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5

겨울의 시작


1.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11.15)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의 영화라며 극찬하는 이도 보았고 맬릭의 가장 실망스러운 영화라며 비난하는 이도 보았다. 맬릭의 전작 <신세계 The New World>(2005)를 보았을 때, 그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건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던 나는, 사실 <트리 오브 라이프>에 대한 어떤 비판도 영화를 보고 나면 결국 대부분 받아들이기 힘든 것임을 확신하게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마침내 맬릭의 이 끔찍한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나서 우선 한국평론가들이 쓴 리뷰들을 찾아 읽어보았는데, "대체로 좋은 평을 받았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든가 혹은 "이런 점들은 평가할 만하지만 이러저러한 점에서 실패작"이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거만하고 점잔빼는 문장으로 길게 늘여놓은 글들뿐이었다. 비판하는 글들조차 어찌나 정중한지 비판자들 자신이 맬릭의 허세에 저도 모르게 감염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달까. (나는 이런 영화엔 예의를 갖춰 비판할 필요가 없고 둘 중 하나의 태도를 취하면 그만이라고 본다. 아예 아무런 글을 쓰지 않고 침묵하던지 그게 아니라면 100년이 넘는 영화사(史)를 모독하며 21세기의 영화를 오도하려 드는 이 영화를 아주 부숴놓겠다는 결의로 달려든던지.)

영화적인 것이란 결국 물성(物性)과 감각이다. 조금 달리 말하자면 물성을 통해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건 심지어 영화에서 유령적, 신비적, 환영적인 것을 다룰 때조차도 마찬가지이며,환상성의 물성화를 통해 감각의 열림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들로는 <노스페라투 Nosferatu>(1922)와 <타부 Tabu : A Story of the South Seas>(1931)의 F.W.무르나우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I Walked wih a Zombie>(1943)의 자크 트루뇌르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영화감독들은 감각이 물성 앞에서 마침내 열리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에 기대기보다는 물성 자체를 감각화함으로써 성급히 관객을 홀리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주적인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 우주를 보여줄 필요는 없다. (<트리 오브 라이프> 초반부를 장식하는, 베르너 헤어조크 혹은 갓프리 레지오 풍의 그 '우주적' 시퀀스만으로도 이 영화는 올해의 가장 저주받을 영화가 되어 마땅하다. 문득 <용암의 집>에서 페드로 코스타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영화 도입부에 용암을 보여준 데 있다고 한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말이 떠오른다.) 생명의 나무를 환기시키기 위해 굳이 앙각으로 촬영된 아름드리 나무를 보여줄 필요도 없다. (나는 예전에 <씬 레드 라인>과 <신세계>의 마지막 쇼트에 대해 쓰면서 "식물성의 침묵"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트리 오브 라이프>는 오히려 식물성의 광란으로 넘쳐난다.) 다른 한편으로, 우주적인 것에 대비되는 개인적인 것을 다루기 위해서라면 굳이 1950년대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없다. 그저 그것이 카메라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의를 지니는 것(사물, 사태, 사건, 인물 등)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의 물성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영화적인 것이라고 하는 인식이 전무한 <트리 오브 라이프>는 도무지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들로만 가득한, 나아가 영화의 모든 쇼트가 무가치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영화다. 따라서 우주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이라는 대당을 적절히 - 변증법적으로(?) - 관계맺는 데 실패한 영화라든가 유기적이지 못하다든가 하는 지적은, <트리 오브 라이프>가 서로 긴밀히 연관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의의있는 개별적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는 영화인 양 암시하는 비평적 언급들이란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가? (<트리 오브 라이프>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 A Space Odyssey>(1968)가 저지른 죄악을 그보다 과대망상증적인 형태로 재생산하고 있다. 생명을 이야기하는 죽음의 영화.) 그건 <트리 오브 라이프>가 풍부한 술어적 잠재성을 품은 고유명사적 존재(이 나뭇잎, 이 나무, 이 강아지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나)들의 구체성을 박탈 - 여기서 브래드 피트는 그저 1950년대 '어떤' 미국가정의 '어떤' 가장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  하고 모든 존재들을 진부한 은유의 보조관념으로 밀어넣음으로써, 구체적인 물성을 요하지 않는 감각적 형용사들과 동사들만 난무하는 역겨운 스펙터클의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보자면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모든 것은 a(존재)로서도, a에서 a',a'',a'''.../b,d,e...로 향하는 것(생성/변화)으로서도 호명되지 않으며 오직 'A적(的)인 것'을 가리키기 위한 희미한 이름 (a)로서만 불려나올 뿐이다.  (이때 감각은 열리기를 중단하고 잠에 빠져들거나 기껏해야 마비될 뿐이다.) 그러니 <트리 오브 라이프>의 모든 쇼트들이 어디에 시선을 둘 지 몰라 흔들리며, 머뭇거리다 재빨리 사라지고, 구원을 간청하듯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를 잃은 쇼트들의 당황과 망설임. 


2. 데이브 커의 <영화가 중요했던 때> (11.19)

지난 9월 토론토영화제를 방문했을 때, 영화평론가 데이브 커(Dave Kehr)의 평론집 <영화가 중요했던 때 When Movies Mattered>가 올해 출간된 것을 알고 구입해 두었다가, 최근 짬이 나는 대로 틈틈히 읽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평론집은 그의 최근 글들이 아니라 그가 <시카고 리더 Chicago Reader>의 평론가이던 시절, 그러니까 그의 나이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이었을 때 - 정확히는 1974년부터 1986년 사이, 책의 부제대로라면 영화의 "변형기"(transformative period)에 - 쓴 글들만을 모아 놓은 것이다. 커의 최근 글들은 <뉴욕 타임즈>나 <필름 코멘트> 같은 잡지들, 혹은 그의 블로그에서 종종 접해 왔지만 이처럼 그의 경력 초기의 글들을 접해본 건 처음이다. 그런데 글을 읽다가 대단한 통찰로 빛나는 문장들을 발견하고는 깜짝깜짝 놀라는 게 한두번이 아니다.

예컨대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 <프란시스카 Francisca>를 보고 나서 쓴 글(1983)을 보면 "장-마리 스트라우브가 막스 오퓔스와 협력해 만든 영화처럼 보인다"고 지적하면서 "올리베이라는 리얼리티를 촬영하지 않지만, 대신 영화에서 가능한  유일한 리얼리티, 즉 리얼리티의 예술적 대체물로서의 재현(representation) 자체를 카메라에 담는다."고 단언하는데, 이는 사실 올리베이라의 많은 영화에 폭넓게 적용되는 비평적 진술이 된다. 그런가 하면 라울 월쉬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쓴 그에 관한 에세이(1981)는 다음과 같은 비장한 문장들로 끝을 맺는다. "[월쉬 회고전은 고사하고] 몇몇 작품들이나마 지역의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법이 거의 없다. 아마도 월쉬의 저주는 그의 다산성(多産性)에 있는 듯하다. 익숙함의 유혹에 이끌려 선택되는 몇 편의 유명한 영화들에서 벗어나, 월쉬가 만든 백 편이 넘는 영화들 가운데서 영화를 골라낼 자는 누구인가?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월쉬의 작품은 들쑥날쑥하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모호하건, 거기에 그의 번뜩이는 재능, 보는 이를 감염시키는 그의 영혼이 제대로 담겨 있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월쉬의 영화를 봐야 한다. 궁극적으로, 월쉬를 위한 시네마테크는 심야 텔레비전이다. 그의 영화가 방영되지 않고 한 주가 지나가는 법은 거의 없다. 때로는 한주에 두세편이 방영되기도 한다." 커는 월쉬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의 스타일과 가치들이 그가 작업한 장르 자체와 워낙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월쉬의 전쟁영화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모든 전쟁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그의 서부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3. 아마도, 우연의 일치 (11.25)

서점에 들렀다가 지난 9월 출간된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의 <지도와 영토 La Carte et Le Territoire>(2010)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구입해 읽는 중인데,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소설 속 <르몽드> 기자가  주인공의 첫 전시회를 보고 쓴 리뷰의 한 문장인데, 워낙 소설 자체가 반어와 직설이 구분불가능할 만큼 뒤섞인 문장들로 넘쳐나는 만큼, 그처럼 따옴표 사이에 자리한 문장에 작가의 진의가 얼마나 담겨 있는지 판단하기란 불가능하다. 여하간 이런 문장이다. "그는 공동창작자로서의 신의 시점을 채택해 인간의 편에서 세상을 (재)구성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문득 이건 우엘벡 자신의 소설에 대한 능청맞은 논평(내지는 옹호의 발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대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기술한 듯한 스타일 때문에 가끔 잘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지만 이미 우엘벡의 <소립자>(1998)를 읽었을 때부터 이 작가는 기묘하게 스위프트적인 데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반면 <트리 오브 라이프>의 테렌스 맬릭은 신의 시점을 채택해 아예 그 절대자의 편에서 자신의 영화적 우주를 (재)구성하려 갖은 애를 썼던 것이고 나는 그런 가당찮은 태도를 견딜 수 없었다. 이 영화의 기도-로서의-내레이션은 발화자의 입장이 아니라 청자의 입장에서 삽입된 것처럼 보인다.) 일단 끝까지 읽고 다시 생각해 볼 참이지만 현재까지 읽은 감상으로는 - 딱 250페이지 읽었다 - 술술 읽히긴 하지만 그의 초기소설보다 서늘한 맛이 덜하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인데, 현대 미술계의 이면에 관한 이야기와 시대상(및 연애담)을 교차시키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혹시 출판사 문학동네에 이런 쪽에 취향이 있는 편집자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유인즉 지난 6월에 문학동네에서 번역, 출판된 마키 사쓰지(쓰지 마사키)의 추리소설 <완전연애>(2008)도 비슷한 설정을 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 까닭이다.

지난 일요일 광화문의 미로스페이스에 가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 Drive>(2011)를 보았다. DVD로 상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질이 형편없는 데다 사운드도 엉망이라 환불을 요구하고픈 심정이었다. 지난 9월 토론토영화제에서 볼 때완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고, 결국 이튿날 집 근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가서 다시 관람했다. 이 영화는 올해 한국에 개봉된 영화 가운데 소이 청(정보서 혹은 청 퍼우소이)의 <엑시던트 Accident>(2009)와 더불어 최고의 액션영화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베넷 밀러의 <머니볼 Moneyball>(2011)과 이 영화를 나란히 놓고 보면 두 영화의 주인공들에겐 자동차 운전석이야말로 진정 유일하게 사적이고 친숙한 공간인 것처럼 비친다. 두 영화 모두, 운전석에 홀로 앉아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 - 강도사건(<드라이브>), 야구경기(<머니볼>) - 의 추이를 긴장된 상태로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시작해, 홀로 차를 몰고 도로를 질주하는 그들 위로 노래의 형식을 빌려 그들의 삶의 방식을 위무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 "A Real Hero"(<드라이브>) "The Show"(<머니볼>) - 것으로 끝난다. 낭만적 고독과 세속적 도전, 장르와 리얼리즘, 감각적 폭력과 설득/대결의 언어, 화폐의 강탈과 자본의 경영, 이처럼 상이하게 갈라진 두 영화가 결국 만나는 장소. 혹은 자동차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마지막 공간 중 하나이자 [...] 인간에게 제공된 마지막 일시적 자치권역 중 하나"(미셸 우엘벡, <지도와 영토>)처럼 보인다.

2011-11-06

포르투갈 영화주간

11월 8일에서 10일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화상강의실(BRICS Multimedia Auditorium)에서 "포르투갈 영화주간"이 열린다. 모든 영화에 한국어자막과 영어자막이 제공되며 작품당 한 번씩만 상영된다. 한국-포르투갈 수교 50주년을 맞아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포르투갈영화특별전이 차례로 개최된바 있는데 편수는 많지 않지만 두 차례의 특별전에서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특히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영화의 팬들에게는 올해가 매우 특별한 한 해가 될 듯한데, 전주와 부산에서 그의 창조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좌절된 사랑의 4부작"(Tetralogy of Frustrated Love) - <과거와 현재 The Past and the Present>(1971), <베닐드 혹은 성모 Benilde or the Virgin Mother>(1975), <저주받은 사랑 Doomed Love>(1978), <프란시스카 Francisca>(1981) - 이 모두 소개된 데 이어 이번 외대 영화주간에선 그의 장편데뷔작 <아니키 보보 Aniki Bobo>(1942)와 더불어 올리베이라가 배우로 출연한 1930년대의 대표적 코미디(이자 포르투갈에서 제작된 최초의 유성영화)인 <리스본의 노래 A Song of Lisbon>(1933)가 상영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11월8일 <아니키 보보> 상영에 앞서 1시간 정도 강연할 예정이다.) 사전 예약은 없고 선착순 입장이며 입장료는 무료다.

