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9

영화제의 검열-효과에 관한 노트



(아래는 계간 <인문예술잡지 F> 제4호(2012.1.15)에 실었던 글을 옮긴 것이다. 현재 <인문예술잡지 F>는 제7호(2012.10.30)까지 발간되었으며 1호부터 4호까지는 절판되었다.)


영화제의 검열-효과에 관한 노트


1. 영화감독 너새니얼 도어스키는 “단테가 오늘날 <신곡: 지옥>을 썼다면, 지옥을 이루는 첫 번째 원환은 거대한 원형 뉴스 데스크가 되었을 것”이라 쓴 적이 있는데, 우리는 그 원환으로 향하는 길 가운데 하나엔 틀림없이 카메라맨과 기자들로 가득한 레드카펫이 깔려 있을 것이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레드카펫 저 너머로는 영화들을 사고파는 장사치들로 가득한 필름마켓이 보일 것이다. 칸, 베를린, 베니스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만큼이나 전 세계 영화인들의 특별한 관심을 받아 온 행사도 없다. (다만 칸이나 베를린과 달리 대규모의 필름마켓이 없는 베니스영화제는 영화수입업자들의 관심에선 좀 밀려난 것 같은 느낌이며, 최근엔 베니스 직후에 열리는 토론토영화제가 베니스영화제 상영작의 주요 거래창구가 되고 있다.) 어떤 작품이 이들 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이 - 공식경쟁부문에서 수상했을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고 - 여전히 꽤 영예로운 일로 간주되는 건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해 이러한 영화제에서의 상영 및 수상이 의미하는 바는 예술적 가치의 보증이 아니라 예술적 (더불어 때로는 상업적) 기능의 할당이라는 점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잠정적으로 ‘작품-기능’이라 부르기로 하자.) 즉 부가적인 속성을 부여받거나 혹은 이미 담지하고 있다고 가정되는 속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위한 자리를 할당받는 것이다. 이건 오늘날 영화제 현상에 조금만 비평적인 접근을 시도해 본 이라면 누구나 깨달았을 상식에 속하는 것이니, 어떤 식으로건 대형영화제에서 기왕에 인정받은 작품들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등급표시 시스템과 별다를 바 없는 절차에 따라 유사-가치를 부여받은 것들임을 드러내기 위해 지면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다. 따라서 이 글은 “대체 이처럼 형편없는 영화가 칸영화제에 초청된 이유는 무엇인가?”같은 질문에 답할 의도로 구상된 것이 아니며 - 예전의 국가별 영화 할당 슬롯(slot)을 삽시간에 대체해 버린 거대국제배급사의 영향력과 공식 영화상영을 압도하는 필름마켓의 위상 강화 등을 생각해 보면 그런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지 않다 - 오히려 거대 국제영화제의 작품-기능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특히 아시아영화에 대한) 간접적 검열의 효과에 대해 문제제기하기 위해 씌어졌다. 


2. (사례 1: 일본) 전통적인 영화 ‘강국’으로 인정받아온 일본의 경우, 최근 저널리스트들과 평자들은 오늘날의 일본영화가 예전의 그것만 못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 상투적이기 짝이 없는 불평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영화의 질적 저하가 아니라 동시대 세계 영화제(계)가 아시아영화에 할당한 기능과 일본영화에 할당한 기능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영화는 아시아영화의 외부에 자리함으로써만 아시아영화의 중심이 되는 역설적인 기능을 맡아 왔다 -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지아장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차이밍량, 라브 디아즈, 홍상수 등 최근 아시아영화의 최전선을 이루는 이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통적으로 존중되어 온 서사나 미장센의 효과를 부분적으로 활용하되 모종의 독특한 개념적(conceptual) 도식 내에 그들을 배치하는 현대적 미학을 구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이들 감독들이 담당하는, 그리고 앞서 언급한 국제영화제들에 의해 장려된 동시대 아시아영화의 작품-기능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들 감독들이 각자의 개념적 도식을 보다 전면에 내세운 작품보다는 그 개념적 도식이 서사나 미장센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종종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일본영화의 경우, 이처럼 개념적 도식을 활용하는 영화가 매우 드문 데다 있다고 해도 - 최근 작품으론 고바야시 마사히로의 <위기의 여자들 Women on the Edge>(2011)이나 야마모토 마사시의 <쓰리 포인츠 Three Points>(2011)[1] 같은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 바깥엔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 일본영화의 작품-기능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국제영화제 초청에선 배제되어 버린다. 국제영화제 서킷이 부과하는 일본영화의 작품-기능은 미장센 위주의 표현적인 작품이나 ‘아시안 익스트림(Asian Extreme)’이란 용어로 대표되는 과잉의 장르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는데, 가령 3대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가운데 일본영화(와 중국영화)에 가장 정통한 이로 평가받고 마르코 뮐러는 작년(2011년) 베니스영화제에 소노 시온의 <두더지 Himizu>, 츠카모토 신야의 <고토코 Kotoko>, 시미즈 다카시의 <토멘티드 Tormented>를 초청했고 티에리 프레모가 이끄는 칸영화제는 가와세 나오미의 <하네즈 Hanezu>, 미이케 다카시의 <할복 Hara-Kiri: Death of a Samurai>, 소노 시온의 <길티 오브 로맨스 Guilty of Romance>를 초청했다. 국제영화제 서킷에서의 작품-기능이라는 측면에서 일본영화는 일종의 이중구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개념적 도식을 활용하는 현대적 미학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전적으로 동시대적인 드라마나 장르영화를 생산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일본영화는 여타 아시아 예술영화가 현대적이 되면서 비워낸 자리를 책임질 것을 - 다시 한 번 아시아영화의 외부가 됨으로써 중심을 만들어낼 것을, 즉 중심으로서의 외부가 될 것을 -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2] (그런데 이 기능마저도 봉준호나 박찬욱 같은 한국감독들의 작업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는 처지다.) 그러한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강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로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만다 구니토시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들의 영화는 그간의 노력에 합당한 작품-기능을 아직 할당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일본 바깥의 평단과 영화계는 이들의 영화를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형국이다.) 작년 일본영화계가 배출한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도미타 가츠야의 <사우다지 Saudade>가 동시대 아시아영화의 작품-기능과 일본영화의 작품-기능 사이를 지그재그로 오가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브라질 출신의 이주노동자들과 태국과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 온 매춘부들이 일본인들과 얽히며 빚어지는 문화적 갈등이라는 소재도 그 형식적 패턴에 썩 잘 어울린다. 


3. 이처럼 국제영화제 서킷이 가동시키는 작품-기능 시스템의 검열-효과는 폭력이나 섹스의 과도한 묘사를 - 때로는 명시적으로 정치적인 코멘트들을 - 제어할 목적으로 가동되는 기존의 검열 시스템보다 훨씬 더 전면적으로 오늘날의 영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폭력과 섹스의 과도한 묘사는 이미 예술적 기능을 할당받은 작가의 영화나 국가영화와 결합될 경우 오히려 A급 국제영화제의 환대를 받는다. 이안의 <색, 계 Lust, Caution>(2007),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 Antichrist>(2009), 기타노 다케시의 <아웃레이지 Outrage>(2010) 등을 떠올려 보라.) 이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물론 미학적 작품-기능의 범주들을 분할하고 할당하는 국제영화제의 정치학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품-기능의 분할과 할당이 영화제 프로그래머나 큐레이터들에 의해서 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오늘날 어떤 영화가 ‘국제적’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고 (때로는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관여하면서) 그 영화가 어떤 영화제에서 상영되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세일즈 에이전트들이며 따라서 이들의 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국제영화제의 정치학을 논하는 건 쓸모없는 일이다. 물론 칸, 베를린, 베니스, 토론토 그리고 한국의 부산영화제처럼 규모가 큰 영화제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프로그래머의 취향이나 그가 개별 감독들 및 특정국가와 맺고 있는 개인적 네트워크가 훨씬 더 크게 작용하는 영화제들(로테르담, 뱅쿠버, 비엔나 등)도 존재하고, 한편으론 대규모 영화제 내부에도 공식부문과 차별화되는 (혹은 공식부문에서 밀려난) 영화들을 상영하는 섹션들 - 대표적으로 칸영화제의 감독주간(Director's Fortnight)과 베를린영화제의 포럼(Forum) - 이나 실험적인 영화들을 상영하는 섹션들 - 베니스영화제의 오리종티(Orizzonti)나 토론토영화제의 파장(Wavelength) - 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작품-기능의 분할/할당 작업의 결과의 몫과 잔여물을 떠맡아 재분할/재할당하는 작품-기능 시스템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스타벅스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하나 이상의 영화제가 존재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개별 영화에 예술적/상업적 기능을 할당하는 국제영화제 서킷의 작품-기능 시스템의 전면적 지배 바깥에 있는 영화는 1) 당장의 국제적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각국의 내수용 영화이거나 2) 일종의 유사-대항적 작품-기능 시스템을 가동시킨다고도 할 수 있는 전문 웹사이트 및 특화된 영화제나 이벤트 등을 통해 마니아 커뮤니티 내에서 유통되는 영화들 - 발리우드영화[3], 최근 일본 닛카츠사(社)가 해외의 ‘아시안 익스트림’마니아들을 염두에 두고 2010년에 런칭한 ‘스시 타이푼’(sushi typhoon)[4], 그리고 물론 포르노그래피 영화들 등등 - 이거나 3) 자국영화에 할당된 작품-기능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영화들이다. 이 가운데 영화제 서킷의 검열-효과와 관련된 것은 물론 세 번째 범주의 것이다. 


4. (사례 2: 필리핀) 필리핀영화에 할당된 작품-기능은 우선 1970년대 리노 브로카의 영화들이 서구에 각인시킨 사회적 리얼리즘의 계보에서 파악될 수 있다. 브로카 이래 필리핀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고 또 수상한 이가 <서비스>(2008)와 <도살 Kinatay>(2009)의 브리얀테 멘도자 - 또한 그의 <할머니 Lola>(2009)는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신작 <포로 Captive>(2012)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 라는 사실도 그러하거니와, 그가 <꼬마 선생님 Manoro>(2006)에서 처음 시도하고 <입양아 Foster Child>(2007)에서 확립한 이른바 ‘리얼-타임 시네마’(real-time cinema)의 미학이 당대의 필리핀영화계에서 (국제영화제를 겨냥한) 숱한 아류작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와 같은 영화들을 일차적으로 분할해내고 거기에 작품-기능을 할당한 뒤에, 라브 디아즈, 라야 마틴, 존 토레스처럼 보다 개념적인 현대적 미학을 구사하는 이들에게 작품-기능을 할당하는 것은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칸영화제 감독주간 혹은 뱅쿠버나 로테르담영화제 같은 재분할/재할당 시스템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에서도 작품-기능을 할당받지 못한 영화들은 더 마이너한 국제영화제의 몫으로 넘겨지거나 그도 아니면 필리핀 국내에서의 제한적 쇼케이스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필리핀영화의 경우, 멘도자처럼 A급 영화제를 통해 이미 공인된 감독이 아닌 이상 국제적 세일즈 에이전트의 힘을 빌릴 수 있을 가능성이 전무하고, 한편으론 다른 아시아영화들, 특히 일본, 한국, 태국, 인도영화들과는 달리 유사-대항적 작품-기능 시스템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영화가 내수용 영화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은 공식적인 작품-기능 시스템의 위계에 더욱 절박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대다수의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영화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들 지역의 국가영화들은 국제영화제 서킷에서 통용 가능한 작품-기능을 전혀 할당받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라, 이를테면 중앙아시아영화는 중국이나 러시아영화의 작품-기능에, 동남아시아영화는 대만이나 태국영화의 작품-기능에, 중동영화는 이란영화의 작품-기능에 견주어서 판단되는 기묘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 절박함은 필름메이커들로 하여금 영화제 서킷에 의해 규정된 자국영화의 작품-기능을 유일하게 가능한 미학으로서 수용토록 강요하는 한편 그에 어긋나는 것을 스스로 배제하게끔 하는 검열-효과를 낳는다. (필리핀영화의 특정한 작품-기능 속으로 범주화되기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쉐라드 안토니 산체스의 극단적으로 실험적인 영화 <하수구 Imburnal>(2009) 같은 영화가 3대 영화제는 말할 것도 없고 로테르담을 비롯한 다수의 ‘모험적인’영화제들에서조차 거절당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5. 아도르노는 그의 『미학이론』에서 아무런 기반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현대예술의 기반이며 아직도 예술작품이 존속할 기회가 있다면 자신을 위험 속에 드러내놓는 철두철미하게 극단적인 작품들만이 존속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영화는 결코 현대적인 예술이 될 수 없는 것이거나 극단적이 될 것을 감수할 경우 드러나지 않은 채 그저 ‘존속만’하게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건 역사적으로 이미 하나 이상의 작품-기능을 할당받은 국가영화의 경우,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화제 서킷이 할당한 작품-기능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내부에서 미답의 영역을 발견해내는 것 - 이를 발견해내지 못하면 진부한 아류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 정도가 필름메이커에게 허용된 곡예의 전부인데, 그 미답의 영역이 줄어듦에 따라 (작품-기능을 처음으로 할당받는 데 성공했던 ‘개척자’의 영화를 제외하고는) 해당 국가영화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1960년대 이후 서구의 영화저널리즘이 뉴웨이브(New Wave)란 명명 하에 각국의 영화들에 (대략 10년 주기로) 차례로 작품-기능을 할당해가며 새로움과 발견을 호도해 왔던 논리가 오늘날 전면화된 영화제 서킷에 의해 작동되는 작품-기능의 분할/할당 시스템을 통해 더욱 빠른 속도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이유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와 같은 뉴웨이브 붐이 가라앉은 이후의 상황이다. 영화제 서킷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미학으로 보였던 것이 이제는 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것이 된다. 한때 자국영화에 할당되었던 작품-기능 자체가 이제 검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일본영화, 홍콩영화, 인도영화 및 최근의 한국영화처럼 모호하게나마 일종의 장르로서 인지되는 작품-기능을 할당받는 데 성공한 경우라면 사정은 좀 달라질 수도 있다.) 어쩌면, 아도르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진정 현대적인 영화란 과거의 스타일(작품-기능)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제도(분할/할당의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영화, 쉬이 승인되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죽음의 곡예를 벌이는 영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리트윅 가탁[5]의 유작이 된, 아니 차라리 그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영화라고 해도 좋을 <추론, 토론 그리고 이야기 Reason, Debate and a Story>(1974)처럼.  




