가니?"라는 물음에 "미래로요"라고 대답하던 주인공 소녀의 모습을 떠올려봐도 그러하다. 그런가 하면 붕괴직전의 가족, 철없는 어른들 사이에서 성장의 고통을 겪는 조숙한 소년이 등장하는 <도쿄 소나타>(2008) 역시 <이사>의 21세기판 리메이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며 이 조숙한 소년은 사실상 소마이의 세계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다만 소마이의 아이들 같은 발랄함은 없다.) 좀 더 거슬러 가자면 아이의 실종과 죽음 이후 범죄의 세계로 빠져들어간 샐러리맨의 이야기인 구로사와의 <거미의 눈동자>(1998)는 아버지가 죽고 나서 갑작스레 야쿠자 보스가 되어 버린 소녀의 이야기인 <세라복과 기관총>의 전도된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5-06-10

[Critique] 떠도는 영화, 혹은 이름 없는 것의 이름 부르기



※ 아래 글은 계간 『인문예술잡지 F』 연재 중인 「뤼미에르 은하의 가장자리에서」 2부 하편(下篇)에 해당하는 글로, 『인문예술잡지 F』 제16호에 게재되었던 것이다. (게재 당시의 제목은 「뤼미에르 은하의 가장자리에서 Part.2: 고유명으로서의 이미지와 아트갤러리로서의 영화관 (下)」이다.) 이 글의 1부는 『인문예술잡지 F』 1호와 2호에 나뉘어 게재되었고, 2부의 상편(上篇)은 7호에, 중편(中篇)은 11호에 게재되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동안 연재가 종종 중단되곤 했다. 이에 본 2부 하편(下篇)은 이미 연재된 글들과의 연속성을 고려하되, 그것들을 미처 살펴보지 못한 이들도 가능한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특히 2부의 상편 및 중편에서 다루었던 수학적 집합론과 관련된 논의를 가능한 축소하거나 삭제했다. 이로 인해 이전에 전개되었던 논의가 부분적으로 단절 혹은 중단되는 일은 불가피하겠지만, 그만큼 이번 연재문은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얼마간 앞선 글들과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떠도는 영화, 혹은 이름 없는 것의 이름 부르기



떠도는 영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날 때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처음엔 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 그러자 추억이, 현재 내가 
있는 곳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내가 살았던 곳, 혹은 내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곳에 대한 추억이 저 높은 곳에서부터 구원처럼 다가와 […]”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013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차이밍량의 장편 <떠돌이 개>[1]는 두 아이를 데리고 타이페이 도심과 근교를 떠돌며 살아가는 샤오강이라는 사내(이강생)에 관한 이야기다. 리얼리즘 영화의 외양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극도로 파편적이고 비정합적이며 초현실주의적이기까지 한 이 영화는 사실 이렇게 간단히 요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초현실주의적이라 말할 때, 그것은 이 영화에 묘사된 세계가 비논리적이거나 현실성이 결여된 ‘자유분방한’ - 앙드레 브르통이 역설한 바, 초현실주의는 하나의 논리이기도 하다. - 상상의 세계라는 뜻이 아니라, 앞에서[2] 논한 바 있는 솔 크립키의 가능세계들이 복수적으로 중첩되어 있되, 각각의 가능세계 모두를 가로지르는 초세계적(transworld) 서사 내지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는 세계라는 뜻이다. 그러한 세계들을 가로지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계적으로 조정된 영화장치의 가차 없는 시간(러닝타임) 뿐이다. 조금 달리 말하자면, 여기서 차이밍량이 그려내고 있는 영화적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서사 혹은 이야기는 그 세계를 구성하는 (개별적으로는 지극히 리얼리즘적인) 가능세계들의 네트워크를 초과한다. 이처럼 영화를 통약불가능한 세계들이 공존할 수 있는 평면으로서 사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떠돌이 개>는 동시대 영화작가들 가운데 페드로 코스타의 영화 - 특히 장편 <행진하는 청춘>(2006), 그리고 단편 <타라팔>(2007), <토끼 사냥꾼들>(2007), <스위트 엑소시스트>(2012) 같은 벤투라 연작이 그려내는 세계[3] - 나 <옥희의 영화>(2010)에서 <자유의 언덕>(2014)에 이르는 홍상수의 영화와 궤를 같이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정오의 낯선 물체>(2000), <징후와 세기>(2006) 그리고 7편의 영상설치작품과 2편의 단편영화 및 장편 <엉클 분미>로 구성된 <프리미티브 프로젝트>(2009~2010)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을 추가하고픈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가능세계들의 중첩을 통해 영화적 현실을 구성하기보다는 손쉽게 그 현실에 구멍을 내고 유령과 환상을 불러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와는 달리 차이밍량, 홍상수, 코스타의 영화에서 유령(성) 내지 환상(성)은 가능세계들의 간극에서 오직 현상학적으로만 발생하는 비가시적인 것이며 따라서 이들 영화의 ‘떠도는’ 주인공들의 형상과 결합되어 영화의 불확정성을 보다 뚜렷이 드러내는 은유를 구성할 수 있다.

<떠돌이 개>에서는 세 명의 여배우(양귀매, 류이칭, 천샹치)가 이름이 주어지지 않은 동일한 하나의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캐스팅을 통해 한 인물의 여러 인격을 보여주거나(내면의 복수화) 그 인물에 대한 인상(印象)의 다양성을 보여주는(외면의 복수화) - 이 경우, 둘 이상의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만 인지하면 우리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영화적 세계를 정합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4] -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 명의 배우들을 각각의 가능세계에서 ‘떠도는’ 인물들로 삼은 뒤에 다시 이들을 그들이 속한 세계와 더불어 <떠돌이 개>라는 영화적 세계의 평면에 겹쳐 놓고(세계의 복수화)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배우들, 보다 정확하게는 그들의 (‘양귀매’, ‘류이칭’, ‘천샹치’ 같은 이름이 아니라) 현존은 각자가 귀속된 가능세계, 상호 교환이 불가능한 가능세계 각각을 전체로서 불러내는 고유명이 된다. 차이밍량은 인물들 간의 관계를 직조하기보다는 세계의 고유명으로서 배우의 현존이 그만의 단독성을 유지하면서 영화적 세계의 평면에 배치되게끔 하는 데 보다 주의를 기울인다. 이 영화적 세계를 특징짓는 것은 유사-모더니즘적인 비정합적 디제시스가 아니라, 상이하고 때로는 충돌할 수도 있는 세계들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우정의 윤리학이다. 차이밍량 자신이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애초의 스크립트에는 여성 인물이 한 명 뿐이었다. 샤오강의 가족에게 접근해 그의 아이들을 데려가 버리는 인물이었다. 원래는 류이칭이 그 역할을 맡을 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굉장히 심하게 앓게 되었는데, 어찌나 심했던지 어느 때고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떠돌이 개>가 내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고 다시는 양귀매나 천샹치와 함께 일할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던 차에, 별안간 터무니없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세 명의 여자가 같은 인물을 연기해선 안 될 이유가 없지 않나? 그런데 촬영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이들이 같은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5]

<떠돌이 개>에서 양귀매, 류이칭, 천샹치라는 배우의 현존이 각자가 귀속된 가능세계를 호명하는 고유명처럼 작용한다면, ‘홈리스’ 이강생-샤오강의 현존은 그러한 가능세계들을 어떠한 초세계적 동일성(transworld identification) - 어떤 가능세계에서도 항존하는 속성 - 도 없이 가로지르는 고유명, 즉 “어떤 대상이 존재하는 모든 세계에서 그 대상을 지시하는”[6] 고정지시자(rigid designator)로서의 고유명이다.[7] 이는 코스타의 <행진하는 청춘>에 등장하는 또 다른 ‘홈리스’ 벤투라가 끊임없이 자신의 가족을 새로이 생성 혹은 증식 - 그는 만나는 이웃 사람들을 하나같이 자신의 자식으로 호명한다. - 시킴으로써 가능세계들을 중첩시키는 현존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현존은 어떠한 상징도 아니며 아무런 의미도 없고 그저 자신을 현존으로서 드러낼 뿐이다. 따라서 고유의 장소도 속성도 없이 가능한 모든 곳을 배회하며 무언가를 같은 이름으로 명명함으로써 이름의 대상을 증식시키는 영화라는 예술의 상태(state)에 대한 효과적인 은유가 된다. 이 글에서 나는 이처럼 ‘속성 없는 상태’로서만 (비)존재할 뿐인 영화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 ‘영화-기능’(cinema-function)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려 한다. 

