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7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대한 의문

(아래 글은 2010년 6월 19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행한 강연을 위해 준비했던 원고를 발췌, 정리한 것이다. 강연 당시 펠리니 영화의 몇몇 장면들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던 부분들 및 <로마>에 관한 별도의 코멘트 등은 삭제했다.)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오슨 웰스를 인터뷰하면서 당대의 몇몇 유명 감독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웰스는 히치콕과 관련해서는 그가 미국에서 연출한 작품 가운데 <의혹의 그림자 Shadow of a Doubt>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히면서 하지만 그의 많은 작품에는 어딘지 차갑게 계산적인 것이 있어서 좀 꺼려진다고 말한다. 또한 히치콕 자신은 배우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지만 웰스 자신이 보기에는 히치콕은 때로 인간 자체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도 지적한다. 이어 보그다노비치가 "그럼 펠리니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웰스는 "좀 쉬었다 하지 그래. 그건 그렇고, 펠리니가 히치콕하곤 뭔 상관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러자 보그다노비치는 "그냥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서요. <길>을 싫어하시는 걸로 알거든요"라고 말하면서 재차 묻는다. 그러자 웰스는 "나는 <영혼의 줄리에타>도 아직 못 보았는데"라고 말하며 답변을 피한다. 보그다노비치는 "그럼 <달콤한 인생>은요?"라고 묻자 그제야 답변을 들려주는데 이 답변이 짧기는 하지만 꽤 흥미롭다. 웰스는 펠리니는 본질적으로 로마에 실제로 가보지 못한 "스몰 타운 보이"(small town boy), 말하자면 촌놈이라고 운을 뗀다. 그러면서 그는 여전히 밖에 서서 문틈으로 안을, 그러니까 촌놈의 시선으로 로마를 들여다보고 몽상하고 있는 중인데, <달콤한 인생>과 같은 영화의 힘은 'provincial innocence', 그러니까 촌놈의 순진함에서 나온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곤 그때까지, 그러니까 <8 1/2>까지의 펠리니 영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은 "촌놈의 관점"이 잘 드러난 <비텔로니>가 아니겠냐는 보그다노비치의 말에 동의하며 말을 맺는다. (덧붙이자면 펠리니에 이어 보그다노비치가 웰스의 견해를 묻는 감독은 바로 고다르인데, 고다르에 대해서는 영화라는 기계장치에 대한 그의 놀랄만한 경멸을 깊이 존중한다고 답변한다.)

확실히, <시민 케인>과 <거짓과 진실 F for Fake>의 작가인 이 모던시네마의 거장이 펠리니를 두고 한 말에는 다분히 경멸적인 태도가 배어 있다. 게다가 <달콤한 인생>과 <8 1/2>같은, 소위 1960년대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처럼 흔히 일컬어지고 있는 영화의 창작자를 두고 촌놈의 순진함이 힘이라 말하는 데선 어쩐지 기묘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웰스의 발언에서 경멸적인 암시를 좀 걷어내고 펠리니의 영화 경력에 비추어 그의 말을 되새겨 보면 문득 웰스의 발언이 매우 정확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우선 잠정적인 결론삼아 미리 말하자면 펠리니의 모더니티란, 예컨대 "영화라는 기계장치에 대한 놀랄 만한 경멸"이라고 웰스가 표현했던 바의 모더니티, 즉 고다르 뿐만 아니라 웰스 자신도 공유했던 그런 모더니티, 즉 매우 자기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미적 모더니티,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즉 기존의 것을 폐기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에 기반한 모더니티와는 꽤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8 1/2> 같은 영화의 사뭇 자기반영적으로 보이는 형식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러했던 게 사실이지만, 이조차도 펠리니 특유의 성향에서 비롯된 충동적 스타일이 우연히 모던의 형식과 맞아떨어진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펠리니는 새로움보다는 기이함에 더 이끌렸던 감독이다. 그리고 그 기이함이 불러일으키는 경이(wonder)의 경험이야말로 펠리니의 경력을 이끌고 가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펠리니의 모더니티란 영화의 영역, 예술의 영역, 미학적 수준에서 말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근대라고 말할 때 근대의 여러 발명품들이 인간에서 선사했던 경이의 체험, 즉 모던의 경험을 영화에 담아내려 했다는 의미에서의 모더니티인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면, 뤼미에르의 <열차의 도착>이 그 자체로 모던한 영화, 모더니즘영화 혹은 모던시네마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열차라고 하는 근대의 발명품과 움직임의 환영을 통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영화라는 기계장치의 결합을 통해 모던의 경험, 그 경이의 체험을 사람들에게 선사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펠리니 영화에서의 모더니티를 말할 때는 정확히 이와 같은 의미에서다. 그러니까 리미니라는 이탈리아 시골마을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오다가 19살에 도망치듯 빠져나와 로마로 왔던 펠리니라는 시골청년의 영화에 경이로서의 모던의 체험이 깃들어 있고 또 그게 그의 힘이 된다고 했던 웰스의 말은 꽤 일리가 있는 셈이다.