[1] 이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즉흥연출 방식으로 촬영된 교토 파트, 비디오 다이어리 형식을 차용한 오키나와 파트, 그리고 전통적인 극영화 방식으로 연출된 도쿄 파트가 그것인데, 각각의 파트 사이에 형식적, 주제적 관련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교토 파트와 오키나와 파트가 교차로 진행되다가 도쿄 파트로 마무리된다.

[2] 이 도식을 미국영화에 적용하자면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영화는 언제나 당대의 세계영화가 현대적이 되면서 비워낸 자리를 책임질 것을, 세계영화의 중심으로서의 외부가 될 것을 강요당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영화는 일본영화와 달리 그 스스로를 몇 개의 구별되는 실체들로 분할함으로써 이중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가령 오늘날의 미국영화만을 놓고 보면, 할리우드영화는 현대적 미학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꼭 ‘동시대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동시대의’ 영화로서 받아들여지고(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개념적 도식을 활용하는 현대적 영화미학은 아메리칸 인디펜던트(예컨대 토드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2007))와 아방가르드 진영의 몫으로 할당되는 식으로 말이다. 일본영화라고 해서 이러한 분할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분할의 양상은 미학적 측면에서 그리 뚜렷하지 않을뿐더러 아메리칸 인디펜던트와 아방가르드의 그것만큼 국제영화제 서킷에서 인지되고 수용되지 못했다.

[3] 해외의 마니아 커뮤니티로 진입하지 못한 경우 내수용 상업영화에 머물 것이다.

[4] 2009년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소개되어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사랑의 노출 Love Exposure>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소노 시온은, ‘스시 타이푼’ 시리즈의 하나로 제작한 <차가운 열대어 Cold Fish>가 2010년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2011년엔 그의 차기작 두 편, 즉 <길티 오브 로맨스>가 칸영화제에, <두더지>가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비로소 국제영화제 서킷에서의 작품-기능을 할당받게 되었다. (그가 감독으로 데뷔한 건 1985년이다.) 하지만 일본영화의 경우, 마니아적인 장르들 자체가 본문 2절에서 언급한 일본영화의 작품-기능에 얼마간 부합하는 점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를 모든 국가영화에 해당되는 사실로 볼 수는 없는데, 가령 필리핀의 게이 로맨스(혹은 게이 포르노)물이 과연 그만의 작품-기능을 할당받는 국제적 장르로 승인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필리핀 영화 르네상스의 주역 가운데 하나인 브리얀테 멘도자가 <마사지사 Masahista>(2005)나 <서비스 Serbis>(2008) 같은 영화에서 게이 포르노의 요소를 끌어오고는 있지만 - 아예 <판타지아 Pantasya>(2007)라는 제목의 노골적인 게이 판타지물을 연출한 바도 있다 - 멘도자가 국제영화제 서킷에서 각광받고 있는 것은 1970년대 리노 브로카의 사회적 리얼리즘 영화들이 안착시킨 필리핀영화의 작품-기능에 부합되는 영화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지 그런 마니아적 요소 때문이 아니란 점에서 소노 시온의 사례와 성격을 달리한다.

[5] 그는 인도영화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사트야지트 레이의 영화를 “완벽하게 멸균처리된 궁핍의 리얼리즘”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2012-10-29

<인문예술잡지 F> 가을호(제7호) 발간



<인문예술잡지 F> 가을호 (제7호/ 2012.10.30)가 발간되었다. 이번 호 특집의 주제는 '과학적 상상력과 아방가르드'이며 세 분(홍철기, 서현석, 오준호)의 필자가 글을 보내주셨다. 아래 <인문예술잡지 F> 가을호의 서문과 목차를 옮겨 둔다.


디자인: 김형재+홍은주
일러스트 : 임정희 
  

서문

<인문예술잡지 F> 7호의 주제는 '과학적 상상력과 아방가르드'다. 과학기술 연구기관에서는 과학적 실험의 데이터를 보다 대중적으로 접근 가능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 '협업'이라는 명목 하에 예술가들을 동원하기도 하고(이때 예술은 과학을 마술로 탈바꿈시키는 미혹의 디자인이 된다), 각각의 예술 장르끼리는 물론이고 예술 일반과 학문 영역 간 '만남'이 적잖이 강요되기도 하는 현실을 떠올려보면, 이런 주제는 지금 이곳에서 오해받기 쉽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과학적 개념과 방법론, 그리고 상상력이 예술 실천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되짚어 보고 오늘날 실험적 예술의 미학적․정치적 프로그램을 보다 날카롭게 하기 위한 성찰의 시간을 갖는 일이 필요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에 우리는 각기 다른 (하지만 서로 관련되어 있는) 예술 영역에서 이론과 비평, 그리고 창작에 모두 관여하고 있는 세 분의 필자에게 글을 부탁했고, 도착한 세 편의 글은 나름의 방식으로 '과학적 상상력과 아방가르드'라는 주제 주위를 맴돌며 실험적 예술의 의의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조만간 과학의 편에서 실험적 예술에 질문을 던지는 자리도 마련해 보고 싶다.
'과학적 상상력과 아방가르드' 특집에 실린 글들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을 읽다 보면, 각각 독립적으로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이름들과 모티프들이 서로 다른 필자들의 글에서 중복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러한 이름들과 모티프들이 만들어내는 선을 따라 각각의 사유들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조합하고 포개다 보면 읽기의 즐거움이 배가되리라 본다. (따라서 어떤 단어들이 중복되고 있는지 여기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일은 삼가겠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것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원래 특집에 포함될 예정이었으나 지면 관계로 브루스 엘더의 「알고리즘적 예술의 모더니즘적 기원: 휴 케너, 에즈라 파운드, 홀리스 프램튼」을 이번 호에 싣지 못했다. 이 글은 다음에 나올 8호부터 총 2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목차

특집: 과학적 상상력과 아방가르드

재현적 리얼리즘의 실험실로의 귀환: 행위자 연결망 이론과 실험적 정치미학 (홍철기)
열린 체계를 향한 미학적 탐구 (오준호)
'모더니즘'의 신탁을 거부하기: 윌리엄 켄트리지를 보는 하나의 관점 (서현석)

Interview

예술 공동체의 모델, 싱가포르의 극예술 학교 ITI: ITI의 설립자 T.사시타란을 만나다 (심보선)

Critic

페이지를 넘겨라: 미장센에서 디스포지티프로 (2) (에이드리언 마틴/유운성 역)
이름 이르다: 문헌학, 벌거벗은 삶의 방법 (조효원)
뤼미에르 은하의 가장자리에서 Part.2 : 고유명으로서의 이미지와 아트갤러리로서의 영화관(유운성)
사운드아트의 (불)가능성에 관한 짧은 노트 (함영준)
코드프레스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 (박솔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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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0

<두 개의 문>(2011)


(* 가을이 지나기 전에, 상반기에 본 한국영화들 가운데 이런저런 생각을 불러일으킨 영화들에 대해 짧게라도 글을 써서 올리려 한다. 현재까지 본 영화들만 놓고 보자면 장건재의 <잠 못 드는 밤>(2012, 미개봉)과 김경만의 <미국의 바람과 불>(2011, 인디스페이스와 인디플러스에서 1일 1회 상영중)이 최고라 하겠다. 더불어 홍상수의 <다른 나라에서>(2012)의 유준상의 연기(그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를 꼽고 싶다. 더할 나위 없이 홍상수적인 세계에 불쑥 칩입한 이 '이방인'(나는 지금 이자벨 위페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은 이질적인 천연덕스러움으로 기분좋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세계에 풍성함을 더하고 있다. 혹은 사람들에 의해 흔히 홍상수적이라 간주되곤 하는 세계를 짐짓 그럴싸하게 만들어놓고 그 편견에 통쾌한 일격을 가하려 한 홍상수의 계산에 따른 것이었을까? 어느 쪽이건 <다른 나라에서>의 영화적 조바꿈(modulation)은 유준상이라는 배우의 존재 없이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9월 말까지 <인문예술잡지 F> 제7호(가을호)에 게재할 원고들을 마무리해야 하는 탓에, 이상 언급한 영화들에 대한 단상은 10월 중순 이후로 미룰 수밖에 없다. 아래는 인천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 <플랫폼>(9/10월호, vol.35)에 기고했던 <두 개의 문>(2011)에 관한 글을 옮긴 것이다.)


부재의 구조화와 분리의 전략
: <두 개의 문>(김일란 & 홍지유 감독, 2011)


<두 개의 문>(2011)이 용산참사를 다룬 여타의 다큐멘터리들과 다른 점에 대해서는,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정영신 씨가 『참세상』에 기고한 글에서 이미 다음과 같이 짚어낸 바 있다. “용산참사를 다룬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들이 철거민이 주인공이거나, 355일간 지속된 유가족들의 장례투쟁이 주된 이야기거리였다면 <두 개의 문>은 다른 관점으로 용산참사에 접근한다. 철거민들의 목소리가 하나 없고, 유가족들의 목소리도 하나도 없다. 또한 재개발의 문제라든가, 투쟁을 말하고 있지도 않다.” 응당 있으리라 기대한 것 대부분이 없다는 점, 이 부재의 과잉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고는 <두 개의 문>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다른 목소리들이 존재한다. 인터뷰를 위해 카메라 앞에 앉은 저널리스트, 활동가와 변호사의 목소리, 참사현장에 투입되었던 경찰특공대원의 진술서를 읽는 목소리, 법정 증언 시 녹취된 특공대원의 목소리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발화자의 몸이 가시적인지 비가시적인지, 발화의 순간 직접 채록된 것인지 이후 간접적으로 낭독된 것인지에 따라 각각의 목소리의 영화적 층위는 다소 다르다. 비가시적인 발화자의 목소리들과 결부되는 것으로는 비디오 클립들(칼라TV와 사자후TV같은 인터넷 방송 저널리스트들이 촬영한 것에서부터 경찰의 채증영상까지), 진술서나 신문보도기사 같은 문서자료, 그리고 철거민들의 투쟁 현장으로 출동 중인 경찰특공대 버스 내부의 광경을 재연한 장면 등이 있다. (이상한 것은 이 재연 장면이 허구를 동원해서라도 채워 넣어야 할 만큼 긴급한 결여가 있어서 요청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시각적 잉여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즉 고유의 목적을 지닌 이미지라기보다는 목소리를 보조하기 위해 덧댄 비주얼이다.) 

사태의 ‘주인공’으로서의 철거민들과 그들의 입장이 부재하는 가운데 <두 개의 문>이 관객에게 제시하는 이 모든 것들은, ‘참사(용산 남일당 건물 망루의 화재)는 왜 일어났으며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물음과 ‘명령에 따라 사지로 내몰린 경찰특공대원들 또한 희생자’라고 하는 판단을 (직접 제시하기보다는) ‘둘러싸고’ 꼼꼼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 영화가 유별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용산참사와 관련해 실제 열렸던 재판을 관통하는 물음과 판단 주위를 맴돌다가는 결국은 그 모든 배치가 쓸모없는 것임을 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진술(참사의 그날 망루 안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따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철거민들의 투쟁을 그런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압하려 한 결정 자체가 문제라는 칼라TV 박성훈 피디의 말)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논리적으로는 자기지시적 역설의 구조를 취하고 있는 <두 개의 문>이 “한쪽을 성급히 편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다 폭넓은 지지를 얻게 된 것은 약간 기이한 일이다. 그 자기지시적 역설의 구조가 “철거민이 망루로 내몰린 것인지, 망루를 선택한 것인지 영화는 따져 묻지 않았다”(신광영,『동아일보』)는 식의 역겹고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불평까지도 허용하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철거민과 경찰특공대원 모두를 공히 피해자로 규정하면서 ‘진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쪽으로 관객을 인도한다고 보는 이들이 더 많아 보인다. “영화가 가해자의 존재를 숨기는 것은 아니다. 영화 도입부에 ‘무관용’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뉴스 보도 영상이나 참사 직전 김석기 경찰청장 임명 뉴스 보도 영상을 배치한 것은 누가 이 참사를 책임져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명확한 지표”(정원식,『주간경향』)라는 것이다.  


<두 개의 문>에서 부재하는 것을 ‘구조화하는 부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실은 이 부재가 아무 것도 구조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부재 자체를 구조화한다. 『씨네 21』의 정한석이 “무언가 없는 상태의 구조화” 혹은 “공백의 구조화”라고 지칭한 이 특징으로 인해, <두 개의 문>은 부재를 통해 구조를 드러내는 영화가 아니라 그 구조를 통해 반복적으로 부재의 자리를 지시하는 영화가 된다. 하지만 그 공백 혹은 부재는 정한석이 염두에 두고 있는 바와는 달리 불붙은 망루 안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나 일부가 삭제된 경찰의 채증영상 같은 것들과는 무관한 것이다. 참사가 일어난 그 순간 망루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공백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내부에서 싸우도록 내몰렸던 이들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보고 있는 그의 견해 - “용산 참사의 현장에서 죽은 고인들은 마치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모두 죽어나간 유태인들처럼, 감독들의 증언자가 될 수 없었다”(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프레시안』)는 말에서 얻은 암시를 과도하게 밀고 나간 - 는, 용산의 망루가 수용소가 아니라 진지, 보루, 바리케이드라는 간단한 사실로 인해 다소 미심쩍은 것이 된다. 사실 <두 개의 문>이 구조화하고 있는 부재와 관련된 것은 망루가 아니라 법정의 배심원석이다. 이 영화는 국민참여재판(용산 사건의 국민참여재판 신청은 2009년 3월 26일 기각되었다)이 실제로 열렸더라면 마련되었을 그 자리에 관객을 초대하고 있다.   