앙드레 바쟁의 「비순수 영화를 위하여」(1951)[8]는 오늘날 영화의 상태에 관해 숙고하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지나칠 수 없을 계시적인 글이다. 여기서 그는 이미 “영화는 [건축과] 마찬가지로 기능적인 예술(functional art)이다. […] 영화에 대해 우리는 그것의 존재는 그것의 본질에 선행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바쟁이 우리에게 일러준 바에 따라 영화의 불순성에 걸맞은 적절한 은유를 찾는다면 어떤 것이 될까? 아마도 그것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아니라 마부제 박사와 떠돌이(보다 정확하게는 떠돎의 상태)의 연합에 가까울 것이다. 1930년대 초반, 마부제 박사와 채플린의 떠돌이(the Tramp)는 숨을 다한 무성영화가 흥청망청하던 유성영화에 건넨 유언 혹은 예언의 대행자가 되었지만, 그들의 발화가 망설임의 몸짓, 은폐, 위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이유를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덕분에 영화는 그 이후로도 반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불안과 미심쩍음을 희미하게 간직하면서도 전면적인 내파의 순간만은 유예시킬 수 있었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그것이 여럿의 다른 신체의 조합을 통해 창조된 것이라는 사실 - 이는 영화란 여러 다른 예술의 ‘종합’이라는 저 오래된 오인에 상응할 뿐이다. -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떠돌며 쫓긴다는 사실 때문에, 오직 그러한 사실을 통해서만 영화의 상태를 환기시킬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라면 다소 모호했던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1931)으로부터 떠돎과 영화 사이의 관계를 또렷이 부각시킨 것은 <벌집의 정령>(1973)의 빅토르 에리세였다. 아이의 몽상 속에서 스페인의 현대사와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뒤섞이는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앞서 에리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마을을 떠돌며 영화를 상영하는 이동영화관의 트럭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라. 그저 조합된 것이 아니라 조합될 가능성(만일 조합에 실패한다면?)을 간직한 채로 고유의 장소 없이 떠도는 것, 이 미묘한 차이야말로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해에 발표된 <시티 라이트>(1931)를 영화사(史)의 특권적인 순간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불일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무성영화 시기의 스타들이 유성영화로 건너오는 것을 가로막았던 그 불안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다. 부르주아의 복장, 액세서리, 제스처를 그러모아 뒤튼 팬터마임 캐리커처라 할 찰리 채플린의 떠돌이는 이 영화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당대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형상이지만, 이 독특한 형상이 마침내 영화의 불안정한 상태에 대한 은유로 전화된 것은 바로 <시티 라이트>를 통해서였다. 유성영화의 의의는 텔레비전, 비디오, 디지털이 등장하기도 전에 영화가 매체[9]라는 가정을 처음으로 의문에 부친 데 있다는 점은 종종 간과된다. (소리를 더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럼 다음엔? 이런 것은? 또 이것은? 혹은 저것을 뺀다면?) 더불어 유성영화는 사진적 지표성(indexicality)이 보장했던 기호의 안정성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유성영화 시스템에서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관계는 임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혹은 이 소리는 누구 혹은 무엇에서 나오는 것인가 하는 물음은 불가피한 것이 된다. (에디슨 사(社)의 윌리엄 딕슨이 1894년에 제작한 최초의 유성영화에 커다란 녹음용 호른, 그리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딕슨 자신이 나온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의 사운드가 담긴 왁스 실린더가 발견되고 필름과 동조화되어 복원되기까지는 100년이 넘게 걸렸다.[10]) 프리츠 랑은 <마부제 박사의 유언>(1933)[11]에서 소리의 도입이 외화면 영역과 비가시 영역의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 있음을 빼어나게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오인, 의심, 불신의 문제 또한 전면에 부각시켰다. (보이는 것에 대한 의심과 더불어 목소리의 주체에 대한 오인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초기 유성영화 <살인>(1930)에서도 추리의 서사를 이끄는 주된 모티브가 되고 있다.)[12] 마부제는 목소리의 출처(입이나 몸)가 보이지 않고 화면영역의 안이나 바깥 어디에도 정확하게 귀속시킬 수 없는 존재들을 가리키기 위해 미셸 시옹이 제안한 개념인 ‘아쿠스메트르’(acousmêtre)[13]의 탁월한 예이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부제는 흡사 코스타의 벤투라처럼, 고유의 장소도 속성도 없이, 어떤 매체로도 환원되기를 거부한 채 떠돌면서 매체들을 교차/교착/교란시키는 기능으로서의 영화를 지칭하는 이름이며 이름으로서만 (비)존재할 뿐이다. 마부제는 특정한 영매(medium)를 필요로 하는 유령이 아니라 그것들을 관장하는 기능이다. 따라서 마부제를 (뉴)미디어의 알레고리로 간주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런 것이라면 <오즈의 마법사>(1939)에서 도로시 일행에 의해 정체가 탄로 나는 가짜 마법사 쪽이 더 어울린다.) 그렇다면 왜 <시티 라이트>인가? 이 영화에서 떠돌이를 특징짓는 복장, 액세서리, 제스처 등 시각적인 것의 앙상블은 맹인 소녀에겐 지각되지 못하며 청각적인 것 - 다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무성영화, 기껏해야 ‘부분적’ 유성영화이기 때문에 청각적인 것은 화면에 보이는 상황들을 통해 유추적으로 제공된다. - 은 오인의 빌미가 될 뿐이다. 그녀가 마침내 시력을 회복해 떠돌이의 남루한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인과적, 필연적으로 맺어져 있지 않으며 임의적, 우연적일 뿐이라는 슬픈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녀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관계를 확인하게 되는 것은 떠돌이의 손을 만져본 이후다(사진 1). 말하자면 촉각적인 것, 영화가 열망할 수는 있을지언정 가닿을 수는 없는 것, 가닿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 거리를 통해 영화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비극적으로 깨닫게 하는 것. <시티 라이트>의 저 유명한 마지막 쇼트(사진 2)에 담긴 것은, 이미지 없는 소리의 세계로부터 갓 빠져나온 소녀의 눈에서 소리 없는 이미지의 세계로부터 갓 빠져나온 초기 유성영화 관객들의 눈으로 전해진,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영화의 얼굴, 영화의 눈이다.     


[사진 1]

 [사진 2]


떠돌이-영화와 소녀-관객의 대화. “이제 볼/들을 수 있나요?” “네, 이제 볼/들을 수 있어요.” 어쩌면 떠돌이-영화는 이렇게 첨언하고 싶을지 모른다. “저를 뭐라고 생각하셨어요? 이러이러한 존재라고 생각하셨죠? 당신이 볼/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더 이상은 그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당신이 아직 듣지 못했더라면. <재즈 싱어>(1927)에 앞서 홍보용으로 촬영, 공개된 바이타폰(Vitaphone) 단편 <농장 장면 The Plantation Act>(1926)에서 알 존슨이 반복했던 문장, “당신은 아직 아무 것도 듣지 못했어요”(you ain't heard nothing yet)가 암시했던 유예의 시간은 <시티 라이트>와 더불어 끝났다. 마지막 쇼트에 이르기까지 떠돌이와 소녀의 대화 장면은 관객을 영화적 세계에 봉합(suture)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간주되는 쇼트/카운터-쇼트 구성으로 편집되어 있지만 결과적으론 떠돌이와 소녀의 분리를 시각적으로 강조할 뿐이다. 이 라스트신이 이처럼 강력한 분리의 정조를 띠게 된 것은 채플린이 실제로는 (맹인 소녀 역을 맡은) 버지니아 셰릴[14]을 매우 못마땅해 했기 때문이었을까? 사정이 어떠했든 간에, <시티 라이트>의 마지막 쇼트가 영화가 스스로의 떠돎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는 순간, 영화가 언어로는 부를 수 없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독특하게 고유명적인 순간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쇼트는 그 무엇도 지시하지 않으며, 그 무엇의 재현도 아닌 현존일 뿐이다. 여기엔 내가 앞서 제시했던 영화의 윤리학, “하나의 쇼트를 촬영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을 고유명으로서 명명한다는 것을 뜻하며, 이때 고유명화한 사건의 몸짓 이외에 어떤 것도 전달하지 않지만 바로 거기서 영화 자체의 역량을 드러내려는 태도”[15]가 있다. 이것은 단 하나의 쇼트일 뿐이지만 바로 이 쇼트에 이르는 지속(duration)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고유명으로서의 이미지를 생성하게 된 쇼트로서, 이러한 이미지는 그 자체로 영화-기능과 동일한 농도[16]를 지닌다. 

영화는 결코 매체로 환원될 수 없고 그것의 조건이 되는 어떤 고유의 기체(基體)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굳이 그에 상응하는 것을 찾자면 그건 떠돎의 상태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서부극, 또는 특히 미국적인 미국영화」에서 바쟁이 영화사(史)의 가장 위대한 배회와 방랑의 장르, 서부극에는 영화의 본질 그 자체에 해당하는 비밀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본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장르론적인 관점에서 서부극은 여러 장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지역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미국적인 장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바쟁은 “서부극의 본질을 그 명백한 구성요소의 어느 것 하나에 귀착시키려고 하는 노력은 결국 헛수고로 끝날 것”[17]이라 단언하며 그런 통념과는 정반대되는 주장을 내놓는다. 서부극에 대해 말하면서, 바쟁은 이 특수한 장르를 은연중 영화 자체와 동일시하고 있다. 즉, 서부극은 “그것의 존재가 그것의 본질에 선행”하는 “기능적인 예술”로서의 영화 자체처럼 간주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서부극이 고전적 완성에 도달한 시기를 존 포드의 <역마차>가 개봉된 1939년으로 보고 있는데(「서부극의 진화」)[18], 이 해는 그가 유성영화가 고전적 완성에 도달했다고 간주하는 시기(「영화언어의 진화」)[19] 및 영화라는 강의 흐름이 바야흐로 그 평형경사(equilibrium profile)에 도달하여 이제부터는 비순수 영화로 향하는 길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보았던 시기(「비순수 영화를 위하여」)[20]와 일치한다. 주지하다시피, 1939년은 2차 대전이 발발한 해이며, RCA가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자사의 전자식 텔레비전을 공개하고 정규 프로그램(사진 3) 송출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사진 3]


바쟁에 앞서 영화의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해 냈던 이는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이다. 통상 그는 ‘카메라-만년필’(camera-stylo)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다 자유분방하고 개인적인 영화 표현의 길을 제시한 이로 언급되곤 한다. 그런데 그의 카메라-만년필 개념이 처음 소개된 에세이, 『레크랑 프랑세즈 L'Écran français』에 수록되었던 「새로운 아방가르드의 탄생」(1948)[21]을 꼼꼼히 읽어 보면 오히려 그의 강조점은 뤼미에르적 시네마토그라프 모델을 넘어서는 영화-기능을 사유하는 일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영화에는 어떤 고유의 기체도 없다는 것을, 따라서 영화는 모더니즘적 기획에 입각한 매체-특정성 논의를 무력화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그가 영화는 “문자언어만큼이나 유연하고 미묘한 쓰기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이 구절 앞에서 영화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점진적으로 시각적인 것의 지배에서, 이미지 스스로를 위한 이미지에서,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야 함도 명시하고 있다. 카메라-만년필은 우리가 수용해야 할 미래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고 사랑해 온 영화 내부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것, 이 인식은 아스트뤽의 글에 은밀한 긴장을 부여한다. 아스트뤽은 카메라를 만년필처럼 자유분방한 창조의 도구로 써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카메라-만년필을 위해 우리가 알고 있고 사랑해 온 영화가 변용되는 것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가라고 내기를 걸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정작 판돈을 건 쪽은 아스트뤽 자신이 아니라 고다르였다. 하지만 오늘날 고다르는 그 결정이 성급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카메라-만년필이 그려낼 미래는 다음의 주장에 정확히 기술되어 있다. 

