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0

태풍



3. 김기덕의 <피에타>, 그리고 베니스영화제 수상규정 (2012.9.10)


베니스영화제 수상소식을 들은 후에 <피에타 Pieta>를 보았다. 집에 돌아와 올해 베니스 경쟁부문 심사위원단(총 8명)이 어떤 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건 그저 내가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동안 생긴 버릇일 뿐이다. 베니스영화제 홈페이지를 살펴보던 중 전규환 감독의 <무게>가 퀴어라이온(Queer Lion)상을, 유민영 감독의 <초대>가 최우수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축하할 일이지만 <피에타> 수상소식에 묻혀 거의 보도되지 않은 듯하다. <무게>는 베니스의 공식부문과는 별개로 나름의 조직과 규정을 두고 있는 독립병행부문 중 하나인 베니스 데이즈(Venice Days) 부문 - 또 하나의 독립병행부문으로 국제비평가주간(International Critics' Week)이 있다 - 초청작이며, <초대>는 공식부문 중 하나인 오리종티(Orizzonti) 부문 초청작이다. 

베니스의 다른 작품들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피에타>를 다른 영화들과 견주어 말할 수 없고, 사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가까스로 마리오네트의 수준을 벗어난 두 주연배우의 연기(우스꽝스러울 만큼 지나치게 잿빛으로 화장(化粧)된 시체는 이 영화에 걸맞은 연기의 표준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 같다), 예수와 마리아를 음화(陰畵)로 그려내는 (익숙한) 파격과 '십자가의 길'(Via Crucis)의 공포와 고통을 강조하는 종교적 보수성을 뒤섞은 광폭한 이미지의 우화(<사마리아>(2004) 이후의 김기덕은 현대의 로욜라가 되려는 게 아닐까?), 청계천 공구상가 골목마저도 <섬>(2000)이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의 '서식지'처럼 다루는 (인류학적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 도시론, 이 공간을 지배하는 시간의 추상성(조민수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이정진을 협박하는 사내가 이정진이 그에게 가한 악행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할 때, 대체 이 영화는 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것은 김기덕다운 것으로 쉽게 납득이 되는 것이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영화 보는 내내 <피에타>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 영화는 내가 보는 마지막 김기덕 영화가 될 거라는 예감과 함께. 그의 영화에 동의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다만 그의 기괴한 종교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이제 민요 '아리랑'은 고통[이라는 국가]의 찬송가[애국가]가 되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더 마스터 The Master>가 <피에타>에게 황금사자상을 빼았겼다는 요지의 미국 언론 보도로 인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말이 오가는 걸 알게 되었다. 살펴보니 국내 언론에서 약간 모호하게 쓴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문제의 발단은 베니스영화제의 (꽤 기묘한) 수상규정이다. (1) 경쟁부문의 작품은 원칙적으로 두 개 이상의 상을 동시에 수상할 수 없지만, 배우에게 주어지는 상(남우주연상 혹은 여우주연상) 하나와 다른 상 하나를 동시 수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 수상할 수는 있지만 감독상과 각본상을 동시 수상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2) 하지만 황금사자상(대상)을 수상한 작품은 어떤 다른 상도 함께 받을 수 없다. <할리우드 리포터 The Hollywood Reporter>의 보도(기사원문 보기 : [1] [2])에 따르면, 심사위원장 마이클 만은 전화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수상]규정이 꽤 특이하다. 한 영화는 오직 하나의 상만 받을 수 있다. 예외라면 배우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한 영화는 배우에게 주어지는 상과 다른 상들 가운데 하나를 같이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배우에게 주어지는 상과 황금사자상을 같이 받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번 베니스 심사위원단은 (위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연) 심사회의에서 <더 마스터>에 황금사자장, 감독상, 그리고 남우주연상을 주기로 결정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규정상 그런 식으로 시상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된 후, 재차 심사회의를 열어 <더 마스터>에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피에타>에 황금사자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한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마이클 만은 심사위원단은 <피에타>도 정말 좋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함께 심사한 이들을 칭찬하는 걸 제외하고는 심사회의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거절했다." 

