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9

가을날 (2)

1. 인문예술잡지 F(에프) 출간 (9.29)


토론토와 베니스로 출장을 떠나기 직전까지 최근 창간준비에 참여해 온 인문예술잡지 F(에프)가 출간되어 현재 서점에 나와 있다. 나를 포함해 총 5인이 편집위원(정신분석학 전공이신 맹정현 선생, 사회학자이면서 최근 두 번째 시집을 내놓으신 심보선 시인,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이신 이상길 선생, 문지문화원 기획실장이신 주일우 선생)으로 참여했고 매 호마다 각각의 편집위원이 돌아가며 책임편집을 맡아 특정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그리고 북디자인은 최근 <이면의 도시>(자음과 모음, 2011)를 출간한 그래픽디자이너 김형재 선생이 맡아 주셨다. 창간준비호의 성격이 짙은 첫 호(F1)의 주제는 '재난'이다. 어느 정도는 뜻하지 않게 본 잡지에 긴 연재논문을 쓰게 되었는데 글의 제목은 <뤼미에르 은하의 가장자리에서>로 첫호(F1)에는 글의 첫 파트에 해당하는, 크리스천 마클레이의 <시계>에 대해 다룬 "시간의 건축적 경험"이 실렸다.
 

2. 울리히 쾰러의 <수면병 Sleeping Sickness>(2011)에 대한 오해 (9.29)

어제 부산국제영화제 티켓카탈로그를 살펴보다 알게 된 것인데, 올해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울리히 쾰러의 <수면병>에 대한 소개가 심하게 잘못되어 있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이미 본 블로그의 "베를린파의 영화"(2011.6.7 포스팅)에서 언급한 바 있다.) "부패에 찌든 아프리카 개발원조의 실상을 폭로하는 베를린파 감독의 수작"이라는 것이다. 물론 영화제 티켓카탈로그에 실리는 정보가 때로 적잖이 틀리기도 한다는 건 잘 알고 있기에 별로 문제삼을 일은 아니다 싶기도 하지만, 짧기는 해도 이건 이미 작품에 대한 심각한 오독이라 할 '해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었던데다 심지어 <씨네 21>의 부산국제영화제 리뷰에도 동일한 해석이 똑같이 실려 있는 것(자세한 리뷰는 <씨네 21> 본지를 참고할 것)을 보고 이건 좀 아니다 싶어 몇 자 적기로 했다.

단적으로 말해, <수면병>은 "부패에 찌든 아프리카 개발원조의 실상을 폭로하는" 영화가 아니다. 즉 그런 '정치적인'(political)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수면병>은 이른바 탈식민주의적 관점에 기반한 유럽의 작가영화들이 '정치적인 것의 기호들'을 사용하는 방식을 용의주도하게 해체해 버리는 영화다. 실제로 이 영화에 "부패에 찌든 아프리카 개발원조의 실상을 폭로하는" 발언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그 정치적 언어의 기호는 영화 속에서 기묘한 곳에 자리매김되어 있고 정치적인 기호의 대리인 혹은 수행자인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 역시 점점 그 기호와의 관련을 상실하거나 보다 모호하고 탈정치적인(apolitical) 기호들의 네트워크 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아직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기에 좀 직관적인 예를 두 개만 들어 보겠다. 가령 알프레드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UN이나 스파이조직이 등장한다 해서 이 영화를 국제정치에 관한 영화라 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수면병>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그런 것만큼 '순수영화'(pure cinema)에 가깝다.) 또 하나, <수면병>에서 정치적인 기호들이 탈구되는 방식을 시험해 보기 위해, 자크 투르뇌르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에서 백인여주인공과 부두교 좀비의 자리가 뒤바뀌었을 때 이 영화의 일련의 기호들이 어떻게 연쇄적으로 혼란에 빠져들게 될지를 상상해 보라. (실제로 <수면병>은 이른바 '교환 테스트'(commutation test)라 불리는 이런 식의 기호의 자리바꿈을 전면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영화다.)

나는 이미 앞서 언급한 "베를린파의 영화"란 글에서 울리히 쾰러를 비롯한 "베를린파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한때 이론적으로 논구되어왔던 정치적 아방가르드의 기획을 모던한 내러티브영화에 탈정치적으로 재도입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고 쓴 적이 있고 또한 "예술이 정치적인 것이라면, 일상의 정치사회적 관심들과 맞아떨어지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그러하다"고 한 쾰러 자신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정리하자면 <수면병>은 지극히 탈정치적인 영화이지만 그것이 이른바 정치적 작가영화들 안에서 정치적인 것의 기호들이 운용되는 방식을 흔들어 놓는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영화다. 말하자면 미학의 정치.