“지금껏 영화는 볼거리(spectacle)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모든 영화가 극장에서 영사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16mm 필름과 텔레비전의 발달과 더불어, 모든 사람이 영사기를 소유하게 되고 동네의 서점에 가서 어떠어떠한 주제에 대한 - 문학비평과 소설에서부터 수학, 역사 및 과학 일반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형식이건 - 필름을 구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러한 날이 오면, 하나의 영화(un cinéma)에 대해 말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리라. 오늘날 복수의 문학들이 있는 것처럼 복수의 영화들(des cinémas)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주장하기를, 마르셀 브로타스 같은 예술가에 있어 영화장치(filmic apparatus)는 이미 “스스로-차이화하는(self-differing) 조건 하에서 그 특정성이 발견되는 매체를 우리에게 제공”[22]한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크라우스는 브로타스가 영화를 “지지체들과 켜켜이 쌓인 관습들을 서로 맞물리게 하는 문제”로 보았지만 “매체로서의 영화를 부정하려 하지는 않았다”[23]고 말한다. 그러나 크라우스가 “영화적 모델은, 브로타스가 그의 미술관을 “하나의 픽션”이라 언급할 때처럼, 그에게 지배적 매체로 기능하고 있다고 보이는 것 - 즉 픽션 그 자체 - 을 구실로 삼아 유도되는 매체의 본성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숙고의 부분집합”[24]이며 “브로타스의 손에서, 픽션 자체가 매체가 되었다”[25]고 말할 때, 그녀의 ‘매체’ 개념은 이미 이 개념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넘어서 ‘기능’에 대한 암시로 다가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크라우스가 암암리에 ‘매체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은 오해에 불과하다. 『북해로의 여행: 포스트-미디어 시대의 예술』에서 그녀는 매체에서 기능으로 향하는 예술적 전환을 사유하는 데 있어 영화, 텔레비전과 비디오 같은 특정한 영화-기능의 발현 모델들이 미친 영향을 예민하게 간파해 냈다. 그녀가 ‘매체’라는 용어를 고수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새로이 정의된 매체, 사실상 더 이상 매체라고 부를 수 없는 것, 즉 픽션으로 나타나는 기능이다. 브로타스가 그의 <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1968~1975) 작업을 통해 드러내 보인 것은 영화-기능의 가상적 특성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미술관-기능이었다. 여기서 가상적이라 할 때, 그것은 칸트적 의미에서의 가상, 특히 그가 ‘초월론적 가상’(Transzendentaler Schein)이라 부른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환상”[26]이다. 

일단의 미봉책이 통하지 않게 되고, 영화가 하나의 매체라는 (가까스로 지탱된) 믿음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물론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상용화되면서부터다. 이러한 장치들은 움직이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임의적으로나마 결합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기체란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와 더불어 “텔레비전 장치는 이미지가 전적으로 비사실적인 것으로 지각되지 않을 것을 얼마간 보장해 주는 테두리, 매체 혹은 매개자 역할을 하지 않으며, [사실성 혹은 신뢰성에 있어] 상이한 수준의 이미지들이 서로 전이되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27] 소니 포타팩(Portapak)이 출시된 1960년대 중반부터 비디오 아트가 미술계의 전면에 등장한 1970년대를 거치면서, 시네아스트들은 조심스레 텔레비전의 교육적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영화라는 개념의 해체 과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 다음이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생존을 위한 인간의 투쟁 Man's Struggle for Survival>(12부작, 1970)[28], 장-뤽 고다르의 <프랑스/여행/우회로/둘/아이들 France/Tour/Detour/Deux/Enfants>(12부작, 1977), 크리스 마르케의 <올빼미의 유산 The Owl's Legacy>(13부작, 1989) 그리고 알렉산더 클루게의 제작사 DCTP를 통한 대안적 텔레비전 프로그램 실험[29] 등은 텔레비전이라는 ‘뉴미디어’에 대한 탐구라기보다는 영화의 유목적 삶의 시대의 도래에 맞서 펼친 시대착오적이지만 영웅적인 ‘투쟁’과 ‘여행’이 기록된 (‘유물’이 아닌) ‘유산’처럼 보인다. 새로운 교육학(pedagogy)을 가능케 할 민주주의적 형식을 텔레비전에서 찾으려던 열정적 노력이 사그라들 무렵, 1980년대에는 대중영화의 영역에서 텔레비전을 ‘악마화’하는 광경이 빈번히 나타난다. 더불어 텔레비전을 자신의 영매(medium)로 활용하는 유령과 괴물들이 스크린을 떠돌게 된다. 토브 후퍼의 <폴터가이스트>(1982), 척 러셀의 <나이트메어 3: 꿈의 전사>(1987), 존 카펜터의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1987), 웨스 크레이븐의 <영혼의 목걸이 Shocker>(1989), 조 단테의 <그렘린 2: 뉴욕 대소동>(1990) 등등. 텔레비전과 비디오로 인해 영화란 속성 없는 상태로서만 (비)존재하는 기능임이 노출되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기능을 유령으로, 텔레비전 같은 장치들을 그것의 영매로 간주하려는 통속적인 독해가 활성화되었다고나 할까? 이런 식의 통속적 독해는 뤼미에르적 시네마토그라프 모델을 제외한 영화-기능의 발현을 죄악시하고 엉뚱한 곳에 전선(戰線)을 형성하려 드는 오늘날의 영화 근본주의자들 - 시네필임을 자처하지만 실은 ‘시네-탈레반’에 불과한 - 에게서도 발견된다. 텔레비전을 ‘악마화’하는 공포영화라는 점에서는 위의 영화들과 궤를 같이하지만, 그것을 영매로 보기보다는 그것을 관장하는 보다 보편적인 기능 - 떠도는 목소리와 눈이라고 하는 마부제-떠돌이의 형상을 그 은유로 삼는 - 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존 카펜터의 <화성인 지구정복 They Live>(1988)과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1983)은 예외적인 사례로 꼽힐 만하다. 나의 관심은 이처럼 영화가 자신에 관한 은유를 서사화하는 능력과 로셀리니, 고다르, 마르케, 클루게의 교육적 텔레비전의 이상이, 보다 ‘매체적’인 관심에 입각해 텔레비전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리처드 세라의 <텔레비전은 사람을 배달한다 Television Delivers People>(1973)나 <부메랑 Boomerang>(1974) 같은 비디오 아트 작업, 비디오와 텔레비전의 조합으로 구성된 폐쇄회로 장치의 특성을 기발하게 활용한 브루스 나우만의 <실시간 기록 비디오 통로 Live-Taped Video Corridor>(1970) 같은 설치작품을 특징짓는 개념적 비판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를 살피는 것이다. 1990년대와 21세기 초반을 휩쓸었던 ‘뉴미디어’ 및 ‘디지털 시네마’ 담론의 열풍이 사그라든 자리에서. 오늘날의 영화는 여전히 영화-기능의 확산을 짐짓 무시하며 뤼미에르적 시네마토그라프 모델을 고수하는 데서(만) 존재의 근거를 찾으려 들고, 정작 확산된 영화-기능을 기민하게 전용한 미술관과 갤러리의 영상 설치물들은 포스트-미디어 담론의 공간적 예시에 그치거나, ‘아카이브적 열정’에 사로잡혀 유사-에세이적 다큐먼트를 양산하거나, 그도 아니면 대규모의 건축적 작품이 제공하는 스펙터클한 숭고에 잠기곤 한다. 전자는 사상누각이 되어 버린 오래된 집에서 추억을 어루만지고 후자는 모델하우스 안에 머물며 실내장식에 힘쓰고 주춧돌을 수집하며 그 의미를 사색하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는 현실을 기록, 모방, 재생하는 일련의 장치들 - 역사적 장치들 뿐 아니라 IVR, 즉 몰입형 가상현실(Immersive Virtual Reality)과 대화식 음성응답(Interactive Voice Response)처럼 기술적으로 구현가능한 장치들까지 - 가운데 뤼미에르의 시네마토그라프를 과도하게 특권화했던 것은 아닐까? 시네마토그라프 모델을 통해 영화의 속성을 규정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일은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것은 아버지-어머니-아이라고 오이디푸스 삼각형을 영사기-스크린-관객이라고 하는 삼각형에 고스란히 덧입힌 것이 아니었던가? 물론 시네마토그라프는 내가 잠정적으로 영화-기능이라 부르고 있는 어떤 잠재적/가상적(virtual) 기능이 가장 강력하게 현실화된 형태였고, 앞서 <시티 라이트> 결말부의 예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시네마토그라픽 이미지(cinematographic image)의 생성을 통해 영화-기능을 가리키는 고유명적 순간들의 카탈로그 또한 매우 두터워서, 많은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기능의 지배적 모델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언어는 여러 기호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기호 일반에 대한 탐구는 결국 언어 모델을 기초로 해서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시네마토그라프 또한 영화-기능의 특수한 발현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기능에 대해 사유하기 위한 최상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뉴미디어가 “불가피하게 시네마의 은유에서 출발”하고 시네마의 사고가 “관객의 시야와 상상에 복무하는 지배적 문화의 미학적 모델로서 뉴미디어 안에서 지속되고 유지”[30]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영역의 지배적 실천이 곧 그것의 본질은 아니며 영향력과 자명성은 다른 문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영화-기능에 있어서 지배적 실천으로 간주되는 시네마토그라프는 본질도 속성도 없는 잠재적/가상적 기능이 특정한 물질적 조건들과 결합되어 역사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더불어 시네마토그라프 모델이 특권화된 것에도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조너선 크레리의 지적처럼 “테크놀로지 형태로서의 영화는 192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심지어는 197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상대적으로 고정된 어떤 요소들과 관계들로 구성되는 것처럼 보였”[31]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역시 (미국의 경우)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물질적∙경험적으로 일관됐던 듯” 보였으며 “어떤 핵심적 특징이 영구적인 것처럼 보인 이런 시기들 덕분에 비평가들은 이런 형태나 체제가 자신을 규정하는 어떤 본질적 특성을 지닌다는 가정 하에 영화나 텔레비전, 또는 비디오 이론을 제시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매우 빈번히 본질적인 것으로 식별되는 어떤 것은 변화율이 가변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더 거대한 성좌의 일시적 요소였다.”[32] 즉 영화란 결코 매체가 아니며 재현의 여러 가능성들이 동시에 중첩되어 있는 상태이자 기능/함수(function)인데, 역사적으로 잠시 시네마토그라프라는 특정한 장치에 고착되었다가 유성영화, 텔레비전과 비디오 그리고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시기를 거치면서 다시 불확정적인 상태로 들뜨게 된 것이다. 