11월 8일(화)

18:00 ~ 20:00  <아니키 보보 Aniki Bobo>(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Manoel de Oliveira, 1942) * 상영전 강연

11월 9일(수)

19:00 ~ 21:30  <안드레 발렌테 Andre Valente>(카타리나 후이부 Catarina Ruivo, 2004)
                        + 포르투갈 단편애니메이션

11월 10일(목)

18:00 ~ 21:30  <리스본의 노래 A Song of Lisbon>(코티넬리 텔무 Cottinelli Telmo, 1933)
                        + <노던 랜드 The Northern Land>(주앙 보텔류 Joao Botelho, 2008)

2011-11-05

비엔나영화제

지난달 20일 개막해 이달 2일 폐막한 오스트리아 비엔나국제영화제(Vienna International Film Festival : 일명 Viennale)에 다녀왔다. 2007년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 페드로 코스타, 하룬 파로키, 유진 그린 감독이 참여한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2007 : 메모리즈 Jeonju Digital Project 2007 : Memories>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 당시엔 2박3일 일정으로 짧게 들렀던 탓에 영화제를 제대로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올해로 49회째를 맞은 이 유서깊은 영화제는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해외의 숱한 감독들과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영화제 가운데 하나다. 칸, 베니스, 베를린, 토론토, 부산 등에서라면 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마주치게 될 영화 '장사꾼들'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고, 한국의 영화제에선 그토록 흔한 부대행사나 이벤트 하나 없이 비엔나 도처에 자리한 여섯 군데의 작은 영화관에서 조용히 열리는 행사일 뿐인데도, 많은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가 이곳에 초청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물론, 초청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이번에 비엔나에 가게 된 것은 내년에 50주년을 맞는 이 영화제와 관련해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특별전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는데, 비엔나영화제 측은 그들과 "같은 영혼"을 같고 있다고 판단한 대륙별 세 곳의 영화제에 비엔나영화제 50주년 특별상영 기획을 제안했다. 바로 유럽 포르투갈의 인디리스보아(Indie Lisboa), 미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국제영화제(일명 BAFICI), 그리고 아시아 한국의 전주국제영화제 세 곳이다. (최근 외국평론가들과 영화제전문가들은 비엔나, 인디리스보아, BAFICI, 전주 그리고 마르세유다큐멘터리영화제(일명 FIDMarseille) 등을 "자매영화제" - 실제로 자매결연 같은 걸 맺은 건 물론 아니다 - 라 칭하고 있으며, 전주국제영화제를 설명하기 위해 "비엔나와 BAFICI의  아시안 카운터파트(asian counterpart)"라는 표현을 쓴 이도 있다.)  

비엔나영화제는 세상의 모든 영화제 가운데 가장 간단하고 또 '평등'한 섹션구분을 자랑한다. 극영화/다큐멘터리/단편영화/특별전과 회고전. 경쟁부문은 아예 존재하지 않고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초청감독, 배우, 프로듀서, 영화제관계자들이 모두 같은 호텔에 묵게 된다. (심지어 영화제 몇몇 팀의 사무실과 게스트라운지도 호텔 안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많은 감독들은 비엔나야말로 수상발표를 기다리며 초조해하거나 경쟁감독과 비경쟁감독, 경력있는 감독과 신인감독 간의 대접을 달리하는 데서 스트레스 받는 일 없이 가장 편안하게 영화제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언젠가 필리핀 감독 라브 디아즈는 자신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한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작 상영이 끝나기 무섭게 리무진이 극장 앞으로 달려와 자신을 '납치'해가는 통에 도무지 영화제 기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다며 불평을 토로한 적이 있다.) 아침마다 조식자리에서 옛 친구들과 만나거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함께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과 극장 앞 로비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매일 밤 도나우강 위에 띄운 보트 위에서 열리는 - 이렇게 말하면 꽤 호사스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실은 강가의 작은 클럽 정도라고 보면 된다 - 조촐한 파티에 간다. (때론 영화제 참여감독 몇몇이 직접 DJ로 나서기도 한다.) 

비엔나영화제가 어쩐지 '관광영화제'같은 느낌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물론 비엔나는 비단 영화가 아니더라도 도시 자체가 매력으로 넘치는 곳이긴 하다. 하지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비엔나영화제의 프로그램은 가장 시네필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점이다.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서 나와 함께 신인감독상 심사를 맡았던 오스트리아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루르드 Lourdes>(2009))는 비엔나영화제에 대해 말하자 미소를 떠올리며 자랑스레 말했다. "비엔날레는 우스꽝스러운 위계로 게스트를 차별하지 않고, 정말 모험적인 영화들만을 상영한다.") 그러니까 두기봉의 신작과 조나스 메카스의 신작을 나란히 놓고 영화에서 '퍼스널'(personal)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는 곳, 한쪽에서는 샹탈 아케르망의 전작 회고전(과 그녀가 추천한 14편의 영화 상영전)이 열리는 동시에 다른 극장에서는 홍콩감독 소이 청의 회고전이 열리는 곳,  그곳이 비엔날레다. (작년 12월 말 서울의 단 한 극장에서 개봉된 소이 청의 <엑시던트 Accident>(2009)는 한국평단에서 거의 무시당했다. 이 작품은 지난 1년 간 국내 개봉한 영화들 가운데 가장 근사한 액션영화다. 이번 비엔나영화제 기간 동안 나는 운좋게도 그의 두 번째 장편 <공포열선 Horror Hotline : Big Head Monster>(2001)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성공적이라 말하긴 힘들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넘쳐나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메타-호러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 또한 장-피에르 고랭, 톰 앤더슨 같은 전위적인 영화감독들이나 조너선 로젠봄처럼 폭넓은 영화적 식견을 지닌 평론가들을 게스트큐레이터로 초청, 영화제 전후 한 달 동안 오스트리아필름뮤지엄(비엔날레 상영관 가운데 하나다)에서 열리는 특별프로그램을 기획하게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동안 그들이 기획한 프로그램의 제목만을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흰개미의 길 : 영화에서의 에세이 1909~2004"(고랭, 2007년), "로스앤젤레스 : 영화 속의 도시"(앤더슨, 2008년), "불온한 미국인 : 전복적인 미국 코미디영화들"(로젠봄, 2009년))


오스트리아필름뮤지엄 앞에서 기다리는 관객들


샹탈 아케르망 회고전 포스터. 포스터 아래쪽의 안내문구가 재미있다.
("오스트리아필름뮤지엄은 시네마테크입니다. 전시는 스크린상에서 이루어집니다.")

올해도 많은 영화감독들이 비엔날레를 방문했고, 그 가운데 개막작 <르 아브르 Le Havre>의 아키 카우리스마키, 난니 모레티, 데이빗 크로넨버그, 회고전의 주인공인 샹탈 아케르망 등은 잘 알려져 있는 이름들일 것이다. 비엔날레를 대표하는 것 가운데 하나로 1995년 이후 매년 여러 전위적인 감독들에게 의뢰해 제작, 공개하고 있는 1분짜리 영화제 트레일러가 있다. 기껏해야 영화제 트레일러 아니겠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사실 비엔날레 트레일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되어 몇몇 다른 영화제 프로그램에도 포함될  만큼 -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그동안 비엔날레 트레일러 몇 편을 "영화보다 낯선" 프로그램에서 상영해 왔다 - 작품성이 뛰어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엔날레 트레일러 작업을 모방해 감독들에게 영화제 트레일러 제작을 의뢰하는 영화제들도 생겨나고 있다. 수준은 제각각이지만 라야 마틴이 2011년 로테르담영화제를 위해 만든 <아르스 콜로니아 Ars Colonia>는 정말 훌륭하다.) 그동안 참여한 감독들의 이름만을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995년부터 순서대로) 구스타프 도이치(1995년과 1996년), 마르틴 아르놀트, 브루스 베일리, 피터 체르카스키, 마티아스 뮐러, 조나스 메카스, 스탠 브래키지, 어니 기어, 아녜스 바르다, 켄 제이콥스, 레오스 카락스, 젬 코헨, 장-뤽 고다르, 제임스 베닝,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이 가운데 체르카스키의 <준비 Get Ready>(1999), 고다르의 <파국 Une catastrophe>(2008), 베닝의 <불과 비 Fire & Rain>(2009)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들이고 모두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 상영한 바 있다.) 올해엔 미국의 데이빗 린치 감독이 만든 <The 3 Rs>가 트레일러로 공개되었다.


데이빗 린치(David Lynch) 감독이 연출한 2011년 비엔나 영화제 트레일러 <The 3 Rs>


비엔나영화제는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를 거의 매년 초청해 왔고 장-마리 스트라우브, 클레어 드니, 호세 루이스 게린이 참여한 올해 작품도 어김없이 이곳에서 상영되었다. 한국영화로는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과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2010) 두 편이 초청되었다. 그런데 왜 한국영화들은 이곳에 잘 초청되지 않는 것일까? (심지어 비엔나는 월드 혹은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를 요구하는 영화제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로테르담영화제나 뱅쿠버영화제처럼 아시아영화 전문 프로그래머를 따로 두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영화에 집중하는 곳이 아니란 점도 이유가 될 것이다.  한편 비엔나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한스 후르흐(Hans Hurch)의 말에 따르면 그건 비엔나가 한국영화를 꺼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감독들이나 배급사들이 비엔나 출품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대부분의 한국영화 배급사들은 초청장을 받고 나면 대뜸 "경쟁부문은 있느냐?"고 묻고, 이에 경쟁부문은 따로 없다고 대답하면 턱없이 비싼 상영료를 요구하곤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세계각국에서 중소규모의 경쟁부문을 갖춘 영화제들이 신설되고 고액의 상금을 내건 영화제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때라 (개봉보다는 영화제 상영료나 상금으로 비용을 회수하려 드는) 배급사들은 더더욱 그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저 경쟁부문이 있기 때문에, 상금이 많이 걸려 있기 때문에, 비엔나같은 영화제를 거절하고 다른 영화제에 영화를 보내는 것은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다. 


비엔나영화제 기간 동안 많은 영화를 보았는데 특히 벤 리버스(Ben Rivers)의 장편데뷔작 <바다에서 2년 Two Years at Sea>(2011)을 영화관에서 보고 감독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이 작품은 후반작업 진행중이던 올해 초, 전주국제영화제의 "워크인프로그레스 Work in Progress"에 출품, 1000만원의 제작지원금을 받아 완성한 16mm  장편영화인데, 이후 지난 9월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서 상영되어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비엔나를 떠나기 이틀 전, 벤 리버스 감독 그리고 알베르트 세라 감독(<기사에게 경배를>(2006), <새들의 노래>(2008))과 아침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근사한 턱수염을 기른 중년의 사내 한 명이 다가와 벤 리버스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이 어제 리버스의 <바다에서 2년>을 보았는데 정말 멋진 영화였고 꼭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년 사내가 누구였는가 하면 바로 (내가 2010년 세계영화 '10 베스트' 가운데 하나로 꼽은 바 있는) <아이타 Aita>(2010)의 감독 호세 마리아 드 오르베(Jose Maria de Orbe)였던 것이다. 그 둘은 한참 이야기를 더 이어나갔고 나는 다음날 아침 드 오르베 감독과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자신이 제작한 여러 실험적 조각작품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과연 <아이타>에서의 그 독특한 파운드푸티지 활용방식이 갑작스레 나온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호세 마리아 드 오르베 감독과 함께


<아이타>는 작년 산세바스티안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되었던 작품이지만 첫 공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오히려 올초부터 각종 영화제에서 뒤늦게 이 작품을 발견한 평자들에 의해 서서히 입소문이 퍼지고 있는 중이다. 드 오르베 감독은 작년 산세바스티안에서 있었던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었다. 경쟁부문 심사위원 가운데 필리핀감독 라야 마틴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호텔 로비에서 드 오르베 감독을 만나자마자 (심사위원으로서 지켜야 할 원칙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고) 모든 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에게 달려들며 "호세 마리아! 당신 영화가 최고예요, 최고!"라고 외치는 통에 말리느라 혼났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엔나를 떠나기 직전 받은 선물 하나. 올해 로카르노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나나 Nana>의 감독 발레리 마사디앙(Valerie Massadian)이 사진을 찍어 내 메일로 보내주었다. 작년(2010년)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던 이들에게 발레리 마사디앙은 낯선 이름이 아닐 수도 있다. 페드로 코스타 회고전에 맞춰 발간한 책자 표지의 근사한 흑백사진, 코스타의 영혼을 담아내었던 사진작가가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photographed by Valerie Massadian) 

2011-09-29

가을날 (2)

1. 인문예술잡지 F(에프) 출간 (9.29)


토론토와 베니스로 출장을 떠나기 직전까지 최근 창간준비에 참여해 온 인문예술잡지 F(에프)가 출간되어 현재 서점에 나와 있다. 나를 포함해 총 5인이 편집위원(정신분석학 전공이신 맹정현 선생, 사회학자이면서 최근 두 번째 시집을 내놓으신 심보선 시인,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이신 이상길 선생, 문지문화원 기획실장이신 주일우 선생)으로 참여했고 매 호마다 각각의 편집위원이 돌아가며 책임편집을 맡아 특정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그리고 북디자인은 최근 <이면의 도시>(자음과 모음, 2011)를 출간한 그래픽디자이너 김형재 선생이 맡아 주셨다. 창간준비호의 성격이 짙은 첫 호(F1)의 주제는 '재난'이다. 어느 정도는 뜻하지 않게 본 잡지에 긴 연재논문을 쓰게 되었는데 글의 제목은 <뤼미에르 은하의 가장자리에서>로 첫호(F1)에는 글의 첫 파트에 해당하는, 크리스천 마클레이의 <시계>에 대해 다룬 "시간의 건축적 경험"이 실렸다.
 