정리하자면 <더 마스터>의 두 주연남우(와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던 나머지, <더 마스터>가 응당 받았어야 할 황금사자상을 <피에타>에 돌리고라도 남우주연상을 주고 싶었다는 말이 된다. 이 보도가 사실인지 아닌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고, 사실이라 해도 나로선 납득하긴 힘들다. <피에타>에 황금사자상을 수여한 것은 "[시네마에 대한] 모독이자 농담"(드니즈 림(Dennis Lim))이라고밖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2. 니키 해믈린의 필름 퍼포먼스 (2012.8.31)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고 있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전시에 이어)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EXiS / 8월 30일 ~ 9월 7일) 개막식에 다녀오다. 떠들썩한 전시성 이벤트도 없고, 순전히 정치적 사교나 자기홍보를 위해 참석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이들도 거의 볼 수 없는 이 개막식은, 영화제 개막식 가운데선 매우 드물게 시간(그리고 예산)낭비란 느낌을 주지 않는 행사다. 개막작은 영화보다 <영화 예술 현상 Film Art Phenomena>(2003)이라는 저서로 국내에 먼저 소개(?)된 -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바는 없지만 몇 년 전까진 광화문 교보문고 외서코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 영국실험영화작가 니키 해믈린(Nicky Hamlyn)의 <4개의 루프 4 X LOOPS>(1974)였는데, 하얀 바탕 위를 크게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검은 'X'가 주기적으로 깜빡이는 영상을  4대의 16mm 영사기를 통해 (루프(loop) 방식으로) 스크린에 비추면서 각 영상의 스크린상 위치를 수동적으로 조절해가며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내는 필름 퍼포먼스(film performance)다. (아래 사진 참조)


이때 각각의 영상은 크게 3개의 속성을 지닌 모나드처럼 기능한다. 백광(하얀 바탕), 검은 'X'  그리고 그 'X'가 깜빡이는 주파수/빈도수(frequency). (덧붙이자면 시간이 부여한 흔적으로서의 스크래치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영상은 앞의 두 개의 속성은 공유하지만 주파수/빈도수는 서로 다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각각의 영상은 (작가의 영사기 조작에 따라) 서로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겹쳐지고, 나아가 분할되는 가운데, 결코 다른 영상에 의해서는 온전히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실체로서, 하나의 모나드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개체적 실체는 결코 다른 개체적 실체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고 마찬가지로 그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빌헬름 라이프니츠, <형이상학 논고>)) 즉, 복합된 것(필름 퍼포먼스로서의 <4개의 루프>)을 이루는 단순한 실체로서의 모나드이자, 모든 다른 모나드들과 구별되는 개별적인 모나드로서. (라이프니츠, <모나드론>) 이러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 이외에 <4개의 루프>에는 그 어떤 목적도 없다고 여겨질 정도다. 

<4개의 루프> 상영/퍼포먼스가 끝나고 몇 개의 개막행사가 이어진 후, 예정에 없던 상영/퍼포먼스가 추가로 이루어졌다. 니키 해믈린의 신작 <링 Rings>(2012)이 초연 - 역시 4대의 16mm 영사기를 활용했다 - 된 것이다. 조만간 개최될 토론토영화제 아방가르드 섹션(마이클 스노우의 작품제목을 딴 "파장"(Wavelength")이라는 섹션명을 갖고 있다)에는 그의 <금성일면통과 2 The Transit of Venus 2>(2012)가 초청되었는데 전작 <금성일면통과>(2005)와 함께 상영될 예정이라 한다. <금성일면통과>는  EXiS 니키 해믈린 특별전 상영작 가운데 하나다.


1. (서툰) 종교로서의 영화제 (2012.8.29)


"영화보다 축제? 지역언론에 화답한 전주영화제"(<오마이스타>, 2012.8.25)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떠올린 생각. 내 해임과 그 이후 벌어진 일들에 대해 전주영화제는 점점 유사 종교적인 태도로 대응하고 있다. "프로그래머 해임에 대한 영화인들의 앙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 "전주영화제 측은 '전임 위원장이 이미 정리한 사안'이라고 밝"혔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앞으로도 나의 해임과 관련된 모든 사안은 전임 민병록 집행위원장의 사임으로 다 "정리"되었다는 식으로 반응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가 기자에게 저런 식의 발언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과감한 발상은 원죄와 대속의 논리로 기독교 신학을 정초한 사도 바울의 어설픈 패러디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어설픈 패러디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메시아는 물론이고) 바울은 존재하지 않고, 가롯 유다(들)에겐 아겔다마 따윈 안중에도 없어 오히려 무리 가운데 남아 사도들을 이끌고 있는 형편이고, 복음이란  "문화는 앞으로 먹을거리"(신임 고석만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전북일보> 김은정 콘텐츠기획실장과의 인터뷰 중)라는 것이다. 물론 이 복음의 메시아가 도래할 것을 내다본 예언도 있었다. 일찌기 <전라매일>(2012년 5월 2일)에 쓰여진 바 "모든 문화행사가 이제는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행사로 변해야 한다. [...] 문화도 돈이다. 고부가가치다. 영화, 소리, 발효음식, 서예 등 다 경제적으로 돈벌 수 있는 사업성을 발휘해야 할 시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예언자께선 '고부가가치'라는 용어의 뜻과 용법을 정확히 알지 못해 이를 문화의 술어이자 돈(화폐)의 동의어처럼 쓸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은 이해해 주기로 하자.) 이 서툰 종교집단에게 야콥 타우베스의 <바울의 정치신학>(이것은 8월에 읽은 최고의 책이었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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