이름 없는 것의 이름 부르기


“우정은 춤추면서 세상 주위를 돈다.” 
- 에피쿠로스


오늘날의 영화들로 돌아와 보자. 어떠한 장소도 속성도 없이 떠도는 영화의 상태와 공명하는 형상들은 여전히 스크린 위를 떠돈다. 종종 과묵하기 짝이 없는 이들에겐 마부제의 권력도, 떠돌이의 명랑함도 없다.[33] 한때 마부제와 떠돌이를 향해 있었을 그 수많은 관객들의 눈빛도 이들에겐 거의 미치지 못하기에, 이들은 다만 반딧불이처럼, 가까스로 그리고 스스로 빛날 뿐이다. 조너선 글레이저의 <언더 더 스킨>(2013)의 여주인공을 떠올려 보자. 이 영화는 텔레비전과 비디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영화가 겪은 해체의 결과를 (지나칠 정도로) 기꺼이 받아들여 자신의 양식(糧食)으로 삼고 있다. 이 영화는 어느 정도는 지구인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미녀 외계인이 등장하는 <뱀파이어 Lifeforce>(토브 후퍼, 1985) 풍의 SF이고, 어느 정도는 스칼렛 요한슨이 스코틀랜드 노동자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며, 어느 정도는 뮤직 비디오이고, 어느 정도는 키치적인 디지털 실험영화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이라면, 동명 원작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주거지가 분명히 설정되어 있었고 거주 가능성이란 오직 노동의 지속에 의해서만 보장될 뿐이라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상이 강조(“엄밀히 말해서 그녀는 돌아갈 집이 없었다. 이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집도 없어지는 셈이었다.”[34])되었던 반면, 영화에서는 그녀의 ‘거처 없음’(homelessness)이 두드러지며 그것이 영화의 상태에 대한 은유처럼 기능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장소도 속성도 없이 떠도는 영화의 상태와 공명하는 형상의 힘은, 앞서 예시했던 <청소년 나타>(1992)부터 <떠돌이 개>에 이르는 차이밍량 영화에서의 이강생-샤오강, <뼈>(1997) 이후의 페드로 코스타의 작품에서의 반다와 벤투라, 혹은 <옥희의 영화> 이후 홍상수 영화의 인물들처럼 영화적 가능세계들을 초세계적 동일성 없이 가로지르는 고유명으로서의 배우-인물들에게서 보다 뚜렷이 드러난다.[35] 이러한 배우-인물의 현존은 모든 영화적 가능세계들과 우리의 세계를 중첩시키는 특권적인 현존이지만 그건 그들에게 거처가 없기(homeless) 때문이다. (<뼈>, 그리고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화라 할 <반다의 방>(2000)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던 반다 두아르테가 <행진하는 청춘>을 끝으로 코스타의 영화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행진하는 청춘>에서 어엿한 현대식 아파트를 얻어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멀리 나간 것일까?) 한편으로 배우-인물이라는 현존, 이 고유명으로서의 영화적 이미지가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것은 영화와 세계의 가능한 대화 혹은 만남에 대한 약속이기도 할 것이다. 코스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전문배우들과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로 나는 어떤 공동체 내의 현실적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 왔기 때문에, 만일 오늘날 통상적인 영화제작 방식의 기제(machinery)를 도입한다면 그건 잘못된 일이자 그들을 속이는 일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내 영화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모든 것 - 사회, 경찰, 실업 - 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을 착취하게 될, 혹은 폭행하게 될 또 다른 커다란 기구(machine)를 끌어들이는 건 무분별한 일이다. 따라서 나는 그들을 촬영하기에 앞서 한 가지를 재고해 봐야만 했다. 대화란 무엇인가? 나는 촬영에 앞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해야만 했다. 작업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영화란 여전히 이러한 종류의 세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그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은 그들 세계의 일부일 수 있고, 행운과 노력이 함께 한다면 흥미로운 걸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통상적인 영화 현장에서는] 당신은 거기 그대로 있어야만 한다. 거기 있어야만 한다. 노상 보게 되는 오늘날의 촬영 현장에서 그러하듯, 당신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순찰 중인 경찰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당신은 선을 넘어갈 수 없다. 그리고 침묵을 지켜야만 한다. [영화 현장에서] 조용히 있으라고 하는 건 언제나 날 짜증나게 만드는데 왜냐하면 그건 “세계여, 닥쳐! 멈추라고! 우린 뭔가 만들어야 해”라고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36]   

차이밍량과 코스타의 연작들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유명한 앙트완 드와넬 연작, 혹은 14명의 영국인들의 삶을 그들이 일곱 살이었던 1964년부터 매 7년마다 추적해 방영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업 Up>(1964~2012) 시리즈처럼 연대기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는 않다. 허구적인 연대기에서 현실은 허구의 정합성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구에 그럴듯함을 더하거나 자전적 터치를 가미하는 데 머무를 뿐이며, 사실적인 연대기의 경우 종종 조작은 은폐된다. 게다가 연대기는 하나의 정합적 세계를 제외한 여타의 영화적 가능세계들을 수축 혹은 붕괴시킨다. 이강생-샤오강, 그리고 반다와 벤투라 같은 배우-인물의 현존은 허구와 현실 어느 쪽으로도 귀속되거나 환원되지 않지만 양쪽 모두를 끊임없이 서로에게 되비추면서 오직 영화적 세계라는 평면에 삶의 지도를 그려내는 미장아빔(mise-en-abîme), 고유명으로서의 영화적 이미지다. 이것은 “대상이 아닌 하나의 과정(process)”[37]으로서의 이미지이며, “끊임없이 변신하는 이미지 […] 이쪽에서는 전달되고, 저쪽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잠복하고, 다른 쪽에서는 다시 나타”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현하는”[38] 이미지다. 이는 영화적 이미지는 프레임을 초과한다 - ‘영화는 초당 24프레임’이라 말할 때처럼 ‘단위로서의 프레임’과 종횡비를 통해 화면영역을 결정하는 ‘틀로서의 프레임’이라는 두 가지 의미 모두에 있어서 - 는 사실에 대한 (여럿 가운데) 하나의 예이자 그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자크 랑시에르가 “이미지라는 말이 지닌 상이한 의미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제안한 ‘이미지-기능’(image-function)과 맞닿는 것이다.[39] 말하자면, 영화가 그러하듯, 이미지 또한 어떠한 고유의 장소도 없이 떠도는 것, 생성의 내기에 내맡겨진 잠재적/가상적인 것이다. 이처럼 프레임을 초과하는 이미지, 혹은 이미지-기능은, 우리로 하여금 몽타주를 단지 쇼트들을 배치하고 사운드트랙을 조정하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것으로 보게 만든다. 