2. 울리히 쾰러의 <수면병 Sleeping Sickness>(2011)에 대한 오해 (9.29)

어제 부산국제영화제 티켓카탈로그를 살펴보다 알게 된 것인데, 올해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울리히 쾰러의 <수면병>에 대한 소개가 심하게 잘못되어 있다.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이미 본 블로그의 "베를린파의 영화"(2011.6.7 포스팅)에서 언급한 바 있다.) "부패에 찌든 아프리카 개발원조의 실상을 폭로하는 베를린파 감독의 수작"이라는 것이다. 물론 영화제 티켓카탈로그에 실리는 정보가 때로 적잖이 틀리기도 한다는 건 잘 알고 있기에 별로 문제삼을 일은 아니다 싶기도 하지만, 짧기는 해도 이건 이미 작품에 대한 심각한 오독이라 할 '해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었던데다 심지어 <씨네 21>의 부산국제영화제 리뷰에도 동일한 해석이 똑같이 실려 있는 것(자세한 리뷰는 <씨네 21> 본지를 참고할 것)을 보고 이건 좀 아니다 싶어 몇 자 적기로 했다.

단적으로 말해, <수면병>은 "부패에 찌든 아프리카 개발원조의 실상을 폭로하는" 영화가 아니다. 즉 그런 '정치적인'(political)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수면병>은 이른바 탈식민주의적 관점에 기반한 유럽의 작가영화들이 '정치적인 것의 기호들'을 사용하는 방식을 용의주도하게 해체해 버리는 영화다. 실제로 이 영화에 "부패에 찌든 아프리카 개발원조의 실상을 폭로하는" 발언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그 정치적 언어의 기호는 영화 속에서 기묘한 곳에 자리매김되어 있고 정치적인 기호의 대리인 혹은 수행자인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 역시 점점 그 기호와의 관련을 상실하거나 보다 모호하고 탈정치적인(apolitical) 기호들의 네트워크 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아직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기에 좀 직관적인 예를 두 개만 들어 보겠다. 가령 알프레드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UN이나 스파이조직이 등장한다 해서 이 영화를 국제정치에 관한 영화라 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수면병>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그런 것만큼 '순수영화'(pure cinema)에 가깝다.) 또 하나, <수면병>에서 정치적인 기호들이 탈구되는 방식을 시험해 보기 위해, 자크 투르뇌르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에서 백인여주인공과 부두교 좀비의 자리가 뒤바뀌었을 때 이 영화의 일련의 기호들이 어떻게 연쇄적으로 혼란에 빠져들게 될지를 상상해 보라. (실제로 <수면병>은 이른바 '교환 테스트'(commutation test)라 불리는 이런 식의 기호의 자리바꿈을 전면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영화다.)

나는 이미 앞서 언급한 "베를린파의 영화"란 글에서 울리히 쾰러를 비롯한 "베를린파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한때 이론적으로 논구되어왔던 정치적 아방가르드의 기획을 모던한 내러티브영화에 탈정치적으로 재도입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고 쓴 적이 있고 또한 "예술이 정치적인 것이라면, 일상의 정치사회적 관심들과 맞아떨어지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그러하다"고 한 쾰러 자신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정리하자면 <수면병>은 지극히 탈정치적인 영화이지만 그것이 이른바 정치적 작가영화들 안에서 정치적인 것의 기호들이 운용되는 방식을 흔들어 놓는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영화다. 말하자면 미학의 정치.


3. 심보선 시인 (9.29)

위에서 언급한 새로 창간된 잡지 F의 편집위원 가운데 한 분인 심보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문학과 지성사)이 지난 달 출간되었다. 아래 영상은 편집위원들끼리 모인 자리(홍대 근처 카페 '라라피포')에서 심보선 시인에게 낭송(?)을 부탁해 들은 것은 기록한 것이다. 최근 2.99달러인가를 지불하고 구매한 8mm vintage 앱으로 촬영했는데 내게 이 앱에 대해 처음 알려준 이가 심보선 시인이었다. 낭송된 시는 <눈앞에 없는 사람>에 수록된 "인중을 긁적거리며"라는 시다.




4. 마니 파버 (10.2)

마니 파버에 관해 조너선 로젠봄이 쓴 글을 다시 찾아 읽다가 글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은 파버의 말을 발견했다. "당신의 비평작업에 있어서 평가(evaluation)의 가치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평가란 사실 평론가에겐 쓸데없는 것이다. [...] 결국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당신이 그것(영화)을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영화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일엔 어떤 중요성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비평의 자질구레한 태만 행위들 가운데 하나다. 비평은 위계를 매기는 일(hierachies)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5. 영화제 (10.3 /10.6)

아침에 배달되어 온 오늘자 경향신문을 읽다가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쓴 부산국제영화제 관련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프랑스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영화제에 간다는 것은 시네필들에겐 마치 수도원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 마치 속세를 벗어나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자발적으로 하는 수행의 시간." 그는 흡사 바쟁이 수도원 생활과도 같은 영화제 체험에 임하는 시네필들에게 축성을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적고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앙드레 바쟁은 "영화제에 간다는 것은 시네필들에겐 마치 수도원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쓴 적이 결코 없다. 정성일 평론가는 칼럼에서 인용의 전거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사실 그가 참조한 바쟁의 글은 "종교적 의식으로 비치는 영화제"라는 제목의 짧은 에세이로 1955년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ema>에 실렸던 것이다. (이 글은 아직까지 한국어로는 번역, 소개된 바 없다.) 이 글은 정성일 평론가가 묘사한 바와는 정반대로 칸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국제영화제가 일종의 유사-종교적 절차에 입각하고 있음을 '풍자'하고 있으며 또한 시네필들의 경험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 바쟁의 원문에는 아예 '시네필'이란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 영화저널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불가피하게 '감내'해야 하는 -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 영화제의 종교적 제의들에 대한 우스꽝스런 묘사를 담고 있을 뿐이다. 

설령 정성일 평론가가 바쟁을 잘못 인용하고 있더라고 그의 글 전체의 취지 - 정확히는 시네필들의 경건한 수도원으로서의 영화제 경험을 언급한 글의 전반부 - 는 나무랄 데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 블로그를 읽고 나서 그렇게 물어온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래서 몇 마디 덧붙여 여기 적는다.) 문제는 영화제 경험을 경건한 종교적 제의에 '호의적으로' 빗대는 것 자체가 바쟁의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시네필적인 것과는 무관하다는 데 있다. 왜 우리의 영화경험이 "속세를 벗어나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기분"이나 "자발적으로 하는 수행의 시간"과 관련되어야만 하는가? 소란스러움이란 '진정한' 영화적 경험을 위해서는 박탈되어야만 하는 것이기라도 한 듯 말이다.

내가 보기에 시네필들은 산만할 수도 있고(자크 리베트의 경우), 영화를 파편적으로 보고(고다르나 영화평론가 마니 파버의 경우), 심지어 종종 졸기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은 특정한 영화적 사물과 순간이 등장할 때면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매혹되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말하자면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태도로 영화 관람에 임하는 것은 본디 시네필적인 것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들의 영화에 대한 존중과 애정의 태도가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시네필은 영화의 신도나 수도승으로서가 아니라 영화와의 절대적 평등과 우애 - 시네필들끼리의 평등과 우애가 아니라 - 의 관념에 입각한 애티튜드를 지니고 영화와 만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신집중(concentration)에의 과도한 요구는 궁극적으로 관객을 수용소(concentration camp)의 경험으로 몰아넣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제는 시네필들의 소란스러운 의견들로 넘쳐나는 광장이어야 하지 시네필의 수도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심지어 정성일 평론가는 김혜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미사를 기획"하는 사제에 빗댄 적도 있다. 나로서는 영화가 종교라면, 아니도 적어도 종교적인 그 무엇이라면 차라리 영화를 버리는 쪽을 택하겠다.)

바쟁의 원문 일부를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이 글은 첫 두 문단만 읽으면 정성일 평론가처럼 오독하기 십상이지만 저널리스트로서 바쟁이 경험한 칸영화제의 우스꽝스러운 종교적 절차와 의식들에 대한 묘사를 찬찬히 따라가며 끝까지 읽고 나면 절대로 오해의 여지가 없을 만큼 신랄하게 풍자적이다.

"밖에서 바라보면, 영화제 특히 칸에서 열리는 것과 같은 영화제는 세속적인 것의 정수인 양 비친다. 하지만 전문적인 영화제방문객이라 할 수 있는 이들, 즉 영화평론가들에게 있어서, 영화제만큼이나 심각하고 또 덜 (파스칼적 의미에서) '세속적'인 것도 없다. 1946년 이래 이러한 영화제들 대부분을 방문해 오면서, 나는 영화제라는 현상이 점차적으로 완벽을 기해가는 모습을, 그것의 제의들(rituals)과 필수적인 위계들(hierachies)을 실제로 만들어가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감히 말하건대, 영화제의 역사는 일종의 종교적 의식의 형성에 비견할 만하다. 영화제 전기간에 참여한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수도원 생활에 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영화기자들은 그들의 일상의 전문적이고 사적인 존재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생활에 임하며 2주를 소비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다. 우선 그들은 '초대된 손님'으로서, 편안하지만 한편으론 궁핍하기도 한 생활을 경험하러 온다. (궁전들(palaces)은 심사위원들, 영화스타들 및 프로듀서들을 위해서만 예비된 것이다.) 이 정도의 호사가 그들이 하는 일에 딱 걸맞는다. [...] 영화기자들은 상영관 내 6열에서 10열 사이의 좌석을 할당받는다. [...] 그들은 발코니 좌석을 할당받을 일이 없는데 그곳은 스크린에서 너무 멀고 게다가 거긴 심사위원들과 영화스타들을 위한 곳이다. [...] 영화프로그램과 별도로 파티들도 있다. 대체로 서너 개 파티가 주목에 값하는데 그 가운데 둘은 아주 중요하다. 먼저 섬으로의 여행, 거기선 매운 생선수프와 그 해의 떠오르는 스타가 바위 위에서 행하는 스트립쇼가 제공된다. 그리고 폐막파티가 있다."