관객을 부재의 자리로 불러들여 진행되는 이 가상의 재판은 그 재판의 의의를 무력화시키는 진술(중요한 것은 6명의 죽음을 초래한 결정과 그것을 뒷받침한 권력이지 죽음과 그 원인에 대한 증언이나 증거가 아니라는 것)과 함께 끝난다. <두 개의 문> 연출자들은 “철거민들이 무리한 요구를 했든 불법 행위를 했든, 문제는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대했는지, 억울함을 호소하며 저항하는 국민에게 특공대를 투입시켜 진압한 것이 문제의 초점이다”(여성주의 저널『일다』)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배심원의 자리를 부재로서 구조화하고 이를 통해 각각의 관객을 호명한 뒤 철거민 진압과정을 재구성해 그들 앞에 펼쳐 놓는 이 영화는, 사실 의도적으로 그 ‘초점’에서 빗나가 있다. 물론 관객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 빗나감을 감수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개의 문>을 본 적지 않은 이들이 망루에서 일어난 화재의 진실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말하거나, 그 진실을 밝힐 증인과 증거의 부재를 아쉬워하거나, 나아가 그 증인과 증거의 부재로부터 이론적인 해석을 끌어내려 할 때마다, 나는 혹시 이 영화가 법의 바깥을 가리키면서도 본의 아니게 관객을 자꾸만 법 안에 머물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진다. 망루의 ‘진실’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권력의 책임을 묻는 것은 법정에서 다룰 수 없는 윤리적 정의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사법적 정의만을 문제 삼는 법은 살아남은 철거민들을 거듭 망루 안으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다. 투쟁의 거점이었던 망루를 법적 판단의 거점으로 뒤바꿔 놓으면서, 그 판단과 관련해 유일하게 가능한 법적 물음, 즉 망루에서 일어난 화재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물음만을 되풀이하는 식으로 말이다. 실정법을 놓고 말하자면,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과 관련해 정의를 주장하는 것은 오직 법 바깥에서만 가능하고, 법 안에 머무는 한 저항은 언제나 유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용산은 이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 비극적 참사와 그에 잇따른 일련의 사건들을 포괄하는 고유명이 되었다.) 그런데 <두 개의 문>은 법적으로 물을 수 없는 것을 묻기 위해 그 스스로를 법정으로 만들고 나서 관객을 배심원으로 불러들인다. 영화 말미에 삽입된 박성훈 피디의 말은 흡사 이에 대한 항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한편, 부재와 더불어 이 영화의 구조가 겨냥하고 있는 ‘분리’의 전략을 살펴봐야 한다. “경찰특공대 자체를 (명령을 내린 자와) 분리해내고, 대원들을 상급자와 분리해내고, 그렇게 철거민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동참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일다』)고 한 연출자들의 말은, 이 분리를 통해 ‘진짜’ 책임자 혹은 가해자를 적시할 수 있으리라는 단순한 믿음과 만나는 순간 위험해진다. 이처럼 분리과정을 반복해 공권력의 중심을 부정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은, 진압경찰 개개인을 구체적으로 호명해냄으로써 관객이 그들에게 감정이입하게끔 한 연출자들의 의도에는 걸맞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론 이명박이나 김석기 같은 개인을 추상화된 국가권력의 ‘라벨’(거짓 구체성)로 삼게 되는 함정을 피하지 못한다. ‘폭력의 책임자를 위해 복무한 피해자들’(경찰특공대원들, 그리고 영화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철거용역들)을 책임자와의 연관에서 ‘분리’해내는 매 순간마다, 권력 또한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짓으로 구체화된 권력의 아바타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태풍



3. 김기덕의 <피에타>, 그리고 베니스영화제 수상규정 (2012.9.10)


베니스영화제 수상소식을 들은 후에 <피에타 Pieta>를 보았다. 집에 돌아와 올해 베니스 경쟁부문 심사위원단(총 8명)이 어떤 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건 그저 내가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동안 생긴 버릇일 뿐이다. 베니스영화제 홈페이지를 살펴보던 중 전규환 감독의 <무게>가 퀴어라이온(Queer Lion)상을, 유민영 감독의 <초대>가 최우수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축하할 일이지만 <피에타> 수상소식에 묻혀 거의 보도되지 않은 듯하다. <무게>는 베니스의 공식부문과는 별개로 나름의 조직과 규정을 두고 있는 독립병행부문 중 하나인 베니스 데이즈(Venice Days) 부문 - 또 하나의 독립병행부문으로 국제비평가주간(International Critics' Week)이 있다 - 초청작이며, <초대>는 공식부문 중 하나인 오리종티(Orizzonti) 부문 초청작이다. 

베니스의 다른 작품들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피에타>를 다른 영화들과 견주어 말할 수 없고, 사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가까스로 마리오네트의 수준을 벗어난 두 주연배우의 연기(우스꽝스러울 만큼 지나치게 잿빛으로 화장(化粧)된 시체는 이 영화에 걸맞은 연기의 표준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 같다), 예수와 마리아를 음화(陰畵)로 그려내는 (익숙한) 파격과 '십자가의 길'(Via Crucis)의 공포와 고통을 강조하는 종교적 보수성을 뒤섞은 광폭한 이미지의 우화(<사마리아>(2004) 이후의 김기덕은 현대의 로욜라가 되려는 게 아닐까?), 청계천 공구상가 골목마저도 <섬>(2000)이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의 '서식지'처럼 다루는 (인류학적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 도시론, 이 공간을 지배하는 시간의 추상성(조민수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이정진을 협박하는 사내가 이정진이 그에게 가한 악행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할 때, 대체 이 영화는 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것은 김기덕다운 것으로 쉽게 납득이 되는 것이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영화 보는 내내 <피에타>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 영화는 내가 보는 마지막 김기덕 영화가 될 거라는 예감과 함께. 그의 영화에 동의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다만 그의 기괴한 종교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이제 민요 '아리랑'은 고통[이라는 국가]의 찬송가[애국가]가 되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더 마스터 The Master>가 <피에타>에게 황금사자상을 빼았겼다는 요지의 미국 언론 보도로 인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말이 오가는 걸 알게 되었다. 살펴보니 국내 언론에서 약간 모호하게 쓴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문제의 발단은 베니스영화제의 (꽤 기묘한) 수상규정이다. (1) 경쟁부문의 작품은 원칙적으로 두 개 이상의 상을 동시에 수상할 수 없지만, 배우에게 주어지는 상(남우주연상 혹은 여우주연상) 하나와 다른 상 하나를 동시 수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 수상할 수는 있지만 감독상과 각본상을 동시 수상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2) 하지만 황금사자상(대상)을 수상한 작품은 어떤 다른 상도 함께 받을 수 없다. <할리우드 리포터 The Hollywood Reporter>의 보도(기사원문 보기 : [1] [2])에 따르면, 심사위원장 마이클 만은 전화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수상]규정이 꽤 특이하다. 한 영화는 오직 하나의 상만 받을 수 있다. 예외라면 배우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한 영화는 배우에게 주어지는 상과 다른 상들 가운데 하나를 같이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배우에게 주어지는 상과 황금사자상을 같이 받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번 베니스 심사위원단은 (위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연) 심사회의에서 <더 마스터>에 황금사자장, 감독상, 그리고 남우주연상을 주기로 결정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규정상 그런 식으로 시상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된 후, 재차 심사회의를 열어 <더 마스터>에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피에타>에 황금사자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한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마이클 만은 심사위원단은 <피에타>도 정말 좋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함께 심사한 이들을 칭찬하는 걸 제외하고는 심사회의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거절했다." 

정리하자면 <더 마스터>의 두 주연남우(와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던 나머지, <더 마스터>가 응당 받았어야 할 황금사자상을 <피에타>에 돌리고라도 남우주연상을 주고 싶었다는 말이 된다. 이 보도가 사실인지 아닌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고, 사실이라 해도 나로선 납득하긴 힘들다. <피에타>에 황금사자상을 수여한 것은 "[시네마에 대한] 모독이자 농담"(드니즈 림(Dennis Lim))이라고밖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2. 니키 해믈린의 필름 퍼포먼스 (2012.8.31)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고 있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전시에 이어)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EXiS / 8월 30일 ~ 9월 7일) 개막식에 다녀오다. 떠들썩한 전시성 이벤트도 없고, 순전히 정치적 사교나 자기홍보를 위해 참석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이들도 거의 볼 수 없는 이 개막식은, 영화제 개막식 가운데선 매우 드물게 시간(그리고 예산)낭비란 느낌을 주지 않는 행사다. 개막작은 영화보다 <영화 예술 현상 Film Art Phenomena>(2003)이라는 저서로 국내에 먼저 소개(?)된 -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바는 없지만 몇 년 전까진 광화문 교보문고 외서코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 영국실험영화작가 니키 해믈린(Nicky Hamlyn)의 <4개의 루프 4 X LOOPS>(1974)였는데, 하얀 바탕 위를 크게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검은 'X'가 주기적으로 깜빡이는 영상을  4대의 16mm 영사기를 통해 (루프(loop) 방식으로) 스크린에 비추면서 각 영상의 스크린상 위치를 수동적으로 조절해가며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내는 필름 퍼포먼스(film performance)다. (아래 사진 참조)


이때 각각의 영상은 크게 3개의 속성을 지닌 모나드처럼 기능한다. 백광(하얀 바탕), 검은 'X'  그리고 그 'X'가 깜빡이는 주파수/빈도수(frequency). (덧붙이자면 시간이 부여한 흔적으로서의 스크래치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영상은 앞의 두 개의 속성은 공유하지만 주파수/빈도수는 서로 다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각각의 영상은 (작가의 영사기 조작에 따라) 서로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겹쳐지고, 나아가 분할되는 가운데, 결코 다른 영상에 의해서는 온전히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실체로서, 하나의 모나드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개체적 실체는 결코 다른 개체적 실체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고 마찬가지로 그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빌헬름 라이프니츠, <형이상학 논고>)) 즉, 복합된 것(필름 퍼포먼스로서의 <4개의 루프>)을 이루는 단순한 실체로서의 모나드이자, 모든 다른 모나드들과 구별되는 개별적인 모나드로서. (라이프니츠, <모나드론>) 이러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 이외에 <4개의 루프>에는 그 어떤 목적도 없다고 여겨질 정도다. 

<4개의 루프> 상영/퍼포먼스가 끝나고 몇 개의 개막행사가 이어진 후, 예정에 없던 상영/퍼포먼스가 추가로 이루어졌다. 니키 해믈린의 신작 <링 Rings>(2012)이 초연 - 역시 4대의 16mm 영사기를 활용했다 - 된 것이다. 조만간 개최될 토론토영화제 아방가르드 섹션(마이클 스노우의 작품제목을 딴 "파장"(Wavelength")이라는 섹션명을 갖고 있다)에는 그의 <금성일면통과 2 The Transit of Venus 2>(2012)가 초청되었는데 전작 <금성일면통과>(2005)와 함께 상영될 예정이라 한다. <금성일면통과>는  EXiS 니키 해믈린 특별전 상영작 가운데 하나다.


1. (서툰) 종교로서의 영화제 (2012.8.29)


"영화보다 축제? 지역언론에 화답한 전주영화제"(<오마이스타>, 2012.8.25)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떠올린 생각. 내 해임과 그 이후 벌어진 일들에 대해 전주영화제는 점점 유사 종교적인 태도로 대응하고 있다. "프로그래머 해임에 대한 영화인들의 앙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 "전주영화제 측은 '전임 위원장이 이미 정리한 사안'이라고 밝"혔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앞으로도 나의 해임과 관련된 모든 사안은 전임 민병록 집행위원장의 사임으로 다 "정리"되었다는 식으로 반응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가 기자에게 저런 식의 발언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과감한 발상은 원죄와 대속의 논리로 기독교 신학을 정초한 사도 바울의 어설픈 패러디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어설픈 패러디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메시아는 물론이고) 바울은 존재하지 않고, 가롯 유다(들)에겐 아겔다마 따윈 안중에도 없어 오히려 무리 가운데 남아 사도들을 이끌고 있는 형편이고, 복음이란  "문화는 앞으로 먹을거리"(신임 고석만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전북일보> 김은정 콘텐츠기획실장과의 인터뷰 중)라는 것이다. 물론 이 복음의 메시아가 도래할 것을 내다본 예언도 있었다. 일찌기 <전라매일>(2012년 5월 2일)에 쓰여진 바 "모든 문화행사가 이제는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행사로 변해야 한다. [...] 문화도 돈이다. 고부가가치다. 영화, 소리, 발효음식, 서예 등 다 경제적으로 돈벌 수 있는 사업성을 발휘해야 할 시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예언자께선 '고부가가치'라는 용어의 뜻과 용법을 정확히 알지 못해 이를 문화의 술어이자 돈(화폐)의 동의어처럼 쓸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은 이해해 주기로 하자.) 이 서툰 종교집단에게 야콥 타우베스의 <바울의 정치신학>(이것은 8월에 읽은 최고의 책이었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진심으로

2012-08-27

<서신교환> 프로젝트

어제(8월 2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빅토르 에리세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서신교환>(2005~2007)을 보고 나오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자크 데리다의 <우편엽서 The Post Card>의 문장들을 떠올렸다. "편지가 항상 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그것은 언제라도 반송되지 않은 채 조각나 버릴 수 있다." 문득 이 데리다의 말은 에리세-키아로스타미의 영화편지 뿐 아니라, <서신교환> 프로젝트 전체를 설명하기에도 적절하리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보다 깊이 생각해 보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래는 서울아트시네마 소식지에 기고했던 <서신교환> 프로젝트에 대한 글을 옮긴 것이다. 