시계태엽장치를 보는 오렌지


흥미롭게도 펠리니의 영화에서 기차는 범용한 일상의 탈것으로만 단순하게 보여지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 오즈 야스지로 같은 감독의 영화에서는 기차가 매우 인상적인 사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등장인물들에게 색다르고 경이로운 체험을 선사하는 그 무엇은 아니다. 하지만 펠리니의 영화에서는 (거의 20세기 초엽의 초기영화들을 떠올리게 할 만큼) 기차가 기대감과 경이의 경험으로 가득한 사물로 묘사되곤 한다.

[... 중략...]

이런 식으로 근대적 기계들을 매우 특권적으로 묘사하는 펠리니의 성향을 보여주는 사례는 기차 이외에도 선박, 자동차(특히 자동차는 그의 영화에서 종종 괴물스러운 대상들로 묘사된다. <8 1/2>이나 <로마>에서의 교통체증 장면을 떠올려 보라. <달콤한 인생>에서 자동차는 연인들이 싸우고 다투는 공간이다), 오토바이, 비행기, 우주선(세트) 등등 다양하다.또한 영화촬영에 수반되는 번잡한 기계장치들과 세트들에 대한 경이의 시선(<인터비스타>), 그리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특권적인 경험의 묘사(<비텔로니>, <로마>, <아마코드>) 등도 포함시킬 수 있다. 이러한 기계장치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모던의 경험에 대한 영화적 기록으로서의 펠리니의 모더니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꼭 긍정적인 경이의 체험으로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고 그러한 장치들에 담긴 어떤 무시무시한 부분에 대한 의혹의 시선도 있다는 걸 강조해 두고 싶다. 사실 그러한 장치들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의 양가감정이야말로 모던의 경험의 양면성을 특징짓는 중요한 것이다.) 펠리니가 (특히 그의 후기작에서) 영화장치들과 세트들을 보여줄 때, 거기엔 그가 기차나 선박, 비행기나 우주선을 영화에서 포착할 때와 동일한 감정이 담겨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걸 간과하게 되면 흔히 그의 후기작들을 두고 영화 매체 자체에 대한 반영적 시선이 들어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해서 그의 모더니티를 오해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포스트모던하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거의 말장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펠리니는 모던의 경험 자체에 대한 집착을 통해 (웰스나 고다르 등에 의해 수행되었던) 모던시네마의 야심적 시도들에 (우연히?) 부분적으로 다가간 인물이다. <로마> 같은 매우 현대적인 에세이 영화를 만든 이가 곧바로 <아마코드>나 <카사노바> 같은 별반 새롭지 않은 형식의 영화들로 돌아가면서도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중략...]


저널리즘과 스펙터클


펠리니 영화에 나타난 근대적 기계장치들만을 두고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너무 편협한 일이 될 것이다. 그가 네오리얼리즘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일탈'했다고 말해지는 <8 1/2>이후 펠리니의 영화는 점점 직선적인 이야기보다는 현실과 환상/상상/망상의 자유로운 교차(<영혼의 줄리에타>), 혹은 개별적인 에피소드의 연쇄(<사티리콘>, <카사노바>,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 하나의 소재를 둘러싸고 가능한 것들(가짜/진짜 다큐멘터리, 극영화적 재현, 스케치)을 모조리 끌어들이는 에세이적 구조(<광대들>과 <로마>) 쪽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펠리니의 이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적 모더니즘의 지적인 태도보다는 오히려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악동의 태도라고 할 만한 것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때로는 거의 반지성주의적으로 여겨질 정도인데, 서사라고 하는 전통적 구조물에 대한 지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단지 그것을 귀찮아하면서 자신이 흥미롭다고 여기는 이야깃거리들을 수다스럽게 풀어놓는 - 때로는 곁길로 새는 것도 얼마든지 용인하면서 - 저널리스트적 태도 같은 것이다.