[사진 4]


<떠돌이 개>의 한 쇼트를 살펴보자(사진 4). 샤오강은 자신의 두 아이들과 함께 거리에 앉아 한 친절한 슈퍼마켓 매니저가 몰래 건네 준 인스턴트 도시락을 먹고 있는 중이다. (샤오강과 아이들이 신고 있는 슬리퍼가 사이즈만 다를 뿐 동일한 형태임을 고려하면, 이 또한 그 매니저의 배려로 얻게 된 것일 수 있다.) 이 영화의 다른 쇼트들처럼, 이 쇼트 또한 무척이나 길게 이어진다. ‘떠돌이 가족이 거리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 정도의 이야기를 알아차리는 데는 이 쇼트를 2~3초 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즉 이 쇼트의 지속시간은 쇼트에 담긴 정보량에 비해 지나칠 만큼 길다. 이 쇼트 앞뒤로 연결된 다른 쇼트와의 관계를 고려하면 기나긴 지속시간이 정당화될까? 아니면 ‘데드 타임’(temps mort)이라는, 편리하기는 하지만 정작 아무 것도 말해주는 바가 없는 용어에 기대야 할까? 스스로 정당화하는 편집의 논리, 그리고 사소한 순간에 대한 관심? 이런 식으로 예술영화 독해를 감싸는 (가정된) 미학과 (가장된) 윤리학으로는 이 지속의 과잉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과잉을 그저 과잉인 것으로만 간주한다면, 이 쇼트는 (혹은 여기 인용한 사진은) 오늘날 타이페이를 비롯한 여느 대도시에서 마주칠 수 있는 궁핍의 미적 재현으로서 간단히 영화에서 분리되어, 지나가며 흘깃 볼 수 있는 아트갤러리의 전시물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행자’(行者) 연작 - <행자 Walker>(2012), <무색 No Form>(2012), <금강경 Diamond Sutra>(2012), <몽유 Sleepwalk>(2012), <행자수상 Walking on Water>(2013) 그리고 <서유 Journey to the West>(2014)까지 총 여섯 편이 제작되었는데, 이강생이 법복을 입고 아주 느리게 여러 공간들을 걷는 모습을 담은 단편 연작이다. - 을 비롯한 최근의 차이밍량 영화들이 아트갤러리 환경에서도 충분히 기능하리라고 이야기되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왜 이 쇼트는, 나아가 이 쇼트를 포함하고 있는 <떠돌이 개>라는 작품은 그토록 긴 지속시간을 필요로 하는가? 그 이유는 식사 도중 불현듯 고개를 들어 아주 짧은 순간 카메라를 바라보는 소녀의 눈 때문이다. 차이밍량이 정확히 이 순간의 한 프레임을 골라 <떠돌이 개> 프레스킷에 수록(여기 인용한 것이 바로 그 사진이다)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추측컨대 소녀가 카메라를 바라보는 순간이 그에게도 매우 특별한 것으로 비쳤던 것 같다. 사실 이 두 아이들은 배우 이강생의 실제 조카들이다. 따라서 이 소녀가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바라볼 때, 그녀는 삼촌(이강생)의 친구이자 영화감독인 한 아저씨(차이밍량)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러한 사실로 인해 돌연 이 영화가 픽션을 폐기하고 다큐멘터리의 영역으로 이행하는 것은 아니며, 한편으론 관객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해서 관람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도 아니다. 관객은 그녀의 눈이 어디에 속하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정확히 판별할 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인상과 정보에 따라 그것을 하나의 연기로, 즉 식사 도중 앞을 힐끗 보는 몸짓으로 간주하거나, 촬영 도중 카메라를 바라본 아마추어 연기자의 실수를 차이밍량이 수용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이강생-샤오강이 <떠돌이 개>라는 영화의 여러 가능세계들을 수평적으로 가로지르는 현존이라면, 이 순간 소녀의 눈은 이강생-샤오강과는 다른 층위에서 수직적으로 세 개의 세계를 동시에 관통하는 방사선과도 같다. 에티엔 수리오의 용어[40]를 빌리자면, 카메라 앞에 선 전(前)영화적(profilmic) 존재인 이 소녀는 그 바라봄을 통해 영화의 스토리가 펼쳐지는 디제시스적(diegetic) 세계, 카메라로 촬영된 형상들이 상영시간 동안 빛을 발하는 스크린적(filmophanic) 세계 그리고 카메라 앞에 놓여 촬영되지는 않았으되 분명히 실재하는 외(外)영화적(afilmic) 세계를 동시에 가리키는 이미지가 된다. 이때 몽타주는 쇼트들 사이에서 곧바로 실현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세계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는 잠재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차이밍량의 카메라는 그녀의 눈이 바로 그러한 눈이 되는 순간, 결코 프레임의 한 요소로 환원되지 않는 순간을 기다림 끝에 포착한 것이며, 관람자의 입장에서도 그 기다림에 상응하는 지속의 시간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엔 소녀의 눈은 결코 이미지로 향하지 못하고 그저 하나의 시각적인 요소로만 남게 된다.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지속이 보장될 경우 그것도 오직 그 경우에만 이미지로 향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눈은 <시티 라이트> 마지막 쇼트의 채플린의 눈과 닮았다. 이 쇼트의 기나긴 지속시간을 정당화하는 것은 사건이 공간적 단일성(spatial unity)을 요구할 경우에는 몽타주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바쟁의 원리가 아니다.[41] 바쟁은 채플린이 <서커스>(1928)에서 사자와 함께 우리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트릭 없이 하나의 프레임 내에 통합적으로 보여준 것에서 관객을 현실로 되돌려 보내는 편집 없는 단일 쇼트의 힘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쟁에게서 영화적인 사건이란 종종 치명적인 것,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사건이란 점 또한 흥미로운 주제다.) 그런데 리안의 <라이프 오브 파이>(2012)는 바다 위에 뜬 구명보트 위에 주인공 소년과 호랑이가 나란히 있는 광경을 ‘실감나는’ CG로 보여주면서도 그 광경 자체를 영화 속 화자가 들려주는 (진위를 판별하기 힘든) 이야기로 액자화해 버림으로써 짐짓 관객을 현실로 되돌려 보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현실로 돌아가는 것보다 돌아갈 현실이 어딘지를 문제 삼아야 한다. 현실을 위계에 따라 여럿으로 나누고 그 가운데 ‘진짜 현실’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은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 영화의 한 전략이 되었다.[42] ‘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의~’ 식으로 이어지는 계열에서 빠져나와 팽이를 돌리는 <인셉션>의 주인공에게서 찾을 수 있는 교훈이란, 단언컨대 아무 것도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행진하는 청춘>의 벤투라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진짜 현실’ 따위를 찾는 게 아니라 위계 없는 가능세계들을 끊임없이 생성해내고 그것들을 중첩시키는 것이며 그러한 세계들과 영화를 만들고 보는 우리의 세계 사이에서 이루어질 몽타주의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일찍이 커피와 담배가 있는 곳이면 어디건 영화적 세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짐 자무쉬는 <리미츠 오브 컨트롤>(2009)에서 벤투라의 교훈을 근사하게 자기 식으로 번안해 냈다.) 트릭 없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 채플린과 사자를 같이 담아내는 것만으로 세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자신과 관계가 틀어진 여배우와 함께 연기하면서도 영화에 진심을 담을 수 있던 시대 또한 오래 전에 지나갔다.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오래된 잔혹 미담들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믿고 그것을 연출의 방법론으로 삼는 오늘날의 영화감독이 있다면, 그는 시대착오적인 전제군주일 뿐이다.)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디지털 풍경 속에 함께 있는 시대, 도처에서 무언가가 촬영되고 편집되고 상영되고 방영되고 전시되고 저장되고 수정되고 재편집되고 산포되는 시대, 시네마토그라프 모델을 넘어서는 영화-기능의 발현이 전면화된 시대에는 카메라 앞과 뒤에 있는 존재들 간의 믿음을 담아내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 믿음은 언제나 카메라 앞과 뒤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바쟁이 말한 프레임 내적인 공간적 단일성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고, 저 믿음의 존재를 증험케 할 세속적 은총이 현현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시간적 단일성(temporal unity), 즉 지속에 대한 요구가 강화된다. <떠돌이 개>에서 카메라 쪽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 거기에 카메라 뒤에 선 사람들에 대한 무심함과 우정이 한꺼번에 깃들어 있음을 간파한 차이밍량이 회복시키려 한 것도 바로 그러한 믿음이다. 스와 노부히로는 코스타의 <반다의 방>에 대해 쓴 짧지만 아름다운 글에서 무심함과 우정이 뒤섞인 카메라 앞과 뒤의 존재들 간의 믿음의 의미를 적확하게 그려냈다.[43] 그가 주목한 것은 반다가 기침하는 순간이다. 