'영화-편지'의 조건, 또는 '영화-편지'는 가능한가


좀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을 이야기로 시작하는 걸 양해해 주기 바란다. 고다르와 과학, 이는 사실 하나의 소논문 주제도 될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관계다. 영화가 하나의 예술로서 자리 잡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다르는 영화는 예술이 아닌 다른 어떤 것, 특히 과학을 모델로 삼으면서도 과학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변화됨으로써만 비로소 강력한 것이 될 수 있으리라 보았던 것 같다. 그가 한때 장-피에르 고랭과 결성했던 지가 베르토프 집단도, 흔히 논의되는 바와 같이 정치적 영화제작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영화제작을 일종의 과학적 공동연구와 같은 것으로 변환시키기 위한 기획, 예컨대 수학계의 부르바키(Bourbaki) 집단이나 수학적 방법론을 문학연구와 창작에 끌어들인 울리포(Oulipo) 집단 등과 유사한 기획이었던 것으로 간주할 때 훨씬 더 흥미로운 사색의 장이 열린다. 고다르는 영화가 예술일 수 있었던 시대는 그가 데뷔했을 즈음에 이미 끝났다고 보았다(1968년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는 더 이상 예술작품이 아니다 [...] 10년 전이었다면 몰라도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가 보기엔 이른바 작가주의라는 것도 영화의 과거와 그 자신이 등장한 시기(1960년대)를 일단 예술로서 긍정하면서 무언가 다른 미래를 불러들이기 위한 연결고리였을 뿐 미래의 영화 ‘예술가’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다르의 바람과는 달리 영화가 예술로서 고착된 것, 바꿔 말하면 영화감독이 예술가일 수 있음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시대가 열린 것이야말로 현대영화의 커다란 굴절이라 할 만한데, 이로 인해 초래된 여러 부작용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화감독이 전통적 예술의 창작자들과 다를 바 없이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다르는 과학자들이 특정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작업한다는 사실에도 매력을 느꼈고 그러한 상호성을 영화가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너선 로젠봄과의 인터뷰(1980년)에서 "도쿄의 과학자들은 샌프란시스코의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단편적인 언급에 비평적으로 확장 가능한 통찰이 담겨 있다면 그것은 도쿄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의 거리에 대한 인식과 그 거리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사유의 도구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가능한 장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우선 편지와 관련된 거리의 문제를 살펴보자. 편지란 서로 떨어져 있는 친밀한 이들 뿐 아니라 서로 개인적인 교분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는 이들 사이에서도 오갈 수 있는 것이다. 이걸 조금 달리 말하자면 편지가 발송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이건 심리적이건 간에 어떤 거리가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편지의 교환이란 바로 그 거리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가까운 친구와는 대화를 나누면 된다.) 물론 거리의 존재 자체가 곧 편지의 교환을 촉발시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친밀하지 않거나 심지어 낯선 이들 사이에서라면 편지의 교환 가능성은 전적으로 그 교환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의지에 내맡겨지게 된다. 다음으로, 과학에 필적할 만큼의 공통된 사유의 도구를 갖고 있다곤 말하긴 힘든 - 달리 말하면 공약가능성이 낮은 - 영화 같은 영역에서, 비단 개인적 교분을 다지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일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편지를, 그것도 문자가 아니라 이미지와 사운드로 된 영화-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앙트완 베르만의 선구적인 저작(<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시련>)에 이어 철학자 폴 리쾨르가 그의 <번역론>에서 정식화한 논의를 빌리자면, 영화-편지 교환은 모놀로그의 씁쓸함 속에 갇히지 않고 낯선 것이 주는 시련을 통해 스스로의 낯섦을 깨닫기 위한 '언어적 환대'(linguistic hospitality)로서의 번역과 유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영화는 만국공통어라는 기만적인 주장은 일소에 부치고) 각각의 영화감독은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모국어를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본다면, 영화-편지 교환이란 타인의 영화라는 외국어를 통해 거꾸로 자신의 영화의 낯섦을 깨닫고자 하는 노력, 즉 영화적 환대 없이는 성립 불가능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상의 언급과 관련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현대문화센터(CCCB)에서 기획한 <서신교환> 프로젝트는 우리의 주목에 값한다. 국적과 언어를 달리하는 두 명의 영화감독이 일련의 영화-편지를 만들어 서로 교환하고 이 결과물을 일반에 공개한다는 아이디어는, 원래 알랭 베르갈라와 호르디 바요가 기획한 전시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후 "에리세-키아로스타미: 서신교환"(Erice-Kiarostami: Correspondences)이라는 제목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2006.2.10~5.21), 프랑스 파리(2007.9.19~2008.1.7) 그리고 호주 멜버른(2008.8.21~11.2) 등에서 진행된 이 전시는, 같은 해(1940년)에 태어난 두 명의 거장감독,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스페인의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작품들과 설치작품들을 기반으로 삼았다. (키아로스타미의 영상설치작업에 대한 관심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그는 침대에서 잠자는 젊은 커플의 모습을 촬영해 침실처럼 꾸며진 공간에 놓인 실제 침대 위에 100분 동안 영사하는 <잠자는 사람들>(Sleepers)을 제작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였고, 이는 "에리세-키아로스타미" 전시에도 포함되었다. 한편 미술계 쪽에서는 빌 비올라가 1992년에 동명의 설치작품을 내놓은 바 있는데 이 또한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처럼 앤디 워홀의 <잠>(1963)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전시공간에서 계승한 것이었다.) 두 감독은 1997년에 한 영화제에서 짧은 만남을 가졌을 뿐 친밀하게 교분을 나눈 적은 없는 사이였지만 서로의 작업에 대한 존경심으로 기꺼이 전시에 참여하기로 동의했고, 논의와 숙고 끝에 에리세는 영화-편지를 만들어 서로 교환한 뒤 이를 전시에 포함시키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영화-편지 작업과는 별도로 에리세는 이 전시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붉은 죽음>(2006)이라는 33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2005년 4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이어진 두 감독의 영화-편지 교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잠자는 사람들 Sleepers>(Abbas Kiarostami, 2001, video installation)

전시는 성공적이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영화-편지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서신교환> 프로젝트가 영화-편지를 실험한 최초의 시도라고는 말할 수 없다. (고다르의 경우만 해도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1972)나 <프레디 뷔아슈에게 보내는 편지>(1982)에서 일찌감치 에세이 형식의 영화-편지를 실험한 바 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편지 교환의 회로를 실제로 가동시키며 영화-편지의 실험을 성공시킨 사례는 분명 유례를 찾기 힘들었다. 에리세와 키아로스타미가 주고받은 10통의 영화-편지들은 타인의 작품에 대한 번역에 기초해 그것을 자신의 창작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는 영화적 환대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때 교환의 전체적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첫 번째 편지와 그에 대한 답장이다. 알랭 베르갈라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통상 첫 번째 메시지가 앞으로 이루어질 서신교환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하지만 이 첫 편지에 대한 답장 역시 마찬가지로 결정적인데, 이는 장차 이어질 편지들의 교환 규칙 자체를 설정한다."

<유리병 편지 Sea-Mail> (에리세-키아로스타미의 <서신교환> 중에서)

에리세와 키아로스타미의 <서신교환> 프로젝트의 성공에 고무된 기획자들은 이후 다섯 개의 프로젝트 - 서신교환이 시작된 날짜가 이른 순부터 나열해 보면, 이사키 라쿠에스타/가와세 나오미, 하이메 로살레스/왕빙, 요나스 메카스/호세 루이스 게린, 페르난도 에임브케/김소영, 알베르 세라/리산드로 알론소 - 를 추가로 진행했다. 이 모두가 예술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포스트-시네마 시대에 가능한 영화 형식 하나를 진지하게 실험했고, 그 실험의 결과 초기조건(첫 번째 편지와 그에 대한 답장)에 따라 영화-편지 교환의 성격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 혹은 증거들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간과할 수 없다. 에리세와 키아로스타미에 이어 각각의 감독들은 영화가 무언가 다른 것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를 묻기 전에 일단 영화-편지를 주고받는 일의 가능성과 의의를 가늠해 보려 했고, 이 점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게린과 메카스의 <서신교환> 프로젝트였다.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이 프로젝트는 '영화적 서간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영화-편지 특유의 스타일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결론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영화-편지들에 편지라는 인상을 부여하는 것이 있다면 문학적 서간체를 고스란히 본뜬 보이스오버나 자막 정도이며, 영화-편지로서 교환된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제외하고는 그것이 편지임을 암시하는 어떤 단서도 없는 경우도 있다. 가장 극단적인 예로, 알베르 세라가 리산드로 알론소에게 보낸 '편지'는 그의 두 번째 장편 <기사에게 경배를>(2006)에 참여했던 배우 및 스탭들과 함께 찍은 146분짜리 장편영화다. 그리고 알론소는 자신의 데뷔작 <자유>(2000)의 주인공을 데리고 제목이 없는 23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세라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를 제외하면 그것이 편지임을 알려주는 아무런 단서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 등장인물은 알론소가 준비 중인 장편영화의 스토리를 낭독한다. 이 두 감독 간의 영화-편지 교환은 단 한 번의 주고받음으로 끝났지만, 사실 이는 편지의 목적지를 불분명하게 만듦으로써 - 달리 말하자면, 잠재적으로 다수의 수신인을 가정함으로써 - 교환의 회로를 사방으로 열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초기조건을 고려하면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이제 편지는 교환의 회로를 벗어나 답신에 대한 기대 없이 무한히 산포될 수 있다.

영화적 서간체 혹은 특별히 영화적인 영화-편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발송이라는 사태를 개시하고 교환의 회로를 가정하기만 하면, 사실상 어떤 영화적 형식도 영화-편지로서 기능할 수 있다. 이때 세상의 모든 영화는, 서로가 서로의 낯섦을 깨닫게 만드는 낯선 것으로서, 가능한 모든 우연한 마주침에 열려 있는 환대의 공동체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2012-07-21

Le départ


4. RIP. Chris Marker (2012.7.30)


크리스 마르케(1921~2012)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문득 내가 본 마르케의 마지막 영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떠올려 본다. 그가 아끼던 프랑스 감독 이실드 드 베스코(Isild Le Besco) - 배우로서 더 잘 알려져 있다 - 의 두 번째 장편 <샤를리 Charley>(2006)를 위해 만든 1분짜리 단편 <레일라의 공격 Leila Attacks>이었던 것 같다. 고양이를 위협하는 쥐(레일라)의 모습을 담은 이 트레일러 영상에서 마르케는 스스로를 "가장 유명한 미지의 영화작가"(The Best-Known Author of Unknown Movies)라고 지칭한다.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동안, 크리스 마르케에게 연락해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한 적이 있다. 그는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고 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얼마 후 참여가 어렵겠다는 연락이 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그가 제안을 받아들여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했다면 그것이 그의 마지막 영화가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편지 정리해 둔 것들을 찾아보니 2006년 8월 23일에 마르케에게서 받은 편지가 있다. (이 편지는 예전에 내 네이버블로그에도 올린 적이 있다.)

"친구들에게,

부디 내가 당신들의 친절한 제안을 잊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나는 앞으로 몇 달 간 나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내겐 이미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이 너무도 어처구니 없이 돌아가고 있어서 새로운 작품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던 것 뿐입니다. 단지 예산문제 때문만은 아니었지요. 여러분이 내게 5만 달러의 돈 대신에 차라리 5만 분의 시간을 더 줄 수 있다면 혹시 또 모르겠지만... 지금 내게 가장 시급한 일은 이 세상에서 그리고 (특히) 저 세상에서 일어날 일에 대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한데 묶어보려 하고 있는 서로 다른 몇 개의 프로젝트들 때문에 새로운 작업에 착수하는 것은 무리이기도 하고요. 고양이들은 아홉 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다고들 말하지요. 하지만 그건 충분치 않아요. 최소한 열 두 개의 목숨은 있어야 할 텐데.

여러분의 2007년 영화제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크리스"  

3. 또 하나의 편지 (2012.7.30)


뒤늦게 내 해임소식을 듣고 편지를 보내 온 이들 가운데 존 지안비토 감독(<페르난다 후세인의 미친 노래>, <이윤동기와 속삭이는 바람>, <비행운> 등 연출)이 있다. 지안비토 자신도 예전에 하버드필름아카이브의 관장으로 재직하다 해임된 경험이 있어서인지, 동병상련의 마음이 담긴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 말미엔 그가 해임되었을 당시 고(故) 아모스 포겔(지난 4월에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에게서 받은 편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우리의 삶의 길은 평탄하지도 않고, 곧고 똑바로 나 있는 것도 아니라네. 언제라도 뒤바뀔 수 있는 거지. 나 또한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적지 않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네. 하지만 난 자네에게 싸움을 포기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바이네. 삶은 우리를 위해 수많은 놀라운 것들을 예비하고 있다네. 잊지 말게나. 자네나 나처럼 미친 인간들은, 영화를 만들면서 큐레이터로, 작가로, 교육자로 동시에 활동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게다가 파트너를 위한 시간과 기회도 가질 수 있지 않은가. 홀로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것이 낫지. 내게 마르샤가 없었다면 난 지금껏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을 거야. 사랑, 섹스, 동지애 그리고 우정은 삶을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것들이지. 10년의 세월이 또 지나고 나면, 그때 자네는 스스로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될 걸세. 나는 확신하는 바이네."

2. <인문예술잡지 F> 제6호 발간 (2012.7.30)


<인문예술잡지 F> 여름호(제6호)가 발간되었다. 이번 호 특집은 '예술가의 프로그램'이라는 주제로 꾸며졌다. 새로 편집위원에 합류하게 되신 조효원 선생이 특집기획을 맡았다. "<인문예술잡지 F> 6호의 특집, '예술가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다. 예술적 상상력과 인문적 상상력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연극, 무용, 음악, 미술에서 주목받는 예술가 4명에게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으로 작업을 해 나갈 것인지를 물었다. 그들의 글을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하고 글을 쓰는 8명에게 나누어 주었다. 만화가, 소설가, 음악가, 시인, 큐레이터, 문학평론가, 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주어진 예술가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노린 것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글을 쓰는 사람들을 자극해서 새로운 상상을 펼치도록 하는 것이었으니까." 아래는 이번 호의 목차. 