펠리니는 애초에 영화감독이 될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가 19세에 로마로 왔을 때 그의 목표는 <마르크 아우렐리오>라는 상업지에 기고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대단한 발행부수(30만부)를 자랑하고 있던 이 상업지는 펠리니가 어린시절부터 애독해오던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거기에 자리를 잡아 카툰, 기사, 칼럼 등을 약 3년간 게재하게 된다. 여기에 쓴 글 가운데 어린 시절을 회고한 칼럼에 자주 등장했다고 하는 인물이 학창시절 그의 짝꿍이었던 티타(본명은 루이지 벤지)인데, 그는 바로 <아마코드>의 주인공이다. (실제의 티타는 <아마코드>에서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 외에도 시골이나 도시에서의 경험, 첫사랑 같은 이야기들을 일인칭 혹은 삼인칭으로 써내려간 이 칼럼 기고문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훗날 펠리니 영화에 재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펠리니의 경력은 신변잡기적 칼럼니스트, 혹은 유머작가로 시작되었으며 이는 그가 영화감독이 된 뒤에도 변치 않고 지속되었다고 봐야 한다.

연재칼럼의 형식은 이미 <비텔로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텔로니>의 이야기는 그 내레이터에 따르면 '작년'에 일어난 이야기이고 각 시퀀스 별로 기승전결이 갖춰진 독립적인 회고조의 이야기가 나란히 이어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광대들>, <로마>, <아마코드> 같은 영화들은 칼럼니스트의 주제별 글 모음집과 비교해 볼 만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에는 아예 저널리스트가 등장하는데 영화 자체는 카메라로 기록한 크루즈선 여행 칼럼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상업저널리스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달콤한 인생>은 밤마다 주인공이 겪은 로마의 밤문화에 대한 이미지-칼럼들을 시퀀스별로 모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밀고 나가자면 펠리니는 <달콤한 인생>에서 마르첼로가 겪은 이야기에 상응하는 '역사적' 이야기들을 카사노바의 회고록이나 페트로니우스의 소설에서 발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 펠리니가 버라이어티 극장에 종종 드나들곤 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첫 장편인 <버라이어티 극장의 불빛 Luci del varieta>을 비롯해 시작해서 <카비리아의 밤>, <로마> 등에도 버라이어티 극장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펠리니가 어린 시절에 매혹되었던 서커스와 더불어 버라이어티 극장 펠리니 영화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또한 매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서커스나 버라이어티 극장에서 중요한 것은 스펙터클 자체의 연쇄이지 이야기가 아니다. (동일하게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연극이나 오페라와 다른 점.) 예컨대 주인공(들)을 내세우되 느슨한 모험의 줄기만을 세워 두고 그들이 방문한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상황들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지는 두 편의 시대극 <사티리콘>과 <카사노바>는 서커스와 버라이어티의 영향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펠리니가 버라이어티 극장에 매혹되었다고 할 때 그는 단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객석의 관객들이 보이는 모습에도, 어쩌면 그것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펠리니가 <마르크 아우렐리오> 시절에 기고한 글 가운데는 다음과 같이 버라이어티 극장을 묘사한 것이 있다. "여기에 어머니들은 없다. 단지 소리 지르는 소년들과, 기술적인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견습생들, 입을 헤벌리고 군침을 흘리는 노인네들이 있을 뿐이다. 배우가 무대 위로 올라오면 군중은 짐승처럼 소리 지르며 열광한다." 펠리니가 영화에서 어떤 퍼포먼스 장면을 연출할 때, 그가 퍼포먼스 자체보다 그걸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이 벌이는 소동의 스펙터클에 더 치중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그가 서커스를 보여줄 때만큼은 퍼포먼스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광대들>의 마지막 시퀀스.)

<8 1/2> 같은 이른바 '모던'하다 일컬어지는 펠리니 영화조차도 서술적 이야기와 스펙터클한 쇼, 그리고 추억 사이의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주인공 귀도의 입장에서야 현실과 상상 사이의 갈등이겠지만, 감독인 펠리니의 입장에서는 <달콤한 인생>까지는 어떻게든 유지해왔던 이야기의 진행을 여기서도 견지할 것이냐 아니면 온전히 스펙터클과 추억의 연쇄로 밀고나갈 것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실험이 되는 것이다. 펠리니가 애초부터 이 영화를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로 구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정부와 아내의 방문을 동시에 맞게 된 한 남자의 갈등에 관한 것이었는데(이렇게 밀고 나갔다면 <달콤한 인생>과 유사한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자의 직업을 끝내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영화감독으로 설정하고는 이 영화 촬영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거기에 투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무엇에 쓸지도 모르면서 지으라고 해 놓았던 우주선 세트는 결국 영화 트레일러 제작용으로 촬영했다가 결국 그 영상을 영화의 엔딩으로 쓰게 되었다.) 이 영화의 환상 장면들, 특히 어린 시절, 귀도의 하렘 환상, 윤무가 이루어지는 서커스 공연 같은 엔딩 등은 각각 나중에 <아마코드>, <카사노바>, <광대들>같은 독립적인 영화들로 만들어지게 된다.