3. 심보선 시인 (9.29)

위에서 언급한 새로 창간된 잡지 F의 편집위원 가운데 한 분인 심보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문학과 지성사)이 지난 달 출간되었다. 아래 영상은 편집위원들끼리 모인 자리(홍대 근처 카페 '라라피포')에서 심보선 시인에게 낭송(?)을 부탁해 들은 것은 기록한 것이다. 최근 2.99달러인가를 지불하고 구매한 8mm vintage 앱으로 촬영했는데 내게 이 앱에 대해 처음 알려준 이가 심보선 시인이었다. 낭송된 시는 <눈앞에 없는 사람>에 수록된 "인중을 긁적거리며"라는 시다.




4. 마니 파버 (10.2)

마니 파버에 관해 조너선 로젠봄이 쓴 글을 다시 찾아 읽다가 글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은 파버의 말을 발견했다. "당신의 비평작업에 있어서 평가(evaluation)의 가치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평가란 사실 평론가에겐 쓸데없는 것이다. [...] 결국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당신이 그것(영화)을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영화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일엔 어떤 중요성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비평의 자질구레한 태만 행위들 가운데 하나다. 비평은 위계를 매기는 일(hierachies)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5. 영화제 (10.3 /10.6)

아침에 배달되어 온 오늘자 경향신문을 읽다가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쓴 부산국제영화제 관련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프랑스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영화제에 간다는 것은 시네필들에겐 마치 수도원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 마치 속세를 벗어나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자발적으로 하는 수행의 시간." 그는 흡사 바쟁이 수도원 생활과도 같은 영화제 체험에 임하는 시네필들에게 축성을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적고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앙드레 바쟁은 "영화제에 간다는 것은 시네필들에겐 마치 수도원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쓴 적이 결코 없다. 정성일 평론가는 칼럼에서 인용의 전거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사실 그가 참조한 바쟁의 글은 "종교적 의식으로 비치는 영화제"라는 제목의 짧은 에세이로 1955년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ema>에 실렸던 것이다. (이 글은 아직까지 한국어로는 번역, 소개된 바 없다.) 이 글은 정성일 평론가가 묘사한 바와는 정반대로 칸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국제영화제가 일종의 유사-종교적 절차에 입각하고 있음을 '풍자'하고 있으며 또한 시네필들의 경험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 바쟁의 원문에는 아예 '시네필'이란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 영화저널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불가피하게 '감내'해야 하는 -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 영화제의 종교적 제의들에 대한 우스꽝스런 묘사를 담고 있을 뿐이다. 

설령 정성일 평론가가 바쟁을 잘못 인용하고 있더라고 그의 글 전체의 취지 - 정확히는 시네필들의 경건한 수도원으로서의 영화제 경험을 언급한 글의 전반부 - 는 나무랄 데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 블로그를 읽고 나서 그렇게 물어온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래서 몇 마디 덧붙여 여기 적는다.) 문제는 영화제 경험을 경건한 종교적 제의에 '호의적으로' 빗대는 것 자체가 바쟁의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시네필적인 것과는 무관하다는 데 있다. 왜 우리의 영화경험이 "속세를 벗어나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기분"이나 "자발적으로 하는 수행의 시간"과 관련되어야만 하는가? 소란스러움이란 '진정한' 영화적 경험을 위해서는 박탈되어야만 하는 것이기라도 한 듯 말이다.

내가 보기에 시네필들은 산만할 수도 있고(자크 리베트의 경우), 영화를 파편적으로 보고(고다르나 영화평론가 마니 파버의 경우), 심지어 종종 졸기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은 특정한 영화적 사물과 순간이 등장할 때면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매혹되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말하자면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태도로 영화 관람에 임하는 것은 본디 시네필적인 것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들의 영화에 대한 존중과 애정의 태도가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시네필은 영화의 신도나 수도승으로서가 아니라 영화와의 절대적 평등과 우애 - 시네필들끼리의 평등과 우애가 아니라 - 의 관념에 입각한 애티튜드를 지니고 영화와 만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신집중(concentration)에의 과도한 요구는 궁극적으로 관객을 수용소(concentration camp)의 경험으로 몰아넣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제는 시네필들의 소란스러운 의견들로 넘쳐나는 광장이어야 하지 시네필의 수도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심지어 정성일 평론가는 김혜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미사를 기획"하는 사제에 빗댄 적도 있다. 나로서는 영화가 종교라면, 아니도 적어도 종교적인 그 무엇이라면 차라리 영화를 버리는 쪽을 택하겠다.)

바쟁의 원문 일부를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이 글은 첫 두 문단만 읽으면 정성일 평론가처럼 오독하기 십상이지만 저널리스트로서 바쟁이 경험한 칸영화제의 우스꽝스러운 종교적 절차와 의식들에 대한 묘사를 찬찬히 따라가며 끝까지 읽고 나면 절대로 오해의 여지가 없을 만큼 신랄하게 풍자적이다.