특집 : 예술가의 프로그램

미디어아티스트 장재호의 프로그램 (장재호)
조용하고 요란한 축제, 태싯 그룹과 장재호 (김태권)
도약 (정소연)

연극연출가 윤한솔의 프로그램 (윤한솔)
세 가지 불가능성 : 윤한솔과 그린피그에 반(反)하여 (조효원)
동시대인과 퍼즐 조각들 : 윤한솔의 글에 부쳐 (오은)

개념미술가 김소라의 프로그램 : Future Plan (김소라)
픽션들 : 김소라 작가의 '미래의 계획'에 의거한 단상 (김해주)
유리 역과 나무 놀이터 : 김소라의 <실패 프로젝트>에 겹쳐 놓은 두 장면 (윤경희)

안무가 정영두의 프로그램 : 무용의 나, 나의 무용 (정영두)
무용과 음악을 위한 '시대착오적' 형이상학 시론 (최정우)
움직임의 예술, 우리들의 무용 (김지윤)

CRITIC

[다원예술비평] 일본에서 본 한국의 다원예술 (이승효)
[정신분석과 예술] 어떤 위험한 방법에 관하여 : 크로넨버그의 <데인저러스 메소드> (맹정현)
[영화비평] 페이지를 넘겨라 : 미장센에서 디스포지티프로 (1) (에이드리언 마틴 / 유운성 역)

1. 출발 (2012.7.21)


Regency, San Francisco (Hiroshi Sugimoto, 1992)


스티븐 소더버그의 <헤이와이어 Haywire>(2011)나 프랑수아 트뤼포의 <나처럼 예쁜 여자 A Gorgeous Girl Like Me>(1972)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감정이 북받치는 요즘이다. 어떤 영화를 봐도 지난 한 달 반 동안 개인적으로 겪은 일들이 기이하게 중첩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이 트뤼포 영화의 후반부 반전조차, 예전에 본 터라 이미 알고 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게는 정말이지 '리얼'하게 다가온다. 지난 열흘 동안, 문득 울화가 치밀 때마다 거듭 바라보곤 했던 스기모토 히로시의 사진 한 장. 이상하게도 이 사진을 한참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아니, 그런 느낌이 들곤 했다고 말해야 옳겠다. 이 한 장의 사진에는 한 편의 장편영화가 상영될 동안의 시간이, 무인(無人)의 공간에 각인된 익명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로 저 백색의 스크린에 그 익명의 기억이 물화되어 있는 것이다. (스기모토 히로시는 한 편의 장편영화가 상영될 동안 사진을 고스란히 노출된 채로 둠으로써 위와 같은 결과를 얻어냈다.) 한편으론 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인문예술잡지 F>에 연재하다 잠시 중단한 글("뤼미에르 은하의 가장자리에서")의 두 번째 장을 위해 메모해 두었던 하나의 아이디어를 계속 떠올리곤 했다. 영화적 이미지는 그것이 사진적 이미지의 연속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로 인해 중대한 패러독스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그리고 영화비평/이론사의 각종 도그마(예컨대 리얼리즘, 브레히트적 모더니즘, 기 드보르의 상황주의 시네마, 포스트모더니즘 등)는 이러한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다름 아니었다는 점을,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기초적인 논의들을 빌려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 스기모토의 사진과 더불어 내게 위안을 주는 또 하나는, 크라이테리온에서 출시된 홀리스 프램튼(Hollis Frampton) 블루레이에 담긴 작품들을 (라이프니츠를 읽으며) 틈틈히 다시 보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부천영화제에 다녀오려 한다. 최근 <발할라 라이징 Valhalla Rising>(2009)과 <드라이브 Drive>(2011)를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된 니콜라스 윈딩 레픈(Nicholas Winding Refn)의 초기영화들을 영화관에서 다시 보고 싶다. 다음 주에는 또 하나의 반가운 특별전이 마련되어 있는데, 바로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www.nemaf.net)에서 마련한 존 토레스(John Torres) 전작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작전이라고는 할 수 없고 장편전작과 주요단편 대부분이 상영될 예정이다.) 필리핀에서 미완성버전으로 공개되어 이미 몇몇 평자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얻은 신작 <마팡아킷 Mapang-Akit>(2011)도 국내 첫 공개될 예정이다. 7월 27일(금) 오후 8시에는 존 토레스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마련되어 있고 나는 패널로 참여할 예정이다. 

2012-06-30

장마


1. Numéro Zéro,  Degré Zéro (2012.6.30)


<0번 Numéro zéro> (장 외스타슈, 1971)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역시!"와 "설마..."가 그것이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외스타슈의 경우에는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두 반응 모두를 취하게끔 했던 것은 아닐까. 이처럼 그에게는 복잡한 구석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그의 복잡함을 '옹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옹호'가 필요한 대상은 누구나 좋아하는 대상은 결코 아니지만 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작가이기 마련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옹호'한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그는 한때 정신적 동지라고 생각했던 트뤼포나 샤브롤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비판을 쏟아 부었다. 즉 그의 공격은 주위의 온갖 것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 외스타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비타협과 비전향의 중요성이다. 그밖의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통해 살아가는 방법은, 적어도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 영화가 죽으면 영화를 통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 또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 그는 영화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는 길을 택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음의 작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삶의 작가'이다. <엄마와 창녀> (1973)같은 영화는 죽음과 이웃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삶을 희구하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영화다. 시나리오에 쓰여진 모든 것은 삶을 그려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에 단 한 부분이라도 생략되어선 안된다. 여기서 비타협과 비전향의 정신이 관철된다. 한편 여기서의 '삶'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이의 삶을 배제하는 삶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여 공존하기 위한 사고로서의 삶이다. 이것이야말로 <엄마와 창녀>의 가장 근본적인 주제라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 아오야마 신지, <비타협, 비전향: 장 외스타슈>


2. 프랑수아즈 도를레악  (2012.6.30)

Françoise Dorléac (1942~1967) 

내일(7월 1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프랑수아 트뤼포의 <부드러운 살결 La peau douce>(1964) 상영 후 강연을 할 예정이다.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물론 트뤼포의 초기작품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 영화가 매우 각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보다 프랑수아즈 도를레악의 존재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6월 26일)은 그녀가 불의의 차사고로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날이다. 그녀의 동생인 카트린 드뇌브와 함께 출연한 자크 드미의 <로슈포르의 숙녀들 Les demoiselles de Rochefort>(1967)은 그녀 생전에 개봉된 마지막 출연작이 되었다. 


3. 페드로 코스타의 신작  <스위트 엑소시스트>(2012)

페드로 코스타의 신작 <스위트 엑소시스트 Sweet Exorcist>가 오늘 9월(아마도 베니스영화제?)에 첫 공개된다는 소식이다. 메일과 함께 작품스틸사진 한 장과 간략한 시놉시스가 첨부되어 왔다. 장편은 아니고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빅토르 에리세,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함께 하는 옴니버스 영화 <히스토리즈 Histories>에 포함될 단편이다. 시놉시스 : "1974년 4월 25일 새벽. 젊은 장교들이 거리에서 혁명을 주도하는 동안, 폰타이냐스의 사람들은 숲에서 길을 잃은 벤투라를 찾아 다닌다. 별안간, 강철 두건을 쓴 사나이가 나무 뒤에서 튀어나와 그를 납치하는데..." (1974년 4월 25일은 포르투갈에서 카네이션혁명이 일어난 날이다.)


<스위트 엑소시스트 Sweet Exorcist>(페드로 코스타, 2012)


2012-06-04

여름이 다가올 때


1. 아즈마 히로키의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6.4)


지난 주 서점에 들렀다 아즈마 히로키의 신간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 오타쿠, 게임, 라이트노벨>이 나온 걸 알고 구입했다. 이미 번역되어 나온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속편 격인 책이라 - 일본어판 제목은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2>로 되어 있다 - 관심을 갖고 읽었는데, 확실히 전작보다 더 구체적이고 과감하며 야심적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반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책인 탓인지 이론적인 섬세함은 다소 기대에 못미친다.) 이 책의 바탕이 된 아즈마의 논문 "메타리얼픽션의 탄생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2" - 잡지 <파우스트> 한국판(학산문화사)에 연재되었다 - 를 이미 읽어 보았던 터라, 논의의 많은 부분이 이미 익숙한 것이기는 했다. 아즈마의 논의에서, 라이트노벨이나 마이조 오타로의 포스트모던적 소설들에 관한 것은 이 쪽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지 않던 '교양계층'의 독자들도 어느 정도 그의 설명에 힘입어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지만 - 게다가 마이조 오타로의 소설들은 꼭 아즈마 식의 '구원비평'이 아니더라도 다카하시 겐이치로 같은 이들의 소설에 익숙한 이들에겐 얼마든지 환대받을 수 있는 것이니까 -, 정작 이런 독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미소녀게임 - 한국에서 '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 혹은 줄여서 '미연시'라고 불리는 - 에 관한 것들이 아닐까 싶다. 내게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아즈마의 신간을 다 읽고 나서 미소녀게임 하나를 다운받아 직접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쪽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미소녀게임의 초창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리프(Leaf)사에서 출시된) <키즈아토>를 골라, 시행착오를 거쳐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은 '공략집'대로 게임을 실행해 보았다. 설치 및 게임방법 숙지에 걸린 시간을 제하고라도 '올클리어'하기까지 무려 10시간이 넘게 걸린데다,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포르노그래픽한 이미지(와 그에 덧붙여진 장황하게 성행위를 묘사한 텍스트들)에 기가 질리긴 했지만, 아즈마의 주목을 끈 미소녀 게임의 구조적인 특징들이 어떤 것인지를 보다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즈마가 상찬을 아끼지 않은 몇몇 다른 미소녀게임에 도전하는 일은 여전히 좀 망설여진다.) 이 '소설적인 게임'들의 구조적인 특징들은 '게임적인 소설' - 곧 영화화된다고 하는 사쿠라자카 히로시의 <올 유 니드 이즈 킬 All You Need Is Kill> - 은 물론이고 루이스 부뉴엘(의 후기작), 홍상수(의 최근작), 알랭 레네의 <스모킹/노 스모킹> 같은 영화들과도 쉽게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즈마 자신조차도 이 미소녀게임들이 구조적 아이디어를 육화하는 문제, 전통적 비평의 틀을 빌려 말하자면 '문체론'적인 측면에서 매우 - 라이트노벨보다도 훨씬 더 - 허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아즈마로 하여금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다 모험적으로 - 짐짓 분석적인 외양을 취한 예언으로 - 밀고 나가게끔 자극하는 한편 끊임없이 그 모험에 위협을 가하는 숨은 불안이 되었던 것 같다.  

2. 케빈 B. 리의 비디오 에세이 시리즈
/ 조너선 로젠봄과 <사탄탱고> (5.26)


케빈 B. 리(Kevin B. Lee)를 알게 된 것은 작년 로테르담영화제에서다. 리닝(Li Ning)의 다큐멘터리 <테이프 Tape>(2010) -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 를 보고 난 다음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가 나와 마음이 맞는 영화평론가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후 친구가 된 우리는 5월에 전주에서, 그리고 9월에 토론토에서 다시 만났다. 토론토영화제 기간에 한 자그마한 클럽에서 열린 (로테르담영화제가 마련한) 파티에서 만난 케빈과 나는 계간 <시네아스트 Cineaste>의 리처드 포튼과 오늘날 영화비평의 변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오늘날의 영화비평이 문자의 제약을 벗어나 영화이미지와 사운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말(음성)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방식, 즉 '포스트-프로덕션으로서의 영화비평' - 간단하게는 DVD 코멘터리나 부가영상에서부터 장-뤽 고다르, 하룬 파로키, 톰 앤더슨, 피터 폰 바흐 등의 고도로 비평적이고 예술적인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 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때 케빈은 자신이 지금 구상하고 있는 비디오 작업도 바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어제 알게 되었는데, 그는 올해 8월 발표될 <사이트 & 사운드> 세계영화 베스트 투표에 맞춰, 이 투표에 참여한 세계각국의 저명한 평론가들의 코멘트를 담은 일련의 비디오 에세이 시리즈를 기획했다. <인디와이어 Indiewire>지의 프레스 플레이(Press Play) 비디오블로그 - 케빈 자신이 편집책임을 맡고 있는 곳이다 - 를 통해 지난 주에 공개된 오프닝 성격의 첫 번째 비디오는 로저 에버트에 대한 케빈의 트리뷰트였고, 이번 주부터 앞으로 매주 한 편씩 공개될 비디오에선 각 평론가들이 직접 출연해 자신들이 베스트로 꼽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케빈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로 꼽곤 하는) 조너선 로젠봄(Jonathan Rosenbaum)으로 그는 벨라 타르의 <사탄탱고>에 대해 말한다. (카메라에 내장된 마이크를 사용해 녹음한 탓에 사운드가 매우 거칠다.) 이 비디오 에세이 시리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된다.

Jonathan Rosenbaum on Satantango (1994)

3. 세계영화 베스트 10
/ 미조구치 겐지의 <잔국물어 (시든 국화 이야기)> (5.24)


지난 4월 21일 영국영화잡지 <사이트 & 사운드 Sight & Sound> 편집장 닉 제임스(Nick James)로부터 이 잡지가 1952년 이후 매 10년마다 발표해 온 '세계영화 베스트 10' 선정을 위한 투표에 참여해 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이 끝난 다음 날,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 리스트에 올릴 영화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 가운데 10편을 골라내는 게 문제였다 - 결국 5월 5일(토)에 10편의 영화리스트를 첨부한 답신을 보냈다. 사실 <사이트 & 사운드>의 공식발표(2012년 8월)가 있기 전까진 이 리스트를 공개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미 적지 않은 평자들이 개인 웹사이트나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들의 리스트를 공개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아래는 내가 보낸 베스트 10 리스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사이트 & 사운드> 측에선 각 평론가들에게 가능하면 영화별로 순위를 매겨 줄 것을 요청하긴 하지만 사실 순위 자체는 집계시 큰 의미가 없다. <사이트 & 사운드>는 각 평론가들의 리스트 내 10편의 영화 각각에 모두 1점 씩을 준 뒤 최종합산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영화부터 차례로 순위를 매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나는 10편의 영화를 발표연도 순으로 나열했으며 따로 순위는 매기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이 리스트의 첫머리에 올릴 영화를 골라야 했다면, 아마도 <게르트루드>와 <잔국물어> 사이에서 고민했을 것이다. (우연히도, 내가 꼽은 열 편의 영화 가운데 2편이 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되었다.)