말하자면 펠리니 영화의 분산적 서사는 20세기(초/중반)의 대중들이 누렸던 오락적 매체들의 특징을 자유분방하게 끌어들인 데서 연유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 역시 모더니스트적 접근이라기보다는 모던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펠리니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신분석학의 영향이나 펠리니가 영화를 시작하고 한참 경력을 쌓아가던 무렵에 이탈리아에 번역되었던 모더니스트 소설들과의 관련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 관해 말하자면 펠리니가 거기서 받은 영향이란 것은 - 그의 영화작품들만을 놓고 보자면 - 거의 개론서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피상적인 것일 따름이다. 알베르토 모라비아 같은 소설가는 펠리니의 <8 1/2>을 보고 나서 그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을 읽고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지만 - 이 소설은 1960년에 이탈리아어 번역판이 처음 나왔다 - 펠리니의 친구이자 그의 전기를 쓴 툴리오 케치히라는 이에 따르면, 펠리니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시 그가 그 소설을 읽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걸 알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어떤 모던한 형식의 영화에 대해 말할 때 그 감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반드시 지적인 예술의 흐름과만 관련지으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리한다면 우리는 펠리니는 물론이고, 자크 타티 그리고 제리 루이스 같은 이들의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펠리니는 자신에겐 부족한 이른바 '고급예술'의 전통을 원숙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다른 이들의 힘을 빌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예컨대 그와 평생에 걸쳐 작업한 니노 로타는 펠리니가 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펠리니 스타일의 미술을 가능케 한 피에로 게라르디, 다닐로 도나티, 단테 페레티 같은 프로덕션 디자이너들에 대해서도 언급해 두어야겠다. 오히려 그런 쪽을 다른 이들에게 맡기면서 펠리니는 영화의 분산적 구조를 짜고,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에서 장기를 발휘하곤 했던 것이다. 특히 펠리니적 서사의 구축에 있어 버라이어티 극장(의 프로그램 구성방식)과 상업저널리즘의 칼럼 스타일 글쓰기(물론 카툰도 포함되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기선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펠리니의 영화에는 인물묘사나 상황설정에 있어 몇몇 특징적인 요소들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캐리커처의 특징이 있다는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는 핵심적인 참조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하 내용은 생략]    

2011-05-17

김응수 감독의 신작 소식

지난 일요일 김응수 감독의 신작 첫 편집본을 보기 위해 충주에 들렀다. 충주시내에서 충주호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다 마즈막재라는 곳을 지나면 왼편으로는 충주댐, 오른편으로는 목벌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목벌 쪽으로 방향을 잡고 한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이차선 포장도로도 끝이 나고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는 데 하루 세 번 이곳을 오가는 시내버스 종점 부근에 김응수 감독의 작업실이 자리해 있다. 지어진 지 30년 가량 된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앞마당엔 한때 횟집으로 사용되었던 두 채의 가건물이 좌우에 위치해 있다. 거실에서 창문을 내다보면 세 그루의 정자나무 너머로 충주호반의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김응수 감독의 신작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요코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출발한 작품으로 제작준비단계에서는 <요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었으나 현재는 <아버지가 있는/없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고 최종판에서는 또 다른 제목이 붙여질 것이라 한다. 김응수 감독의 전작 <천상고원>(2006), <과거는 낯선 나라다>(2007), <물의 기원>(2009)을 지켜보아온 이들이라면 이미 짐작하겠지만, 이 신작은 <요코 이야기>를 극화한 것도 아니며 그 책과 관련된 사실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적 기록도 아니다. 70분 남짓한 1차 편집본을 보고 나서 든 개인적인 생각은, 풍경의 답사를 통해 일본이라는 국가의 내면으로의 여행을 시도했던 에세이 영화의 고전들 - 예컨대 크리스 마르케의 <태양 없이>나 빔 벤더스의 <도쿄-가> - 에 대한 한 한국 지식인의 영화적 응답이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이 영화엔 두 갈래의 여정이 교차되고 있다. 요코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그녀 아버지의 고향 아오모리를 찾아나선 Q라는 인물의 여정, 그리고 한국남자와 결혼해 현재 충주에 살고 있는 마사코라는 여인이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해 고향 고토로 가는 길에 동행한 P라는 인물의 여정이 그것이다. (김응수 감독 자신의 이중화된 동시에 중첩된 영화적 분신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Q와 P는 화면에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존재를 드러내고 또 호명된다. 즉 이 영화의 내레이션은 전적으로 Q와 P가 주고받는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편지와 여정의 기록들은 <요코 이야기>라고 하는 문제적 텍스트를 '해체'(deconstruction)하면서 쓰여지지 않은 여백의 역사들을 현재에 불러들인다. 