바쟁의 위 글을 영역한 에밀리 비커튼(Emilie Bickerton)에 따르면 바쟁은 칸, 베니스, 베를린 등 대규모 국제영화제 대부분을 모욕적인 스펙터클로 간주했으며 이유인즉 거기서 영화는 흡사 매춘부처럼 2주 동안 전시될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1948년과 1948년에 '안티-칸'(anti-Cannes) 영화제를 조직하기까지 했다. 다시 말하지만 바쟁은 시네필들에게 영화제 경험이 수도원 생활에 임하는 것과 같다며 축성한 일이 없다. 대형 영화제들의 종교적 성격은 그저 그에게 역겨운 덫(trapping)으로 비쳤을 뿐이며 거기에 "영적 중심은 없었다 [...] 바쟁은 부분적으로 이를 조롱하는 한편 대체로 안타깝게 바라본다."(비커튼)

2011-09-28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지난 9월 16일부터 24일까지 개최된 스페인의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 다녀왔다. 첫번째 혹은 두번째 영화를 연출한 신인감독들을 대상으로 하는 'Kutxa-New Directors' 부문 심사위원을 맡아서였는데 대상은 독일감독 얀 차바일(Jan Zabeil)의 <강은 한때 인간이었다 The River Used to be a Man>에 주어졌고 제바스티안 마이제(Sebastian Meise)의 <스틸 라이프 Still Life>(오스트리아)와 하다르 프리들리히(Hadar Friedlich)의 <아름다운 계곡 A Beautiful Valley>(이스라엘/프랑스) 두 편이 특별언급되었다. 폐막식이 끝나고 파티장에서 얀 차바일 감독과 프로듀서, 그리고 주연배우인 알렉산더 펠링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감독에 따르면 이 영화는 단 9만 유로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고 - 참고로, 'Kutxa-New Directors' 부문 대상 수상작에 주어지는 상금이 꼭 9만 유로다 - 감독을 포함한 단 네 명의 스탭이 아프리카로 날아가 즉흥적인 방식으로 찍은 매우 실험적인 작품이다. 신인의 작품이라고 하기 힘들 만큼 영화의 모든 요소를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영화지만, 한편으론 올해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울리히 쾰러의 <수면병 Sleeping Sickness> 등 베를린파 영화미학의 연장선상에서 읽힐 수 있는 영화기도 하다. 확실히 신인감독상 부문 후보(한국영화로는 <채식주의자>의 임우성 감독의 두 번째 장편 <흉터>가 초청되었다)에 오른 15편의 경쟁작 중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심사회의는 단 1시간 만에 끝났다.) 아래는 폐막파티에서 'Kutxa-New Directors' 부문 심사위원들이 다같이 모여 찍은 사진이다. 


(맨 왼쪽부터) 스페인 라 카사 엔센디다(La Casa Encendida) 문화센터의 문화부장인 루시아 카사니(Lucia Casani), 2009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한 <루르드 Lourdes>(올해 국내에서 개봉되었다)의 감독인 예시카 하우스너(Jessica Hausner),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부문 프로그램디렉터인 파스 라자로(Paz Lazaro), 2006년에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찾은 바 있는(당시 대상은 캐나다 감독 드니 코테의 장편데뷔작 <방랑자 Drifting State>에 돌아갔다) 미국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 그리고 나다. (사진은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의 남편이자 음악가인 마커스 빈더(Markus Binder) 씨가 촬영해 메일로 보내준 것이다.)

2011-08-28

가을날


1. 보고 싶은 영화들 (8.28)

무엇보다, 테렌스 맬릭의 다섯 번째 장편 <생명의 나무 The Tree of Life>를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 (그의 전작 <신세계 The New World>(2005)는 끝내 국내 개봉되지 않았던 탓에 결국 미국에서 출시된 DVD를 구입해 보아야 했다.)

곧 개막할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된 작품들 가운데 사실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한 작품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er, Soldier, Spy>인데, 그건 이 영화의 감독이 <렛미인 Let the Right One In>(2008)을 연출한 토마스 알프레드슨이어서라기보다는 - <렛미인>이 영국평단에서 굉장한 호평을 받았던 건 알고 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영국적인' 원작의 연출을 스웨덴 감독에게 맡긴 건 아직도 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 내가 정말 좋아하는 현대소설가 가운데 하나인 존 르카레(John Le Carre)의 원작이 영화화된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다. 주인공인 은퇴한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영화판에선 게리 올드먼이 맡아 연기했다)가 파헤치는 주요 사건은 그가 조사하는 서류와 증인들의 회고를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될 뿐인, 사실상 '실내극'에 가까운 이 독특한 스파이물이 영화로 어떻게 옮겨졌을까? 게다가 이 영화판은 르카레조차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1979년 TV시리즈 버전(여기서 스마일리역은 명배우 알렉 기네스가 맡았다)과도 경쟁해야 한다. 이 TV판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많은 이들이 존 르카레 원작을 각색한 영화와 TV물을 통틀어 최고로 꼽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만 국한해 말하자면, 르카레 원작 가운데 최초로 영화화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마틴 리트 감독, 1965)가 여전히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제국의 경영"에 봉사하도록 훈련받았던 이들이 정작 그 제국이 사라져갈 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바로 그 "제국의 경영"이라는 현실로부터 탄생한 스파이장르의 구조에 대한 자기반영적 성찰과 겹쳐 놓은 르카레의 원작은,  냉전의 산물이면서 또한 역으로 냉전체제를 지탱하기도 한 시대적 정념이 다름아닌 환멸(disillusion)이었음을 소름끼치게 보여준다. (한편 냉전체제가 낳은 독특한 '직업'을 다룬 최근의 영화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카를로스 Carlos>(2010) -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에 이어 어제 서울아트시네마에서도 상영되었다 - 였다. 뭐랄까... 벤처사업으로서의 테러리즘? 하기야 테러리즘만큼이나 벤처(venture)라는 단어에 꼭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 아사야스의 영화 역시 환멸에 대한 앞서의 언급을 공유한다.)

그리고 첫 공개한 트레일러만으로 이미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은 왕가위의 신작 <일대종사 The Grand Master>를 (가능하면 올해 안에) 보고 싶다.


왕가위의 <일대종사 The Grand Master> 트레일러


2. 주말의 영화 (8.29)

김한민의 <최종병기 활(活)>을 보는 것으로 일요일 저녁은 아깝게 날아갔다. 이 영화에 국내 평단이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건 상반기 내내 별 가망없는 한국영화들이 그들의 눈높이를 지독하게 낮추어 놓았다는 걸 짐작케 할 뿐이다. 액션장면의 둔탁한 연출은 어떤 평자가 쓴 "리듬감과 막힘 없는 속도감"이란 표현이 도무지 근거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뿐이며 - 리듬감과 속도감은 이 영화가 지닌 미덕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미덕이다 - 그 이외의 장면들은 후진 TV 사극 수준의 연출력에 기대고 있다. 게다가 후반부 호랑이가 등장해 주인공을 구해 내는 장면에 이르면 시나리오의 논리 따윈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그 실험적인 과감함(?)에 저절로 입이 벌어질 정도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으로 돌아온 이들에 관해 언급하는 결말의 자막은 끝까지 실소를 참았던 이들에게 날리는 그야말로 "최종병기"다. 나 역시 거기서 결국 사(死)했다.)  


3. Shooting Kim Ki-Duk : Arirang (8.30)

사실 나는 <활>(2006) 이후의 김기덕 영화들에 대해선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실제로 <활> 이후의 김기덕 영화들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어떤 글도 써 본 일이 없다.) 김기덕이 예술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동안 한국평단은 오도된 작가주의 비평의 나쁜 실례들을 양산하기 바빴으며 정작 그의 영화엔 존재하지도 않는 철학을 설파하기에 급급했다. <활>은 김기덕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되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정작 이 기막히게 한심한 영화를 보고 나니 "올해 칸영화제의 조롱거리 [...] 칸은 마침 김기덕이 바닥을 쳤을 때 비로소 그의 영화를 선택했다"며 신랄하게 비웃은 <필름 코멘트 Film Comment> 편집장 개빈 스미스의 말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나는 김기덕의 신작 <아리랑>(2011)을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활>보다도 더한 실망을 안겨준 <비몽>(2008)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다 세 달 전 캐나다 영화잡지 <시네마 스코프 Cinema Scope>에 실린 편집장 마크 페란슨의 글을 읽게 되었다. 올해 칸영화제 리포트 형식의 3페이지짜리 글인데 전체의 1/4 가량이 <아리랑>에 대한 언급에 할애되어 있었다. (페란슨이 매우 전투적인 시네필일 뿐 아니라 때론 과도하다 싶을 만큼 독선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는 평론가라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리랑> 평가에는 거의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표독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가령 그는 <아리랑>에 관한 절을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고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건 영화가 아니다. [이걸 보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며, 이런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영화제라 불릴 자격도 없다." 문득 <아리랑>이 궁금해졌다.

<아리랑>을 보고 난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증오와 회한을 가장으로 둘러쓰긴 했지만 실은 '인정을 향한 욕망'으로 가득한 시각적 잡동사니일 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김기덕 자신이 제작, 사용하는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사제 권총처럼 - 심지어 이들 잡동사니를 '손수' 제작할 수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아리랑>은 그 홀로 Canon Mark II 디지털카메라 한 대만을 가지고도 영화를 만들 수 있음을 과시하는 완력의 영화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고지전>의 장훈 감독에 대한 비난을 비롯해 이런저런 한국영화의 현실에 대한 비난과 삶에 대한 철학(?)이 섞여들지만 사실 그것들은 여러 언론에서 과장한 바와는 달리 부차적인 것들(인 데다 "한국사회 50대 남성의 사회인식조사"같은 연구의 샘플자료로나 활용될 수 있을 뿐인 장황한 헛소리들)일 뿐이고, <아리랑>의 핵심에 놓인 것은 애타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 스스로 고백하듯 일본이나 중국감독들은 받았는데 아직 한국감독들은 받지 못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것 따위를 포함해서 - 그리고 해병대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하는 한 기이한 예술가의 절규다. 특히 해외의 국제영화제들과 그를 사랑해 주었던 외국의 국가들을 향해 열렬한 애정을 표하는 부분은 참기 힘들 만큼 불편하다. 물론 우리는 그처럼 궁지에 몰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애정을 갖고 다가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 그리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얼마 전 경향신문에 기고한 정성일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일부러 구분하지 않으려 한다. <아리랑>이 "진정성의 반격"이라고? 정성일 자신조차 믿지 않는 것을 마치 그런 것처럼 말하려다 보니 - 말하자면 김기덕에 대한 지지를 자신의 영화적 안목에 대한 믿음과 본의 아니게 연계시켜버린 그간의 행보에서 기인한 자가당착 - 그의 글엔 구멍들이 넘쳐난다. "진정성에 대한 냉소주의는 지식인들 카페에서 종종 마주치는 잘난 체하는 에스프레소만큼이나 만연되어 있다"고 한 그의 말은, 움막집 텐트 안에서의 '고행'(?) 중에도 기어이 사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김기덕에게 고스란히 되돌려 줘야 하는 것 아닐까?  교양을 과시하듯 파울로 코엘료의 <브리다>를 꺼내 읽는 장면만큼이나 뜬금없는 잘난 체가 또 있을까? 김기덕이 "수도를 하듯" 겨울을 견뎌냈다고 전하다가 불현듯 그가 "이따금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동네에 내려갔으며 재빨리 차를 끌고 다시 자기 집으로 되돌아왔다"고 적는 데선 - 여기서 '재빨리'란 단어는 '차를 끌고'  다닐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겨우내 수도를 행한 김기덕의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삽입한 표현임이 분명하다 - 할 말을 잃게 된다. 이쯤 되면 다소 긴 기간 동안 이루어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김기덕의 '수도'는 <1박2일> 연기자들의 '야생체험'보다도 럭셔리한 것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권력에 의해 영화제작을 금지당한 자파르 파나히와는 달리, 김기덕의 영화작업 중단은 꽤나 럭셔리한 것이라고, 마크 페란슨은 말한다.)

여기엔 증오나 분노가 아니라 무리를 잃은 골목대장의 투정이 있다. 그는 성내는 이들의 표정을 배워 그것으로 투정을 위장한다. 김기덕 자신의 말을 따르자면, 진정 '악한' 자만이 그 위장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을 보고 난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덕을 지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리랑>은 결코 김기덕의 진정어린 고백이거나 자기반영적 작업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2011-08-03

크리스천 마클레이의 <시계>(2010)

(이번 달에 창간호가 나올 예정인 잡지 <에프 F>에 실을 생각으로 크리스천 마클레이의 비디오 설치작품 <시계>(2010)에 관해 글을 쓰고 있었는데 원고지 수십매 정도로는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주제라는 걸 깨닫고는 내친 김에 한 번 긴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이달 창간호에 실릴 글은 (지금 계획한 바대로라면 "뤼미에르 은하의 가장자리에서"라는 제목이 붙여질) 전체 글의 약 1/10 정도, 전체 5부 가운데 1부의 첫 번째 파트에 해당하는 내용만을 담게 되었는데, 9월이 지나고 나면 내년 영화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처지라 언제쯤 마무리하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이 첫 번째 파트는 오늘날의 비디오 설치작품들 가운데 특별히 영화와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가공할 상영시간을 지니고 있는 작품들을 '시간의 건축술'이란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데, 이 아이디어는 발터 베냐민의 유명한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정확히는 3판의 15절)에서 얻은 것이다. 여기서 베냐민은 건축을 정신분산(distraction) 속에서 집단적 방식으로 수용이 이루어지는 예술의 원형으로 간주하면서 '정신분산 속의 수용'이라고 하는 예술경험의 새로운 양상은 영화 속에서 바야흐로 그 고유의 연습수단을 발견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영화는 (혹은 적어도 영화비평의 주류적 흐름은) 베냐민이 희망한 대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이에 나는 오늘날 영화와 미술이 상호작용하는 특별한 방식들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 베냐민의 논의를 감히 '부활'시켜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한편으로 내 글은 시네필리아(cinephilia)라는 특정한 현상을 바로 그 시네필적인 입장에서 비판해보고자 하는 시도일 수도 있다.

