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21

여름


2013.8.28 질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



질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 L'épuisé』(1992)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위 사진). 베케트의 텔레비전 단편극 네 편 - <쿼드>, <유령 삼중주>, <한갓 구름만...>, <밤과 꿈> - 에 대한 짧은 에세이다. 질 들뢰즈의  『시네마 2: 시간-이미지』, 폴 비릴리오의  『시각 저 끝 너머의 예술』, 자크 오몽의  『영화와 모더니티』 등을 근사하게 번역한 바 있는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의 이정하 교수가 한국어로 옮겼다. 개인적으로는 들뢰즈의 예술비평 가운데 (베이컨의 회화에 관한)  『감각의 논리』 이후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무척 짧기는 해도 기억해 두고 싶은 구절이 많은 에세이로, 특히 과정(process)으로서의 이미지("이미지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과정이다.")를 언급한 몇몇 부분이 떠오른다. 이 글에서 들뢰즈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텔레비전적 이미지를 (베케트의 아방가르드적 단편극을 통해) 시네마의 '소진'으로서 다시 (적극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긍정의 몸짓 주변에 감도는 우울이 제법 짙어서, 읽다보면 이래저래 잡생각이 많아진다. (『소진된 인간』과 더불어 알랭 바디우의 『베케트에 대하여』(민음사)도 출간되었는데, 아직 서점들엔 입고되지 않은 것 같다. 근래 바디우 책이 연이어 나오고 있지만 매우 아쉽게도 상대적으로 번역이 용이한 책들만 출간되고 있다. 그의 주저라 할 『존재와 사건』이나 『수와 수들』은 정작 출간소식이 없다. 기약이 없어, 『존재와 사건』은 영문 번역판을 구해 아주 느리게 읽고 있다.)



지난 주 금요일(8월 23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침묵을 듣기, 침묵에 말 걸기 1」라는 제목으로 <미친 한 페이지>(기누가사 데이노스케, 1926) 상영, 파트타임스위트(이미연, 박재영)의 연주, 심보선 시인의 낭송이 함께 이루어지는 행사를 가진 바 있다(위 사진). 앞으로 두 달에 한 번 꼴로 문지문화원 사이, 영상자료원의 공동주최로 같은 제목의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가능하다면 오는 10월에는 『소진된 인간』에서 다루고 있는 텔레비전 단편극들과 버스터 키튼이 주연한 베케트의 <영화 Film>(1965)를 상영하면서 낭송, 연주를 꾸며보고 싶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김태용 작가가 <영화>를 위한 (낭독) 텍스트를 쓰고 계시는 중이고, 이는 『인문예술잡지 F』 제11호에 실릴 예정이다.



『소진된 인간』에 언급된 텔레비전 단편극들은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에세이에서 분석된 네 편의 작품을 포함해 베케트가 독일(SDR, 남독일방송국)에서 만든 모든 텔레비전 단편극들이 수록된 DVD가 독일에서 - 주어캄프(Suhrkamp)사와 압솔루트 메디엔(Absolut Medien)의 제휴 - 출시되었다(위 사진). 또한 이 DVD에는 『소진된 인간』의 독일어 번역 전문과 베케트의 수기 대본 사진 등이 수록된 소책자가 포함되어 있다.


2013.8.21 이상한 삼각관계


문득, 지금쯤 폐막했겠거니, 하고 생각이 나서 로카르노영화제 홈페이지(www.pardo.ch)에 들어가 보았다. 스페인 감독 알베르트 세라(Albert Serra)의 여섯 번째 장편 <내 죽음에 관한 이야기 Historia de la meva mort>가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홍상수의 <우리 선희>는 감독상을 수상.) 알베르트 세라는 내가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시기 마지막으로 기획한 특별전 - 에드가르도 코자린스키, 우치다 도무와 더불어 - 의 주인공이었고, 당시 영화제에도 방문했지만 그의 영화는 그리 많은 관객과 만나지는 못했다. 이번 신작을 곧 한국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엔 좀 더 많은 관객과 함께 하길 바란다. 이번 로카르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은 라브 디아즈였다. 그는 2009년 디지털삼인삼색에 참여하면서 홍상수와 처음 만났고, 그를 만난 이후 영화가 궁금하다 하여 국내에 출시된 홍상수 영화 DVD를 모두 구입해 보내주었다. 이후 <옥희의 영화>가 2010년 베니스 오리종티 부문(폐막작)에 초청되었을 때 라브 디아즈는 해당부문 심사위원이었으니, 심사위원-경쟁작 감독으로 만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조금 기묘한 일인데, 나는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된 라브 디아즈의 (컬러!) 신작 <북쪽, 역사의 끝 Norte, End of History>을 보면서 홍상수를 떠올렸는데, 물론 첫인상이 그렇다는 정도이고, 이 걸출한 영화를 어서 또 보고 다시 생각해 보고 싶(으나 일이 밀려 아직은 그럴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알베르트 세라와 홍상수. 세라는 스페인에서 출시된 홍상수 DVD 박스세트의 코멘터리(소개말)를 맡았다. 그리고 그는 <우리 시대의 시네아스트>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홍상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 및 진행중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돌연 취소되었다. 취소된 이유에 대해서는 세라에게 들은 바가 있지만, 그건 먼 훗날에나 밝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