아직 영화가 마무리된 것은 아닌 만큼 성급한 결론은 피해야 하겠지만, 김응수 감독의 이 새로운 '충주영화'가 <과거는 낯선 나라다>(2007)와 <물의 기원>(2009)과 더불어 일종의 '역사 3부작'을 이루면서 그의 최근 경력을 중간결산하는 작품이 되리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2011-05-15

The Past is a Strange Country (2008)



Kim Kyu-Hyun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And then in a flash he just . . . burned.”


In the documentary The Past is a Strange Country (Kwagŏ nŭn nassŏn narada), an interviewee has been calmly recounting the circumstances leading up to his college friend Lee Jae-ho’s (Yi Chaeho’s) horrid self-immolation—an event he witnessed more than twenty years ago. Upon uttering the above words, however, he bursts into tears in a manner that shocks both in its suddenness and plaintiveness. This and many other powerful, challenging scenes make the film (whose title references David Lowenthal’s study on the myriad modes and sites of historical remembrance) one of the best documentaries on Korea’s turbulent post-colonial history. That is no small feat considering that since the late 1980s South Korea has produced an impressive body of politically charged documentaries that explore the country’s modern experience, especially from the perspectives of the oppressed or marginalized. Filmmakers have reflected upon, for example, the dark side of the country’s impressive economic growth in Kim Dong-won’s (Kim Tongwŏn) Sanggyedong Olympics (1988); the long forgotten plight of former comfort women in Byun Young-joo’s (Pyŏn Yŏngju) series: The Murmuring (Najŭn moksori, 1995), Habitual Sadness (Najŭn moksori 2, 1997), and My Own Breathing (Samgyŏl, 1999); and the pernicious effects of lingering social prejudices including still-pervasive male chauvinism and homophobia in Choi Hyun-jung’s (Ch’oe Hyŏnjŏng) Being Normal (P’yŏngbŏm-hagi, 2002). In the last decade, a handful of “star” documentarians have emerged, whose works, despite low budgets and occasional rough edges, have managed to command critical respect as well as box office clout among South Korean viewers. A case in point is Kim Dong-won and his film Repatriation (Songhwan, 2004), a liberalminded—some might say pro-North Korean—look at Communist prisoners of conscience who were incarcerated for more than fifty years in Southern prisons for refusing to recant their beliefs, only to be “repatriated” in 2000 to the North. Despite the richness and range characterizing this growing corpus of cinematic takes on history, The Past is a Strange Country nonetheless manages to stand out in terms of content, form, and effect.

To begin with, its content is intimately intertwined with the life story of its director, Kim Eung-soo. Born in 1966, he was a student leader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 important site of the 1980s student movement that many credit with helping lay the foundations of Korea’s democracy today. His debut film, The Time Lasts Long (Sigan ŭn orae chisok toenda, 1996), is a somber, Tarkovskian black-and-white film—partly based on his own experience—that explores the lives of the Korean student activists who moved to Russia in the 1980s. Kim seems to be intensely aware of the political complacency in postauthoritarian Korean society, but his films avoid the familiar types of social critique seen in the works of more commercially successful directors with leftist inclinations. That is, his works evince little of the pedantic and elitist tone often found in politically conscious cinema of Korea—notably, in the films of Im Sang-soo and to an extent even in Kim Dong-won’s supremely humanistic documentaries.

The Past is a Strange Country consists entirely of interview footage of former activists recalling the self-immolation suicides of two Seoul National University students—the aforementioned Lee and Kim Se-jin—in April 1986. Interviewees appear on screen, except in one instance when only a voice is heard, and the final witness turns out to be director Kim himself (interviewed by an assistant). The film eschews virtually all the usual dramatic elements found in the historical documentary genre: voice-over narration, incidental music, reenactments, and editing techniques that manipulate the pace and rhythm of the stories told onscreen. The viewer is not shown as much as a yellowing newspaper article on the suicides. Other than a dreamy, slow motion trucking of the camera through a promenade-like street, there are no fancy visuals. All interviewers directly face the barely moving camera in long takes.

Yet the film is arresting and provocative. Director Kim skillfully couples aesthetic austerity with a few subtle cinematic devices to generate palpable tension. For example, Kim’s own voice as interviewer is electronically modulated so that he sounds often cold, almost mechanical. This strategy, in the absence of most other tricks of the documentarian’s trade, brings into sharp relief the complex topography of emotions woven by the faces and voices of the interviewees. In this sense, the film is reminiscent of Shoah (1985), Claude Lanzmann’s seminal Holocaust documentary, which also rigorously avoids dramatization. Both films derive their power—at times, almost unbearable power—from the interplay of distressing testimony and cinematic mastery. Kim, like Lanzmann, knows how to conceal his hands so that the voices of others may be heard more clearly. The same approach is extended to the interpretation of its politically charged content. There is so little editorializing in the film that a viewer may begin to wonder whether the suicides were less acts of heroic self-sacrifice than reckless gestures of adventurism or immaturity, if not outright nihilism.