여하간 <에프 F>에 실을 글을 마무리하고 나서, <씨네 21>에 2주에 한 번씩 기고하고 있는 "시네마나우" 칼럼을 위해, <에프 F> 원고의 서문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을 -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 짧은 글을 하나 썼다. 아래의 글은 <씨네 21> 813호(2011.7.19~26)에 게재되었던 것을 옮긴 것이다. '위기의 아름다움'이란 제목은 편집자가 붙인 것이다.)



위기의 아름다움


영상설치미술 혹은 비디오아트가 오늘날 미술계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잡은 이후, 이들과 영화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을 논하는 것은 벌써 진부한 일로 여겨질 정도다. 두 영역을 오가며 작업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음은 분명 주목할 만한 현상이며, 이를 반영하듯 로테르담, 베를린 그리고 토론토영화제 등은 몇년 전부터 상당한 규모의 전시프로그램을 영화제 기간 동안 마련해왔다. 미술계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만든 사뭇 영화적인 ‘작품’이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영화관에서 상영된다거나 영화감독들이 만든 영상설치물이 (때론 그들의 영화 자체가) 비엔날레에 초청되고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것도 이젠 흔한 일이 되었다. 가령 <24시간 사이코 24 Hour Psycho>(1993)의 더글러스 고든이 만든 <지단: 21세기의 초상 Zidane : A 21st Century Portrait>(2006)이나 <크리매스터 Cremaster>(1995~2002) 연작의 매튜 바니가 만든 <구속의 드로잉 9 Drawing Restraint 9>(2005) 등이 칸과 베니스에서 상영되며 관심을 모았는가 하면 역으로 장 뤽 고다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페드로 코스타, 샹탈 애커만 같은 영화감독들은 전시프로그램을 위한 작업에 임하기도 했다(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런 식의 ‘횡단’이 꼭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미술계에선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스위스 작가 피필로티 리스트의 장편영화 데뷔작 <페퍼민타 Peperminta>(2009)처럼 재앙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멀티 플랫폼 프로젝트 <프리미티브 Primitive>(2009)의 대미를 이루는 장편영화 <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2010)에 칸영화제가 황금종려상을 수여한 것은 이와 같은 동시대적 경향을 영화계가 온전히 끌어안았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3천여편의 영화에서 시계가 보이거나 시간이 암시된 장면들을 발췌해 편집한 크리스천 마클레이의 24시간짜리 싱글채널 비디오작품 <시계>(2010)에 황금사자상을 안겨주었다.

 크리스천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의 <시계 The Clock>(2010)

이러한 현상을 두고 안일하게 경계의 소멸 운운하거나 이른바 ‘무빙-이미지’의 가능한 양상들에 대해 논하다보면 기원의 탐색(“이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이나 무용한 예언(“이것은 미래의 ~다”)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영화와 미술 두 영역이 만나 새로운 미학이 창조되고 있다고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개의 위기가 만나 격렬한 소용돌이를 이루는 광경으로서 이 모든 것을 바라봐야 한다. 뒤샹 이후의 현대미술이 끊임없는 위기의 생성과 극복의 과정으로서 진행되어왔고, 20세기의 예술인 영화는 “그 탄생의 순간부터 붕괴 전야(前夜)에 있었고 끊임없이 붕괴 전야가 생의 기저에 있다는 자각의 탐구를 스스로의 역사의 핵으로 삼아 왔다”(하스미 시게히코, <영화붕괴전야>)면 오늘날 영화와 미술간의 만남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다른 위기의 힘을 빌리는 기묘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 하겠다(영화광들과 예술영화관 경영주들은 “영화는 극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하는 것”이라는 당위로 맞서려 들지 모르지만 이는 관람이 이루어지는 어떤 공간과 시간을 특권적으로 낭만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공허하고, 그런 까닭에 위기를 사유하기엔 무력하다). 마클레이의 <시계>는 위기의 소용돌이로 이루어진 기념비적 작품이다. 개념적이고 담론적인 현대미술과 순수영화적 형식(서스펜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위기의 징후들이지만 <시계>에서 각각의 위기가 다른 위기를 지탱하며 곡예를 부리는 광경은 정말이지 경이롭기 짝이 없다. 제목 그대로 하나의 시계처럼 기능하는 이 작품은 누군가의 말처럼 24시간 동안의 카운트다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카운트다운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상승일까 아니면 그저 제로(0)일 뿐일까?

2011-06-07

베를린파의 영화

(이번 달부터 <씨네 21> '시네마나우' 코너에 격주로 글을 쓰기로 했다. 최근 세계영화계에서 벌어지는 주요 사건과 흐름들을 소개할 목적으로 마련된 코너로 알고 있다. 아래 옮겨 놓은 것은 그 첫 번째 글로 최근 조금씩 주목받고 있는 베를린파 영화감독들에 관한 것이다. <씨네 21> 807호(2011.6.7~14)와 809호(2011.6.21~28)에 2회에 걸쳐 게재되었다.)

바이마르공화국 시기(1919~1933)에 일찌감치 황금기를 맞이했던 독일영화는, 이후 뉴 저먼 시네마의 도래와 더불어 짧은 부흥기를 맛본 이후론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제적으로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사정이 좀 달라진 건 세기가 바뀌고 나서부터다. <굿바이 레닌>(2003)이나 <타인의 삶>(2006) 같은  ‘히트작’들이 나온 덕택이기도 하겠지만, 세계 평단이 다시 독일영화에 눈을 돌리게 된 건 아무래도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일군의 독특한 영화감독들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독일 평론가들에 의해 명명된 바 ‘베를린파’(Berliner Schule)에 속하는 감독들로는, 독일영화텔레비전아카데미(dffb) 출신인 1세대, 즉 앙겔라 샤넬렉, 크리스티안 펫졸트, 토마스 아슬란을 비롯해 그들의 뒤를 이어 2세대라 불리는 울리히 쾰러, 발레스카 그리제바흐, 마렌 아데, 베냐민 하이젠베르크, 크리스토프 호흐호이슬러 등이 있다. 나치, 비밀경찰, 통일, 이민자 문제 등 ‘큰 주제’를 다루어 최근 세계영화시장에서 제법 성공을 거둔 주류 독일영화들과 달리 이들 베를린파 영화들은 오늘날 독일인들의 일상적 삶의 미시적 관찰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다. 감독들 상호간의 의견교류와 팀워크에도 상당한 비중을 부여하는 그들의 미학적 프로그램은 주로 잡지 <리볼버 Revolver>(1998년 창간)[1]를 중심으로 표명되어 왔다.

<에브리원 엘스 Everyone Else> (Maren Ade, 2009)

지난 10년 동안 (‘독일 누벨바그’란 표현을 쓴 프랑스 평단을 시작으로) 독일 바깥에서 서서히 인지되기 시작한 베를린파 영화들이, 통일 이후 독일사회에 대한 미시적 분석으로서 바이마르 영화나 뉴 저먼 시네마에 필적할 만큼의 중요성을 띠고 영화사에 등재될 것인가는 시간을 두고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2~3년 동안 이들의 작업이 바야흐로 원숙기에 이르렀음을 추측케 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데, 예컨대 마렌 아데의 <에브리원 엘스 Everyone Else>(2009), 베냐민 하이젠베르크의 <강도 The Robber>(2010), 토마스 아슬란의 <그림자 속에서 In the Shadow>(2010) 그리고 “이른바 베를린파 가운데서도 가장 퍼스널한 필름메이커”(마크 페란슨)로 꼽히는 울리히 쾰러의 세 번째 장편 <수면병 Sleeping Sickness>(2011) 등이 그것이다. (이미 그의 데뷔작 <방갈로 Bungalow>(2002)로 “베를린파 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란 평을  끌어낸 바 있는 쾰러의 신작 <수면병>은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과 더불어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유일한 영화였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수면병>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정글)과 클레르 드니(의 아프리카)를 뒤섞고 조셉 콘래드 풍의 내러티브를 덧입힌 것 같은 영화지만, 자연의 숭고미라든가 정치적 함의가 개입될 여지를 용의주도하게 피해나가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지배적 시점이 없이 복수화된 시점들이 교차되며, 밀도 높은 각각의 순간들이 고유의 비극적(undramatic) 긴장을 만들어 내는 쾰러의 영화는, 아데의 <에브리원 엘스>와 더불어 베를린파의 미학이 지금껏 가장 섬세하게 구현된 작품이라 하겠다.

<수면명 Sleeping Sickness> (Ulrich Koehler, 2011)

어떤 면에서 베를린파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한때 이론적으로 논구되어왔던 정치적 아방가르드의 기획을 모던한 내러티브영화에 탈정치적으로 재도입하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쾰러는 다분히 아도르노적인 어조로 “예술이 정치적인 것이라면, 일상의 정치사회적 관심들과 맞아떨어지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그러하다. 예술의 힘은 그 자율성에 놓여 있다.”고 쓴 적이 있다.) 영화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라 할 만큼 비평과 창작행위가 종종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매우 특수한 ‘독일적’ 상황에서 나온, 내러티브영화의 쇄신을 위한 기획이랄까.

베를린파의 영화적 실험이 주류 독일영화에 대한 반발에서 기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내러티브영화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즉 그들의 작업은 (베를린파 1세대의 산실인 독일영화텔레비전아카데미(dffb) 교수들인) 하룬 파로키나 하르트무트 비톰스키의 아방가르드적 실천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베를린파 영화는 최소한의 플롯을 구실로 삼아 인간과 환경(milieu)이 상호작용하는 비가시적 장(場)의 역학을 탐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적잖은 수의 베를린파 영화에서 외국의 도시나 휴양지, 국경지대 등이 무대로 제시되고 집을 떠나 있거나 새로운 장소에 막 도착한 인물이 등장하곤 하는 것도 그러한 비가시적 장의 떨림을 가장 용이하게 감지할 수 있는 상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분히 안토니오니적인 방식으로 ‘일상을 모험화’하는 방법론이 가장 잘 드러난 영화로는, 마르세이유와 베를린을 오가는 과정에서 실존적 궁지에 빠지게 된 한 여류사진작가가 등장하는 앙겔라 샤넬렉의 <마르세이유 Marseille>(2004)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크리스티안 펫졸트의 <열망 Jerichow>(2008), 아슬란의 <그림자 속에서>, 하이젠베르크의 <강도>처럼 (주로 범죄와 관련된) 장르영화의 쇄신에 관심을 기울인 최근 작업들은 오히려 ‘모험을 일상화’하는 쪽에 가깝다.

<드라이레벤 Dreileben>(2011) 연작을 연출한 세 감독들
(왼쪽부터 크리스티안 펫졸트, 도미닉 그라프, 크리스토프 호흐호이슬러)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공개되어 평단의 절찬을 받은 <드라이레벤 Dreileben>(2011)은 이같은 장르영화 쇄신의 정점에 자리한 작품이자 베를린파의 변모를 예감케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상이한 세대에 속한 세 명의 감독 - 도미닉 그라프(1952년생), 크리스티안 펫졸트(1960년생), 크리스토프 호흐호이슬러(1972년생) - 이 각각 연출한 90분 분량의 장편 세 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동일한 장소와 시기를 배경으로 두고 범죄사건을 매개로 삼아 세 개의 (독립적인 동시에 느슨히 연관된) 삶의 양상들을 차례로 다룬 일종의 TV용 ‘미니시리즈’다. 이 작품의 기원은 2006년 여름, 세 명의 감독이 이메일 교환을 통해 진행한 토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를린파 영화가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일을 점점 경시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한편 장르영화의 부재에 아쉬움을 토로한 그라프의 이메일[2]로 촉발된 이 토론은 결국 이론적 논의를 넘어 함께 영화를 만드는 작업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드라이레벤>이라는 걸출한 작품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카를로스>(2010), 라울 루이즈의 <리스본의 미스터리>(2010), 그리고 (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토드 헤인즈의 <밀드레드 피어스>(2011) 등과 더불어 21세기 영화에서 내러티브/장르/텔레비전과 결부된 작가주의의 미래와 가능성에 관한 비평적 고찰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논하는 일은 별도의 지면을 요한다.)