흩어진 꽃잎 Broken Blossoms (D.W. 그리피스 / 1919년)
마부제 박사의 유언 The Testament of Dr. Mabuse (프리츠 랑 / 1933년)
놀라운 진실 The Awful Truth (레오 맥커리 / 1937년)
젊은 날의 링컨 Young Mr. Lincoln (존 포드 / 1939년)
잔국물어 (시든 국화 이야기) The Story of the Late Chrysanthemums (미조구치 겐지 / 1939년)
The River (장 르누아르 / 1951년)
인디아 India : Matri Bhumi (로베르토 로셀리니 / 1959년)
게르트루드 Gertrud (칼 드레이어 / 1964년)
티타시라 불리는 강 A River Called Titas (리트윅 가탁 / 1973년)
반다의 방 In Vanda's Room (페드로 코스타 / 2000년)

그러고 보니, 나는 지난 10년 간 이런저런 글을 써 왔지만 위의 영화들에 대해서 따로 논한 글이 거의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7년 전, 미조구치의 <잔국물어>에 관한 짧은 리뷰를 썼던 기억이 떠올라 여기 전문을 옮겨 둔다. 물론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이 치기어린 리뷰엔 못마땅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 가령, 나는 <적선지대>에 대해 "불확실하고 모호한 실험"이라고 단정내렸던 걸 후회한다 - 미조구치의 영화가 비인간적인 우주 안에 놓여진 비인간적인 여성들을 응시하는 데서 생성되는 지극히 인간적인 파토스를 영화적 힘으로 삼고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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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 일본군국주의가 점점 강도를 더해가고 있던 가운데, 미조구치 겐지는 당대의 민감한 사회적 현실로부터 '도피'해 이른바 '예도물'(藝道物)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영화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잔국물어>는 그 가운데 발표 시기에 있어서나 예술적 성취에 있어서나 첫머리에 놓이는 작품이다. 도쿄 가부키 명문가의 양자이지만 예술적 재능의 부족으로 고심하던 기쿠는 어느 날 집안의 하녀 오토쿠의 솔직한 충고를 듣게 된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그는 급기야 그녀와 함께 오사카로 도피하기에 이른다. 이후 기쿠는 유랑가부키극단의 배우로까지 전락하지만 오토쿠의 헌신적인 희생에 힘입어 마침내 예술가로 대성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홀로 남겨진 오토쿠는 그만 병상에서 죽고 만다. 거의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집요한 롱테이크, 인물들의 행위를 멀찍이서 응시하는 냉정하기 그지없는 롱숏, 가혹하기 짝이 없는 운명의 힘, 가부장적 사회제도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인의 삶과 예술적 완성을 위해 고민하는 예인(藝人)의 삶의 교차, 이러한 것들은 흔히 '미조구치적인 것'이라 일컬어지는 한 특별하고 견고한 소우주의 질서를 가능케 하는 요소들로 간주되며, 그런 만큼 <잔국물어>라는 걸출한 작품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빠짐없이 언급되곤 한다. 



그런데 <잔국물어>가 미조구치의 작품들 가운데서 특별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앞서 언급한 '미조구치적 우주', 무엇보다 <서학일대녀>나 <산쇼다유> 등의 시대극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뚜렷이 각인된 그 매혹적이고 잔인한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 처음으로 완벽하게 제시된 것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조금 달리 말하자면 <잔국물어>는 미조구치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일종의 '메타-영화'에 속하는 것이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조구치가 이후에 내놓은 작품들은 여러 형태로 조건을 바꾸어가며 여기서 발견한 법칙을 적용해본 사례들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조구치는 적어도 영화와 관련된 한에 있어서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를 혹은 그 시대의 여성들을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불편함은 작품에 내적긴장을 부여하면서 성공적인 결과(<오사카 엘레지>와 <기온의 자매>)를 가져오기도 했고 때로는 미조구치 자신을 불확실하고 모호한 실험(<적선지대>)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특히 당대 여성들의 욕망에 대해 궁금해 했지만, 그가 그 주제를 성공적으로 다루었다고 말하기는 사실 좀 힘들다(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미조구치의 영화들이 가지는 수많은 한계들을 떠올려 보라). 대신 그는 시선을 과거로 돌림으로써 자신의 우주에 부합하는 여성적 위치를 보다 뚜렷이 드러내고 시대물이라는 안전한 외양을 빌려 스스로의 불편함을 감출 수 있었다. 이때 여성은 남성의 죄의식의 잔여이거나, (흔히들 떠올리듯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남성의 욕망이 외화(外化)된 비인간적인 대상의 역할을 떠맡는다. 여기서 '비인간적'이라는 것은 그녀들이 잔인하거나 냉정하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적인 희로애락과 동떨어져 있는 듯 초월적으로 혹은 사물적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을 지칭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미조구치적 우주' 자체의 비인간성이다. 이곳은 모든 인간사에 무심한 세계이며, 영원히 침묵하고 있는 무한한 공간(파스칼)이고, "우리의 죄의식을 저장하는 금고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중단한"(옥타비오 파스) 냉담한 세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미조구치의 비인간적인 여성들이 그 비인간적인 우주 안에 놓여질 때 지극히 인간적인 파토스가 생성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미조구치의 영화들이 간직하고 있는 강렬한 잔혹성의 비밀이 숨어 있다. 때로 그것은 오즈 야스지로의 부드러운 잔혹성을 능가한다. 그것은 단지 여성의 희생이라고 하는 멜로드라마적 장치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잔국물어>는 이와 같은 잔혹성의 체험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힌 작품이다. (2005년 4월)

4.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재 Ashes>(2012)와 로모키노 카메라 
/ 존 토레스의 <뮤즈 Muse>(2011)와 하리네즈미 카메라 (5.22)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20분짜리 신작 단편 <재 Ashes>(2012)가 지난 19일(토) 칸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데 이어, 온라인 영화사이트인 MUBI(http://mubi.com/films/ashes)에서 무료로 서비스되고 있다. <재>는 로모그래피(Lomography)사와 MUBI가 공동으로 디자인한 초소형 35mm 카메라인 "Lomokino MUBI Edition"(아래 사진)으로 촬영된 단편이다.


이 로모키노 카메라는 일반적인 영화촬영용이 아니라 통상 스틸사진용으로 쓰이는 35mm 네거티브필름 - 편의점 등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 이나 슬라이드필름(포지티브필름)을 넣어 동영상 제작이 가능하게끔 설계된 것으로 한화 15만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구입시 아피찻퐁 <재>의 필름푸티지와 MUBI 1달 무료이용권이 패키지로 제공된다.) 매 프레임 기록시 일반적인 35mm 카메라보다 필름소모면적이 1/3~1/4 정도에 지나지 않고 초당 3~5 프레임으로 기록된다. (이는, 36EXP(36장) 짜리 35mm 필름을 사용할 경우 대략 144프레임/36초의 영상기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또한 로모키노로 촬영된 영상의 종횡비는 3:1 때로는 그 이상이 되며, 화면은 연속적이지 않고 주기적으로 끊어지며 툭툭 튀는 느낌을 주게 된다.) 

어제 영상원  수업시간에 로모키노로 촬영된 아피찻퐁의 <재>를 학생들과 함께 보았는데, 시각적으로는 우선 스탠 브래키지나 조나스 메카스의 아방가르드 영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한편으론 매우 사적이면서도 동시에 정치적인 작품이기도 한데, 몇몇 감상평들을 보니 크리스 마르케의 <환송대>를 떠올리는 이들도 제법 있는 듯 하다. 


Ashes (Apichatpong Weerasethakul / 2012 / 20min)

집에 돌아와 <재>를 다시 보고 로모키노 카메라에 대해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노라니, 문득 작년 초에 보았던 존 토레스의 초단편 <뮤즈>가 떠오른다. 이 '씨네포엠'은 존 토레스가 일본 방문시 구입한 디지털 토이카메라 'Harinezumi 2'를 가지고 찍은 것이다. 'Harinezumi 2'는 8mm 필름 느낌이 나는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며 사운드 동시녹음도 가능하다. (스마트폰용 8mm Vintage App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Muse (John Torres / 2011 / 1'39")


5. 존 카사베츠의 <남편들 Husbands>(1970)을 본 다음 날 (5.10)


어제, 부산 동서대학교의 임권택영화예술대학에서 영화제 관련한 특강을 하고 돌아왔다. 강의 전에 조교 분께서 학생들이 내게 묻고 싶은 질문들을 미리 받아 보내주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그 가운데는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어김없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뻔한 질문이다. 만일 어떤 기자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더라면 나는 그냥 "영화적으로 뛰어난 작품들을 가져오려 노력합니다"라는 식의 뻔한 답변을 심드렁하게 내뱉었을 것이다.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학생들 앞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강의 당시 내 답변은 대략 이러했다. (혹은 이렇게 답변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리했는지는 녹취록을 확인하기 전까진 알 길이 없다.) "영화가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인지 아닌지를 먼저 고려하는 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고 싶어하고 그 변화의 과정에 기꺼이  자신을 내맡길 자세가 되어 있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 같은 영화들을 선호합니다. 반면 자신이 만든 영화를 통해 다른 이들을 변화시키겠다는 각오가 느껴지는 영화들은 보기 불편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가운데 전자의 태도가 가장 강렬히 느껴진 영화의 사례로 공살루 토샤의 <이곳은 달이 아닌 지구 It's The Earth Not The Moon>(2011)를 언급했다. (사실 이 영화는 올해 <디지털삼인삼색> 참여감독 가운데 하나인 라야 마틴이 끔찍이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 한국에 소개된 바는 없지만, 마틴의 장편데뷔작 <세상 끝의 섬 The Island at the End of the World>(2004)이 소재나 접근방식에서 토샤의 다큐멘터리와 공유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이 문득 떠오른다. 또한 영화 속 인물이 그 주변의 인물 및 상황과 관계맺으며 성장하는 과정에 따라 영화 자체도 -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 성장하는 이중적 의미에서의 '성장영화'라는 점에서, <이곳은 달이 아닌 지구>는 마틴의 <상영 중 Now Showing>(2008)과도 관련될 수 있다.) 강의 시간에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올해 전주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수상한 장건재 감독의 <잠 못 드는 밤> 역시 그런 영화 가운데 하나다. 한편 후자의 사례로 나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들과 얼마 전 타계한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율리시즈의 시선> 같은 작품을 예로 들었다.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몇 가지 빠뜨린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 못내 아쉽다. 대략 이런 것 아니었을까? 전자의 영화들은 어떤 식으로건 보는 이들에게 그 태도를 전염시킨다.  딱히 보는 이들을 변화시키겠다는 각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건 우리를 삶으로 돌려보냄으로써, 그와 같은 삶으로의 회귀를 가능케 하는 영화의 힘을 사랑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반면 후자의 영화들은 보는 이들을 변화시키고야 말겠다는 야심찬 의지에도 불구하고 기껏해야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숭배 이상의 결과를 낳지 못한다. 한 가지 더, 한 연출자가 변화의 과정에 기꺼이 자신을 내맡긴다는 것은 사실 붕괴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영화 자체를 변화에 내맡긴다는 - 혹은 우연적인 것의 개입을 용인한다는 -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최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존 카사베츠의 <남편들>과 필립 가렐의 <더 이상 기타소리를 들을 수 없어> 같은 영화들을 오랜 만에 다시 보면서 새삼 재확인한 생각들, 혹은 초현실주의의, 일견 미약해 보이지만 여전히 강렬한, 매혹적인 유산들.

2012-05-14

칼 드레이어의 <분노의 날>(1943)


(* 아래 글은 2012년 5월 11일(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칼 드레이어의 <분노의 날> 상영 후 진행된 강연을 위해 미리 준비했던 메모를 정리한 것이다. 전체 내용은 아니고 강연 후반부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강연 전반부는 주로 <분노의 날> 제작과정에 대한 언급이었으며 여기서는 생략했다. 또한 <분노의 날> 제작 이후 드레이어의 행적에 대한 종반부의 언급도 생략했다. 강연시간이 50분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미리 준비한 발췌영상을 보여줄 수 없었는데 대신 이 포스트에 DVD에서 캡처한 사진들을 올려 둔다. 또한 시간문제로 실제 강연시 생략한 몇몇 설명들을 덧붙였다. 강연 기회를 주신 한국영상자료원 측에 감사드린다.)