The gap between attempts at sober, objective reconstruction of the past by the interviewees and the uncontrollable surge of emotions—shock, sorrow, guilt, anger, regret—from the depths of their hearts is striking; and this gap, or indeed “wound,” is revealed by Kim’s respectful yet probing questioning. Ultimately, it is this success in capturing the volatile nature of “remembering” and conveying a sense of how our experience often elude fixed meanings and storylines that makes The Past is a Strange Country so moving and also historically astute. Rather than lecturing to viewers how this or that particular moment should be interpreted, the film challenges us to discern possible meanings on our own.

(* This review was first published on The Journal of Korean Studies (16, no.1, spring 2011).

호세 루이스 게린과의 인터뷰


진행자 게이브 클링거(Gabe Klinger)

1975년에서 1982년 까지 11편의 단편과 중편 그리고 장편 영화를 8mm와 16mm로 제작하셨습니다. 지금의 영화와 관련해 이러한 초기 작품들의 스타일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게 있어 영화는 어떻게 입문하고 배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춘기 땐 영화가 거의 종교나 다름없었죠. 영화는 세상 및 주변 사람들과 교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의 첫 단편들은 – 사실 볼품없는 영화들이지만 – 세상과 문화에 대한 탐색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프랑코 체제 하에 있을 때였고 당시 스페인은 문화의 불모지였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미국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절대로 볼 수 없던 때였죠. 모조리 상영 금지였거든요. 저와 어울렸던 아이들은 보진 못하고 그저 꿈꾸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영화와 그 감독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그 영화들 중 몇 편을 보게 됐을 땐 약간 실망했어요. 상상하던 것과 실제 영화 사이에는 언제나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요.

필립 가렐, 노엘 버치, 라울 루이즈 같은 이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드실 거라고 하던데요.

그분들과의 대화를 녹화해 둔 것이 있습니다. 완성을 못했지만 언젠가는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저는 어렸고, 제가 존경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영화의 개념을 알고 싶었습니다. 가령 로베르 브레송을 찾아갔지만 촬영을 거부해서 찍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를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약간의 위기를 초래하긴 했지만 자크 로지에, 장 미트리, 장 비고 감독의 딸 루스 비고 등 다른 분들과는 인터뷰를 할 수 있었죠. 메모도 있고 이런저런 생각을 적어둔 것도 있지만 정리가 되진 않았습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에는 포함되지 않은 첫 장편 영화 <베르타의 동기>에 대해 얘기해 보죠. 젊었을 때(당시 22세) 이 영화를 만드셨는데 당시엔 법적 문제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보여지지 못했습니다. “저주받은 영화”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죠.

“저주받은” 영화란 꼬리표가 붙은 게 대중들로부터 거부당해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법적 문제 때문이었죠. 그 영화는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상영되었는데 반응도 좋았고 상도 몇 개 받았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죠.

<베르타의 동기>는 여러 면에서 파격적인 스타일을 지닌 영화로 보이는데요.