사실 베를린파 영화들이 미니멀리즘적이고 무기력하며 (특히 잡지 <리볼버>를 중심으로) 게토화된 미학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는데, 대개는 그저 피상적인 인상에만 근거한 것이다. (예컨대 롱테이크, 롱숏, 절제된 대사가 이들 영화의 특징이라는 지적은 마렌 아데의 <나만의 숲 The Forest for the Trees>(2003) 같은 영화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비판들에 맞서 그간의 결과물들을 재검토하고 ‘진화’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이야말로 이들의 작업을 이론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기획’(project)으로서 간주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드라이레벤>은 그러한 노력이 얼마만큼의 창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 드물게 모범적인 사례다.

※ 주

[1] <리볼버 Revolver> 홈페이지 (독일어) : http://www.revolver-film.de/
[2] 이후 크리스티안 펫졸트, 도미닉 그라프, 크리스토프 호흐호이슬러가 주고 받은 이메일은 <리볼버>에도 게재된 바 있다 : 독일어 원문 및 영어 번역본 다운받기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 카탈로그 내 <드라이레벤> 관련 페이지 PDF파일로 작품해설 및 인터뷰 등도 함께 수록되어 있음)

2011-05-27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대한 의문

(아래 글은 2010년 6월 19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행한 강연을 위해 준비했던 원고를 발췌, 정리한 것이다. 강연 당시 펠리니 영화의 몇몇 장면들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던 부분들 및 <로마>에 관한 별도의 코멘트 등은 삭제했다.)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오슨 웰스를 인터뷰하면서 당대의 몇몇 유명 감독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웰스는 히치콕과 관련해서는 그가 미국에서 연출한 작품 가운데 <의혹의 그림자 Shadow of a Doubt>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히면서 하지만 그의 많은 작품에는 어딘지 차갑게 계산적인 것이 있어서 좀 꺼려진다고 말한다. 또한 히치콕 자신은 배우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지만 웰스 자신이 보기에는 히치콕은 때로 인간 자체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도 지적한다. 이어 보그다노비치가 "그럼 펠리니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웰스는 "좀 쉬었다 하지 그래. 그건 그렇고, 펠리니가 히치콕하곤 뭔 상관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러자 보그다노비치는 "그냥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서요. <길>을 싫어하시는 걸로 알거든요"라고 말하면서 재차 묻는다. 그러자 웰스는 "나는 <영혼의 줄리에타>도 아직 못 보았는데"라고 말하며 답변을 피한다. 보그다노비치는 "그럼 <달콤한 인생>은요?"라고 묻자 그제야 답변을 들려주는데 이 답변이 짧기는 하지만 꽤 흥미롭다. 웰스는 펠리니는 본질적으로 로마에 실제로 가보지 못한 "스몰 타운 보이"(small town boy), 말하자면 촌놈이라고 운을 뗀다. 그러면서 그는 여전히 밖에 서서 문틈으로 안을, 그러니까 촌놈의 시선으로 로마를 들여다보고 몽상하고 있는 중인데, <달콤한 인생>과 같은 영화의 힘은 'provincial innocence', 그러니까 촌놈의 순진함에서 나온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곤 그때까지, 그러니까 <8 1/2>까지의 펠리니 영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은 "촌놈의 관점"이 잘 드러난 <비텔로니>가 아니겠냐는 보그다노비치의 말에 동의하며 말을 맺는다. (덧붙이자면 펠리니에 이어 보그다노비치가 웰스의 견해를 묻는 감독은 바로 고다르인데, 고다르에 대해서는 영화라는 기계장치에 대한 그의 놀랄만한 경멸을 깊이 존중한다고 답변한다.)

확실히, <시민 케인>과 <거짓과 진실 F for Fake>의 작가인 이 모던시네마의 거장이 펠리니를 두고 한 말에는 다분히 경멸적인 태도가 배어 있다. 게다가 <달콤한 인생>과 <8 1/2>같은, 소위 1960년대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처럼 흔히 일컬어지고 있는 영화의 창작자를 두고 촌놈의 순진함이 힘이라 말하는 데선 어쩐지 기묘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웰스의 발언에서 경멸적인 암시를 좀 걷어내고 펠리니의 영화 경력에 비추어 그의 말을 되새겨 보면 문득 웰스의 발언이 매우 정확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우선 잠정적인 결론삼아 미리 말하자면 펠리니의 모더니티란, 예컨대 "영화라는 기계장치에 대한 놀랄 만한 경멸"이라고 웰스가 표현했던 바의 모더니티, 즉 고다르 뿐만 아니라 웰스 자신도 공유했던 그런 모더니티, 즉 매우 자기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미적 모더니티,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즉 기존의 것을 폐기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에 기반한 모더니티와는 꽤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8 1/2> 같은 영화의 사뭇 자기반영적으로 보이는 형식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러했던 게 사실이지만, 이조차도 펠리니 특유의 성향에서 비롯된 충동적 스타일이 우연히 모던의 형식과 맞아떨어진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펠리니는 새로움보다는 기이함에 더 이끌렸던 감독이다. 그리고 그 기이함이 불러일으키는 경이(wonder)의 경험이야말로 펠리니의 경력을 이끌고 가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펠리니의 모더니티란 영화의 영역, 예술의 영역, 미학적 수준에서 말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근대라고 말할 때 근대의 여러 발명품들이 인간에서 선사했던 경이의 체험, 즉 모던의 경험을 영화에 담아내려 했다는 의미에서의 모더니티인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면, 뤼미에르의 <열차의 도착>이 그 자체로 모던한 영화, 모더니즘영화 혹은 모던시네마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열차라고 하는 근대의 발명품과 움직임의 환영을 통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영화라는 기계장치의 결합을 통해 모던의 경험, 그 경이의 체험을 사람들에게 선사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펠리니 영화에서의 모더니티를 말할 때는 정확히 이와 같은 의미에서다. 그러니까 리미니라는 이탈리아 시골마을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오다가 19살에 도망치듯 빠져나와 로마로 왔던 펠리니라는 시골청년의 영화에 경이로서의 모던의 체험이 깃들어 있고 또 그게 그의 힘이 된다고 했던 웰스의 말은 꽤 일리가 있는 셈이다.



시계태엽장치를 보는 오렌지


흥미롭게도 펠리니의 영화에서 기차는 범용한 일상의 탈것으로만 단순하게 보여지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 오즈 야스지로 같은 감독의 영화에서는 기차가 매우 인상적인 사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등장인물들에게 색다르고 경이로운 체험을 선사하는 그 무엇은 아니다. 하지만 펠리니의 영화에서는 (거의 20세기 초엽의 초기영화들을 떠올리게 할 만큼) 기차가 기대감과 경이의 경험으로 가득한 사물로 묘사되곤 한다.

[... 중략...]

이런 식으로 근대적 기계들을 매우 특권적으로 묘사하는 펠리니의 성향을 보여주는 사례는 기차 이외에도 선박, 자동차(특히 자동차는 그의 영화에서 종종 괴물스러운 대상들로 묘사된다. <8 1/2>이나 <로마>에서의 교통체증 장면을 떠올려 보라. <달콤한 인생>에서 자동차는 연인들이 싸우고 다투는 공간이다), 오토바이, 비행기, 우주선(세트) 등등 다양하다.또한 영화촬영에 수반되는 번잡한 기계장치들과 세트들에 대한 경이의 시선(<인터비스타>), 그리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특권적인 경험의 묘사(<비텔로니>, <로마>, <아마코드>) 등도 포함시킬 수 있다. 이러한 기계장치들을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모던의 경험에 대한 영화적 기록으로서의 펠리니의 모더니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꼭 긍정적인 경이의 체험으로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고 그러한 장치들에 담긴 어떤 무시무시한 부분에 대한 의혹의 시선도 있다는 걸 강조해 두고 싶다. 사실 그러한 장치들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의 양가감정이야말로 모던의 경험의 양면성을 특징짓는 중요한 것이다.) 펠리니가 (특히 그의 후기작에서) 영화장치들과 세트들을 보여줄 때, 거기엔 그가 기차나 선박, 비행기나 우주선을 영화에서 포착할 때와 동일한 감정이 담겨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걸 간과하게 되면 흔히 그의 후기작들을 두고 영화 매체 자체에 대한 반영적 시선이 들어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해서 그의 모더니티를 오해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포스트모던하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거의 말장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펠리니는 모던의 경험 자체에 대한 집착을 통해 (웰스나 고다르 등에 의해 수행되었던) 모던시네마의 야심적 시도들에 (우연히?) 부분적으로 다가간 인물이다. <로마> 같은 매우 현대적인 에세이 영화를 만든 이가 곧바로 <아마코드>나 <카사노바> 같은 별반 새롭지 않은 형식의 영화들로 돌아가면서도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중략...]


저널리즘과 스펙터클


펠리니 영화에 나타난 근대적 기계장치들만을 두고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너무 편협한 일이 될 것이다. 그가 네오리얼리즘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일탈'했다고 말해지는 <8 1/2>이후 펠리니의 영화는 점점 직선적인 이야기보다는 현실과 환상/상상/망상의 자유로운 교차(<영혼의 줄리에타>), 혹은 개별적인 에피소드의 연쇄(<사티리콘>, <카사노바>,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 하나의 소재를 둘러싸고 가능한 것들(가짜/진짜 다큐멘터리, 극영화적 재현, 스케치)을 모조리 끌어들이는 에세이적 구조(<광대들>과 <로마>) 쪽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펠리니의 이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적 모더니즘의 지적인 태도보다는 오히려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악동의 태도라고 할 만한 것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때로는 거의 반지성주의적으로 여겨질 정도인데, 서사라고 하는 전통적 구조물에 대한 지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단지 그것을 귀찮아하면서 자신이 흥미롭다고 여기는 이야깃거리들을 수다스럽게 풀어놓는 - 때로는 곁길로 새는 것도 얼마든지 용인하면서 - 저널리스트적 태도 같은 것이다.

펠리니는 애초에 영화감독이 될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가 19세에 로마로 왔을 때 그의 목표는 <마르크 아우렐리오>라는 상업지에 기고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대단한 발행부수(30만부)를 자랑하고 있던 이 상업지는 펠리니가 어린시절부터 애독해오던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거기에 자리를 잡아 카툰, 기사, 칼럼 등을 약 3년간 게재하게 된다. 여기에 쓴 글 가운데 어린 시절을 회고한 칼럼에 자주 등장했다고 하는 인물이 학창시절 그의 짝꿍이었던 티타(본명은 루이지 벤지)인데, 그는 바로 <아마코드>의 주인공이다. (실제의 티타는 <아마코드>에서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 외에도 시골이나 도시에서의 경험, 첫사랑 같은 이야기들을 일인칭 혹은 삼인칭으로 써내려간 이 칼럼 기고문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훗날 펠리니 영화에 재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펠리니의 경력은 신변잡기적 칼럼니스트, 혹은 유머작가로 시작되었으며 이는 그가 영화감독이 된 뒤에도 변치 않고 지속되었다고 봐야 한다.

연재칼럼의 형식은 이미 <비텔로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텔로니>의 이야기는 그 내레이터에 따르면 '작년'에 일어난 이야기이고 각 시퀀스 별로 기승전결이 갖춰진 독립적인 회고조의 이야기가 나란히 이어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광대들>, <로마>, <아마코드> 같은 영화들은 칼럼니스트의 주제별 글 모음집과 비교해 볼 만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에는 아예 저널리스트가 등장하는데 영화 자체는 카메라로 기록한 크루즈선 여행 칼럼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상업저널리스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달콤한 인생>은 밤마다 주인공이 겪은 로마의 밤문화에 대한 이미지-칼럼들을 시퀀스별로 모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밀고 나가자면 펠리니는 <달콤한 인생>에서 마르첼로가 겪은 이야기에 상응하는 '역사적' 이야기들을 카사노바의 회고록이나 페트로니우스의 소설에서 발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 펠리니가 버라이어티 극장에 종종 드나들곤 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첫 장편인 <버라이어티 극장의 불빛 Luci del varieta>을 비롯해 시작해서 <카비리아의 밤>, <로마> 등에도 버라이어티 극장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펠리니가 어린 시절에 매혹되었던 서커스와 더불어 버라이어티 극장 펠리니 영화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또한 매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서커스나 버라이어티 극장에서 중요한 것은 스펙터클 자체의 연쇄이지 이야기가 아니다. (동일하게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연극이나 오페라와 다른 점.) 예컨대 주인공(들)을 내세우되 느슨한 모험의 줄기만을 세워 두고 그들이 방문한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상황들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지는 두 편의 시대극 <사티리콘>과 <카사노바>는 서커스와 버라이어티의 영향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펠리니가 버라이어티 극장에 매혹되었다고 할 때 그는 단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객석의 관객들이 보이는 모습에도, 어쩌면 그것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펠리니가 <마르크 아우렐리오> 시절에 기고한 글 가운데는 다음과 같이 버라이어티 극장을 묘사한 것이 있다. "여기에 어머니들은 없다. 단지 소리 지르는 소년들과, 기술적인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견습생들, 입을 헤벌리고 군침을 흘리는 노인네들이 있을 뿐이다. 배우가 무대 위로 올라오면 군중은 짐승처럼 소리 지르며 열광한다." 펠리니가 영화에서 어떤 퍼포먼스 장면을 연출할 때, 그가 퍼포먼스 자체보다 그걸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이 벌이는 소동의 스펙터클에 더 치중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그가 서커스를 보여줄 때만큼은 퍼포먼스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광대들>의 마지막 시퀀스.)