화형대 앞에서 : 칼 드레이어의 <분노의 날>(1943)


[...] <분노의 날>이 1943년 11월 덴마크에서 개봉되었을 당시 영화가 너무 "느리다"며 비판하는 평자들이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드레이어는 이런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빠른 편집은 무성영화와 관련된 것이다. 한 사람이 철로 위에 누워 있는데 열차가 다가오는 중이라고 하자. 무성영화에서라면, 관객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이 적절한 감정을 느끼게끔,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장면을 유성영화로 연출한다면 나는 열차는 아예 보여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철로 위의 사람을 보여주고 열차는 사운드에 맡겨 두겠다. 그리고 한 쇼트 내에서 점점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답변은 <분노의 날>의 "느린" 페이스를 비판하는 이들에 대한 답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이 변론에는, 드레이어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을지라도, 유성영화란 무엇보다 믿음의 문제에 달려 있는 것이라는 자각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열차의 사운드를 들려 주는 것만으로도 관객이 화면 바깥에 열차가 다가오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믿게  될 것이란 확신이 없다면 - 혹은 관객들이 그러한 믿음을 거부한다면 - 이 장면에서의 서스펜스는 작동할 수 없게 될 겁니다. (갑자기 쇼트가 확 바뀌면서 철로에 누워 있던 사람이 스튜디오 안에서 액션영화 촬영에 임하고 있는 배우임을 - 즉 그는 완벽하게 '안전'함을 - 보여주는 식의, 익숙한 트릭들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트릭은 관객의 믿음에 대한 기만 내지는 조롱에 기반한 것으로 - 때론  이런 트릭이 '자기반영적'이라는 식으로 제법 그럴싸하(지만 그릇되)게 이야기된 적도 있지만 - 이른바 '영화에 관한 영화'들의 도입부에서 흔히 쓰이곤 하죠.) 

이 영화는 덴마크의 나치 점령기인 1943년에 만들어졌고 그 때문인지 <분노의 날>을 나치 점령기에 대한 정치적 알레고리로 보는 견해도 있었지만 그런 건 손쉬운 사이비 비평의 가장 천박한 사례일 뿐이라 여겨집니다. 만일 <분노의 날>이 정치적인 영화라면, 그건 무슨 정치적인 사건이나 환경에 대한 알레고리여서가 아니라, 어느 때부턴가 - 유성영화가 탄생하면서? 혹은 2차 대전이 시작될 즈음에? - 영화가 변화되어 이미지/사운드의 관계는 물론이고 이러한 영화장치의 관계에 대한 관객의 믿음의 문제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으며, 따라서 영화가 굳건한 자기확신에 의해 지탱되었던 시절 - 이 시기를 드레이어는 무성영화 시기라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은 지나가고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받아들여야 함을, 이 <분노의 날>이라는 영화가 매우 강력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분노의 날>이 이런 인식을 담은 최초의 영화라고 말할 생각은 없고, 굳이 말하자면 1933년, 그러니까 유성영화 초창기에 이미 프리츠 랑이 <마부제 박사의 유언> 같은 영화에서 그런 식의 통찰을 빼어나게 영화화한 바 있죠. 그런데 랑의 영화가 일종의 '진단'이었다면 이 영화는 일종의 '암중모색'(실험)이라는 점에서, 같은 해에 나온 로베르 브레송의 <죄악의 천사들>이나 알프레드 히치콕의 <의혹의 그림자> 같은 영화들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영화라 하겠습니다.) 사실 몽타주란 쇼트들이 서로 관계될 수 있다 - 극도로 상징적이거나 모호한 수준까지를 포함해서 - 고 하는 영화장치(기계장치)의 자기확신의 결과이며, 이러한 자기확신이 붕괴되었을 때 컷(cut)이란 쇼트 간 관계의 여부를 전적으로 관객의 믿음에 거는 도박 비슷한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자면, 한 쇼트에서 다른 쇼트로의 전환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이 되는 것이죠. 저는 이 불안의 결과로 나온 것이 (앙드레 바쟁의 논의로 대표되곤 하는) 롱테이크의 미학화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또한 이는 드레이어가 내놓은 <분노의 날>의 "느린" 리듬에 대한 변론을 제 식으로 이해한 바이기도 합니다.

내러티브 상으로 볼 때, <분노의 날>에서 믿음의 문제는 단 하나의 질문에 달려 있습니다. 다름 아닌 "마녀와 그녀의 주술은 존재하는가?"하는 것이죠. 가령 안느가 마녀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목사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 그녀의 말이 실제로 주술적인 힘을 행사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 아닌가의 문제에 달려 있죠. 극중 인물들이 마녀와 주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바와는 무관하게, 이 영화 자체는, 그리고 드레이어 자신은, 이 물음에 어떤 결정적인 답변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 마지막에 가면 안느 자신은 그 말과 사건의 관계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화형대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시어머니가 안느를 마녀라고 단죄하는 것은 어떤 확신이나 믿음 때문이라기보다는 질투 때문인 것처럼도 보이며, 마르틴이 할머니의 말에 동조하는 것은 그저 두려움 때문인 것으로도 보이지만, 안느는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사건의 관계를, 그 주술적인 연관을, 진정 수긍하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형식적으로, 드레이어가 이 믿음에 관련된 질문을 영화 속에 새겨넣은 방식은 무엇보다 교차편집에서 드러납니다.

[참조영상]  <분노의 날> 1:09:26 ~ 1:13:10 부분



교차편집은 상이한 공간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벌어지는 두 사건 사이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서스펜스를 유발하기 위한 최적의 기법이었습니다. (물론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일 겁니다.) 그런데 드레이어가 <분노의 날>을 만들던 1943년 즈음이 되면 교차편집이 노리는 사건 간의 관계는 관객의 믿음이 없이는 성립불가능한, 무언가 불확정적인 것이 되어 버립니다. 죽음이 압살론의 가슴을 스쳐 지나간 것은 안느의 말의 주술적인 효과일까요, 아니면 방금 전 한 사제의 죽음을 목도한 데 따른 충격 때문일까요, 그도 아니면 노령의 압살론에게 다가온 자연적인 신체적 반응일까요. 드레이어는 안느의 말의 '주술적'인 효과를 강조하기 위한 어떤 특수효과도 없이 - 마녀가 등장하는 여타 호러영화들을 떠올려 보세요 - 그저 목사관에서 밀어를 주고받는 두 연인의 모습과 집으로 돌아오는 압살론의 모습을 단순한 편집으로 교차시켜 보여줄 뿐입니다(위의 캡처사진 참조). 주술이 작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믿음의 강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 강도에 따라 <분노의 날>은 어떤 이에게는 마녀가 등장하는 호러영화가 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17세기의 정신적 암흑에 관한 유물론적 시대극이 될 겁니다. 이게 바로 제가 <분노의 날>이 불확정적인 영화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분노의 날>은 무성영화 시기에 발명된 가장 대표적인 편집기법 하나에 불확실성의 안개를 드리웁니다. 또한 이런 교차편집을 떠나 전체적인 구성을 살펴 보아도, 사제 하나가 병으로 죽어 가는 것이 화형대에서 죽은 노파의 저주 때문인지 우연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말하자면 <분노의 날>은 내러티브 상의 핵심질문인 "마녀와 그녀의 주술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의 불확실성, 불가능성을 형식적인 수준에 새겨넣음으로써 영화 자체를 전적으로 믿음의 문제에 내걸고 있는 모험적인 영화입니다. 물론 이것이 안느가 마녀임을 믿지 않으면 <분노의 날>이란 영화에 대한 감상은 불가능하다, 는 식의 말이 아님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만 이 영화가, 어느 시기부턴가 영화가 떠안게 된 불안, 영화적 요소들간의 관계가 심리적이고 미학적인 수준에서 내재적으로 맺어지는 단계를 벗어나, 그러한 관계나 연관이 오직 영화와 관객 사이에서, 나아가 영화와 세계 사이에서 교환되는 믿음의 문제에 내걸리게 되는 불확정적인 영화에 대한 불안을 보여 주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을 뿐입니다. (전후의 현대영화들이 1950년대가 되면 신뢰의, 관계의 회복을 가능케 하는 '기적'(miracle)의 문제에 매달리게 된 것도 이상의 언급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합니다. 특히 1954년이 아주 주목할 만한 해입니다. 이번에 상영되는 드레이어의 <오데트>부터 미조구치 겐지의 <산쇼 다이유>,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이 모두 같은 해에 발표되었죠.)

안느라는 인물은 바로 그러한 불안이 내러티브상에서 구체화된 인물이죠. 어떤 면에서 안느는 (불안의) 영화 자체이자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이기도 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엔 분명한 분리가 있죠. <분노의 날>에는 이 점과 관련해 매우 아름다운 장면 하나가 등장합니다(아래 캡처사진 참조). 자수 틀을 사이에 두고 안느와 마르틴의 모습이 차례로 보여지는 부분인데요. 자수 틀(프레임)과 천(스크린) 너머의 안느의 모습은 완벽하게 영화적인 메타포라 할 수 있죠. 한편 자수그림의 비너스 옆, 에로스가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인 마르틴의 모습은 안느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연인이기도 한 그의 위치를 암시합니다. 앞선 쇼트에서 안느가 하나의 영화적 프레임/스크린으로서 보여졌다면 여기선 그녀가 관객으로서 프레임/스크린에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투사하고 있는 겁니다. 안느의 자수그림에서 에로스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안느와 마르틴이 서로 번갈아가며 상대방을 위치시키는 그 자리, 그 욕망의 자리는 지금껏 제가 말해 온 믿음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안느의 자수는 믿음의 개입을 통해서만 작동되는 불완전한 영화와 꼭 닮았습니다. 


  
처음에 안느는 한 명의 관중 내지는 관객으로서 마녀를 지켜보았을 뿐입니다. 마을의 노파가 화형당할 때죠. 그러다 영화 마지막에 가면 우리라고 하는 관객 앞에서 한 명의 마녀로서 자신을 인정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드레이어는 마녀/안느를 바라보는 디제시스 상의 어떤 관객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단 한 번, '죽은' 압살론의 얼굴이 인서트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오직 안느를 보여주는 단 하나의 쇼트가 존재할 뿐이고 관객은 우리 외에는 없습니다. 사랑에 빠진 순간에조차 검은 옷으로 온 몸을 휘감고 있던 그녀가 스크린처럼 새하얀 옷을 입고 거기 그렇게 앉아 있습니다. 이때만큼은 영화(안느) 스스로가 자신은 주술을 걸 수 있는 존재임을 다시 믿게 되는 순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전적 자기확신의 영화는 얼마 후면 화형대에 매달리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

2012-03-26

봄 (3)

1. 국제영화제 평가 (3.26)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다 작년부터 영화진흥위원회 주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국제영화제평가(Evaluation of International Film Festivals)라는 게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생소하고 또 그다지 관심 둘 이유도 없는 것이겠지만, 매년 초마다 평가의 대상이 되는 영화제 관계자들의 촉각을 곤두서게 만들곤 한다. 결과에 따라 영화제별 정부지원(영화발전기금) 금액이 달라지기도 하는 탓이다. 2012년 현재, 영화발전기금이 지원되는 국제영화제는 (개최시기별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천국제영화음악제, 부산국제영화제 총 6곳이다. 총 5인의 평가위원이 각 영화제를 돌며 여러 항목에 대해 평가를 하고 기타 설문조사를 통한 통계자료 - 통계에 관한 한 문외한에 가까운 내가 봐도, 항목분류나 자료처리에 있어 좀 기이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간혹 있다 - 등을 수집해 <국제영화제 평가보고서>를 작성, 발간하곤 하는데, 당연히 정독하기에 좋은 책은 아니지만 읽다보면 차기 영화제 준비에 있어 도움되는 지적들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어 꽤 유용하다. 다만 평가위원 5인을 선정하는 기준이 항상 궁금한데, 도무지 영화적 안목이라곤 없어 보이는 이가 매년 한두명 포함되곤 하기 때문이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나는 종종 국제영화제평가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선 평가위원에 대한 평가제도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올해 나를 가장 웃겨준 이는 이 보고서에 '평가위원 3'이라 기재된 분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평가의 기준이 이 '평가위원 3'과 같은 식이라면 용납하기 힘들어진다. 가령 이분은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련한 포르투갈영화 특별전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 이유인즉 이 섹션이 영화제 전체 프로그램 가운데 관객설문으로 집계된 "5대 인기섹션과 10개 인기작에 한 작품도 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11편의 숨은 보석들이라는 영화제측 과장과 달리 수작(<갇힌 여인>)과 태작(<녹색의 해>)이 공존했다"고 짐짓 전문가 흉내를 낸다. (아무리 취향의 차이를 존중한다 해도, 파울루 로샤의 <녹색의 해> 같은 영화를 감히 태작이라 단정내리는 이를 '영화전문가'로 인정하는 건 나로선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 로컬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된 한국장편영화 <위도>를 "로컬시네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라 상찬하면서 그 이유를 (지역에서 제작된 영화임에도) "영화배우 정찬과 이두일을 캐스팅할 정도의 규모를 과시"했다는 데서 찾고 있다. (이 부분을 읽다가,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마시던 음료수를 그만 내뿜고 말았다.) 그리고 보고서 말미에 가선 전주영화제에 마지막 충고를 던진다. "영화제 프로그램의 일부 지나친 혁신성 및 대안성 지향은 조율되어야 하며 - 몹시 '지루한' 작품 편수의 축소 - 상영장 주변의 즐길 거리 부족과 음식 값 앙등의 문제도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지나친 혁신성을 지양하고자 한다면 '적당한' 혁신성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인데 나는 이 형용모순의 요구에 대답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평가위원 3'의 논리대로라면 지나치게 혁신적이고 대안적인 영화는 몹시 지루한 영화들이라는 말도 안되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한 영화가 관객 앞에 보여지기도 전에 그것이 '지루한' 것이 될지 아닐지를 - 게다가 모든 관객에게 - 알기 위해선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예언가가 필요할 것이다.