그렇습니다. <베르타의 동기>는 모든 게 사전에 쓰여지고 구상된 영화입니다. 저는 그것이 정상적인 단계라고 생각하는데 첫 영화를 만들 때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확실한 부분을 찾기 시작한 이후에는 구상과 계획을 치밀하게 하지 않아도 되죠. 언제나 모든 프레임을 미리 구상해서 찍는 히치콕 같은 감독들도 있습니다. 그게 영화의 전통이죠. 매 프레임을 다루는 데 있어서 상황을 우위에 놓기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상의 원칙들을 내세우는 겁니다. 하지만 감독의 성향이 어떻든 간에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는 치밀한 구상을 통해 부담감을 덜려고 노력합니다. <베르타의 동기>에서 촬영지를 선택하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 영화는 촬영할 만한 요소가 별로 없는 황량한 카스티야 지방에서 찍었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양식화 해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황량하고 텅 빈 곳일수록 화면에 잡히는 모든 것이 굉장히 중요하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런 이미지들 – 굽은 길, 홀로 서 있는 작은 나무 등 – 의 힘은 모든 쇼트에 의미심장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또한 이 영화는 흑백영화기도 한데, 따라서 그런 이미지 구성이 제대로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흑백은 윤곽을 부각시키는 반면 컬러는 각 이미지의 구성을 흐릿하게 하는 얼룩 같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에서 저는 당시 22세의 초보감독으로서 불안감을 감당해 내기 위해 많은 요소들을 덜어냈습니다. 모든 것이 세심하게 통제되었죠. 그랬기 때문에 매우 정신적이고 주관적인 풍경을 만들 수 있었던 거죠. 영화를 거듭 만들면서 알게 된 것은 현실이 내게 줄 수 있는 것과 나만의 담론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 현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가에 대해 점점 더 자신감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영화 <이니스프리>는 촬영지와 배경이 아일랜드였는데, 외국에서 작업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어떤 독특한 현실을 포착하기 위해 저는 항상 영화(카메라)를 이용해 왔습니다. 제게 있어 영화와 여행은 언제나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이미지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던 뤼미에르의  촬영기사들, 그들과 같은 개척자들의 선례를 따르고 싶습니다. 그들은 최고의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 뤼미에르는 이를 “영화를 위한 사냥”이라 불렀죠 – 목숨을 걸고 최고봉에 오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이었습니다. 뿌리를 깊은 곳에 두고 살아갈 필요가 있는 영화들이 나타난 건 그 이후죠. 예를 들어 미국의 존 포드, 프랑스의 장 르누아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포드는 자신의 기원을 찾아 아일랜드로, 르누아르는 스튜디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미국으로 갔던 것이죠. 따라서 영화는 여행자들의 것입니다. 저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집을 나서서 사무실로 가는 일과 닮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건 누군가의 삶에서 특별한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한 공간 안에서 일군의 사람들 사이에 아주 강렬한 연결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저는 여행자가 일상의 삶 속에선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사물을 더 예민하게 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여행의 장점은 당신이 길거리에서 볼 수도 있었지만 방법을 몰라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을 놀라게 만드는 힘이 있죠.
예컨대 저는 <공사 중>을 촬영할 때 그러한 여행자의 시선으로 한 동네를 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가방을 싸서 그 지역에 있는 호스텔에 묵기도 했죠. 처음에 저의 관심을 끌었던 것 중 하나는 이 동네가 이곳 저곳에서 온 수많은 이민자들로 가득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를 만들려면 타자들의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이 동네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대한 보다 정확한 기록이 가능하죠. 텔레비전 방송국의 흥미를 끌 법한 “지역”의 연대기나 보고서, 그런 영화가 되는 건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법한 영화, 보편적인 것을 탐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동네의 한 작은 부분 속에서 그런 작업을 추구하는 일이야말로 저를 흥분시키는 것입니다. 귀 기울여 들어 보면 세상을 움직이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곳이죠.

감독님의 작품들 중 <그림자 열차>는 거울처럼 작용하고, <공사 중>은 창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가 보다 이론적이고 미개척의 상태에 있는 영역에 존재하는 반면, 후자는 다큐멘터리 장르 내에서 몇몇 실천적인 도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 이론과 실천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하는 편인가요?

사실 저 스스로는 교수인지 감독인지를 판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제가 감독으로서 걱정하는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학생들도 똑같은 감독으로서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영화는 개념을 움직이게 하는 수단이고 거기서 이론이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보죠. <공사 중>에는 카메라 움직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걸 도그마로서 강요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대화들을, 그것도 아주 미묘한 대화들을 관찰하는 방법을 봤던 겁니다. 그러한 제약을 두고 촬영하지 않았다면 잡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을 만큼 미묘한 대화들이죠. 아버지와 아들이 측정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아들이 “2센티미터 더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내 연필은 그 정도로 뾰족하지 않아.”라고 대답합니다. 이 부분을 만약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카메라가 움직여 따라가는 식의 관습적인 방식으로 촬영했다면 대화의 뉘앙스가 흐트러졌을 것 입니다.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로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관객에게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이죠. 정확한 스타일에 따라 접근하면 비로소 영화작업에 임하는 손과 실제 작업 사이의 관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실제 작업을 통해 알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관계입니다. 영화 전체에서 유일하게 카메라 움직임이 활용된 <공사 중>의 마지막 쇼트는 바로 그런 생각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해 오는 것을 본 이후에, 저는 마침내 제 인물들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건 도덕적 선택이었죠.

고다르가 말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렇습니다. 자문해 봐야 하는 거죠. 그들이 걸어갈 때 가만히 있으면서 건물 벽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지, 아니면 그들을 따라 갈 것인지.

<그림자 열차>에 대해 얘기해 보죠. 제작 과정이 어땠나요?

영화를 만들 때마다 저는 제작 과정을 그 한계까지 밀어붙이려 노력해 왔습니다. <그림자 열차> – 매우 래디컬한 영화죠 – 의 경우,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제작자가 제게 전적인 자유를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자유를 활용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제게 돈을 주었고 어떻든 뒤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영화를 만든 것뿐입니다. <공사 중>을 찍을 때 자문해본 적이 있어요. “전문 제작진들로부터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이 학생들에게서 얻을 수 있을까?” 우선 그들은 제게 자신들의 열정을 선사했습니다. 전문 제작진들은 이 영화 저 영화 옮겨 다니며 작업하는 이들이라 그들에게 영화란 보다 일상적인 노동 같은 것이죠. 무엇보다 <공사 중>과 관련해 가장 특별한 점은 학생들의 경우 충분한 시간 동안 저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전문 제작진들과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작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죠. 돈이 엄청나게 들 테니까요.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학생들이 제게 제공한 시간 덕택입니다.