<8 1/2> 같은 이른바 '모던'하다 일컬어지는 펠리니 영화조차도 서술적 이야기와 스펙터클한 쇼, 그리고 추억 사이의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주인공 귀도의 입장에서야 현실과 상상 사이의 갈등이겠지만, 감독인 펠리니의 입장에서는 <달콤한 인생>까지는 어떻게든 유지해왔던 이야기의 진행을 여기서도 견지할 것이냐 아니면 온전히 스펙터클과 추억의 연쇄로 밀고나갈 것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실험이 되는 것이다. 펠리니가 애초부터 이 영화를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로 구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정부와 아내의 방문을 동시에 맞게 된 한 남자의 갈등에 관한 것이었는데(이렇게 밀고 나갔다면 <달콤한 인생>과 유사한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자의 직업을 끝내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영화감독으로 설정하고는 이 영화 촬영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거기에 투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무엇에 쓸지도 모르면서 지으라고 해 놓았던 우주선 세트는 결국 영화 트레일러 제작용으로 촬영했다가 결국 그 영상을 영화의 엔딩으로 쓰게 되었다.) 이 영화의 환상 장면들, 특히 어린 시절, 귀도의 하렘 환상, 윤무가 이루어지는 서커스 공연 같은 엔딩 등은 각각 나중에 <아마코드>, <카사노바>, <광대들>같은 독립적인 영화들로 만들어지게 된다.

말하자면 펠리니 영화의 분산적 서사는 20세기(초/중반)의 대중들이 누렸던 오락적 매체들의 특징을 자유분방하게 끌어들인 데서 연유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 역시 모더니스트적 접근이라기보다는 모던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펠리니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신분석학의 영향이나 펠리니가 영화를 시작하고 한참 경력을 쌓아가던 무렵에 이탈리아에 번역되었던 모더니스트 소설들과의 관련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 관해 말하자면 펠리니가 거기서 받은 영향이란 것은 - 그의 영화작품들만을 놓고 보자면 - 거의 개론서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피상적인 것일 따름이다. 알베르토 모라비아 같은 소설가는 펠리니의 <8 1/2>을 보고 나서 그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을 읽고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지만 - 이 소설은 1960년에 이탈리아어 번역판이 처음 나왔다 - 펠리니의 친구이자 그의 전기를 쓴 툴리오 케치히라는 이에 따르면, 펠리니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시 그가 그 소설을 읽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걸 알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어떤 모던한 형식의 영화에 대해 말할 때 그 감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반드시 지적인 예술의 흐름과만 관련지으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리한다면 우리는 펠리니는 물론이고, 자크 타티 그리고 제리 루이스 같은 이들의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펠리니는 자신에겐 부족한 이른바 '고급예술'의 전통을 원숙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다른 이들의 힘을 빌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예컨대 그와 평생에 걸쳐 작업한 니노 로타는 펠리니가 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펠리니 스타일의 미술을 가능케 한 피에로 게라르디, 다닐로 도나티, 단테 페레티 같은 프로덕션 디자이너들에 대해서도 언급해 두어야겠다. 오히려 그런 쪽을 다른 이들에게 맡기면서 펠리니는 영화의 분산적 구조를 짜고,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에서 장기를 발휘하곤 했던 것이다. 특히 펠리니적 서사의 구축에 있어 버라이어티 극장(의 프로그램 구성방식)과 상업저널리즘의 칼럼 스타일 글쓰기(물론 카툰도 포함되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기선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펠리니의 영화에는 인물묘사나 상황설정에 있어 몇몇 특징적인 요소들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캐리커처의 특징이 있다는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는 핵심적인 참조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하 내용은 생략]    

2011-05-17

김응수 감독의 신작 소식

지난 일요일 김응수 감독의 신작 첫 편집본을 보기 위해 충주에 들렀다. 충주시내에서 충주호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다 마즈막재라는 곳을 지나면 왼편으로는 충주댐, 오른편으로는 목벌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목벌 쪽으로 방향을 잡고 한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이차선 포장도로도 끝이 나고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는 데 하루 세 번 이곳을 오가는 시내버스 종점 부근에 김응수 감독의 작업실이 자리해 있다. 지어진 지 30년 가량 된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앞마당엔 한때 횟집으로 사용되었던 두 채의 가건물이 좌우에 위치해 있다. 거실에서 창문을 내다보면 세 그루의 정자나무 너머로 충주호반의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김응수 감독의 신작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요코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출발한 작품으로 제작준비단계에서는 <요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었으나 현재는 <아버지가 있는/없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고 최종판에서는 또 다른 제목이 붙여질 것이라 한다. 김응수 감독의 전작 <천상고원>(2006), <과거는 낯선 나라다>(2007), <물의 기원>(2009)을 지켜보아온 이들이라면 이미 짐작하겠지만, 이 신작은 <요코 이야기>를 극화한 것도 아니며 그 책과 관련된 사실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적 기록도 아니다. 70분 남짓한 1차 편집본을 보고 나서 든 개인적인 생각은, 풍경의 답사를 통해 일본이라는 국가의 내면으로의 여행을 시도했던 에세이 영화의 고전들 - 예컨대 크리스 마르케의 <태양 없이>나 빔 벤더스의 <도쿄-가> - 에 대한 한 한국 지식인의 영화적 응답이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이 영화엔 두 갈래의 여정이 교차되고 있다. 요코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그녀 아버지의 고향 아오모리를 찾아나선 Q라는 인물의 여정, 그리고 한국남자와 결혼해 현재 충주에 살고 있는 마사코라는 여인이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해 고향 고토로 가는 길에 동행한 P라는 인물의 여정이 그것이다. (김응수 감독 자신의 이중화된 동시에 중첩된 영화적 분신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Q와 P는 화면에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존재를 드러내고 또 호명된다. 즉 이 영화의 내레이션은 전적으로 Q와 P가 주고받는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편지와 여정의 기록들은 <요코 이야기>라고 하는 문제적 텍스트를 '해체'(deconstruction)하면서 쓰여지지 않은 여백의 역사들을 현재에 불러들인다. 

아직 영화가 마무리된 것은 아닌 만큼 성급한 결론은 피해야 하겠지만, 김응수 감독의 이 새로운 '충주영화'가 <과거는 낯선 나라다>(2007)와 <물의 기원>(2009)과 더불어 일종의 '역사 3부작'을 이루면서 그의 최근 경력을 중간결산하는 작품이 되리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2011-05-15

The Past is a Strange Country (2008)



Kim Kyu-Hyun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And then in a flash he just . . . burned.”


In the documentary The Past is a Strange Country (Kwagŏ nŭn nassŏn narada), an interviewee has been calmly recounting the circumstances leading up to his college friend Lee Jae-ho’s (Yi Chaeho’s) horrid self-immolation—an event he witnessed more than twenty years ago. Upon uttering the above words, however, he bursts into tears in a manner that shocks both in its suddenness and plaintiveness. This and many other powerful, challenging scenes make the film (whose title references David Lowenthal’s study on the myriad modes and sites of historical remembrance) one of the best documentaries on Korea’s turbulent post-colonial history. That is no small feat considering that since the late 1980s South Korea has produced an impressive body of politically charged documentaries that explore the country’s modern experience, especially from the perspectives of the oppressed or marginalized. Filmmakers have reflected upon, for example, the dark side of the country’s impressive economic growth in Kim Dong-won’s (Kim Tongwŏn) Sanggyedong Olympics (1988); the long forgotten plight of former comfort women in Byun Young-joo’s (Pyŏn Yŏngju) series: The Murmuring (Najŭn moksori, 1995), Habitual Sadness (Najŭn moksori 2, 1997), and My Own Breathing (Samgyŏl, 1999); and the pernicious effects of lingering social prejudices including still-pervasive male chauvinism and homophobia in Choi Hyun-jung’s (Ch’oe Hyŏnjŏng) Being Normal (P’yŏngbŏm-hagi, 2002). In the last decade, a handful of “star” documentarians have emerged, whose works, despite low budgets and occasional rough edges, have managed to command critical respect as well as box office clout among South Korean viewers. A case in point is Kim Dong-won and his film Repatriation (Songhwan, 2004), a liberalminded—some might say pro-North Korean—look at Communist prisoners of conscience who were incarcerated for more than fifty years in Southern prisons for refusing to recant their beliefs, only to be “repatriated” in 2000 to the North. Despite the richness and range characterizing this growing corpus of cinematic takes on history, The Past is a Strange Country nonetheless manages to stand out in terms of content, form, and effect.

To begin with, its content is intimately intertwined with the life story of its director, Kim Eung-soo. Born in 1966, he was a student leader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 important site of the 1980s student movement that many credit with helping lay the foundations of Korea’s democracy today. His debut film, The Time Lasts Long (Sigan ŭn orae chisok toenda, 1996), is a somber, Tarkovskian black-and-white film—partly based on his own experience—that explores the lives of the Korean student activists who moved to Russia in the 1980s. Kim seems to be intensely aware of the political complacency in postauthoritarian Korean society, but his films avoid the familiar types of social critique seen in the works of more commercially successful directors with leftist inclinations. That is, his works evince little of the pedantic and elitist tone often found in politically conscious cinema of Korea—notably, in the films of Im Sang-soo and to an extent even in Kim Dong-won’s supremely humanistic documentaries.

The Past is a Strange Country consists entirely of interview footage of former activists recalling the self-immolation suicides of two Seoul National University students—the aforementioned Lee and Kim Se-jin—in April 1986. Interviewees appear on screen, except in one instance when only a voice is heard, and the final witness turns out to be director Kim himself (interviewed by an assistant). The film eschews virtually all the usual dramatic elements found in the historical documentary genre: voice-over narration, incidental music, reenactments, and editing techniques that manipulate the pace and rhythm of the stories told onscreen. The viewer is not shown as much as a yellowing newspaper article on the suicides. Other than a dreamy, slow motion trucking of the camera through a promenade-like street, there are no fancy visuals. All interviewers directly face the barely moving camera in long takes.

Yet the film is arresting and provocative. Director Kim skillfully couples aesthetic austerity with a few subtle cinematic devices to generate palpable tension. For example, Kim’s own voice as interviewer is electronically modulated so that he sounds often cold, almost mechanical. This strategy, in the absence of most other tricks of the documentarian’s trade, brings into sharp relief the complex topography of emotions woven by the faces and voices of the interviewees. In this sense, the film is reminiscent of Shoah (1985), Claude Lanzmann’s seminal Holocaust documentary, which also rigorously avoids dramatization. Both films derive their power—at times, almost unbearable power—from the interplay of distressing testimony and cinematic mastery. Kim, like Lanzmann, knows how to conceal his hands so that the voices of others may be heard more clearly. The same approach is extended to the interpretation of its politically charged content. There is so little editorializing in the film that a viewer may begin to wonder whether the suicides were less acts of heroic self-sacrifice than reckless gestures of adventurism or immaturity, if not outright nihilism.

The gap between attempts at sober, objective reconstruction of the past by the interviewees and the uncontrollable surge of emotions—shock, sorrow, guilt, anger, regret—from the depths of their hearts is striking; and this gap, or indeed “wound,” is revealed by Kim’s respectful yet probing questioning. Ultimately, it is this success in capturing the volatile nature of “remembering” and conveying a sense of how our experience often elude fixed meanings and storylines that makes The Past is a Strange Country so moving and also historically astute. Rather than lecturing to viewers how this or that particular moment should be interpreted, the film challenges us to discern possible meanings on our own.

(* This review was first published on The Journal of Korean Studies (16, no.1, spring 2011).