“반다가 기침을 하는 행위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그녀의 것이다. 반다가 기침을 할 때, 그녀의 신체의 이미지는 촬영하는 것과 촬영되는 것 사이의 구분을 무너뜨린다. 그것은 구속된 것과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 연기하는 것과 자기 자신인 채로 있는 것 사이에서 결정화된다. 그녀에겐 기침하는 일이 필요했다. 기침을 하고 자신의 침대 위에 구토하는 일은 그녀의 자유다. 누군가를 위해 연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자신을 카메라 앞에 드러내려는 자기현시욕도 없다. 그러나 카메라의 존재를 잊고 있다 해도 그녀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페드로의 카메라와 공모하며 영화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하등 숨길 게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이웃들에게 “원한다면 언제든지 와. 난 항상 여기에 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녀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 한 남자의 침입을 허가하고, 그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제공하고, 그와 그의 카메라를 위한 장소를 내어 준다. 페드로는 단지 이미지를 그의 편집실로 가져오기 위해서만 거기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원하기 때문에 거기에 머무른다는 태도, 한 평범한 사람의 태도를 취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아무 것도 숨길 게 없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응시를 통해 그녀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이를 다시 그녀에게 되돌려준다. 카메라가 있건 없건 반다는 존재하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그녀가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우리의 상상이나 물음을 요구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 페드로는 현실을 이용해서 그럴싸한 세계를 꾸며내려 하지 않았으며, 또한 생생한 현실적 삶의 단편들을 원래 그대로 보존하려 들지도 않았다. 반다는 반다이자 페드로이며, 관객의 시선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결정화된 이미지이며, 그 두 개의 시선의 분리에 대한 저항이자,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찰하는 새로운 시선의 제시이자… 반다는 현재이다. 그녀는 지금 여기에 있다….”[44] 

그 누구도 몽타주의 금지를 명하는 사건이 무엇인지 미리 규정할 수 없다. 다만 카메라 앞과 뒤의 존재들 간의 무심한 우애에 대한 믿음이 지속을 요구할 뿐이다. 그러나 이 지속은 스스로 정당화될 수 없다. (쇼트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세계들 사이에서 몽타주가 실현되는 순간, 오직 그 순간에만 비로소 지속의 과정에 사건이 도래하고 지속은 이 사건을 통해 사후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이는 차이밍량과 페드로 코스타는 물론이고 왕빙, 라브 디아즈, 제임스 베닝, 샤론 록하르트 등 우리 시대 지속의 대가들의 작업, 거슬러 올라가자면 앤디 워홀의 <첼시 걸즈 Chelsea Girls>(1966), 자크 리베트의 <우리의 후견인 장 르느와르 제2부: 배우의 연출 Jean Renoir le patron, 2e partie: La direction d'acteur>(1967) 그리고 장 외스타슈의 <0번 Numéro zéro>(1971) 등을 가로지르는 실천적 명제다. 불확정적인 영화-기능이 도처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발현하는 오늘날, 이들은 무심한 우애에 대한 믿음 없이 이루어지는 지속 - CCTV, 포르노그래피, 테러조직의 처형 영상 그리고 몽타주의 금지를 전제로 삼은 뒤 롱테이크 영상을 채워 넣을 사건을 궁리하는 전도된 미학의 예술영화 - 에 각자의 방식으로 맞선다. 텔레비전과 아트갤러리로 향하는 자신의 동료들과 아이들을 반세기 넘게 지켜봐 왔던 오늘날의 영화는 급기야 자신의 오래된 집인 영화관을 초대형 HD 텔레비전 극장 혹은 아트갤러리로 바꾸고 정작 스스로는 그곳을 떠나 배회하는 중이다. 반다를 비롯한 벤투라의 아이들이 폰타이냐스의 오래된 뒷골목을 떠나 순백(純白)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백색은 화이트큐브의 그 백색이며, 이웃 없이 격리된 단위들의 (공동체 아닌) 군집으로서의 아파트는 텔레비전 더미의 은유다. 텔레비전 극장이 시네마토그라프 모델과의 유사성을 무기로 저항 없이 수용되고 있는 가운데 - 더 이상 고전적이지 않은 영화관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고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존 포드’라고 생각하고, 브뤼노 뒤몽의 영화를 보고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로베르 브레송’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으로 삼는 것처럼 - 아트갤러리로서의 영화관은 지속의 내기를 통과한 자들에게만 경험을 허락하는 까다로운 성소가 되었다. 빛을 위하여, 우리에게 더 많은 어둠을. 신기하게도, 바쟁의 원리(금지된 몽타주)로부터 서서히 떨어져 나온 현대영화 중 워홀적인 우회로(지속의 과잉)를 거쳐 온 것들은 지표성(indexicality)이라고 하는 또 다른 바쟁의 원리로 돌아간다. 다만 이제는 촬영되는 존재들이 프레임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영화가 어떤 존재와 함께 잠시나마 무심한 우애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 존재의 소소한 몸짓(소녀의 눈짓, 반다의 기침)만으로 납득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비록 그 몸짓은 종종 지나치기 쉽고, 몽타주는 잠재적인 채로 남기 일쑤이며, 그 존재는 종종 거처가 없는 떠돌이이고, 영화가 과연 무엇인지 또한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영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그것이 잠시나마 함께 했던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몸짓을 통해 이름 없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들을 감지할 수 있다. 어떠한 고유의 장소도 속성도 없이 떠도는 기능으로서의 영화가 존재에 깃들어 현현하는 순간들을. ■ 


[Note #.1] 포스트-프로덕션으로서의 비평에 대한 노트 (for Part.3)

이 글에서는 여러 가능세계들을 가로지르는 배우-인물의 현존, 그리고 카메라 앞과 뒤의 존재들 간의 무심한 우애를 통해 실현되는 몽타주를 예로 들어 이미지는 프레임을 초과한다는 점을,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고유명적이라는 점을 보여 주려 했다. 이미지가 프레임을 초과한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볼 때 파운드푸티지 작업을 통해 일찌감치 알려진 것이었다. 파운드푸티지 작업을 통해 제작된 영상들은 프레임으로 구분되는 화면영역과 외화면영역이라는 범주만으로는 이미지를 적절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간단히 말해, 어떤 다른 영화에서 ‘인용’한 쇼트, 신, 시퀀스를 미장센과 편집의 측면에서(만) 분석하는 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파운드푸티지 작업은 각각의 이미지를 자율적으로 만들면서[45] 한편으론 그것이 원래 속해 있던 세계를 단번에 가리키는 고유명으로 기능하게끔 할 수 있다. 영화-기능에 있어서 지배적 실천으로 간주되는 시네마토그라프는 본질도 속성도 없는 보편적 기능이 특정한 물질적 조건들과 결합되어 역사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 지배적 실천의 자명성이 무너진 지금, 오늘날의 몇몇 비평가-영화감독들은 시네마토그라프를 비롯한 역사적으로 발현된 영화-기능의 산물들을 파운드푸티지 작업을 통해 다시 살피면서, 영화-기능을 가리키는 독특한 고유명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순간들을 탐색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나는 포스트-프로덕션으로서의 비평이라 부른다. 즉, 포스트-프로덕션으로서의 비평이란 이름 (다시) 부르기, 즉 ‘(re)naming’과 관련되어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포스트-프로덕션으로서의 비평의 두 방향을 빼어나게 예시, 종합한 기념비적인 작품들이 발표되었는데, 하나는 장-뤽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 Histoire(s) du cinema>(1988~1998)이고 다른 하나는 톰 앤더슨의 <로스앤젤레스 자화상 Los Angeles Plays Itself>(2003)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연재될 3부에서 다룬다. 


[Note #.2] 영화-기능에 대한 노트 (for Part.4)

영화관, 전시실, 공연장 및 텔레비전이 설치된 공공장소, 그리고 필름, 비디오, DVD, 블루레이 및 각종 디지털 저장 장치, 그리고 전통적인 개념의 영화를 넘어서 미술, 공연, 문학에까지 이르는 영화-기능 발현의 일반적 조건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시각이나 청각과 관련된 개념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이미지라는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미지는 영화-기능 발현을 위해 주어져야 하는 조건이 아니라 발현의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현의 귀결은 아니다.) 또한 우리는 반(反)-영화적 혹은 대항-영화적 실천이라 간주되어 온 예외적 사례들을 포괄하는 영화-기능 발현 조건이 무엇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충고를 따라, 반복적이어서 계열화될 수 있는 것만을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이례적인 경우야말로, 그것도 극히 이례적일 경우에, 계열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46]을 염두에 두자.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나방의 날개, 꽃잎, 유리 파편 등을 직접 필름에 옮겨 붙여 만든 스탠 브래키지의 <나방빛 Mothlight>(1963), 시청각적 요소를 통한 재현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텍스트의 순차적 나열로만 구성한 마이클 스노우의 <So Is This>(1982) 같은 작품들은 그 좋은 예다. 아예 영화 외적(外的)인 실천이라 간주되는 작업들도 고려해 봐야 한다. 스크린과 영사기 사이의 3차원 공간 자체를 작품의 주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앤서니 맥콜의 <원뿔을 그리는 선 Line Decribing a Cone>(1973)이나 제임스 터렐의 빛의 조각들이 떠오른다.[47]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프로젝트 홀에서 공연했던 메탐킨(Metamkine) 그룹(크리스토프 오제, 자비에 케를, 제롬 노팅제)의 근사한 필름 퍼포먼스 <간섭의 셀룰로이드 Cellule d'intervention>는 또 어떤가? 잠정적으로나마 제시하자면, 영화-기능의 발현에 있어서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은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1. 계(system) 또는 장치(apparatus)가 요구된다. 이러한 계 또는 장치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a) 최소한 하나 이상이 기술적, 산업적으로 복제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b) 최소한 하나 이상이 기계적으로 반복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단 (1)과 (2)의 요소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2. 어떠한 계 또는 장치가 구성되었다면 그것이 영화-기능과 결부되기 위해서는 계 또는 장치 자체가, 적어도 계 또는 장치의 어떤 부분이 반복 가능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계 또는 장치는 전적으로 장소 특정적이거나 퍼포먼스의 일시성에 의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가령, 니콜라 레의 <다르게, 몰루시아 Autrement, la Molussie>(2012)는 길이가 다른 9개의 릴로 구성된 작품인데 릴의 영사 순서는 매 상영 시마다 임의적으로 변경하게끔 되어 있다. 애미 시겔의 <겨울 Winter>(2013)은 16mm로 촬영되어 HD로 변환된 33분짜리 전시용 영상작품인데, 전시되는 동안 매번 다른 라이브 연주, 다른 사운드 효과, 다른 보이스오버와 (미리) 후시 녹음된 대화들이 들려지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작품의 특정 요소들 각각은 매 상영 시마다 반복 가능하다. 계 또는 장치의 이러한 요소들은 일종의 모듈(module)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시네마토그라프의 자리는 어디인가? 아마도 그것은, 데릭 저먼의 <블루 Blue>(1983),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의 <백설공주 Snow White>(2000) 혹은 이행준의 필름 퍼포먼스 <필름 워크 Film Walk> 같은 작업이 일러주는 것처럼, 오직 그것의 부재를 통해서만 지시되는 것이며, 아무런 이미지도 담겨 있지 않은 필름 띠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행했을 노동의 증거로서, ‘보이지 않는 것의 날인’으로서 영화-기능의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 것이다. 