<공사 중> 이후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과 <실비아의 도시에서>로 다시 개인적인 형식으로 복귀하시는 걸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예전에 한 감독이 제 필모그래피에서 홀수 번째 작품은 보다 개인적이고 조용한 반면 짝수 번째 작품은 보다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말이 많은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홀수 번째와 짝수 번째 작품들 사이에는 항상 이런 강한 변증법이 존재했던 것이죠. 실제로 전 그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디지털 기술 덕택에, 제가 항상 바라왔던 것, 즉 저의 독백을 영화로 담아 내는 것, 고독 속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사람들과 일하는 것도 좋지만 혼자 틀어박혀 있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요즘엔 점점 영화가 점점 글쓰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한 장면을 작업하고 나서, 자신이 쓴 몇몇 페이지를 잠시 보관해 두는 작가처럼 그걸 폴더 안에 넣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일에 착수해서 다른 이미지들을 붙여 넣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지지 않고 일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작업하지 않았죠. 이런 방식은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에서 시작해서 최근 조나스 메카스와 작업한 영화-편지 작업(<서신들 Correspondences>)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사실 홀수/짝수 번째 영화들 간의 변증법은 어떤 정도까지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실비아의 도시에서>와 <서신들> 둘 모두 사교적인 영화거든요. (비록 대부분의 편지가 매우 고독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서신들>은 대화에 기반을 둔 작업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매우 흥미로운 것인데 왜냐하면 오늘날 영화감독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고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고독은 정말이지 이례적인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쿨레쇼프의 공장, 서로 대화를 주고받던 그 모든 위대한 소비에트 감독들의 이미지에 매혹되어 있었습니다. 감독들이 모여 함께 잡지를 만들고 여타 다른 프로젝트들도 진행했던 1960년대의 누벨바그도 마찬가지고요. 요즘 우리에겐 토론이란 게 거의 없죠. 제가 조나스 메카스에게서 깊이 감탄하게 된 것 중 하나가 그가 매우 사교적이란 겁니다. 뉴욕에서 둘이 함께 길을 걷고 있으면 항상 여러 감독들과 만나게 됩니다. 제가 보기에 조나스는 감독이기 이전에 – 물론 감독이기도 하죠 – 일을 벌이고 추진하는 데 탁월한 사람입니다.

<게스트>에서 뉴욕을 그린 부분은 매우 감동적이고, 또한 몽환적이며, 영화적 현실이라는 개념과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영화 속 다른 어떤 부분과도 달랐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영화 속에서 저는 이유, 인물, 상황을 찾아 그 모든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문제가 있었죠. 영화가 현실과 부딪히거든요. 뉴욕에선 그 도시를 무대로 한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지 않으면서 어떤 장면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죠. <게스트>는 어떤 장소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장기간 함께 있으면서 만든 <공사 중>과는 매우 다른 영화입니다. <게스트>는 어딘가에서 사나흘 밤을 머무르며 흔적을 남기려고 하는 몸짓을 스케치한 것 같죠.

젊은 영화광들에게 하고 싶은 충고가 있다면요?

제가 처음 영화에 흥미를 느꼈을 땐 영화학교라는 게 없었어요. 저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웠습니다. 당시 시네마테크는 정말 근사했죠. 어떤 날 오후에는 영화를 4편씩 보여주고, 고전 영화를 많이 상영해서 덕분에 영화의 역사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훌륭한 시네마테크야말로 최고의 영화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바르셀로나에 살 때 시네마테크에서 여러 번 감독님을 본 기억이 납니다.

어떤 영화들을 보러 가셨죠?

가령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이 열렸었죠.

오즈의 작품은 저도 전부 봤어요! 그때 전 <공사 중>을 촬영하는 중이었는데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유일하게 했던 일이 바로 오즈의 영화를 보러 가는 거였죠. 영화를 구성하는 그의 방식은 제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통상 한 인물에 주된 초점을 맞추는데 그러다 서서히 집단에게로 우리 관심을 향하게 하는 걸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죠. 그는 모든 이들의 관점을 모두 취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1959)에서는 작은 동네에 갑자기 텔레비전이 들어오고, 서서히 아이들, 부모들, 아저씨들, 이웃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 주죠. 오즈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이런 발상은 제가 영화작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