호세 루이스 게린과의 인터뷰


진행자 게이브 클링거(Gabe Klinger)

1975년에서 1982년 까지 11편의 단편과 중편 그리고 장편 영화를 8mm와 16mm로 제작하셨습니다. 지금의 영화와 관련해 이러한 초기 작품들의 스타일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게 있어 영화는 어떻게 입문하고 배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춘기 땐 영화가 거의 종교나 다름없었죠. 영화는 세상 및 주변 사람들과 교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의 첫 단편들은 – 사실 볼품없는 영화들이지만 – 세상과 문화에 대한 탐색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프랑코 체제 하에 있을 때였고 당시 스페인은 문화의 불모지였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미국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절대로 볼 수 없던 때였죠. 모조리 상영 금지였거든요. 저와 어울렸던 아이들은 보진 못하고 그저 꿈꾸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영화와 그 감독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그 영화들 중 몇 편을 보게 됐을 땐 약간 실망했어요. 상상하던 것과 실제 영화 사이에는 언제나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요.

필립 가렐, 노엘 버치, 라울 루이즈 같은 이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드실 거라고 하던데요.

그분들과의 대화를 녹화해 둔 것이 있습니다. 완성을 못했지만 언젠가는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저는 어렸고, 제가 존경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영화의 개념을 알고 싶었습니다. 가령 로베르 브레송을 찾아갔지만 촬영을 거부해서 찍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를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약간의 위기를 초래하긴 했지만 자크 로지에, 장 미트리, 장 비고 감독의 딸 루스 비고 등 다른 분들과는 인터뷰를 할 수 있었죠. 메모도 있고 이런저런 생각을 적어둔 것도 있지만 정리가 되진 않았습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에는 포함되지 않은 첫 장편 영화 <베르타의 동기>에 대해 얘기해 보죠. 젊었을 때(당시 22세) 이 영화를 만드셨는데 당시엔 법적 문제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보여지지 못했습니다. “저주받은 영화”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죠.

“저주받은” 영화란 꼬리표가 붙은 게 대중들로부터 거부당해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법적 문제 때문이었죠. 그 영화는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상영되었는데 반응도 좋았고 상도 몇 개 받았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죠.

<베르타의 동기>는 여러 면에서 파격적인 스타일을 지닌 영화로 보이는데요.

그렇습니다. <베르타의 동기>는 모든 게 사전에 쓰여지고 구상된 영화입니다. 저는 그것이 정상적인 단계라고 생각하는데 첫 영화를 만들 때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확실한 부분을 찾기 시작한 이후에는 구상과 계획을 치밀하게 하지 않아도 되죠. 언제나 모든 프레임을 미리 구상해서 찍는 히치콕 같은 감독들도 있습니다. 그게 영화의 전통이죠. 매 프레임을 다루는 데 있어서 상황을 우위에 놓기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상의 원칙들을 내세우는 겁니다. 하지만 감독의 성향이 어떻든 간에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는 치밀한 구상을 통해 부담감을 덜려고 노력합니다. <베르타의 동기>에서 촬영지를 선택하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 영화는 촬영할 만한 요소가 별로 없는 황량한 카스티야 지방에서 찍었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양식화 해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황량하고 텅 빈 곳일수록 화면에 잡히는 모든 것이 굉장히 중요하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런 이미지들 – 굽은 길, 홀로 서 있는 작은 나무 등 – 의 힘은 모든 쇼트에 의미심장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또한 이 영화는 흑백영화기도 한데, 따라서 그런 이미지 구성이 제대로 느껴지길 바랐습니다. 흑백은 윤곽을 부각시키는 반면 컬러는 각 이미지의 구성을 흐릿하게 하는 얼룩 같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에서 저는 당시 22세의 초보감독으로서 불안감을 감당해 내기 위해 많은 요소들을 덜어냈습니다. 모든 것이 세심하게 통제되었죠. 그랬기 때문에 매우 정신적이고 주관적인 풍경을 만들 수 있었던 거죠. 영화를 거듭 만들면서 알게 된 것은 현실이 내게 줄 수 있는 것과 나만의 담론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 현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가에 대해 점점 더 자신감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영화 <이니스프리>는 촬영지와 배경이 아일랜드였는데, 외국에서 작업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어떤 독특한 현실을 포착하기 위해 저는 항상 영화(카메라)를 이용해 왔습니다. 제게 있어 영화와 여행은 언제나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이미지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던 뤼미에르의  촬영기사들, 그들과 같은 개척자들의 선례를 따르고 싶습니다. 그들은 최고의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 뤼미에르는 이를 “영화를 위한 사냥”이라 불렀죠 – 목숨을 걸고 최고봉에 오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이었습니다. 뿌리를 깊은 곳에 두고 살아갈 필요가 있는 영화들이 나타난 건 그 이후죠. 예를 들어 미국의 존 포드, 프랑스의 장 르누아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포드는 자신의 기원을 찾아 아일랜드로, 르누아르는 스튜디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미국으로 갔던 것이죠. 따라서 영화는 여행자들의 것입니다. 저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집을 나서서 사무실로 가는 일과 닮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건 누군가의 삶에서 특별한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한 공간 안에서 일군의 사람들 사이에 아주 강렬한 연결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저는 여행자가 일상의 삶 속에선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사물을 더 예민하게 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여행의 장점은 당신이 길거리에서 볼 수도 있었지만 방법을 몰라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을 놀라게 만드는 힘이 있죠.
예컨대 저는 <공사 중>을 촬영할 때 그러한 여행자의 시선으로 한 동네를 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가방을 싸서 그 지역에 있는 호스텔에 묵기도 했죠. 처음에 저의 관심을 끌었던 것 중 하나는 이 동네가 이곳 저곳에서 온 수많은 이민자들로 가득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를 만들려면 타자들의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이 동네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대한 보다 정확한 기록이 가능하죠. 텔레비전 방송국의 흥미를 끌 법한 “지역”의 연대기나 보고서, 그런 영화가 되는 건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법한 영화, 보편적인 것을 탐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동네의 한 작은 부분 속에서 그런 작업을 추구하는 일이야말로 저를 흥분시키는 것입니다. 귀 기울여 들어 보면 세상을 움직이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곳이죠.

감독님의 작품들 중 <그림자 열차>는 거울처럼 작용하고, <공사 중>은 창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가 보다 이론적이고 미개척의 상태에 있는 영역에 존재하는 반면, 후자는 다큐멘터리 장르 내에서 몇몇 실천적인 도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 이론과 실천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하는 편인가요?

사실 저 스스로는 교수인지 감독인지를 판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제가 감독으로서 걱정하는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학생들도 똑같은 감독으로서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영화는 개념을 움직이게 하는 수단이고 거기서 이론이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보죠. <공사 중>에는 카메라 움직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걸 도그마로서 강요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대화들을, 그것도 아주 미묘한 대화들을 관찰하는 방법을 봤던 겁니다. 그러한 제약을 두고 촬영하지 않았다면 잡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을 만큼 미묘한 대화들이죠. 아버지와 아들이 측정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아들이 “2센티미터 더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내 연필은 그 정도로 뾰족하지 않아.”라고 대답합니다. 이 부분을 만약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카메라가 움직여 따라가는 식의 관습적인 방식으로 촬영했다면 대화의 뉘앙스가 흐트러졌을 것 입니다.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로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관객에게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이죠. 정확한 스타일에 따라 접근하면 비로소 영화작업에 임하는 손과 실제 작업 사이의 관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실제 작업을 통해 알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관계입니다. 영화 전체에서 유일하게 카메라 움직임이 활용된 <공사 중>의 마지막 쇼트는 바로 그런 생각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해 오는 것을 본 이후에, 저는 마침내 제 인물들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건 도덕적 선택이었죠.

고다르가 말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렇습니다. 자문해 봐야 하는 거죠. 그들이 걸어갈 때 가만히 있으면서 건물 벽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지, 아니면 그들을 따라 갈 것인지.

<그림자 열차>에 대해 얘기해 보죠. 제작 과정이 어땠나요?

영화를 만들 때마다 저는 제작 과정을 그 한계까지 밀어붙이려 노력해 왔습니다. <그림자 열차> – 매우 래디컬한 영화죠 – 의 경우,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제작자가 제게 전적인 자유를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자유를 활용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제게 돈을 주었고 어떻든 뒤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영화를 만든 것뿐입니다. <공사 중>을 찍을 때 자문해본 적이 있어요. “전문 제작진들로부터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이 학생들에게서 얻을 수 있을까?” 우선 그들은 제게 자신들의 열정을 선사했습니다. 전문 제작진들은 이 영화 저 영화 옮겨 다니며 작업하는 이들이라 그들에게 영화란 보다 일상적인 노동 같은 것이죠. 무엇보다 <공사 중>과 관련해 가장 특별한 점은 학생들의 경우 충분한 시간 동안 저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전문 제작진들과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작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죠. 돈이 엄청나게 들 테니까요.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학생들이 제게 제공한 시간 덕택입니다.

<공사 중> 이후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과 <실비아의 도시에서>로 다시 개인적인 형식으로 복귀하시는 걸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예전에 한 감독이 제 필모그래피에서 홀수 번째 작품은 보다 개인적이고 조용한 반면 짝수 번째 작품은 보다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말이 많은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홀수 번째와 짝수 번째 작품들 사이에는 항상 이런 강한 변증법이 존재했던 것이죠. 실제로 전 그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디지털 기술 덕택에, 제가 항상 바라왔던 것, 즉 저의 독백을 영화로 담아 내는 것, 고독 속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사람들과 일하는 것도 좋지만 혼자 틀어박혀 있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요즘엔 점점 영화가 점점 글쓰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한 장면을 작업하고 나서, 자신이 쓴 몇몇 페이지를 잠시 보관해 두는 작가처럼 그걸 폴더 안에 넣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일에 착수해서 다른 이미지들을 붙여 넣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지지 않고 일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작업하지 않았죠. 이런 방식은 <실비아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들>에서 시작해서 최근 조나스 메카스와 작업한 영화-편지 작업(<서신들 Correspondences>)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사실 홀수/짝수 번째 영화들 간의 변증법은 어떤 정도까지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실비아의 도시에서>와 <서신들> 둘 모두 사교적인 영화거든요. (비록 대부분의 편지가 매우 고독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서신들>은 대화에 기반을 둔 작업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매우 흥미로운 것인데 왜냐하면 오늘날 영화감독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고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고독은 정말이지 이례적인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쿨레쇼프의 공장, 서로 대화를 주고받던 그 모든 위대한 소비에트 감독들의 이미지에 매혹되어 있었습니다. 감독들이 모여 함께 잡지를 만들고 여타 다른 프로젝트들도 진행했던 1960년대의 누벨바그도 마찬가지고요. 요즘 우리에겐 토론이란 게 거의 없죠. 제가 조나스 메카스에게서 깊이 감탄하게 된 것 중 하나가 그가 매우 사교적이란 겁니다. 뉴욕에서 둘이 함께 길을 걷고 있으면 항상 여러 감독들과 만나게 됩니다. 제가 보기에 조나스는 감독이기 이전에 – 물론 감독이기도 하죠 – 일을 벌이고 추진하는 데 탁월한 사람입니다.

<게스트>에서 뉴욕을 그린 부분은 매우 감동적이고, 또한 몽환적이며, 영화적 현실이라는 개념과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영화 속 다른 어떤 부분과도 달랐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영화 속에서 저는 이유, 인물, 상황을 찾아 그 모든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문제가 있었죠. 영화가 현실과 부딪히거든요. 뉴욕에선 그 도시를 무대로 한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지 않으면서 어떤 장면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죠. <게스트>는 어떤 장소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장기간 함께 있으면서 만든 <공사 중>과는 매우 다른 영화입니다. <게스트>는 어딘가에서 사나흘 밤을 머무르며 흔적을 남기려고 하는 몸짓을 스케치한 것 같죠.

젊은 영화광들에게 하고 싶은 충고가 있다면요?

제가 처음 영화에 흥미를 느꼈을 땐 영화학교라는 게 없었어요. 저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웠습니다. 당시 시네마테크는 정말 근사했죠. 어떤 날 오후에는 영화를 4편씩 보여주고, 고전 영화를 많이 상영해서 덕분에 영화의 역사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훌륭한 시네마테크야말로 최고의 영화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바르셀로나에 살 때 시네마테크에서 여러 번 감독님을 본 기억이 납니다.

어떤 영화들을 보러 가셨죠?

가령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이 열렸었죠.

오즈의 작품은 저도 전부 봤어요! 그때 전 <공사 중>을 촬영하는 중이었는데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유일하게 했던 일이 바로 오즈의 영화를 보러 가는 거였죠. 영화를 구성하는 그의 방식은 제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통상 한 인물에 주된 초점을 맞추는데 그러다 서서히 집단에게로 우리 관심을 향하게 하는 걸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죠. 그는 모든 이들의 관점을 모두 취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1959)에서는 작은 동네에 갑자기 텔레비전이 들어오고, 서서히 아이들, 부모들, 아저씨들, 이웃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 주죠. 오즈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이런 발상은 제가 영화작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