※ Notes

[1] 원제는 ‘교유’(郊遊)로 도시 근교나 야외에서 노는 것, 즉 소풍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도시 변두리를 떠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 제목은 자연스럽게 차이밍량의 중편 <서유 西遊>와 <떠돌이 개>를 관련짓게 만든다. 이상의 내용을 일러준 김정구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서유>에서는 『서유기』의 삼장법사를 암시하듯 법복을 걸친 이강생이 마르세유 도심을 느리게 떠도는 동안 프랑스 배우 드니 라방이 손오공처럼 그 뒤를 따른다. 

[2] 2부의 중편(中篇) 참조. 『인문예술잡지 F』 제11호, 87~99쪽. 

[3] 여기에 2014년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코스타의 신작 <카발루 디녜이루 Cavalo Dinheiro>가 추가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4] 이와 반대되는 경우로, 차이밍량의 전작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2006)를 떠올려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강생이 1인 2역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만 인지하면 영화적 세계를 정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5] 베니스영화제에서 배포된 <떠돌이 개> 영문 프레스 킷(press kit)에서 인용.

[6] 솔 크립키, 『이름과 필연』, 정대현∙김영주 옮김, 서광사, 1986, 61쪽. 크립키의 초세계적 동일성 및 고정지시어 개념에 대한 논의는 본고 2부의 중편(中篇) 참조. 『인문예술잡지 F』 제11호, 96~98쪽.

[7] 최근 출간된 유리 로트만에 대한 흥미진진한 연구서 『책에 따라 살기: 유리 로트만과 러시아 문화』(문학과 지성사, 2014)에서 김수환은 “어떻게 보면 영화는 ‘고유명사들로 이루어진 세계’에 다름 아니다”(p.152)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신화적 세계에서는 […] 매우 독특한 유형의 세미오시스가 작동하고 있는바, 그것은 일반적으로 명명의 과정으로 수렴될 수 있다. 신화적 의식 속에서 기호는 고유명사와 유사하다.”(p.148~9)는 로트만의 주장을 ‘신화적’인 특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영화의 이해에 적극 끌어들인다. 그에 따르면 “신화 속에서 모든 보통명사가 기능적으로 고유명사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처럼, 영화는 자신이 담아내는 모든 것을 지극히 친숙한 사물, 곧 반복 불가능한 개별성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단독적 사물’로 바꿔 놓는다.”(p.152) 이는 내가 본고 2부의 중편에서 집합론적 용어들을 빌려 고유명으로서의 이미지에 대해 기술한 내용과도 상응한다. 다만 김수환은 영화에서 고유명적인 이미지의 생성에 있어 (인간 얼굴의) 클로즈업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기능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형식이라고 보고 있는데(p.152~158), 지난 반세기 동안 텔레비전이 클로즈업을 그저 범용한 형식으로 바꿔버렸음을 고려하면 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가 인용하고 있는 바르트의 말처럼 “가르보는 인간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여전히 관객들을 깊은 엑스터시의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시대”의 배우이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고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클로즈업이 고유명적인 이미지를 생성하느냐의 여부는, 영화의 다른 형식들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내기에 걸려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고유명적인 이미지의 생성에 있어 특권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형식이란 따로 없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이 글에서 자신만의 어떠한 장소도 속성도 없이 여러 가능세계들을 가로지르는 배우-인물의 현존, 그리고 카메라 앞과 뒤의 존재들 간의 무심한 우애를 통해 실현되는 몽타주를 예로 들어 이미지는 프레임을 초과한다는 점을,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고유명적이라는 점을 보여 주려 한다.

[8] 앙드레 바쟁은 ‘비순수 영화’(cinéma impur)라는 개념을 통해 고유의 장소도 속성도 없이 배회하는 영화의 상태를 정식화했다. “영화에 남겨진 일은 자신의 강둑에 물을 대는 것, 그토록 짧은 시간에 협곡들을 내며 그것이 가로질렀던 예술들 사이로 파고드는 것, 교묘하게 예술들을 포위하는 것, 보이지 않는 지하수로(invisible galleries)를 내기 위해 심층의 토양으로 스며드는 것뿐이다.” André Bazin, “In defense of mixed cinema”, in What Is Cinema?, vol.1,  Hugh Gray (ed. & trans.), Berkeley-Los Angeles-Lond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1, p.71. 국역본은 앙드레 바쟁, 『영화란 무엇인가?』, 박상규 옮김, 시각과 언어, 1998, 143쪽. (번역은 수정했음) “오늘날에는 영화가 상영 장소 없이 존재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장소들이 과연 영화 없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거나 “영화는 온갖 철학들과 주류 예술들이 서로 상실되기 위해서 혼합되는 도달점일 것”이라고 보는 폴 비릴리오는 바쟁의 관점을 공유하지만 거기에 묵시록적 비전을 한껏 더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쟁의 낙관론에서 이미 멀리 떨어져 있다. 폴 비릴리오, 『소멸의 미학』, 김경온 옮김,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 123쪽 및 190쪽.

[9] ‘media’라는 단어에는 여러 다른 의미들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의미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각각의 의미에 따라 아예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media’라는 단어에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 뜻이 있다. (1) 소체(素體): 동시대 미술 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인 ‘혼합 매체’(mixed media) 작업에서의 ‘매체’처럼 소재나 질료를 가리킬 경우. (2) 기체(基體): 특정한 표현 체제를 구성하는 기반이 되는 요소를 가리킬 때. 예컨대 문학의 기체는 분절적인 인간의 언어(라고 가정된)다. (3) 매체: 하나 이상의 소체, 그리고 역시 하나 이상의 기체의 집합 혹은 앙상블. 이러한 의미에서의 ‘매체’는 (1)과 (2)의 경우와는 달리 결코 단수(medium)로는 표현될 수 없고 언제나 복수(media)로만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사실 ‘매체-특정성’이란 어떠한 매체에는 그에 상응하는 고유의 소체나 기체가 있다는 가정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매체-특정성’에 대한 논의가 종종 구름 속으로 빠져들곤 하는 이유는 이 의미들을 구분하지 않고 뒤섞는 데서 비롯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화의 특이한 점은 영화 경험을 제공하는 것들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소체와 기체가 없는 매체들의 더미(cluster)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화용론적으로 영화 경험을 제공하는 것들의 집합 C를 생각해 보면, 이 집합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또한 집합들인데, 이 집합들 어디에나 빠짐없이 속해 있는 공통의 원소란 존재하지 않는다(즉, 교집합이 없다). 집합 C는 결코 매체라 불릴 수 없으며 그 원소가 되는 집합들을 관장하는 기능/함수(function)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지만, 집합 C의 원소가 되는 집합들 각각은 어느 정도 매체적으로 - ‘이것은 시네마토그라프이다’, ‘이것은 텔레비전이다’, ‘이것은 필름 퍼포먼스이다’, ‘이것은 스마트폰이다’ 등등 - 파악될 수 있다.   

[10] <딕슨의 사운드 실험 필름 Dickson Experimental Sound Film>,으로 알려져 있는 이 17초짜리 영화는 2004년에 미국에서 출시된 DVD <More Treasures from American Film Archive: 1894~1931>에 수록되어 있다. 

[11] <마부제 박사의 유언>이 발표된 해인 1933년에 히틀러가 독일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12] 유성영화 초창기에는 더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는 전적으로 임의적이지는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히치콕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나는 네 대의 카메라와 한 개의 사운드트랙으로 촬영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운드 편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TV쪽 사람들이 생방송에서 카메라를 여러 대 사용한다고 했을 때 “그건 새로운 게 아니오. 우리는 이미 1928년에 그렇게 했소”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수아 트뤼포, 『히치콕과의 대화』, 곽한주∙이채훈 옮김, 한나래, 1994, 89쪽. 

[13] 미셸 시옹, 『오디오-비전: 영화의 소리와 영상』, 윤경진 옮김, 한나래, 2004, 180~184쪽. 시옹에 따르면 ‘아쿠스메트르’적 존재는 193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나타나지만 영화에 멀티트랙 사운드가 도입된 이후로는 사례가 없거나 매우 적다. 

[14] <시티 라이트> 촬영 도중 버지니아 셰릴의 프로답지 못한 행태에 불만을 품은 채플린은 맹인 소녀 역을 <황금광 시대>(1925)에서 공연했던 조지아 헤일로 교체하려 마음먹기에 이른다. 맹인 소녀를 연기하는 헤일의 모습이 담긴 스크린테스트 기록물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채플린은 결국 셰릴을 다시 불러들여 남은 촬영을 마쳤다. <시티 라이트>의 라스트신은 이러한 교체 시도 이후에 촬영된 것이다.    