"밖에서 바라보면, 영화제 특히 칸에서 열리는 것과 같은 영화제는 세속적인 것의 정수인 양 비친다. 하지만 전문적인 영화제방문객이라 할 수 있는 이들, 즉 영화평론가들에게 있어서, 영화제만큼이나 심각하고 또 덜 (파스칼적 의미에서) '세속적'인 것도 없다. 1946년 이래 이러한 영화제들 대부분을 방문해 오면서, 나는 영화제라는 현상이 점차적으로 완벽을 기해가는 모습을, 그것의 제의들(rituals)과 필수적인 위계들(hierachies)을 실제로 만들어가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감히 말하건대, 영화제의 역사는 일종의 종교적 의식의 형성에 비견할 만하다. 영화제 전기간에 참여한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수도원 생활에 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영화기자들은 그들의 일상의 전문적이고 사적인 존재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생활에 임하며 2주를 소비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다. 우선 그들은 '초대된 손님'으로서, 편안하지만 한편으론 궁핍하기도 한 생활을 경험하러 온다. (궁전들(palaces)은 심사위원들, 영화스타들 및 프로듀서들을 위해서만 예비된 것이다.) 이 정도의 호사가 그들이 하는 일에 딱 걸맞는다. [...] 영화기자들은 상영관 내 6열에서 10열 사이의 좌석을 할당받는다. [...] 그들은 발코니 좌석을 할당받을 일이 없는데 그곳은 스크린에서 너무 멀고 게다가 거긴 심사위원들과 영화스타들을 위한 곳이다. [...] 영화프로그램과 별도로 파티들도 있다. 대체로 서너 개 파티가 주목에 값하는데 그 가운데 둘은 아주 중요하다. 먼저 섬으로의 여행, 거기선 매운 생선수프와 그 해의 떠오르는 스타가 바위 위에서 행하는 스트립쇼가 제공된다. 그리고 폐막파티가 있다."

바쟁의 위 글을 영역한 에밀리 비커튼(Emilie Bickerton)에 따르면 바쟁은 칸, 베니스, 베를린 등 대규모 국제영화제 대부분을 모욕적인 스펙터클로 간주했으며 이유인즉 거기서 영화는 흡사 매춘부처럼 2주 동안 전시될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1948년과 1948년에 '안티-칸'(anti-Cannes) 영화제를 조직하기까지 했다. 다시 말하지만 바쟁은 시네필들에게 영화제 경험이 수도원 생활에 임하는 것과 같다며 축성한 일이 없다. 대형 영화제들의 종교적 성격은 그저 그에게 역겨운 덫(trapping)으로 비쳤을 뿐이며 거기에 "영적 중심은 없었다 [...] 바쟁은 부분적으로 이를 조롱하는 한편 대체로 안타깝게 바라본다."(비커튼)

2011-09-28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지난 9월 16일부터 24일까지 개최된 스페인의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 다녀왔다. 첫번째 혹은 두번째 영화를 연출한 신인감독들을 대상으로 하는 'Kutxa-New Directors' 부문 심사위원을 맡아서였는데 대상은 독일감독 얀 차바일(Jan Zabeil)의 <강은 한때 인간이었다 The River Used to be a Man>에 주어졌고 제바스티안 마이제(Sebastian Meise)의 <스틸 라이프 Still Life>(오스트리아)와 하다르 프리들리히(Hadar Friedlich)의 <아름다운 계곡 A Beautiful Valley>(이스라엘/프랑스) 두 편이 특별언급되었다. 폐막식이 끝나고 파티장에서 얀 차바일 감독과 프로듀서, 그리고 주연배우인 알렉산더 펠링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감독에 따르면 이 영화는 단 9만 유로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고 - 참고로, 'Kutxa-New Directors' 부문 대상 수상작에 주어지는 상금이 꼭 9만 유로다 - 감독을 포함한 단 네 명의 스탭이 아프리카로 날아가 즉흥적인 방식으로 찍은 매우 실험적인 작품이다. 신인의 작품이라고 하기 힘들 만큼 영화의 모든 요소를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영화지만, 한편으론 올해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울리히 쾰러의 <수면병 Sleeping Sickness> 등 베를린파 영화미학의 연장선상에서 읽힐 수 있는 영화기도 하다. 확실히 신인감독상 부문 후보(한국영화로는 <채식주의자>의 임우성 감독의 두 번째 장편 <흉터>가 초청되었다)에 오른 15편의 경쟁작 중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심사회의는 단 1시간 만에 끝났다.) 아래는 폐막파티에서 'Kutxa-New Directors' 부문 심사위원들이 다같이 모여 찍은 사진이다. 


(맨 왼쪽부터) 스페인 라 카사 엔센디다(La Casa Encendida) 문화센터의 문화부장인 루시아 카사니(Lucia Casani), 2009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한 <루르드 Lourdes>(올해 국내에서 개봉되었다)의 감독인 예시카 하우스너(Jessica Hausner),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부문 프로그램디렉터인 파스 라자로(Paz Lazaro), 2006년에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찾은 바 있는(당시 대상은 캐나다 감독 드니 코테의 장편데뷔작 <방랑자 Drifting State>에 돌아갔다) 미국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 그리고 나다. (사진은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의 남편이자 음악가인 마커스 빈더(Markus Binder) 씨가 촬영해 메일로 보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