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30

장마


1. Numéro Zéro,  Degré Zéro (2012.6.30)


<0번 Numéro zéro> (장 외스타슈, 1971)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역시!"와 "설마..."가 그것이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외스타슈의 경우에는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두 반응 모두를 취하게끔 했던 것은 아닐까. 이처럼 그에게는 복잡한 구석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그의 복잡함을 '옹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옹호'가 필요한 대상은 누구나 좋아하는 대상은 결코 아니지만 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작가이기 마련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옹호'한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그는 한때 정신적 동지라고 생각했던 트뤼포나 샤브롤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비판을 쏟아 부었다. 즉 그의 공격은 주위의 온갖 것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 외스타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비타협과 비전향의 중요성이다. 그밖의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통해 살아가는 방법은, 적어도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 영화가 죽으면 영화를 통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 또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 그는 영화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는 길을 택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음의 작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삶의 작가'이다. <엄마와 창녀> (1973)같은 영화는 죽음과 이웃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삶을 희구하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영화다. 시나리오에 쓰여진 모든 것은 삶을 그려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에 단 한 부분이라도 생략되어선 안된다. 여기서 비타협과 비전향의 정신이 관철된다. 한편 여기서의 '삶'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이의 삶을 배제하는 삶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여 공존하기 위한 사고로서의 삶이다. 이것이야말로 <엄마와 창녀>의 가장 근본적인 주제라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 아오야마 신지, <비타협, 비전향: 장 외스타슈>


2. 프랑수아즈 도를레악  (2012.6.30)

Françoise Dorléac (1942~1967) 

내일(7월 1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프랑수아 트뤼포의 <부드러운 살결 La peau douce>(1964) 상영 후 강연을 할 예정이다.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물론 트뤼포의 초기작품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 영화가 매우 각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보다 프랑수아즈 도를레악의 존재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6월 26일)은 그녀가 불의의 차사고로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날이다. 그녀의 동생인 카트린 드뇌브와 함께 출연한 자크 드미의 <로슈포르의 숙녀들 Les demoiselles de Rochefort>(1967)은 그녀 생전에 개봉된 마지막 출연작이 되었다. 


3. 페드로 코스타의 신작  <스위트 엑소시스트>(2012)

페드로 코스타의 신작 <스위트 엑소시스트 Sweet Exorcist>가 오늘 9월(아마도 베니스영화제?)에 첫 공개된다는 소식이다. 메일과 함께 작품스틸사진 한 장과 간략한 시놉시스가 첨부되어 왔다. 장편은 아니고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빅토르 에리세,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함께 하는 옴니버스 영화 <히스토리즈 Histories>에 포함될 단편이다. 시놉시스 : "1974년 4월 25일 새벽. 젊은 장교들이 거리에서 혁명을 주도하는 동안, 폰타이냐스의 사람들은 숲에서 길을 잃은 벤투라를 찾아 다닌다. 별안간, 강철 두건을 쓴 사나이가 나무 뒤에서 튀어나와 그를 납치하는데..." (1974년 4월 25일은 포르투갈에서 카네이션혁명이 일어난 날이다.)


<스위트 엑소시스트 Sweet Exorcist>(페드로 코스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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