[15] 2부의 중편(中篇) 참조. 『인문예술잡지 F』 제11호, 95~96쪽.

[16] 앞의 글, 88~96쪽. 여기서 나는 직관적 집합론에 입각해 고유명으로서의 이미지의 농도에 대해 다루었다.

[17] 앙드레 바쟁, 『영화란 무엇인가?』, 285쪽. 

[18] 앞의 책, 297쪽.

[19] 앞의 책, 97쪽.

[20] 앞의 책, 142~144쪽.

[21] Alexandre Astruc, “The Birth of a New Avant-Garde: Caméra-stylo”, in The French New Wave: Critical Landmarks, Peter Graham & Ginette Vincendeau (eds.), London: BFI, 2009. [본문의 번역은 프랑스어 원문을 참조했음.]

[22] Rosalind Krauss, A Voyage on the North Sea: Art in the Age of the Post-Medium Condition, New York: Thames & Hudson, 2000, p.44.

[23] 앞의 책, p.44

[24] 앞의 책, p.46

[25] 앞의 책, p.53

[26]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2』,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6, 527쪽.

[27] Raymond Bellour, “The Limits of Fiction”, in Between-the-Images, JRP/Ringier, 2012, p.184. 

[28] 1964년에서 1975년까지 이탈리아의 실험적 텔레비전 시기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참고. 비토 자가리오,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영화-텔레비전 관계의 대항사를 위해?」 , 『디지털 시대의 영화』, 토마스 앨새서∙케이 호프만 엮음, 김성욱 외 옮김, 한나래, 2002, 136~143쪽. 이 글에는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초반 미국에서 진행되었던 ‘텔레비전 극장’, 즉 대형 스크린 텔레비전 실험에 관한 흥미로운 기술도 포함되어 있다. 같은 글, 121~127쪽.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대부분의 영화관에서 상영의 기본 포맷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은 DCP인데, 이는 텔레비전 극장이 현실화, 상용화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29] 클루게의 대안적 텔레비전 실험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마티아스 웨커, 『안티 텔레비전?: 알렉산더 클루게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강윤주 옮김, 한울아카데미, 2004.

[30] 데이빗 노먼 로도윅, 『디지털 영화 미학』, 정헌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138쪽.

[31] 조너선 크레리, 『24/7: 잠의 종말』, 김성호 옮김, 문학동네, 2014, 69쪽.

[32] 앞의 책, 69쪽.

[33] 나는 다른 글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의 여주인공이 영화-기능에 대한 가장 빼어난 메타포라고 쓴 적이 있다. “영화란 실체가 아닌 기능이기 때문에 그와 결부된 형용사를 가질 수 없다. […] 영화의 이와 같은 특성에 대한 가장 빼어난 메타포는 히치콕의 <현기증>의 마들렌이다. 그녀는 - 그런데 과연 ‘그녀’라고 지시해도 되는 것일까? - 주인공 친구의 아내와 그녀인 양 행세하는 여자, 그리고 그림 속의 여자 가운데 어디에도 정확하게 귀속되지 않지만 이 세 개의 실체 혹은 이미지를 관장하는 기능이고 또한 그것들 사이에서만 활동하는 유령적 형상이다. […]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모든 것들은 실체적인 것, 그만의 형용사를 지닐 수 있는 것들의 에이돌론(eidolon)이다. 그리스어로 에이돌론은 분신, 유령 그리고 이미지의 뜻을 모두 지닌다. 놀랍게도 영화는 이러한 분신들의, 유령들의, 이미지들의 간극에서 더할 나위 없이 실재적인 감각을 산출해낸다.” 유운성, 「시네마-에이돌론: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입문, 혹은 논쟁을 위한 서설」, 『시네마테크』 제121호 (2014년 11월호). 

[34] 미헬 파버르, 『언더 더 스킨』, 안종설 옮김, 문학수첩, 2014, 344쪽.

[35] 차이밍량(1957년 생), 페드로 코스타(1959년 생), 홍상수(1960년 생)보다 젊은 세대에 속한 감독들 가운데서는 스페인의 알베르트 세라(1975년 생)나 멕시코의 니콜라스 페레다(1982년 생)의 영화에도 이러한 배우-인물 형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감독 마티아스 피녜이로(1982년 생) 영화에 빠짐없이 출연하고 있는 마리아 빌라르처럼 마부제적인 편재성과 채플린적인 명랑함을 (부분적으로나마) 현대영화에 회복시키고 있는 사례도 있다. 

[36] Elena Oumano (ed.), Cinema Today: A Conversation with Thirty-nine Filmmakers from around the World, New Brunswick-New Jersey-London: Rutgers University Press, 2011, p.67.

[37] 질 들뢰즈, 『소진된 인간』, 이정하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3, 68쪽.

[38]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반딧불의 잔존: 이미지의 정치학』, 김홍기 옮김, 길, 2012, 61-63쪽.

[39] 자크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김상운 옮김, 현실문화, 2014, 17쪽.

[40] Eleftheria Thanouli, “Diegesis”, The Routledge Encyclopedia of Film Theory, Edward Branigan & Warren Buckland (eds.),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2014, p.133~137.

[41] 앙드레 바쟁, 「금지된 몽타주」, 앞의 책, 69~85쪽.

[42] 이러한 전략은 오시이 마모루의 <우르세이 야츠라 2: 아름다운 몽상가>(1984)나 이시구로 노보루의 <메가존 23>(1985)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상력과 만나고 있는 <매트릭스> 시리즈 및 <인셉션> 같은 SF영화들, 그리고 초자연적인 요소의 개입 정도에 따라 서사적 세계를 위계적으로 분할하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및 TV 드라마 <왕좌의 게임> 같은 판타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43] <2/듀오 2/Duo>(1997)로 데뷔해 <마/더 M/Other>(1999)와 <퍼펙트 커플 Un couple parfait>(2005) 같은 걸작을 연출한 스와 노부히로는 카메라 앞과 뒤의 존재들 간의 관계 수립에 가장 예민한 시네아스트 가운데 하나다. “[H 스토리>(2001)에서] 영화 마지막에 원폭에 맞아 폐허가 된 돔이 나오는 장면이 있죠. […] 그 폐허 안에서 남녀가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눈을 뜨는 장면이었죠. 눈을 뜨자 폐허 속에 서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잠자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이 굉장히 아름답게 비쳤기 때문에 좀 더 클로즈업해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카롤린 샹페티에 촬영감독에게 말했더니 클로즈업으로 찍고 나서 확 뒤로 물러나[서 찍]는 거냐고 질문을 하더군요. 그러더니 이 영화는 그런 식으로 촬영되어서는 안 되는 영화라고 말하면서 ‘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는 못 찍겠다고요. 이 영화는 접근을 하고 난 다음에 뒤로 물러나는 식의 […] 그런 환영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 [<2/듀오>에서] 유라는 이름의 여자 주인공은 가끔씩 바깥에서 걸려오는 남자의 전화를 받습니다. 세 번째 전화였던가요. 정확하진 않습니다. 여하간 그 남자가 전화를 걸어오는데 빨리 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결혼하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여자는 전화를 끊고 나서 수화기를 떨어뜨립니다. 그 모습을 카메라가 계속해서 포착하는데 갑자기 그 화면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장면이 커트됩니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장면은 사실은 버려야 옳습니다. 이 장면은 타무라 마사키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컷!’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카메라를 옆으로 기울였죠. 이 경우에 대개 그 흔들리는 부분을 편집과정에서 잘라내 버리죠. 그런데 저는 그 부분이 꼭 사용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용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스와 노부히로가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행한 마스터클래스 녹취록에서 인용. 『촬영감독 마스터클래스 세컨드 세션』, 전주국제영화제 엮음, 2004, 143~146쪽.  

[44]Suwa Nobuhiro, “Camera Lucida”, Yamamoto Kumiko (trans.), in Pedro Costa Film Retrospective in Sendai 2005, Sendai Mediatheque, 2005, p.46~47.

[45] 니콜 브레네즈, 「파운드 푸티지 지형도 그리기」, 이행준 옮김, 『나방 N'avant』 제3호, 2007.12, 10쪽. 원문은 Nicole Brenez, “Cartographie du found footage”, in Nicole Brenez et Pip Chodorov, Exploding No. Hors série, 2000 혹은 Nicole Brenez, “Montage intertextuel et formes contemporaines du remploi dans le cinéma expérimental”, in Limite(s) du montage, Revues d’études cinématographiques vol.13. 브레네즈는 파운드푸티지는 (1) 이미지를 자율적으로 만드는 것 이외에도 (2) 필름을 물질로서 다루는 일을 중요시하고 (3) 몽타주의 새로운 영역(예컨대 감광유제의 층)과 새로운 형식을 탐색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46] 카를로 진즈부르그, 「미시사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미시사란 무엇인가』, 곽차섭 엮음, 푸른역사, 2000, 108~109쪽.

[47] Giuliana Bruno, “Fabrics of Light: On the Surface of Film and Architecture”, in Unruly Desires in Film and Architecture, Synne Bull & Marit Paasche (eds.), Berlin: Sterberg Press, 2011 참조. 앤서니 맥콜이나 제임스 테렐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영화와 건축의 관계를 검토하고 있는 이 글에서, 줄리아나 브루노는 “건축과 마찬가지로 영화 또한 인공적인 빛을 발하는 표현이자 복수의 가변적인 평면들을 투영(projection)하는 예술이다. […] 건축과 영화 사이에는 형상적인 것을 넘어서 성립되는 보다 깊은 연관이 있다.”고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