2. 필립 가렐의 <더 이상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없어> (4.9)




필립 가렐의 영화는 그 영화를 제작할 당시의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서 볼 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본 가렐의 영화는 20대 후반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비디오로 본 <계시자 Le révélateur>(1968)였는데, 그 이후로도 한동안 그의 후기작보다는 그가 20대 무렵에 연출한 실험적인 영화들 - <추억의 마리 Marie pour memoire>(1967), <처녀의 침대 Le lit de la vierge>(1969), <내부의 상처 La cicatrice intérieure>(1972) - 에 더 끌리곤 했던 것 같다. (<평범한 연인들 Regular Lovers>(2005)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다.) 그러니까 <더 이상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없어 J'entends plus la guitare>(1991)를 2004년 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보았을 때 - 당시 나는 아직 프로그래머로 일하기 전이었다 - 영화의 독특한 형식이나 무드를 인지하긴 어렵지 않았지만 감정적으로 다가가기는 요령부득이었던 것이다. 비로소 나이 마흔이 되어서 <더 이상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없어>를 다시 보다가, 마음을 깊이 울리는 장면들이 적지 않음을 뒤늦게 깨닫곤 적이 놀라는 중이다. 특히 1) 제라르를 떠났던 마리안느가 다시 돌아와 그의 집 앞에서 재회하는 장면, 2)변기에 앉아 소변을 보는 마리안느와 그 옆에 앉은 제라르가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담은 롱숏, 3) 제라르 앞에서 헤로인을 꺼내드는 마리안느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차례로 이어지는 부분에선, 가렐 특유의 과감하게 생략적인 편집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환희, 세속성 그리고 내재하는 파국을 동시에 품고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모호한 감정으로서의 사랑. 그리고 불행히도 사랑이란 이런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언제나 파국이 이미 도래한 다음이라는 것 (아마 이것이야말로 가렐의 많은 영화가 플래시백이 없이 작동하는 추억의 영화, 혹은 영화적 추억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리라). 


3. 총선 (4.12)


총선 개표방송을 보다 잠이 들었다. 남한 중동부 전역이 벌겋게 뒤덮여 있는 그래픽을 보다가 이번 총선의 의의라면 많은 이들이 레드컴플렉스로부터 마침내 벗어났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2주 후에 개막할 영화제가 저 시뻘건 지역 어디에선가 열리지 않는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또 하나의 실없는 생각과 함께. 물론 저 노란 녀석들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밀려 오기는 마찬가지다. 아내가 이민 가고 싶다고 말하기에, 남극으로 갈 게 아니라면 어디에든 저 붉은 재킷의 당원들을 이끄는 아줌마 같은 이들이 있을 거라고 했다. 하여간 싸워야 할 곳은 여기이며, 무엇보다 가증스러운 공경에 맞서 무례함의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 



2012-03-10

봄 (2)

1. 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2012)


웨스 앤더슨의 신작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이 65회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다. 데뷔작 <바틀 로켓 Bottle Rocket>(1996)을 우연히 비디오로 보고 -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되지 않고 비디오로 직행했었다 - 기묘한 감성의 신인이 등장했다 생각한 게 벌써 14년 전의 일이라니. 그 사이에 앤더슨은 걸작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2004) - 이 영화 역시 개봉되지 못하고 DVD로만 출시되었다 - 을 비롯한 일련의 영화들을 통해 명실공히 동시대 미국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 되었다. 하드디스크를 뒤져 보니 20대의 마지막 해에 쓴 <로열 테넌바움 The Royal Tenenbaums>(2001) 리뷰(<씨네 21>에 기고했던 글)가 남아 있다. 다시 읽어 보니 민망하기 짝이 없는 글이지만  이 글에서 인용했던 <바틀 로켓>의 한 대사는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오빠는 어른이야. 돌아갈 집이 없는 거야."(주인공 안소니가 여동생 그레이스에게 한 말)


아래는 <문라이즈 킹덤>의 트레일러 영상과 포스터다.





2. 마지막 원고 (3.11)


이번 주를 끝으로 지난 1년 간 <씨네 21>에 연재해오던 "시네마나우" 칼럼을 중단하기로 했다. 2주에 한 번 원고지 8.5매 분량의 글을 쓰는 정도인데도, 점점 분량이 정확히 정해진 원고를 쓰는 일이 힘들어지고 있다. (특히 이 블로그에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부터, 그리고 최근 관여하고 있는 <인문예술잡지 F>에 전적으로 자유롭게 글을 쓰게 되면서부터 더욱 그렇게 되었다.) 이번 주 <씨네 21>에 송고한 마지막 원고는 작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지만 큰 주목은 끌지 못했던 아벨 페라라의 불운한 영화 <4:44 라스트 데이 온 어스>에 관한 것이다. 


<4:44 라스트 데이 온 어스 4:44 Last Day on Earth>(2011)


영화가 종말의 광경을 상상하는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의 종말이란 말 그대로 세상의 끝, 인간이 사라지고 역사가 중단되는 순간이다.) 중요한 건 대체 그 종말의 광경을 영화로 불러들이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인류 멸망의 위기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의 목록을 굳이 꼽아보지 않더라도 - 만약 그리한다면 제법 긴 목록이 될 것이다 - 종말은 대개의 경우 지금/이곳의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범용한 감각을 문제 삼기 위해 스크린에 호출된다는 걸 깨닫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즉 ‘종말영화’를 지탱하는 건 무엇보다 현재에 대한 감각의 문제인데 - 이런 영화들이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곧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 오히려 이런 영화를 보는 이들은 그 영화가 경이의 스펙터클로 그려내는 대상(외계인의 침공, 소행성, 환경 재해)이나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관계의 드라마나 그도 아니면 정치사회적 암시(냉전, 포스트 9.11)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이는 관객의 탓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종말영화’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한데, 종종 이들 영화는 범용한 감각을 문제 삼기 위해 불러 온 일련의 특별한 사건들을 영화의 중심에 두고 너무 특별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임박한 종말에 너무 호들갑스럽게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한심한 사례는 임박한 종말에서 인류를 구원하겠다며 달려드는 영웅들이 등장할 때다. 최근 영국영화에 풍성함을 더하고 있는 재기 넘치는 장르영화들 가운데 조 코니쉬의 <어택 더 블록>(2011)은 그런 식의 종말영화를 통렬하게 풍자한다.)





작년에 베니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었지만 여태 미국에서조차 개봉되지 않은 아벨 페라라의 신작 <4:44 라스트 데이 온 어스>는, 임박한 종말을 지금/이곳의 광경을 반추하기 위한 가설적 조건으로 적절히 활용하면서 오늘날의 각종 전자적 스크린의 풍경에 대한 담담한 사색을 가미한 특별한 작품이다. 페라라의 또 다른 SF영화 <바디 에일리언>(1993)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주요 무대는 주인공 연인(윌렘 데포와 페라라의 실제 연인인 섀닌 리)이 거주하는 뉴욕 이스트사이드의 옥탑방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오존층 파괴로 인해 이튿날 새벽 4시44분이 되면 지구에 종말이 닥칠 것이 예고된 가운데, 영화 속 두 연인은 그 어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들의 외부와의 소통은 거의 전적으로 여러 전자적 스크린에 의해 매개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단히 경이로운 장치들인 것은 아니고 저명인사들의 인터뷰나 뉴스가 방영되고 있는 텔레비전, 아이패드의 유튜브(Youtube) 동영상, 웹캠이 장착된 노트북의 스카이프(Skype)를 통한 화상통화 등 일상적인 것들이다. 페라라가 이 고요한 종말의 풍경을 관찰하면서 특별히 과거의 영화에 대한 향수나 전자적 스크린의 시대에 대한 혐오를 내비치진 않는 것 같다. 다만 세상에 임박한 종말이라는 가설적 상황의 힘을 빌려 오되 그것을 철저히 이야기의 배경으로만 삼음으로써 오히려 너무나도 평범하기에 눈에 띄지 않을 법한 지금/이곳의 풍경 - 예컨대 여기서 뉴욕은 페라라의 어떤 영화에서보다 더욱 생생한 일상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 에 윤곽과 색채를 더하고 관객에게 그것을 감각하게 만드는 식이다. <4:44 라스트 데이 온 어스>는 페라라가 여전히 자신의 영화적 뿌리를 인디영화에 두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자 현재적인 것에 대한 감각을 소중히 여기는 진정 시네마토그래픽한 종말영화의 드문 사례 가운데 하나다.


3. [Book Review] 너새니얼 도어스키의 <종교적 영화>(2004/2010)


이번 주,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밍을 마무리하는 틈틈이 아방가르드 영화감독 너새니얼 도어스키(Nathaniel Dorsky)의 영화론 <종교적 영화 Devotional Cinema>를 (아주 조금씩) 읽었다. (고작해야 30페이지가 조금 넘는 글이라 '책을 독파했다'고 말하기 좀 멋쩍긴 하다.) 작년에 구입해 둔 것을 미루다 이제야 다 읽게 된 것인데, 시네아스트에 의해 직접 씌어진 영화론 가운데선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에 관한 노트>에 필적할 만한 글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은 원래 2001년 3월 프린스턴대학에서 있었던 종교와 영화에 관한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원고를 정리한 것인데 최초 원고는 2003년에 <숨은 신 : 영화와 신앙 The Hidden God : Film and Faith>(Mary Lea Bandy & Antonio Monda ed.)이라는 책에 실렸고 프랑스어로도 번역되어 영화잡지 <트라픽 Trafic>(2004년 겨울호)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내가 구입한 것은 <종교적 영화>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의 2판(2010)으로 초판(2004)과는 약간 다르다 하나 아직 확인해 보지 못했다.


1960년대에 감독으로서 경력을 시작한 도어스키는 동시대 아방가르드 영화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거의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감독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의 <노래와 고독 Song and Solitude>(2006)을 상영한 적이 있지만, 최근 3년 간 그가 발표한 일련의 빼어난 단편들 - <겨울 Winter>(2008), <사라방드 Sarabande>(2008), <저녁기도 Compline>(2009), <새벽의 노래 Aubade>(2010), <목가 Pastourelle>(2010) 등 - 은 한국에서 상영된 바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들을 로테르담이나 토론토영화제에서 볼 수 있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들을 상영할 수 없었던 건 순전히 기술적인 이유 때문이었는데, 도어스키의 작품은 18프레임 속도의 16mm로 촬영된 것이지만 영화제 기술팀에서 영사속도 조절이 가능한 16mm 영사기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같은 규모 해외영화제의 절반(내지는 기껏해야 2/3) 정도에 불과한 전주국제영화제 예산 수준으로 직접 극장용 16mm 영사기를 구입한다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고, 서울에 속도조절이 가능한 16mm 영사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절대 대여해 주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


'devotional'이란 단어를 '종교적'이라 번역해 보긴 했지만, 사실 도어스키의 문맥 내에서 이 단어는 우리에게 (종교적인 경험에 필적하는) 전적으로 시네마틱한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들을 지칭하기 위한 것일 뿐 특별히 종교적인 암시를 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도어스키의 논의는 영화가 모종의 유물론적 완전성에 도달하는 순간, 미리 결정된 상징적 의미에 의해 침해됨이 없이 영화적 요소들이 온전히 그 스스로의 '현재성/지금임'(nowness)으로 빛나는 순간에 특권을 부여하는 작업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예컨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모든 숏, 모든 컷, 모든 인물, 스토리 상의 모든 상황들은, 내러티브의 문맥 내에서 완벽하게 기능하긴 하지만 각각 그 자체를 제외하곤 그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는다"(p.38)는 것이다. 이처럼 상징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영화적 요소들을 도어스키는 (그 자체 이외의 어떤 것도 상징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기-상징'(self-symbol)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조르주 베르나노스(와 로베르 브레송)의 <시골 사제의 일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짧은 문장, "모든 것은 은총이다"(All is Grace)는 도어스키의 논의에서 "모든 것은 현재적이다"(All is Present)는 문장으로 변형되어 전유된다. (도어스키가 종교에서의 초월적 경험을 언급하는 것은 영화를 통해 삶과 세계를 생생히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일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적 예시에 국한된다.) 도어스키는 영화에서의 편집에 관해서는 각각의 컷이 시각적, 시적 그리고 의미론적 수준 - 시각적인 것이 위계의 가장 상위에 있으며 시적인 것과 의미론적인 것이 차례로 그 뒤를 따른다 - 에서 조화를 이룰 때 최상의 결과를 낳는다고 보는데, 이런 주장은 일견 좀 모호하게 (혹은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구석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다소 구체적인 예를 통해 힘을 얻는다. "존 포드의 영화는 이의 가장 훌륭한 예가 될 수 있다. 그의 숏들은 다가오는 빛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 우리는, 즉 관객과 카메라는, 잠깐 지속될 뿐인 저 빛나는 세계를 응시하며 어둠 속에 있다. 하늘과 땅의 구체성, 꼿꼿이 선 인간의 수직성 등은 포드의 우주적(cosmic) 건축을 구성한다. 각각의 컷들은, 시네마틱한 공기에 불을 붙이는, 확신에 찬 굳건한 시냅스(synapse)다. 이야기는 숏과 컷 자체의 전개를 통해 표현된다."(p.49)


도어스키가 몇몇 고전영화들 - 스스로도 인정하듯 아주 특이한 것들보다는 누구나 알 법한 익숙한 고전들 - 을 사례로 들어 자신의 영화론을 피력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 영화론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그 자신의 영화들이다. 즉 <종교적 영화>에서 도어스키는 정작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가장 철저하고 또 명료하게 자신의 영화를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좀 짖궃게 말하자면, <종교적 영화>는 도어스키 자신의 영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관객들을 위해 '문자로 보여주는' 도어스키 영화처럼 여겨진다. 그런 만큼 이 책은 도어스키의 영화를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는 이라도 충분히 접근가능하다.)



4. 장-마리 스트라우브의 신작


장-마리 스트라우브의 신작단편 <위로할 수 없는 것 L'Inconsolable>, <재칼과 아랍인 Schakale und Araber> 그리고 2011년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삼인삼색 가운데 하나로 제작된 <후예 Un Heritier>가 지난 2월 8일 프랑스에서 ("L'Inconsolable : Films de Jean-Marie Straub"이라는 제목으로) 한데 묶여 개봉되었다. (스트라우브 스스로 <후예>의 '자매영화'라 부른 <로트링겐! Lothringen!>도 함께 상영.) 이 가운데 맨 앞에 언급한 2편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관객들에게도 소개될 예정이다. 아래는 개봉 당시 제작, 배포된 포스터로, 포스터 상단에는 이 영화들이 상영된(될) 영화제들 - 비엔나, 로카르노 그리고 전주 - 이, 하단에는 영화들의 제목이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